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Í)
(1904년 5월 11일~
1989년 1월 23일)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로마 병사에게 체포되기 전, 그를 추종하는 12사도와 함께한 마지막 자리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극적인 순간이다. 십자가 책형과 함께 신약 성서를 통틀어 긴장이 최고 절정기에 이르는 사건인 까닭에 대가들이 반복적으로 그린 주제이기도 하다. 현실주의자 가운데 인지도가 가장 높은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도 이 주제를 현대적으로 변형시켰다. 그의 <최후의 성찬식>에 쏟아진 당대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1955년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이 그림이 기증되었을 때,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그림이 있던 자리를 이 그림이 대체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달리가 전대의 성화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도상을 자기 식대로 재구성한 작품군은 독립된 범주로 묶일 만큼 많다.
이 그림에서는 중심 인물인 예수를 정중앙에, 12사도를 좌우에 배치했다. 그리고 정체 불명의 오각형 프레임을 예수 뒤로 배치하여 이른바 황금 비율의 아름답고 안정적인 구도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안정적 형식성은 고전 회화의 전통을 계승한 것에 가깝다. 하지만 세부로 들어가면 달리의 독창적인 손길이 느껴진다. 백색 가운을 걸친 채 고개 숙인 12사도의 모습은 밀교나 사교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들에게 둘러싸여 반투명하게 묘사된 예수의 인체는 신비주의 교단을 이끄는 교주처럼 보인다.
이런 파격적 변형 때문에 독일의 신학자 틸리히는 1956년 시사 주간지 『타임』에서 이 그림을 두고 “피상적이며 감상적으로만 아름다울 뿐”이라고 깎아내렸고, 싸구려 예술을 뜻하는 독일어 ‘키치’라는 말로 이 그림에 대한 개탄을 표했다(영어로는 “한마디로 쓰레기!”라고 번역되었다). 틸리히는 달리가 기독교의 양식을 모방했을 뿐 기독교의 본질을 제거했다고 비판했다. 이 그림에서 또 다른 쟁점은 예수에 대한 묘사다. 가슴팍을 고스란히 드러낸 예수의 형상이 달리의 아내 갈라와 닮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갈라는 달리가 평생 매달린 주제로 성모 마리아의 형상으로 그려진 적도 있다. 이 그림이 속인과 성인을 한 몸에 결합시킨 불경함에, 그리고 배경을 마치 SF 영화처럼 뒤튼 것에 속세의 관객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어쩌면 정통 성화로는 신정국가의 권위를 느끼지 못하는 현대의 관객에게 공감을 얻기가 힘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