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Ⅱ-59]아름다운 만남(12)-황의록이라는 분
후배인 ‘펜화대통령(펜통)’ 세 번째 개인전이 열리는 갤러리를 지난주 목요일 전야제에 이어 어제 다시 찾았다. 한국미술재단 아트버스 카프의 이사장을 처음 만나 두 시간여 얘기를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원래도 감탄을 잘 하는 체질이지만, 그분의 얘기를 들으며 정말 놀라웠다. 한국미술재단(KAF, Korea Art Foundation, 한국화가협동조합의 후신)의 황의록黃義錄(76) 이사장은 유별나게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1, 2층 계단벽에 걸려 있는 초등학교 교명校名 목록사진이 이채로워 그것부터 물었다.
KAF는 황 이사장 개인과 인연을 맺은 지인들과 제자 등 60여명의 회원을 중심으로 국내의 역량 있는 화가들을 아무 조건도 없고 소리소문없이 후원하기(전시, 작가들의 세계작품ㅇ여행 등) 위해 설립한 기관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미션이 전국의 초등학교 내에 <작은 미술관>을 설립해 주는 것이다. 6000개교 중 10%에 해당하는 600개교에 운영하는 것이 1차 목표, 이미 90여개교에 선을 보였다고 한다. <학교 안 작은 미술관>에는 작가들의 작품 20여점이 걸려 있다. 해마다 270점을 기증했으며, 소속작가들을 미술관을 만들어준 초등학교에 보내 어린이들 미술수업을 해주고 어린이와 화가작품으로 전시를 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실적이 계단벽에 사진으로 보이는데도, 믿을 수가 없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그런 활동을 하시는 겁니까?” 심플하고 컴팩트한 대답이 즉시 돌아왔다. “그림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 재원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십시일반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하지요”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하여 인터뷰기사를 보고 그 ‘아름다운 실체實體’를 비로서 알게 됐다. 하여, 나의 졸문인 ‘아름다운 사람’ 시리즈 12번째 주인공으로 모신 까닭이다.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 자체가 워낙 아름다운 말이기에 ‘아름다운 사람’이나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만남’은 모두 동어반복同語反覆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만남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 아닌가.
후배의 전시회 역시 대관료 공짜는 물론 여러 편의를 제공한다고 한다. 이미 몇 년 전 첫 번째 전시회도 이곳에서 열어주었다. 명함의 직함은 KAF 이사장인데,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26년간 경영학을 가르친 교수였다. 경영학과 예술, 게다가 그림과는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링크된 세계일보 기사를 보면, 그 ‘전모全貌’가 상세히 기술돼 있으니, 굳이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겠다. "그림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경영학자서 화가 후원자로 [나의 삶 나의 길] (daum.net)
개인적인 히스토리를 들었다. 마침 그분의 고향이 내 고향과 이웃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남원 사매면 수월마을 출신. 장수황씨 집성촌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다니던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상경하여 ‘남의 집살이’(이사장의 표현)를 몇 년 하다가 뜻한 바 있어 중고교과정 검정고시를 한 해에 해치우고도 마저 대학교까지 1년 3번의 시험을 통과, 이를 승승장구라 해야겠다, 고려대 심리학과 합격. 석사과정까지 수료하는 행운을 거머쥐었을 뿐만 아니라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전임강사에 이어 지방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국가장학생(IBRD차관)이 되어 미국 유학, 박사가 되었고, 대우그룹 회장 눈에 띄어 아주대 경영학과에서 26년 동안 후학을 양성했다. 교수시절 삼성, LG 등 대기업 자문교수와 사외이사 등도 내로라한 경력일 터. 한마디로 자수성가, 입지전적인 인물이자 인간승리 주역 중 한 명이라 하겠다.
그런 그가 정년퇴직 후 한국미술계를 걱정하다 못해 후원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화가와 후원자 그리고 그림을 소유하는 소비자 등 삼각관계의 중심축을 자청했다. 화려한 경력이 중요한 게 아니고, 화단 지원에 제2의 삶을 바치기로 한 결심이 훌륭해도 너무 훌륭하지 않은가. 메이크 머니 차원이 아니기에 더욱 아름답다. 그는 분명 우리 사회의 준수한 원로가 되어갈 것이다. “그림으로 세상을 따뜻하게”는 KAF의 지상 최대의 슬로건인 듯. 문득 “시로 세상을 아름답게”를 외치며 ‘시세아’라는 시전문잡지를 만들어 문학계에 헌신하다 별세한 나의 친구 ‘천의 목소리’ 성우聲優 권희덕씨가 떠오르고(보이스탤런트라는 말을 지었고, 성우 배철수를 탄생시켰다. 필자도 시세아의 필자.흐흐), 전각篆刻으로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하겠다며 독학자습하여 독보적 경지를 개척한 외우畏友도 생각났다.
그렇다.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무조건 예술藝術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政治는 그 발치에도 못가는 '저급하고' 천박하게 된 지가 너무도 오래인 것을. 그 예술은 장르 불문이다. 문학이면 어떻고 음악, 조각, 그림이면 어떤가? 전각도 예술이고 공예工藝도 예술이다. 초등학교 안에 작은 미술관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것이 꿈나무 기르기가 아니라도 좋다. 일단 인성人性교육, 정서 함양, 민주시민으로 건실하게 성장하는데, 어찌 일조一助만 할 것인가. 이사장의 의지로 설립된 KAF의 앞날에 서광瑞光이 비추기만을 비는 마음 가득이다. 세상은 역시 곳곳에 이렇게 사회에 봉사할 줄 알고, 그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아름다운 마음씨의 소유자가 무릇 기하이던가. 그러기에 이 풍진 세상이 굴러가는 게 아닐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알량한 생활글 쓰기가 어찌 그 축에 낄 수나 있을까? 모나 심으러 고향에 내려가야겠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데, 과연 농심農心이 천심天心일까? 내가 그것을 어찌 알 것인가? 모르는 일은 솔직히 모른다고 하자.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