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함박눈이 내린 듯 하얀 점들이 빼곡히 들어찬 검은색 바탕의 그림이 있다. 작품 한가운데에는 노란 꽃무늬가 예쁘게 장식된 빨간 접시가 있고 접시 속에는 연탄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연탄의 따뜻함과 포근함이 느껴지는 이 그림은 화순소방서 현장대응단 박래균(51·사진)씨의 작품이다.
박씨는 9∼30일 갤러리 생각상자에서 ‘소방관 아저씨가 그린 연탄꽃 이야기’를 주제로 세번째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의 수익금은 지난 8월 전신주 벌집제거 중 감전사고를 당한 노석훈(39) 소방장 가족을 돕는 데 쓰일 예정이다. 온몸에 2도 화상을 입은 노 소방장은 현재 치료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노 소방장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같은 소방관으로서, 또 가족을 책임지는 같은 가장으로서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며 “미흡한 작품이지만 연탄처럼 따뜻한 온정이 전해져 부디 힘을 내기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0월과 11월 두차례 개인전을 열면서 박씨는 정식 화가가 아니라는 생각에 작품을 판매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연말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노 소방장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약 70작품을 출품하며 자선 전시를 결심한 것이다.
공무원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그는 전시작에 “오늘같이 추운 밤엔/저 새까만 연탄들이/너희 엄마다” 등 직접 쓴 시도 적어 놓았다.
“약 20년 전부터 연탄을 소재로 종이에 그리기 시작했죠. 연탄을 택한 이유는 연탄과 소방관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얀 재만 남을 때까지 자기 몸을 태워 주변을 따뜻하게 해주는 연탄을 통해 소방관의 희생정신을 표현하고 싶었죠.”
그는 점점 각박해지는 우리 사회에 연탄의 따뜻함을 전해주고 싶었다. 몸과 마음의 추위를 연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녹여주고 싶다는 게 박씨의 소망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월호를 소재로 한 작품도 선보인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에 4차례 파견되며 학생들의 시신을 수습한 경험이 있었다.
박씨는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적은 없다. 작품은 플러스펜으로 그린다. 하얀 종이에 미리 스케치를 한 다음 검은색으로 채우며 배경을 그리는 것이다.
“잉크에 젖은 종이를 드라이기나 햇볕으로 말려가며 조금씩 그리기를 반복하죠. 작품 하나 완성하는데 보통 2일이 걸리고 플러스펜은 5자루 정도를 써요.”
작품 제작방법을 설명하던 그는 겉옷 안주머니에서 플러스펜 3자루를 꺼내 보여줬다. 언제 어디서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항상 가지고 다녀야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앞으로는 그림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좀 더 나은 작품을 통해 요즘 세대들에게 연탄의 따뜻함을 알려주고 싶어요. 우리가 어릴 적엔 연탄이 엄마이자 아버지처럼 따뜻한 존재였죠. 부디 연탄처럼 따뜻한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