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241C6C3D55AE0D6217)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새가 울고 꽃이 피었겠습니까 당신의 슬픔은 이별의 거울입니다
내가 당신을 들여다보면 당신은 나를 들여다봅니다 내가 당신인지
당신이 나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별의 거울 속에 우리는 서로를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당신이 남습니다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 들 우리가 하나 되었겠습니까
이성복, 이별1
![](https://t1.daumcdn.net/cfile/cafe/223A823D55AE0D6306)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이성복, 그 여름의 끝
![](https://t1.daumcdn.net/cfile/cafe/252FB53D55AE0D640C)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기형도, 오래된 서적
![](https://t1.daumcdn.net/cfile/cafe/2436BF3D55AE0D6508)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https://t1.daumcdn.net/cfile/cafe/2525A23D55AE0D6612)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기형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115D3D55AE0D671D)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 시킬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형도, 기억할 만한 지나침
![](https://t1.daumcdn.net/cfile/cafe/216DE03B55AE0E5617)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을 꿈이었다
황인찬, 무화과 숲
![](https://t1.daumcdn.net/cfile/cafe/2117BA3455AE0D691F)
아카시아 가득한 저녁의 교정에서 너는 물었지 대체 이게 무슨 냄새냐고
그건 네 무덤냄새다 누군가 말하자 모두가 웃었고
나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어
다른 애들을 따라 웃으며 냄새가 뭐지? 무덤 냄새란 대체 어떤 냄새일까?
생각을 해 봐도 알 수가 없었고
흰 꽃은 조명을 받아 어지러웠지
어두움과 어지러움 속에서 우리는 계속 웃었어
너는 정말 예쁘구나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쁘다
함께 웃는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는데
웃음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어 냄새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기에 우린 이렇게 웃기만 할까?
꽃잎과 저녁이 뒤섞인, 냄새가 가득한 이 곳에서
너는 가장 먼저 냄새를 맡는 사람, 그게 아마
예쁘다는 뜻인가 보다 모두가 웃고 있었으니까, 나도 계속 웃었고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안그러면 슬픈 일이 일어날꺼야, 모두 알고 있었지
황인찬, 유독
첫댓글 좋은 시 너무너무 고마웡ㅁ7ㅁ8
기형도님 시 진짜짱ㅋㅋㅋㅋ
짱이얌
기형도 시인밖에 몰랐는데 여시 덕분에 좋은 시인분들 많이 알아간당~ 고마워♥♥ 나중에 시집 꼭 사야지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검은 밤에 펼쳐 본다면 온 세상이
당신이 되겠지
어떤 분이 단 코멘트였는데 뇌리에 강렬히 남아 나도 남겨봤어... 수줍수줍
@D.Oable 와 여시 나 연어하다가 봤는데... 너무 좋다...
이성복시인 ㅠㅠ
기형도 시인의 시들은 내 최애8ㅅ8.. 시집도 샀어ㅠㅠ 좋은 시 올려줘서 고마워 여시야♥
기형도 시인 ㅠ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