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버린 옛일이지만 / 이성경
지금도 생각해 보면 내 자신이 애잔한 마음이 드는 시절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훨씬 지난 시절이기는 했지만 시집은 달랐으니까.
큰애가 뱃속에 있을 때 "하나님 남자아이가 태어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고 그 기도를 태어날 때까지 했다.
친정아빠도 걱정이 되어서 기도 제목이 외손주가 건강한 남자아이로
태어나는 것이었다고 하셨다.
옛말에 시집살이가 고초당초보다 맵다고 했다나, 혹시 당신 딸이 딸을 낳아
시집살이 호되게 할까 봐 걱정하셨고
난 나대로 내 자식이 구박덩이가 될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도가 응답되었는지 큰애가 남자아이였고 체격도 또래 아기들 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식성도 좋아서 자라면서 역시 체력도 좋고 성격도 서글서글 좋았다.
눈치도 빨라서 할머니의 칭찬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어떤 할아버지가 큰애를 보더니
"고 녀석 귀를 보니 대통령감이네.'라며 지나갔던 일도 있었다.
아마 그 정도로 관상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둘째가 생기면서는 걱정거리가 생겨 또다시 기도 제목이 되었다.
아기가 뱃속에 있으면 감기약을 먹으면 안 되는데 소화제와 감기약을
다 먹었기 때문이다. 걱정이 되어 약국에 갔더니 소화제는 괜찮은데
감기약은 잘 모르겠다고 하는 말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날부터 시도 때도 없이
기도를 하게 되었다.
둘째는 건강하고 똑똑하고 예쁜 아이가 태어나게 해달라는.
혹시나 구박덩이가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별의별 생각이 들었으니
그 기도는 절박하기만 했다.
정상아로 태어나도 큰애가 사랑을 받으면 둘째는 대부분 찬밥 신세가 되기도 했으니
불안한 마음은 컸다.
하지만 불안해했던 날들을 보상받은 듯
그 기도 역시 응답을 받아서였을까 건강하고 똑똑하고 예쁜 아이가 태어났다.
큰애도 똑똑했지만 작은애는 그 이상이었다.
지능이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평균 정도니까 어릴 때와 다르긴 하다.
그렇게 두 아이는 기도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도 속에서
자라났고 친정에서 산후조리하는 동안 지독한 반기독교 집안인 시집의 눈치 안 보고
축복기도와 영아 세례까지 받았다.
그렇게 지내던 날들도 지나 이제는 연년생인 두 애는 다 자라 어른이 되어있어
그 시절도 한참 지난 옛일이 되어 저 멀리 사라졌지만 두 애를 보고 있으면
가물가물 그때의 일이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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