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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8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이 아침, 주님 안에서 눈을 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여느 날과 같으나 영원에 속한 주님의 날이오니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날 되게 하옵소서.
밖에는 가랑비가 추적추적 나립니다.
날이 다시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오늘부터 설연휴라서 김동혁집사와 함께 닌빈에 여행을 갑니다.
가고오는 걸음을 지켜주소서.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주의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하기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주소서.
오염된 나의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나의 죄인 됨을 고백하오니 내 안에 진실된 자백이 있어 십자가의 능력으로 날 보호하소서.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의만 드러내기 원하며 옛 사람 또한 십자가에 못 박아 거룩한 불구자로 하루를 사는 영적 하루살이가 되기 원합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오늘 하루가 영원에 잇댄 주의 나라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막 13:1-13
제목 :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3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 나의 묵상
앞에 있는 11, 12장은 고난 주간 화요일에 있었던 예수님의 사역이 잘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종교 행위나 신앙적 개념들을 경고와 심판의 말씀으로 여러 차례 주었다(11:12-19; 12: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듣거나 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을 트집잡고 잘못을 들추어내려 하였다(12:13).
이런 유대인들의 태도는 결국 예수로 하여금 성전을 나가게 한 원인이 되었다.
유대인들의 종교적 신앙적 구심점 역할을 했던 성전을 예수께서 떠나신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떠나심을 상징하기 때문에 영원한 심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여 예수께서 떠나신 예루살렘 성전은 실제로 주후 70년에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완전히 짓밟히고 말았다.
성전 밖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건물 성전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자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병행본문인 마태복음 24:1-2절 바로 앞에 있는 23:38절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38절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고 하셨다.
여기서 ‘집’은 곧 건물로 지어진 헤롯 성전을 가리킨다.
이 성전이 황폐하여 버려질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들의 눈을 의심케 만들 정도로 그 성전이 아름답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건물 성전을 가리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냐고 물은 것이다.
또한 병행본문인 눅 21:5절에서는 제자들이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였다고 기록한다.
그들의 눈에는 너무나 웅장하고 수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이 성전이 왜 무너져야 하는지 염려하면서 건물 성전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것이다.
이 헤롯 성전이 얼마나 수려하며 웅장한지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가 잘 묘사하고 있다.
그는 성전이 백색 미석으로 되어 있고 각각의 돌을 엇갈려 쌓아서 멀리서 보면 마치 성벽에 파도가 이는 것 같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게다가 돌들 중에 주추를 이루는 돌은 하나의 크기가 길이 25규빗, 높이 8규빗, 두께 12규빗 즉 11.4m*3.65m*5.47m였으며 돌의 전면은 멋있고 화려한 그림들로 조각되어 있었다고 기록한다.
또한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예루살렘 성전은 황금으로 장식된 백색 대리석의 거대한 산과 같다고까지 극찬하였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본문 2절에서 너희들이 보는 이 큰 건물이 다 무너질 것이란다.
그것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하신다.
이는 실제로 제1성전이었던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무너질 때 선지자 학개의 회고를 보면 알 수 있다.
(학 2: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물론 헤롯 성전보다 훨씬 이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이스라엘의 종교적 신앙적 중심이었던 건물 성전이 무너지는 것은 시차가 중요하지 않고 모든 성전이 그렇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예언하셨던 제3성전인 헤롯 성전 역시 주후 70년에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초토화될 때 군인들이 황금조각을 찾는다고 하면서 모든 돌들을 들추었기 때문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않았다고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증언한다.
3-8절까지는 종말에 일어날 재난의 징조에 대한 기록이다.
그 때 일어날 일은 많은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며 미혹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들리며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재난의 시작이다.
9-13절은 그렇기에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너희 믿는 자들 곧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공회에 넘겨주고 그들이 너희를 매질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로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서 그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하지만 복음이 먼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너희를 체포하여 재판에 넘길 때 무엇을 말할까 하고 걱정하지 말 것이다.
그 때에 성령께서 너희에게 말할 것을 주실 것이므로 그 말을 하면 된다.
그 때가 되면 형이 동생을 죽음에 내주며, 아버지가 자식을 내주고, 자식들이 부모를 거역하여 죽게 내줄 것이다.
이처럼 나의 이름 때문에 너희가 미움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40여 년 전 ‘휴거’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지구 곧 이 땅 위에서 일어나는 참극을 기록한 것이다.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가 갑자기 들림을 받아 도로 위 교통이 난리가 난다.
비행기가 떨어지고 길다란 열차가 철로를 벗어나 탈선을 하는가 하면 어느 한 곳도 안전한 곳이 없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까지 나와서 상영되기도 하였다.
휴거라는 소설과 영화는 너무 이 땅에 치중하여 만든 소설이지만, 분명 그런 일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일어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자들은 너무 그런 참혹한 일에 치심할 필요가 없다.
심판주가 오실 때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예수를 믿는 자들을 구별하여 주님이 계신 곳으로 부르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무 참혹한 난리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주님과 함께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더 깊이 교제와 사귐을 나누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성전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킴 받는 부활을 말씀하신다.
(요 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46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3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유대인들은 그토록 자긍심을 가지고 신앙의 중심으로 삼았던 예루살렘 성전을 주님께서는 허물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이 오판했던 그 건물 성전도 무너졌고 그들이 알지 못했던 진짜 성전인 예수의 몸 역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래서 그 성전도 무너졌지만 하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셨다.
그 이후로 무너진 건물 성전은 지금까지 다시 복원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루살렘에 그 건물 성전을 지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 건물 성전이 지어지면 그 날이 종말의 날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성전은 절대로 지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건물 성전이 있으면 안 된다.
오직 참 성전으로 부활하신 우리 주님만 계신다(요 2:19).
그리고 그와 연합한 자들이 바로 성전이다.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을 나의 백성이 되리라.
나는 과연 성전으로써 살아왔는지 돌아보면 엉망진창이 아닐 수 없다.
성전인 나의 몸을 아무렇게나 내던졌던 자이다.
우상과 일치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내가 믿는 하나님을 우상처럼 여겼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면서 유대인들처럼 종교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예수를 이용하여 나의 필요와 유익을 구하던 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믿으면서도 그 지체인 몸을 창기와 같이 취급했던 것이다.
(고전 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이 된다.
하지만 주님과 합하는 자는 주님과 하나가 된다.
그렇기에 성경은 음행을 피하라고 강권한다.
나를 돌아본다.
창기와 같이 지내온 나를 말씀에 근거하여 고발한다.
주를 잘 믿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서도 여느 종교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철저한 종교인으로 섰던 나를 말씀에 의거 고발한다.
그리고 공의의 주님께서 나를 공의로 심판하시기를 구한다.
나의 심령이 너무나 고통스러우며 또한 격동한다.
나는 죽은 자 되어 말씀 앞에 엎드린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나를 부수시며 깨트리신다.
그 앞에서 나는 숨죽이며 새 생명으로 다시 일으킴을 받는다.
주님이 계시는 무덤에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나를 장사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아 오늘도 새 생명으로 살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제자들에게 하셨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는 말씀이 나의 인생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주님 안에서 죽고 주님과 함께 장사될 때 비로소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사오니 잘 무너지고 잘 죽게 하시어 주님과 함께 장사되게 하소서.
나의 생각과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이 실재가 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잘 넘어지오나 무릎이 깨지고 상처가 날지라도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오니 나를 붙잡아 주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현현하심이 영적 실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