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시인의 사랑
청춘에 관한 시 몇 편 들고 왔어요.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최승자, 내 청춘의 영원한
나무 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 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기형도, 대학시절
폐를 적시는 푸른 연기
오줌보다 자주 지린 눈물
삶 이전의 삶
새로운 分子들의 낙원
비를 맞으며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거울들
두 박자 빠른 속도로 자전하는 지구
암소를 잡아먹는 사과 속 벌레들
잠든 여자의 횡격막에 쏟아부은 여름비
다 자란 나무들이 토해내는 뿌리
왈츠풍으로 그려진 벽지의 악보
지구의 움직임보다 두 배는 빠르게 노래하는 새들
부싯돌로 써도 좋을 만한 지구
구름 속에서 사라진 정원
돌밭으로 이루어진 낙원
멀리 돌아가
새로 쓰는 일기마다 폭죽이 되는,
가장 푸른 저물녘
-강정, 스무살
한 사람이 건널목을 다 건너갔을 때
하얀 건널목이 사다리처럼 일어나 어딘가로 사라지는 일
그런 일을 목격한다
그 사람의 어깨를 사랑하게 되고
가방을 선물하게 된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어도 눈치챌 리 없는 스무 살처럼
누군가의 곁에 있더라도 눈치챌 리 없는
스무 번째의 스무 살처럼
손을 어째야 할 지 모르겠다는
한 사람에게 악기를 선물하게 된다
그러곤
손 위에 손을 포개어놓고 잠드는 사람이 된다
내 손은 나를 모르므로
순순하고 다정하다
한 사람이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해 상상하는 일
그로 인해 나는 내 방에서 느린 춤을 춘다
그런 일을 겪는다
침묵 속에서 춘 혼자만의 춤과 같이
몹시 보잘 것 없고도
몹시 그럴 듯한
그런 하루가 다녀간다
-김소연, 스무 번의 스무살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때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모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심보선, 청춘
소금 그릇에서 나왔으나 짠맛을 알지 못했다
절여진 생선도 조려진 과일도 아니었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지 않았고
서성거렸다, 꽃이 지는 시간을
빗방울과 빗방울 사이를
가랑비에 젖은 자들은 옷을 벗어두고 떠났다
사이만을 돌아다녔으므로
나는 젖지 않았다 서성거리며
언제나 가뭄이었다
물속에서 젖지 않고
불속에서 타오르지 않는 자
짙은 어둠에 잠겨 누우면
온몸은 하나의 커다란 귓바퀴가 되었다
쓰다 버린 종이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소리를
밤새 들었다
-진은영, 청춘
나는 의지박약증 환자였고 지지리도 못난 울보였다
나와 식구들은 야당정치가 아버지 운명의 새끼줄에 끌려 다닌 궤짝 안의 고달픈 사과였다
이제 뭐든 끝장을 보는 집요증 병자가 되기까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80년대의 바다와 격랑 속의 나의 이십대를 메모한다
1980년 만 19세---꽃피는 재수, 불타는 광주---재수의 비탈길을 올라 정일학원으로 수원 13화실로 왕복. 서울역에서 대대적인 데모의 구경꾼으로 불타는 버스를 보고 충격.
20세---전쟁과 통곡---아버지 국회의원 낙선. 디자인과 때려치우고 다시 서양화과 보려고 삼수 선택. 부모님과 나와 언니 수시로 다툼.
그 끝엔 통곡하고 매맞고 쫓겨나는 내가 있었다. 왜 내 울음은 집 기둥을 흔들고 폭포 소리같이 멈추질 않는가. 가끔 가출하여 독서실에서 2박3일로 의자 펴놓고 바퀴벌레 죽이며 자다깨다 할 수 없이 집에 돌아오다
21세---꼬냑 한잔 더 주소---여동생은 자기만 합격해서 미안하다며 울다. 그림 그리지 말라는 조건으로 어머니는 사수를 제안. 치욕의 꼬냑을 마시며 문학의 맛도 느끼고 미친 듯이 공부하다 폐병 기운이 돌아 두달간 약으로 지내며 자꾸 빠지는 머리카락을 밀다. 다시 그림 그리려다 편안히(?) 국문과 선택.
22세---갈피 못 잡던 나날---여기 오려고 몇수씩 했나, 이래저래 후유증으로 신경정신과 4년간 왕래. 성당에 나가 영세를 받고 지금까지 마음의 천국과 지옥을 헤맴
23세---빌어먹을 과오는 뛰어넘어라---아버지는 개업한 한길장의사를 민추협 사무실로 쓰심. 학교를 안 가 학사경고 받고 유급. 총으로 쏴서 죽이고 싶다는 아버지 말에 나는 죽지 않고 헌책방을 돌고 책을 끝장내기 시작. 더불어 열렬히 전시회를 찾고 실패에 대한 끝없는 반성
24세---청춘은 상실의 활주로에서---초가을 첫 연애에 실패, 주변에서 4명 사망. 모든 혼란으로부터 탈출하려 몸부림치다. 다신 돌아오지 않는 비행기같이 청춘과 심각했던 풋사랑은 날아간다
25세---고독과 예술의 은총을 선택했다---장미화원처럼 황홀했던 정기간행물실에서 살다. 자살하고 요절하고 남달리 불우하고 저주받은 작가에게 위로받고 고단백 예술의 영양가를 얻다.
싸르트르와 함께 구토하고 카프카의 성에서 바슐라르와 촛불을 켜고 까뮈에게 정직함을 배우다.
마르께스의 밀림을 날아다니고 네루다 김수영 이성복의 지평선에서 사자노을을 보고 또 하염없이 울다. 새 집을 지을 때까지 40평 추운 건물에서 각자의 짐으로 가린 채 4남매는 지겹게 다투며 겨울을 지내다
26세---하나로 뭉치게 한 고통---그 시대에 일용할 양식 최루탄을 마시며 이한열 죽은 다음날 데모하고 돌아온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무릎 깨진 나, 역사와 혁명과 사랑을 배웠다.
태어나 처음 갖는 두평짜리 나만의 방에서 가끔 그림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창작.
삼년간탄 장학금으로 유급당한 돈 빽소 타자기 사고 옷도 사고 데이트 중에 두번째 남자 교통사고, 이별의 아픔보다 아슬아슬한 삶과 존재에 대한 심각한 고뇌에 빠짐 이후 참 진지했던 신앙생활로
기도와 겸손을 배우다
27세---찾아온 환희와 무거운 짐---또 낙선하면 자살하실까봐 다신 안하고 싶던 선거운동 필사적으로 하다. 외로운 30년 야당생활과 3수 끝에 아버지는 통일민주당으로 13대 국회의원에 당선.
원내 부총무로 활동 어머니와의 종교분쟁으로 예수쟁이 여동생 분가
28세---피 터지게 살아보자고---시집가라 성화이신 어머니와 심각한 대립. 노태우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데모 주동으로 아우의 체포와 석방. 틈틈이 고독의 설사제, 인생의 방부제인 책을 읽으면 날은 잘도 가더라
29세---삼십 세로 가잖아---민자당으로 합당, 의리를 따라 여당이 되신 후 갈등과 괴로움 속에서 헤매신 아버지.
돈은 번 만큼 몸과 마음은 부서진다.
대전엑스포 홍보부 입사, 적응 못해 고달팠던 3년 . 홍익미술원에서 유화 판화 2년 수업 받다.
삼십 세로 끌려가는 일이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야 함을 체득하는 것이다
30세---독신의 빛과 그늘---극도의 불화 끝에 어머니가 주신 천만원으로 두달간 전세의 전세 살다, 다락방으로 이사, 4년간 기거 많은 영화와 음악과 조플린과 바젤리츠 쟈코메티에 전율하며 더 많은 생각 더 많은 독서와 더 깊은 시를 쓰자고 몸부림.
독신생활은 때론 향기로우나 처절해서 교도소가 따로 없더라
-신현림, 나의 이십대
첫댓글 와 제목 처음 보는 구절인데 완전 좋다ㅠㅠ
너무 좋다 최승자랑 진은영 특히 좋아.. 고마워 여시
제목 보고 홀린듯이 들어왔어
내 청춘의 영원한 저 시 너무 좋아해서 외우고 다녔는데ㅠㅠㅠ 잊고 있다가 여시 덕에 다시 생각했어! 다른 시들도 너무 좋다ㅜㅜ 고마워♥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너무예쁜말들...
읽어보기) 고마워....
너무 좋아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