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逆) 남파랑길(아홉 번째 - 4)
(고성∼통영, 2023년 11월 25일∼26일)
瓦也 정유순
실제로 통제영에서는 군점(軍點)과 수조(水操)에 앞서 서피랑 둑사에서 둑제를 행했다고 전하며, 둑소·둑사가 있었다고 해서 ‘뚝지먼당’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볼 문제가 있다. 둑기 또는 둑신은 우리가 흔히 치우천왕(蚩尤天王)이라고 부르는 자오지환웅 상징이다. 자오지환웅(慈烏支桓雄)은 배달조선의 14대 환웅이고, 전쟁의 신으로 추앙 받고 있으며,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로 등장하여 월드컵 4강에 오르도록 하였다.
<2002월드컵 붉은악마 깃발>
치우천왕은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 역대 왕릉에서도 군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조선조에서도 매년 음력2월 경칩(驚蟄)과 음력9월 상강(霜降)에 지금의 서울 성동구 뚝섬에서 왕이 직접 군대를 사열하거나 출병하면서 치우천왕을 상징하는 둑기(纛旗)를 세우고 둑제(纛祭)를 지냈다. 그래서 한강과 중랑천에 둘러싸인 지형이 마치 섬처럼 보인다고 하여 ‘독기를 꽂은 섬’으로 둑도(纛島)로 불리다가 ‘뚝도 또는 뚝섬으로 소리가 바뀌었다.
<황제훤원을 굴복시키는 치우천왕-김산호 화백>
난중일기(亂中日記)를 보면 이순신장군도 임진왜란 때 총 3번의 둑제(纛祭)를 올렸다고 나온다. 둑기의 창은 치우의 상징인 삼지창이고, 장군들의 투구 위에 작은 삼지창과 붉은 수술은 둑기를 상징한다. 즉 한민족은 치우의 자손으로 무신의 가호를 받는다는 의미다. 둑제란 조선시대 군대를 출동시킬 때 군령권(軍令權)을 상징하는 둑(纛)에 지내는 국가 제사로 무관이 주체가 되어 무신(武神)인 치우천황에게 제를 올리는 신성한 행사다.
<이순신장군 동상의 투구에 달린 둑>
서포루에서 뚝지먼당이 있었다는 박경리선생의 생가로 추정되는 골목을 비집고 내려오면 세병관이다. 문화동에 있는 통영세병관(統營洗兵館)은 충무공 이순신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1605년(선조 38)에 세웠다. 완성된 이후에는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의 건물로 사용되었다. 한국에 현존하는 목조 고건축 중에서 경복궁 경회루나 여수 진남관(鎭南館) 등과 함께 평면 면적이 큰 건물의 하나다. 2002년 10월 14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통영세병관 전경>
쫒기는 시간 때문에 세병관에 눈 인사만하고 발길은 동피랑으로 향한다. 동피랑은 조선시대에 이순신(李舜臣)장군이 설치한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였으며, 일제강점기 때 통영항과 중앙시장에서 일하던 외지 인부와 하층민들이 기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동피랑은 구불구불한 옛날 골목을 온전하게 간직한 곳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전깃줄과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빨래, 그리고 녹슨 창살이 어우러져 친근한 풍경을 이룬다.
<동피랑 입구>
동피랑 언덕에 들어서면 벽화가 반갑게 맞이한다. 원래 이곳은 통영시가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여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2007년 10월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공공미술의 기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고, 전국 미술대학 재학생과 개인 등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더니, 허름한 달동네가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바닷가의 벽화마을로 새로 태어났다.
<동피랑 벽화>
동피랑 골목의 시작은 중앙시장 옆길로 올라간다.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벽화가 나타난다. 커다란 고래가 그려진 벽화도 있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그림도 있다. 온통 푸른 바다로 가득 찬 벽도 있다. 벽에 그려진 ‘천사의 날개’ 중앙에 서 있으면 나도 천사가 되어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상상도 해본다. 골목 중간쯤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푸른 통영바다가 골목 사이로 펼쳐진다. 먼나무 붉은 열매도 계절에 맞게 한 목 한다.
<동피랑 골목>
<동피랑 벽화>
통영의 아름다움은 “필설로서 표현할 수 없다”던 정지용(鄭芝溶) 시인의 글이 생각난다.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마을에 구경온 사람들이 몰려들자 통영시는 마을을 보존하기로 방침을 바꾸어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마을 꼭대기의 집 3채만을 헐고 마을 철거방침을 철회하였다. 철거 대상이었던 동네는 벽화로 인하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변모하였고, 마주보는 서피랑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동포루>
동피랑에서 강구안 동편으로 내려온다. 강구(江口)는 통제영사령부의 통영팔전선(統營八戰船)을 감추어 정박하는 천혜의 군항이다. 8척의 전선은 통제사의 기함인 천자제일호좌선(天字第一號座船)을 비롯하여 통제사 부관들의 전선인 부선(副船), 부사령관인 중군의 중군선(中軍船), 본영의 장졸들의 좌한선(左翰船)과 우한선(右翰船), 통제영 거북선인 통구선(統龜船), 적의 동정을 정탐하는 좌탐선(左探船)과 우탐선(右探船) 등으로 편제되었다.
<통영 강구안 - 안내판>
이러한 통영8전선이 정박하는 강구해안의 계류장을 병선소(兵船所) 또는 선소(船所)로 ‘병선마당’으로 불렀으며, 지금의 ‘문화마당’자리다. 조선시대 통영항 강구는 동충산(東忠山), 서피랑, 여황산(안뒤산), 동피랑, 남망산 등이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는 천혜의 요새였고, 각 산정상마다 천척루(千尺樓), 서포루(西鋪樓), 만하정(挽河亭), 북포루(北鋪樓), 동포루(東鋪樓), 남송정(南松亭) 등의 누정이 많아 그 풍광 또한 일품이다.
<남망산>
강구안을 동서로 연결한 보도교는 총 길이 92.5m, 높이 13m의 연결교량으로 통영항 강구안의 낮과 밤을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2017년부터 노후 항만인 강구안을 바다를 이용한 도시형 친수공간으로 재정비하여 2023년 3월부터 시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휴식 공간 및 디피랑, 중앙시장, 동피랑과 인접하여 통영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밤에 아름다운 항구가 여수항이라면 낮에 아름다운 항구는 통영의 강구안이다.
<강구안 보도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023년 11월 8일 발표한 밤이 더 아름다운 야간관광 명소 <대한민국 밤밤곡곡 100>에 통영의 디피랑이 명소형(나만 알고 싶은 야간명소), 강구안 문화마당이 루키형(나만 몰랐던 야간명소)에 선정됐다. <대한민국 밤밤곡곡 100>은 지역의 매력적인 야간경관이나 밤에만 체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야간관광 활성화를 도모하는 취지에서 선정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 아름다운 야경이 디파랑길의 보도교였다.
<강구안 보도교 야경>
오후에는 통영시 정량동에 있는 <이순신공원>에서 시작한다. 이순신공원은 구 한산대첩기념공원으로 이충무공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통영시 동호항방파제 인근에 위치해 있다. 1592년 8월 14일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이 해상주도권을 다툰 전투에서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에 대승하여 식량 보급로를 확보하고 일본 수군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든 임진왜란의 최대 승첩지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이순신공원에 전시된 천자총통>
공원 중앙에 정자가 우뚝 자리하고 있으며 청동으로 만든 높이 17.3m의 이순신장군 동상이 한산도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고, 탑신(塔神)에는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장군의 좌우명이 최대 대첩지(大捷地)였던 한산도를 바라본다. 주변에는 통영해상순직장병위령탑, 해안수변데크길, 수국산책로, 무장애나눔길, 잔디광장, 어린이놀이터 등이 있다.
<이순신장군 동상 - 필사즉생 필생즉사>
북쪽은 망일봉이, 남으로는 호수 같은 통영항과 한산대첩의 학익진(鶴翼陣)이 펼쳐졌던 바다의 풍광이 아름답다. 또, 공원 내 승전무와 남해안별신굿, 통영오광대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연습에 전념할 수 있는 통영무형문화재전수관이 있다. 야외공연장이 마련되어 수시로 공연이 열리고 시민과 관광객이 어울리기도 한다. 2023년 유아숲체험원이 신규 조성되어 유아 숲 교육 및 숲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산도와 앞바다>
<학익진도 - 네이버캡쳐>
이곳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통영시 용남면 화삼리다. 용남면(龍南面)은 통영시의 북동쪽에 위치한 면이다. 남쪽은 무전동·정량동과 접하고, 면 전체가 북동쪽으로 돌출하여 나머지 3면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동쪽으로 견내량 건너 거제시 사등면을 마주 보고 있으며 거제대교와 신거제대교를 통해서 연결된다. 해간도(海艮島)·어의도(於義島)·지도(紙島)·수도(水島) 등 4개 유인도를 비롯하여 15개 무인도를 포함한다. 농경지가 해안선을 따라 완사지에 분포해 있다. (完)
<통영해상순직장병 위령탑>
<용남면 화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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