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7일 묵상 본문 : 마가복음 12장 35절 - 44절 - 그리스도에 대해 바르게 알고 진리를 따라 순종함으로 믿음의 길을 가는 자 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연휴를 앞 둔 수요일 아침을 시작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삶에서 주어지는 연휴의 시간은 삶의 여유를 가지게 합니다.
그러나 그 여유가 육신의 만족을 채우는 시간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주 안에서 얻는 기쁨으로 마음을 채우도록 이끌어 주시고 주를 가까이 하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형식적인 모습이 아닌 진리를 따라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는 삶이되기를 원합니다.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고 주와 함께 하는 기쁨을 소유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본문 해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서기관들이 왜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는지를 질문하시면서 그들이 가진 메시아에 대한 오해를 일깨워 주신다.
예수님은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기록한 시편 110편에서 오실 메시아를 주님이라 말했으며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원수를 발아래에 둘 때까지 자신의 우편에 앉으라고 하셨음을 제시하신다.
이는 다윗도 그리스도가 인간적인 계보에 연연하지 않는 신적 계보의 하나님 아들이라는 것을 고백했음을 가르쳐 주신 것이었다.
그래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했으니 어떻게 그의 자손이 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리스도가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이 됨을 드러내신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은 즐겁게 듣고 깨닫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가르치실 때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의 모습을 따르지 말 것을 말씀하신다.
이는 당시 서기관들의 교만함과 거짓됨, 그리고 탐욕적인 삶의 태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들로써 그들의 받게 될 판결이 더욱 무거울 것을 말씀하신다.
이어서 예수님은 헌금함 앞에 앉으셔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살펴보셨는데 여러 부자는 많은 헌금을 했고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게 되었다.
렙돈은 당시 유대에서 통용한 화폐 중 가장 작은 화폐 단위로써 로마의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인 고드란트의 1/2 가치를 지녔으며 1 고드란트는 참세 두 마리 가격인 앗사리온의 1/4이었다.
이는 당시 과부의 헌금이 부자들의 많은 헌금과 비교하면 얼마나 적은 것인지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부자를 포함하여 헌금함에 헌금을 넣은 모든 사람보다 이 가난한 과부가 가장 많이 넣었다고 선포하신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지만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임을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계산은 산술적 계산이 아닌 헌신의 정도를 보고 계심을 의미하며 과부는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것과 같은 헌신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일깨우시고 바르게 교정해 주신다.
그리스도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오게 되지만 영으로는 이미 다윗보다 앞선 분으로써 다윗도 그리스도를 향해 주님, 곧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음을 가르쳐 주신다.
시편 110편 1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편 110편은 다윗이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한 시편으로써 그의 통치와 권능에 대해 노래하며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될 것을 보여주는 시편이다.
이런 시편에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 즉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다는 것은 다윗 자신도 오실 그리스도가 자신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던 것이다.
당시 서기관들의 관점은 오직 땅의 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없었으며 또한 그리스도도 지극히 정치적 메시아에 국한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오해로 이어지고 그것을 잘못된 가르침으로 전달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신앙관과 가치관을 가지게 됨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신학이라는 학문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연구되는 학문이지만 신학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이 성경을 사람의 말로 이해하고 전하려는 태도를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의 학문으로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려고 하다가 자유주의 신학이 만들어지고 해방신학이나 현실의 삶에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처세술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변질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오해와 잘못된 접근방식은 진리를 왜곡시키고 사람들의 욕심을 따라 해석하게 만들며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이익의 방편으로 삼게 만드는 결과를 얻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 그리고 그 언약의 성취를 가져오는 그리스도를 통해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땅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오신 분으로써 성도의 시선과 관점을 하나님의 나라에 두도록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수님의 관점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음을 계속해서 드러내셨고 땅에서 얻는 부귀영화와 형식과 외식의 삶의 모습은 거부하셨다.
또한 세상에서 큰 자는 사람들을 부리는 주권자가 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종의 모습을 가진 자임을 가르치셨다.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5~28)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도 산술적인 계산이 아닌 헌신의 정도를 보시며 사람의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기준을 선명하게 드러내신다.
세상의 가치와는 전혀 다르게 역행하시는 주의 가르침은 하늘의 진리를 깨닫는 통로가 된다.
그 이유는 진리가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이기 때문이다.
땅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진리는 아마도 과학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학은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면 폐기되고 수정되며 지금도 과학은 계속해서 수정을 반복하며 더 많은 이론을 세워가고 있다.
수시로 수정되고 바뀌는 세상의 과학은 진리라고 말하기보다는 현상에 대한 이해로 볼 수 있으며 진리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 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진리를 아는 것은 땅의 관점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을 배우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써 진리를 받아들이게 됨을 고백하게 하신다.
여전히 진리에 대해 무지함을 발견하는 이유는 땅의 관점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는 주의 은혜를 구하며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늘의 가치를 알고 진리를 따라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모습이며 능력의 모습이다.
오늘도 그 지혜와 능력이 나의 삶, 그리고 지체들의 삶 가운데 풍성하게 나타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땅의 것을 바라보는 삶은 늘 오해와 무지를 가져오고 헌신이 아닌 이기심을 드러냅니다.
하늘의 진리를 알지 못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외식을 좋아하며 교만함으로 세상의 주권자가 되어 마음대로 살려는 무지함을 드러냅니다.
하늘의 진리를 알게 하시고 땅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다윗이 고백한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저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고백되게 하시며 진정한 헌신을 통해 하늘의 가치를 구하며 사는 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저의 모습은 마음과 행동의 괴리가 너무나 큰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진실한 마음을 주시고 진리를 깨달은 만큼 순종과 헌신으로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일깨우시고 진리로 살도록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