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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바이러스가 한창 위세를 떨치던 2020년 6월, 『팬데믹 패닉』으로 전례 없는 위기의 규모와 의미를 발 빠르게 진단했던 지젝이 초기의 혼란이 지나고 지난 1년간, 끊임없이 지연되고 있는 출구의 시간대를 기록했다. 이 책은 문화 전쟁의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마스크 거부 운동에서부터 출발해 수확되지 않은 작물이 썩어가고 있는 미국의 농장과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고 외치는 시위 현장을 거쳐,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필수 노동자들과 노동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기업, ‘비대면’ 사회를 지향하며 정부가 내놓는 새로운 뉴딜 정책과 일론 머스크의 당황스러운 돼지 실험 등이 가져올 전망을 비판하며 팬데믹 시대의 복잡한 풍경을 대담하게 그려낸다. 포퓰리즘과 음모론, 그리고 코로나 피로감이 ‘알려고 하지 않는 의지’를 전방위에서 추동하고 있는 오늘, 지젝은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를 써내려가며 위기의 본질을 이해할 결정적인 사유의 단서들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바이러스만 통제할 수 있다면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인간이 육체를 벗어나 정신화된 혹은 디지털화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포스트휴먼의 미래도 결코 우리의 전망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모든 것을 바꾼 충격이라고는 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지젝의 통찰은 코로나 시대에 대한 가장 철저한 반성문처럼 읽힌다.
🏫 저자 소개
슬라보예 지젝
우리 시대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이자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꼽히는 인물.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태어나 류블랴나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파리8대학교에서 정신분석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 파리8대학교, 런던대학교 등에서 강의와 연구를 진행했다. 현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 사회학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급진적 정치이론, 정신분석학, 현대철학 분야에서의 독창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대중문화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전방위적 사유를 전개하는 독보적인 철학자다. 스스로 ‘정통 라캉주의적 스탈린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등으로 부르며, ‘저항’과 ‘혁명’, ‘공산주의’ 논의에 끊임없이 불을 지피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 『새로운 계급투쟁』,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까다로운 주체』, 『폭력이란 무엇인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천하대혼돈』 등 다수의 저작을 펴냈다. 실천하는 이론가로서 그의 면모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어, 전작 『팬데믹 패닉』은 〈가디언〉으로부터 “지젝은 이 책으로 역사적 위업을 달성했다”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에서 지젝은 초기의 혼란 이후 봉쇄와 해제가 반복되며 팬데믹에 대한 피로감이 깊어지던 지난 1년을 더 첨예한 시선으로 돌아본다. 한국어판에는 서문을 포함하여 특별히 네 편의 원고를 단독 수록했다.
📜 목차
서문 팬데믹의 삶을 노래하자
1부 팬데믹 시대의 증상들
1장 왜 철학자에게 작물 수확에 관한 글을 쓰라고 하는가
2장 코로나바이러스, 지구온난화, 착취: 동일한 투쟁
3장 동상 파괴는 왜 급진적이지 않은가
4장 아버지…… 혹은 그보다 못한
5장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의 섹스
6장 돼지와 인간의 (시원찮은) 멋진 신세계
7장 접촉 금지의 미래는 필요없다
8장 천국에서의 죽음
2부 급진적 정치학의 미래
9장 그레타와 버니는 어디에 있나?
10장 맞아요, 붉은 알약…… 그런데 어떤 것?
11장 수행하기 어려운 단순한 것들
12장 전시 공산주의
13장 민주주의의 한계
14장 현재의 정세: 우리의 선택
(결론 아닌) 결론 알지 않으려는 의지
부록 권력, 허상, 그리고 외설에 관한 네 가지 성찰
옮긴이 해설 팬데믹을 다시 사유하자
📖 책 속으로
“우리가 거의 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듯, 진짜 문제는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삶이 그저 지루하게 이어지며 항구적인 우울증을 유발하고 버텨내려는 의지를 상실하게 만든다는 점이다.”(13쪽)
“철학자가 작물을 수확하는 일을 거론하는 것이 지금 전적으로 타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방식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대하는 기본적 태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제안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 모두는 철학자가 되어야만 한다.”(25쪽)
“도덕적으로 죄의식을 즐길 게 아니라, 그리고 그렇게 해서 진짜 피해자를 욕되게 만들 게 아니라,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죄의식과 피해자 의식은 우리를 움직이지 못한다. 오로지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그리고 각자를 책임 있는 성인으로 대하면서 함께 행동할 때 우리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이길 수 있다.”(50쪽)
“팬데믹의 진짜 문제는 사회적 고립이 아니라 타인과의 사회적 연결망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다. 팬데믹이 진행되는 기간보다 우리가 더 타인에게 의존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68쪽)
“공적 영역에서 그레타와 버니가 사라진 일은 더 통합된 목소리가 필요한 이 바이러스 위기의 시국에 걸맞지 않게 그들이 너무 급진적이어서가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그들은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감염병의 조건에서 재활성화할 수 있는 포괄적인 새로운 전망을 제안하는데 그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102~103쪽)
“이 글에서 내 목표는 팬데믹이라는 실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쉽게 비판을 퍼부으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이들이 이러한 부인을 하게 되었는지 따져보는 것이다.”(110쪽)
“우리는 팬데믹이 모든 것을 바꾼 충격이었고, 이제 어떤 것도 전과 같지 않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맞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실제로 바뀌지 않았다. 팬데믹은 단지 이미 존재했던 것을 좀 더 선명하게 부각시켰을 뿐이다.”(110~111쪽)
“우리는 느닷없이 우리가 매일 이용하던 건물과 사물이 닫힌 채 원래의 기능을 잃고, 그 자리에 그저 정지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실제 삶에서 우리에게 부과된 일종의 ‘정지 상태epoche’는 아니었을까? 그러한 순간에 우리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전과 동일한 시스템이 매끄럽게 기능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 정말 가치 있을까?”(127~128쪽)
“아감벤의 판본은 이렇다. 한 사람이 일단 그 당시에는 그에게 별 의미가 없는 듯했던 인간의 얼굴이라는 레비나스의 개념을 찬양하는 데 몰두하게 되면, 곧 이어 그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위협을 부정하는 일로 나아간다. 우리는 맨 얼굴이 아니라 마스크로 가린 얼굴에 더 많은 ‘인간성’이 있다는 엄중한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136쪽)
“요컨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위기는 십 년이 훨씬 넘게 지속된 것이고,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그 위기를 어느 한도 이상으로 폭발시켰을 뿐이다. 그래서 해결책은 분명 모든 소수 의견을 좀 더 포괄하는, 모종의 더 ‘진정한’ 민주주의에 있지 않다.”(151쪽)
“현실과 꿈의 대립 관계에서 환상은 현실 쪽에 있고, 우리가 트라우마적인 실재와 마주치는 것은 꿈에서다. 따라서 현실을 견딜 수 없는 사람에게 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꿈(에서 공표되는 실재)을 견딜 수 없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191쪽)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현재와 같은 시절에 우리의 지배적 태도는 ‘알고자 하는 의지’일 거라 여겨진다. 바이러스를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제거하기 위해 그 작동방식을 충분히 이해하려는 의지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점차로 목격하게 되는 것은, 지식이 우리의 일상적 삶의 방식에 제한을 가하려 할 경우, 오히려 바이러스에 관해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않는 의지가 나타난다는 것이다.”(196쪽)
“오늘날의 외설적인 정치적 인물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흠 잡히지 않아야 하는 스탈린적 지도자상과 정반대다. 스탈린적 지도자는 사소한 추행이나 불완전함만으로도 자신의 지위가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우리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위엄을 포기하는 일을 밀어붙인다.”(210쪽)
“자연이 살아남을지, 지구상에 자연의 생명체가 살아남을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자연은 살아남을 것이다. 단지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화할 뿐.”(257쪽)
🖋 출판사 서평
“다가올 더 큰 역경 앞에서
우리 모두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현실이 품은 환상을 꿰뚫는 유일무이한 시선
위기의 철학자, 지젝이 다시 돌아왔다!
영구적인 감염병의 시대, 철학의 쓸모는 무엇인가
『팬데믹 패닉』 이후 1년, 정지되었던 시간의 의미를 되짚다
“팬데믹은 모든 것을 바꾼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실제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_본문 중에서
2019년 12월에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2년차를 맞이했다.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고, 아직도 팬데믹은 쉽게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한창 위세를 떨치던 2020년 6월, 『팬데믹 패닉』으로 전례 없는 위기의 규모와 의미를 발 빠르게 진단했던 지젝이 초기의 혼란이 지나고 지난 1년간, 끊임없이 지연되고 있는 출구의 시간대를 기록했다. 전작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현실을 강조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드러나는 인종과 계급 차별을 부각하고, 그 위기의 징후를 지구온난화, 환경 파괴, 삶의 디지털화, 새로운 포퓰리즘의 등장과 정신건강의 문제로까지 확대하여 포착하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점차적으로 번질 전 지구적 위기(‘퍼펙트 스톰’)를 더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모든 것을 바꾼 충격이라고는 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지젝의 통찰은 마치 영화의 플래시백처럼 우리로 하여금 지난 2년의 시간을 돌이켜보게 한다. 그리고 팬데믹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코로나바이러스 피로감’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 이 세계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지나온, 그 잃어버린 시간들 속에서 팬데믹을 더 철저하게 사유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평화롭게 살지도, 손쉽게 죽지도 못한 채 지루하게 이어지는 이상한 삶
출구 없는 시간의 우울증적 구조를 파헤치다
“백신에 거는 희망과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이 뒤섞인 지금,
우리는 끝없이 늦춰지는 신경쇠약 속에 살아간다.”_본문 중에서
출구의 시간대가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 2020년 봄만 해도 정부는 2주가량의 봉쇄나 다른 방역 조치가 끝나면 상황은 나아질 거라 말했다. 그해 여름이 지나면서 2주는 두 달이 되고, 또 1년이 되었다. 2021년 현재, 백신이 개발되고 접종을 시작하며 낙관적인 분위기에 부풀었던 세계가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다시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지젝은 팬데믹 초기의 충격을 지배한 감정은 두려움이었지만 뚜렷한 전망이 제시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두려움이 우울증으로 넘어갔다고 진단한다. 명확한 위협이 있을 때 생겨나는 감정이 두려움이라면, 우울증은 우리의 욕망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버텨내려는 의지를 상실하게 하는 이러한 우울증적 반응은 팬데믹이 불러온 심리적 충격의 일부일 뿐이다.
전면 봉쇄와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와중에 독일의 광장에서, 영국의 해변에서,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고, 정부의 방역 조치에 맞서는 시위가 있었다. 우파 포퓰리스트는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과장되었다는 음모론을 설파하고, 일부 급진 좌파는 정부가 이번 위기를 기회로 자국민을 완전히 통제하려고 한다며 팬데믹에 맞서 싸우기를 거부했다. 지젝은 지난 1년 동안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를 지배한 “삶은 지속된다”는 구호, 일상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열망을 일종의 정신병적 징후, 집단적 광기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징후의 결말은 지젝에게 ‘세계의 또 다른 종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연을 가린다는 이유로 마스크 쓰기를 거부한 아감벤의 시(“사랑이 폐지되었다”)는 지젝에게 와서 정확히 이렇게 비틀어진다. “의료가 폐지되었다 / 자유라는 명분으로 / 이제 자유가 폐지될 것이다. / 생명이 폐지되었다 / 인류라는 명분으로 / 이제 인류가 폐지될 것이다.”
영구적인 감염병과 음모론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지젝이 건네는 붉은 알약
팬데믹의 진짜 현실은 무엇인가?
“이는 우리 모두가 내려야만 하는 선택이다.
무지에의 의지라는 유혹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기꺼이 팬데믹을 사유할 것인가?.”_본문 중에서
지젝은 “왜 철학자가 작물 수확에 관한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며 책의 포문을 연다. 비좁은 막사에서 잠을 자는 농장 노동자 수백 명이 한꺼번에 집단 감염되어 수확하지 못한 작물들이 여기저기서 썩고 있는 사태, “숨을 못 쉬겠다”는 조지 플로이드의 마지막 말에 공명하듯 백인보다 더 높은 확률로 바이러스에 희생되는 흑인들, 재택근무가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며 새로운 착취의 형태로 등장하는 현상, 봉쇄 조치로 목숨을 걸고 있을 할 것인가, 일을 하지 않고 죽을 것인가의 선택에 놓인 필수 영역의 노동자들 등 바이러스의 창궐과 함께 표면화된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의료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동력과 분리할 수 없는 팬데믹의 본질을 드러낸다. 팬데믹은 작물 수확처럼 철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문제조차 인간의 실존과 직결된 “속속들이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 지젝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팬데믹에 맞서 ‘포스트코로나’를 상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디지털의 힘을 빌려 ‘비접촉 사회’ 혹은 ‘비대면 사회’로 나아가자는 정치권의 새로운 뉴딜 정책은 그 답이 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출구를 모색하는 것은 마치 ‘거리두기’가 팬데믹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우리에게 과거에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비슷한 맥락에서 인간 존재들을 집단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된 두뇌’에 접속시켜 언어를 거치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일론 머스크의 프로젝트의 허구성 역시 드러난다. 지젝은 우리의 삶뿐 아니라 정신까지 디지털화하려는 팬데믹 시대의 열망은 자본주의 이후를 사고할 수 없는 우리의 무능함을 드러낼 뿐이라 말한다.
바이러스만 통제할 수 있다면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인간이 육체를 벗어나 정신화된 혹은 디지털화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포스트휴먼의 미래도 결국 우리의 전망이 될 수 없다. 지젝이 제시하는 포스트코로나 정치학은 오늘의 위기가 수십 년 전부터 지속해온 문제의 발현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의 핵심 전망이기도 한 ‘전시 공산주의’는 따라서 바이러스에 맞선 인류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착취 체제에 맞선 인류 공통의 싸움이다. 우리가 되찾으려는 ‘일상’이 차별과 착취가 온존하는 끔찍한 현실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먼저 모든 것이 달라진 듯 보이지만 결코 달라지지 않는 차별의 시스템에 문제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에 우리는 세계를 너무 빠르게 바꾸려 했다
이제 그 변화를 새롭게 따져볼 시간이다
‘뉴노멀’과 ‘비대면 사회’를 넘어서는 포스트코로나에 대한 급진적 제언!
“낡은 세계는 끝이 났지만
‘비접촉’의 미래가 우리의 유일한 선택은 아니며,
세계의 또 다른 종말은 가능하다.”_본문 중에서
‘알지 않으려는 의지’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의 (결론 아닌) 결론에서 지젝은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이때, 바이러스의 작동방식을 충분히 ‘알고자 하는 의지’보다 오히려 그에 관해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않는 의지가 확산되는 역설에 주목한다. 지식이 우리의 일상적 삶에 제한을 가하려 할 경우, 사람들이 ‘무지無知에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팬데믹을 ‘알고자 한다는 것’은 그 위기의 복잡한 총체성에 눈을 뜬다는 의미다. 즉, 팬데믹에 맞서는 싸움이 포퓰리즘과 음모론에 맞서고, 인종차별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고, 환경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작업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일이다. 따라서 ‘낡은 일상으로의 복귀’가 포스트코로나에 대한 상상을 지배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안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될 것이다.
집단 면역이라는 희망이 좌절되고,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에서조차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확진자가 다시 늘고 있다. 팬데믹 이후에는 지구온난화와 같은 재난이 우리에게 훨씬 더 근본적인 조치들을 요구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어쩌면 지젝의 예언처럼 진짜 위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고, 우리는 더 큰 재앙에 앞서서 일종의 ‘총연습’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과 동일한 시스템이 매끄럽게 기능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일인지를 묻는 지젝의 제언을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다. 세계가 ‘코로나 피로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지젝의 통찰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가 써내려간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는 우리에게 위기의 징후를 포착하는 날카로운 시선과 새로운 형태의 삶을 상상하게 하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선사해줄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2년의 시간을 진지하게 사유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코로나 시대에 대한 가장 철저한 반성문처럼 읽히는 이 책에 담긴 지젝의 주장을 경유할 필요가 있다.
“‘(낡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대신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건설하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로 나서야만 한다. 이 건설 작업은 의학적이거나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속속들이 정치적 문제다. 우리는 사회적 삶 전체를 새로운 형태로 발명해야만 한다.”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