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에서 굶다♧
아련히 떠오르는 사시사철 어여쁜 꽃잎이 너우너울 춤추는 아름다운 상춘의 고을 중국의 운남성!
지금부터 십년 전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서 겨울방학 방과후수업을 마친 다음 날 인천행 리무진에
몸을 맏겨 허겁지겁 인천공항으로 달려가니 먼저 와있는 선생님들이 기껍게 손짓했다.
비행기 수속을 밟고 앞으로 펼쳐질 꿈같은 여행을 떠올리며 실비단 겹겹이 펼쳐진 은하수를 4시간
정도 날아 곤명 비행장에 내리자 현지 가이드가 버스 앞에 서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마침 점심 때가 되어 식당으로 이동해 의자에 앉았다. 이곳에서 처음 먹는 정식인지라 어떤 음식이
나올까 기다리는 마음은 방년의 부풀은 섬소녀 같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속설처럼 한참
있다가 나온 반찬에서 야릇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 순간 내가 최초로 해외여행할 때 중국의
북경식당에서 겪었던 향이 오감으로 다가왔다. 십여년 전 처가 가족들과 오리전문점에서 기름으로
튀겨진 볶음요리를 입에 대는 순간 몸을 가눌 수 없는 내음이 달려와 으윽 몇번 하다가 문 밖으로 뛰
쳐나가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우리는 가이드의 인도에 따라 곤명의 정경을 한눈에 완상하기 안성마춤인 석산에 올랐다. 아스라한
낭떠러지 절벽을 파서 만든 좁은 길을 땀으로 목욕하며 목적지에 이르니 우리나라 가을 하늘처럼 청
명한 모습이 드러나며 눈 아래 동양화 한폭 같이 아름다운 호수가 수려한 경치와 조화를 이루어 손에
잡힐 듯이 수놓아 마치 그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어 사푼사푼 걸어가는 듯했다.
다음날 우리는 구불구불한 비포장 산길을 넘어 동양의 샹그릴라로 알려진 대리로 향했다. 텔레비젼
에서 보았던 티벳의 차마고도와 흡사한 험준한 산악지역을 넘자 빼어난 산수를 보듬고 있는 마을이
자태를 드러냈다. 요산요수의 고장답게 주민들 마음씨 또한 하얀 양처럼 순했으며 고지대에 생존력
이 강한 야마를 방목하고 약초를 제배하면서 살아갔다. 비교적 물품이 풍족하며 인심이 훈훈해 여유
와 낭만이 넘실대는 고을처럼 보였다. 이곳 특산품인 야마고기와 생선요리를 맛본 후 옥룡설산이 있
는 호도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칼처럼 뾰쪽하고 깎아지른 듯한 수천 미터 협곡과 협곡 사이로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가 마치 호랑이가 포효하는 모습과 유사해 호도협이라는 명칭이 유래했다고 한다.
가까이 얼굴을 내밀자 협곡 사이로 흘러가는 물줄기에 호랑이 수천마리가 맹렬한 기세로 으르렁 으
르렁 뛰어가는 듯해 나도 모르게 대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여행갔던 남이섬의 큼지막한 돌덩이에
새겨진 남이장군의 '북정가'가 스쳐고 지나갔다.
白頭山石 磨刀盡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豆滿江水 飮馬無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마시리라
男兒二十 未平國 남아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 大丈夫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랴
전도양양한 소년 장군 남이가 북으로 군마를 이끌고 가면서 지은 7언 절구의 한시로, 호도협 우렁찬
물줄기를 쳐다보니 전쟁에 임하는 장군의 넘쳐흐르는 기개가 눈앞에 선하다.
우리는 잠시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켜 호도협을 배경으로 정겨운 표정을 짓고 기념촬영 시간을 가진
다음 인력거에 기대 즐거운 휴식을 취하다 옥룡설산쪽으로 찬찬히 발길을 옮겼다.
옥룡설산은 이 지역이 옥이 많이 산출되는 지역이어서 옛날 어떤 공예가가 만든 용이 산이 너무 아름
다워 설산으로 올라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 영험한 산 기운을 받기 위해 산소병을 사
들고 케이블카에 의지해 삼천 미터 정도 되는 지점에서 내리자 호흡이 가빠왔다. 기운을 내지니고 있
는 산소를 마시며 삼천 오백 미터쯤 이르자 이상하게 머리가 띵하고 약간의 구토증세가 있어 하산을
준비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오백 미터 지나자 설산에서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이 모여 만들어진 호수를 구경하
는데 영롱한 수면이 파아란 가을 하늘보다 청징하게 반짝거렸다.
호수 감상을 마친 우리는 여기저기 꽃이 피어있고 산 능선이 어여쁜 한복 윗저고리 형상 같으며 능수
버들이 주욱 죽 늘어진 고아한 시골길을 벗삼아 굽이굽이 강물이 마을을 안고 흐르는 여강에 황혼의
어스름이 짙게 깔릴 무렵에 도착했다.
여강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고풍스러운 옛고성이 잘 보존된 도시이다. 사시사철 설산에서 흘러
내린 청징한 물이 성 전체의 수로를 돌고 돌아 깊은 밤 고성에서 비치는 창호지로 만든 청사초롱에 반
사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 저곳 기념품 파는 상점과 선술집 분위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사
람들이 넘쳤다. 지구촌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신대륙을 빌견한 듯 들떠 시끌벅적했다. 나는 이곳의
고아한 화풍에 푹 빠져 그 감회를 짤막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달빛은 흐믓하게 소곤대고
청징한 여울 어께춤 추는데
청사초롱 은은히 빛난 전방
님들의 봄날 활짝 피어나네!
우리는 예상보다 늦은 시간 목적지에 도착해 아랫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 먼저 여장을 풀
고 저녁 식사하러 식당으로 가서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가이드가 현지식이 준비되어 있으
니 맛있게 드시라는 한마디 말만 던지고 사라졌다.
'아름다운 고장답게 음식도 거나하겠지!" 혼자 중얼거렸다.
잠시 후 흰쌀밥과 중국 남방식 반찬이 식탁에 진열되어쏜데 입을 갖다 대는 순간 지금까지 한번도 느
끼지 못한 고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다른 반찬을 먹어봐도 역시 다를 바 없었다. 뱃속은 꼬르륵 꼬르륵
하는데 음식은 내키지 않고 가져온 고추장 김은 동이나고, 일행 모두가 숟가락을 놓고 한숨만 쉬었다.
가이드에게 한식 있는 곳을 물으니 이곳의 전통 중 하나가 외부 음식이나 물품 반입을 금한다는 것이
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다른 음식점에서 시켜 먹으려고 했으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하여 그냥 굶고 저녁
미팅시간 후 과자안주를 잔뜩 사와 중국술과 부장선생님이 미리 준비한 양주를 곁들여 대취하고 끔나
라로 갔다.
요즈음 지구촌이 하나되는 세계화의 가속패달을 밟고 있으며 이러한 물결은 큰 바다를 향해 유유히 흘
러갈 것이다. 여행하다 보면 유독 한식을 찾는 사람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물론 나도 처음 해외여행 가
서 그곳 음식을 접하고 야릇한 냄새가 밀려와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제는 외국의 음식문화를 역지사지하는마음으로 흔쾌히 받아들이니 거부감이 덜해지고 어떤
음식은 한식보다 입맛이 땡겨 가끔 즐겨기기도 한다.
앞으로 도래할 세상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푸르른 이상을 펼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
회가 될 것임이 명확관화하다. 그들과 상생하기 위해라도 외국문화를 적극 이해하고 관심을 보이는 태
도가 필요하다.
특히, 그들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음식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바람
직하지 않을까(?)
먼 훗날 살뜰한 옛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여강에 여행할 기회가 돌아온다면 향신료 모락모락 피어나
는 그 음식을 실컷 한번 먹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