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리형님
오를리형님의 글을읽고 백호형님이 감동하여 눈시울을 적시었다니
그 또한 감동이지요 형님이 심금을 울리셨구료
어제 저녁에 올리렸는데 아들 녀석이 방에 들어오는 바람에 그만 컴을 양보하고 오늘 아침에 올려드립니다.
적적히 앉아 있으니 형제님들이 생각나서 이렇게 들리니 많은 형제님들이 오셨네요
난필 돌아가는데로 지금부터 지꺼리고 갑니다. 좋은 하루들 되십시요
*** 달밤에 한 잔의 술 ***
달이 휘영청 허리 중턱에 걸리고 오늘따라 달이 유난히 밝다. 쓸어 담을 수 있을 만큼 무량한 월광이다. 나는 지금 술잔을 든다. 한잔의 참 이슬이 이렇게 맑을 줄이야 낭자히 흘러 넘치는 달빛이라 하얀 소주에 달빛을 담아 마신다. 더욱 은은히 이 고운 술잔이다. 이리저리 눈짐작을 하면서 코를 휭휭 돌리면서 꼴깍 들이키는 한잔의 술잔에 님을 넣어 마신다.
아니 님과 같이 마신다. 여름의 달빛이 싱그럽기도 하지만 병 바닥에 깔린 남은 술을, 병을 비우며 따라 마신다. 잘 설어 넣어 마시는 오이가 소주를 더욱 시원하게 하는데 앞에서 같이하는 술잔에 걸린 님은 왜 이리도 술잔에 아롱 그리는가! 그 향기와 달빛의 조화가 술맛을 돋구어주고 해마다 연례처럼 여름밤의 행사다.
게다가, 가슴을 베어낼 듯이 시린 이 달빛 때문에 나는 벌써 봄에 담은 진달래 한 잔에 흥 그리워진다. 이럴 때는 나는 한없이 넉넉해진다. 왕자도 백만장자도 부럽지 않다. 이 순수하고 너그러운 나만의 잔치,
마루 바닥은, 도마와 정갈하게 닦은 참외들의 광주리, 그 옆에서 자랑스럽게 뽐내는 넉넉한 술잔들 님들은 어딜 가고 빈 술병만이 널브러졌는가? 그 것은 전혀 구도나 청결을 고려치 않아 오히려 즐비한 화구처럼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나열된 제멋의 현상들, 내가 술을 마실때는 그 질서 의식을 강조하지 않는다.
내가 술을 담그고 마실 때는 나를 방해하는 그 아무 것도 없지 않는가! 그 행사가 너무 신성해 보여서인지, 이럴 때 도취된 내 모습을 아무도 방해하려 들지 않는다. 물론 되도록 한갓진 택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방해받지 않는다.
나는 술을 담근다.
술을 담그기도 하지만 술을 좋아한다.
도를 넘지 않는 취기는 일생의 멋을 더해 주기에, 나는 술을 즐긴다. 술처럼 인간을 너그럽게 하는 마술사가 어디 또 있겠는가? 인간이 신과 만날 수 있는 다리가 있다면, 그 것은 예술과 술이 아니겠는가.
나는 술을 좋아하는 만큼 아낀다. 술을 마시고 망신살이 뻗치거나, 추태를 부리는 사람은 혐오한다. 그것은 술을 모독하는 사람의 작태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술의 가치와 멋을 아는 사람은 결코 술을 탓할 행위는 하지 않는다. 술을 알맞게 들었을 때, 자신을 가장 정직하게, 가장 순결하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인간이 넉넉하고 너그럽게 변할 수 있는 것도 술의 조화일 수 있다. 물론 과음으로 일어나는 불상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것은 바로 술을 모독하는 대가이다.
알맞게 향기로운 한 잔의 술이 얼마나 인간을 멋지게 변화시키는지, 그런 너그러움과 넉넉함이 항상 지속된다면 인간은 결코 불행이나 슬픔 따위의 감정을 접하지 않을 게다.
나는 철따라 술을 담근다.
봄이면 진달래와 솔방울 술, 여름이면 매실주와 자두 주, 가을이면 포도주와, 모과주, 그리고 다래주, 초겨울이면 머루주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머루가 없어 머루주를 담그지 못하는 것도 섭섭한 일이다. 그리고 겨울에 담그는 대추주의 맛도 인삼주의 쓴맛도 모두가 일품이 아니겠는가. 아참 그래도 전통으로 담는 그 한겨울에 캐어낸 더덕주는 어떠하고, 그러기에 술의 가치는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사철 그 특유의 진미이다.
어쩌면 나는, 그 예쁜 빛깔과 향기는 아마 이 방을 출입하는 임들의 모습과도 같은 것이라 의심하지 않는다. 그 마시기보다 들어다 보고 즐기며, 담그는 그 자체를 나는 즐기는 편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빚은 술을 뽐내며 임들에게 권하는 것도 퍽 즐거움을 누리는 쪽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술을 운운할 처지가 못됨을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안다.
그러나 나는 ‘곡주’ 담그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룩으로 담는다는 것만 알지 나는 더 이상을 모른다. 어느 시기가 오면 한번쯤 알아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꼭 곡주 담그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기회를 찾는 중이다. 마알갛게 익어, 하얀 박 바가지로 떠서 님을 불러 한잔 올리면 임들이 얼마나 좋아 할까를 내 깊이 생각한다. 곡주의 맛이랑 어디 님이 없으면 술맛이 나겠는가, 그것도 둥근달이 없으면 그 짙은 향이 어디 나랴, 그래서 달빛과 동동주는 더욱더 어울리는 한국의 민속주가 아니겠는가,
손님이 오셨을 때, 주안상 차려내며 앞치마에 손을 닦고 돌아서는 아낙네의 부끄러움은 어떠하고 한국 여인의 멋을 어떤 아름다움과 견주랴, 그 어느 시기였던가, 서울의 그 어느 집에서 우리가 만나 쇠주 한잔 올려놓고 건배를 하는 만남의 즐거움도 다 쇠주의 덕분이 아니겠는가, 귀한 손님 앞에 놓고 주안상을 올리는 여인의 마음은 어떠하랴 사랑하는 님을 앞에 모셔놓고 따라주는 술잔은 정이야 얼마나 넘치겠는가, 또 한잔 술을 올릴 때에 여인의
마음은 얼마나 행복하겠는지 상상이나 감히 했겠나, 분주히 움직이는 여인의 치마폭은 그 얼마나 손놀림이 고왔으랴,
문중의 어른이나 마을 어귀의 할아버지들이 낮은 기침소리 몇 번 하면서 집안에 들어서면, 이미 곡주 한 잔으로 가슴을 풀고 싶음을 알아보는 지혜가 옛날 우리 한국인의 부덕이 아니 엇겠는가.
이제는 얼음 띄운 투명한 글라스에 지독한 술을 부어 마시는 서양의 문화가 우리들 생활 속에도 스며들고, 오래지만 나는 그런 양주는 별로 즐기지 못한다. 하지만 내 집에 놀러온 귀한 손님에게, 색깔 어여쁜 과실주 한 잔 내드리는 기쁨은 이내 내 마음을 축제로 안내하는 청량제가 아니겠는가.
특히 오늘처럼 달빛이 어린 밤에 호올로 썰어 담그는 모과주야말로 이미 내 마음을 한없이 행복하게 한다. 머리 속으로는 벌써 향기로운 노오란 술이 익고, 내가 청한 님이 내 옆에 있어 그 둥근달을 술잔에 띄워 놓고 마시며 우리 세상사 곤곤한 이야기며, 아릿다운 노랫가락이 흥을 더욱 짙게 하고. 거문고면 어떠하고 풍금이면 어떠한가, 젓가락 두드리는 그 장단은 어떠하며 덩실덩실 춤추는 님 앞에 앉으니 어깨춤이 절로 나네, 어휴 이러다가 오늘저녁 일과 망치겠습니다. 그만 오늘은 중얼거리고 싸악 물러갑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