한국을 대표하는 ‘3대 테너’ 신영조 한양대 성악과 명예교수가 14일
뇌경색 투병 끝에 별세했다. 80세.
1943년 9월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신 명예교수는 중·고교에서 야구를 하다
장충고 시절 부상을 당했다.
당시 병상에서 라디오로 들었던 클래식에 빠져 성악가의 길을 걸었다.
1963년 한양대 성악과에 입학했지만, 고음이 올라가지 않아 군에 입대한 2년간 노래를 중단했다. 신 명예교수는 대학 졸업 후 재차 두각을 드러냈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6년간 유학했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 극장 독창 오디션에 합격했다. 1975년 귀국 직후부터 모교 강단에 서 2009년 2월 정년퇴직 때까지
34년간 테너 김우경 등 400여 명의 제자를 양성했다.
1991∼2006년 국내 최초 성악 부문 단독 음악캠프인 ‘신영조 여름 음악학교’를 운영했으며, 1976∼1995년 국립오페라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신 명예교수는 박인수(1938∼2023), 엄정행과 함께 ‘한국의 원조 빅스리(Big3) 테너’로 불리며 1970∼1980년대 한국 가곡 붐을 선봉에서 이끌었다.
카랑카랑한 엄정행, 바리톤 쪽에 가까운 박인수와 달리 신 명예교수는 High-C(3옥타브 도)를 넘나드는 고음의 미성이 장기였다.
특히 작곡가 박판길(1929∼1998)이 경복고 음악교사 시절 제자 유경환(1936∼2007)의 시에 곡을 붙인 ‘산노을’을 잘 소화했다.
그는 ‘MBC 가곡의 밤’ 등 TV와 라디오에도 자주 출연해 ‘진달래꽃’ ‘내마음’ ‘초롱꽃’
‘기다리는 마음’ ‘그리운 금강산’ 등 우리 가곡을 널리 알렸다.
(4/15 문화일보에서 발췌)
산노을
유경환 시, 박판길 곡 / 태너 신영조
먼산을 호젓이 바라보면 누군가 부르네
산넘어 노을에 젖는 내 눈썹에 잊었던 목소린가
산울림 외로이 산넘고 행여나 또들리는 한마음
아--아 산 울림이 내마음 울리네
닥아왔던 봉우리 물러가면 산그림자 슬며시 지나가네
나무에 가만히 기대보면 누군가 숨었네
언젠가 꿈속에 와서 내마음에 던져진 그림잔가
돌아서며 수줍게 눈감고 가지에 또 숨어버린 모습
아--아 산 울림이 그모습 더듬네
다가섰던 그리운 바람되어 긴가지만 어둠에 흔들리네
♣ 산노을 ♣
작곡가 박판길선생이 서울음대를 졸업하면서
경복고 음악교사로 부임했는데
그당시 유경환은 2학년.. 8세 차이의 사제지간이었다 합니다.
후에 시인 유경환이 시집을 선생님께 드렸고..
박판길은 시를 받고 잠시 잊고 있었는데
어느날 지방 대학에 출강하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가
금강 유역의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제자의 시가 떠올라 곡을 붙였다 합니다.
1972년 작곡된 이곡은 변박자가 심하고 음폭이 넓고 극적이어서
성악가들이 부르기 까다롭다 합니다.
그런 이유로 사장 될뻔하다가 안형일씨가 독창회에서 부르겠다고 해서
원래 E단조에서 테너인 안형일에 맞게 G단조로 바꾸어 발표했답니다.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의 외로움과 우수적인 선율이 잘 어울린다'는 평이었고
그후 많은 성악가들이 불렀습니다.
2023. 4. 14. 고인의 소천을 기리며 글과 음악을 올립니다.
첫댓글 선배님
산노을에 대한 이야기를 잘 읽었고
노래도 참 좋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별꽃님~ 오랫만입니다.
우연히 신영조님의 부음을 듣고
자료를 찾아 보았습니다.
순수 국내파이신 엄정행님이나
박인수님은 많은 분들이 익히 알고 계시지만
사실 신영조님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분(내 생각~)인거 같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청록님 덕분에 소식 알고 갑니다
감사 드립니다
동 시대에 같이 가는 여러분들이
한 분 한분 떠나 갑니다.
세월은 어쩔수 없는것이겠지요.
반세기전 가곡의 밤을 밝혀주셨던 분.이신데 그때의 기억이 새롭습니다.명복을빕니다.감사합니다.
이 시대를 이끌어 주셨던 분들~ 떠나가시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