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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추억(2) 아프리카의 사선(死線)에서 | ||||||||||||||||||||||
나는 한동안 이 영화 때문에 지독한 마음의 병을 앓았다. 당장이라도 아프리카로 떠나고픈 주체할 수 없는 충동 때문이었다. 며칠씩이나 연속적으로 꿈속에 영화 속의 장면이 나와 함께 오버랩 될 정도였다. 그 이후로 누군가 내게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뭐냐?”는 대단히 답하기 힘든 질문을 하면 주저하지 않고 “한 100편쯤 있는데 그중 10위가 아웃 오브 아프리카다.” 라고 대답하곤 했다. 또한 앞으로 언젠가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뭐냐?” 나와 같은 답변을 하는 여자가 있다면, 난 그녀와 반드시 결혼하겠다고 다소 허튼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20 여년 뒤 사실이 될 줄이야 -_- 나는 결혼 전 스물일곱 명의 여자에게 이 질문을 던졌고, 스물일곱 번째 여자에게서 이 대답을 얻어냈다. 그리고는 이어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스물여덟이었던 이 여자는 서른 살까지만 돈을 벌고 번 돈의 절반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드린 뒤, 나머지 절반을 가지고 아프리카로 떠나 아웃오브 아프리카의 여주인공 카렌(메릴 스트립)처럼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그럼 나는 그대에게 데니스 하튼(로버트 레드포드)이 되어 주겠소.”라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뱉었고, 그게 프러포즈가 되었다. 그녀는 당연히 내 아들 민재의 엄마다. 물론 우리는 서른 살에 아프리카로 떠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서른다섯이 넘기 전에 반드시 아프리카에 가자는 약속은 했다. 그리고는 서른 네 살이던 2002년 4월 우리는 아프리카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나라에서 아프리카 직항 비행편은 없다. 홍콩을 거쳐 캐세이패시픽 항공을 타고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로 우선 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여정은 요하네스버그에서 케냐, 탄자니아, 말라위, 짐바브웨를 거쳐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으로 갔다가 다시 요하네스버그로 돌아가 귀환하는 것이었다. 즉, 어릴 적 TV의 “동물의 왕국”이나, 나이 들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눈여겨보았던,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웃오브아프리카라는 영화에서 눈이 시리도록 보고 또 보았던 바로 그 대자연으로 가서 게임(Game)사파리를 하고 아프리카의 유럽인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 가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 뒤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서론이 좀 길어졌다. 아프리카 관련 얘기는 한 편의 글로는 절대 다 할 수가 없다. 나중에 다룰 인도나 터키도 이야기보따리를 풀자면 몇 편에 나누어 연재를 해야겠지만 아프리카야 말로 가장 할 말이 많지 않겠는가?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당연히 아프리카에서 죽음의 언저리까지 갔던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천일문 기본편 16강 48분부터 10여 분간 강의 중에도 했던 것이다. 메가스터디에서 양해를 구하면 그 부분만 음성을 따서 올릴 생각도 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우리 방으로 와서 우리를 깨웠다. 반쯤 감긴 눈에 후딱 다녀오면 되겠지 하면서 세수도 안하고 우리는 카메라 가방만 챙겨 방을 나섰다. 30분만 가면 항상 표범이 있는 곳이 있다고 했는데 50분가량 지나도 아무것도 안 나오고 또, 길이 사람이 다닌 지 한 참 됐는지 풀이 너무 높게 자라 길도 잘 안 보이고 해서 내가 돌아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이 친구는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우겨댔다. 그러다가 한 시간 쯤 지났을까 어제 많이 내린 비 때문에 웅덩이가 파여 있어 차가 처박히고 말았다. 나는 갑자기 화가 나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냐. 빨리 차 빼내서 돌아가자고. 차를 빼내는데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나는 반드시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을 고 2 때 이후로 삶의 신조 중 하나로 해 와서 배도 고프고 짜증이 났다. 게다가 아침 먹고, 짐 싸고, 체크아웃을 하려면 시간도 빠듯해서 서둘러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럼 지름길로 가자고 하면서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앞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이곳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낯선 길을 갈 때 항상 지형지물을 보며 나름대로의 이정표를 만들어 놓기 때문에 영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냥 시간이 걸리더라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부시맨은 그러면 한 시간이 걸리지만 저 앞에까지 가서 돌면 20분이면 된다며 우리를 안심 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질주를 하는데 길이 안 좋아서 차 천장에 여러 차례 머리도 들이 받고, 점점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가도 당연히 호텔은 나오지 않았다. 점점 멀어져 가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차를 세우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나 부시맨은 작정이라도 한 듯 계속 앞으로만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냇물이 우리 앞을 가로 막았고 부시맨은 차가 사륜구동이라 문제없다면 물속으로 돌진하는 게 아닌가. 다행히 물이 얕아 무사히 건넜다.
차를 빼내기 위한 사투를 벌인지 2~3시간. 안되겠다 싶어서 차를 포기하고 걸어가자고 했다. 이놈은 그럼 30분만 걸어가면 강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호텔이라고 했다. 절대로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로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두들겨 패주려 하자 아내는 말렸다. 그래도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이놈이 없는 것보다는 날 거라고, 그냥 따라가 보자고 했다. 30분이면 나온 다는 강은 두 시간을 넘게 키 보다 큰 수풀을 헤치고 간 뒤에야 나타났다. 강까지 향해가는 동안 우리는 극도의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도중에 야생동물을 만나기라도 하면 우리는 그냥 죽게 마련이고 이 초원의 사바나에서 뼈도 못 추리고는 먼 훗날 고고학의 관심사가 돼버릴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다. 더욱이 전날 호텔에서 “Big Five"에 관련된 책을 사서 다 읽은 터라 얼마나 그들이 엄청난 야수들인지 잘 알고 있어서 정말 너무나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걸어가면서 부시맨과 전략을 짰다. 우선은 사자를 만나면 어떻게 할까 였다. 사자는 배고프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으니까 사자와 마주치면 그냥 가만히 서서 배가 안 고픈 사자이기만을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더 이상은 듣고 싶지 않았다. 물어본 내가 잘못이었다. 아무튼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면서 뭐든 나타나면 뛰어 올라갈 나무들에 눈도장을 찍어두고 있었다.
다시 갔던 길을 되돌아가는데 이번에도 뭔가를 만날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그러나 무사히 차로 귀환할 수 있었다. 차에서 쇠줄(wire)를 꺼냈다. (아프리카는 거의가 비포장도로라 모든 차에는 의무적으로 와이어를 준비하고 다녀야 한다. 그것은 한 겨울에 미시령을 넘을 때 반드시 차에 스노체인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는 다시 강으로 돌아갔다. 마찬가지로 극도의 긴장 상태였다. 정말 여기서 야수의 밥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인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역시 아무것도 만나지 않았다. 강에 도착해 비교적 강폭이 좁은 곳을 찾아 강을 건너려 하는데 부시맨 왈, ‘악어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여기를 건너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는 도강을 감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부시맨보고 먼저 들어가라 했더니 자기는 한 번도 수영을 해 본적이 없다고, 못 한다고, 갈래면 우리나 가라는 것이었다. ‘그래? 그럼 넌 여기서 죽어라. 우리는 살아야겠다.’ 하고는 우리끼리 건너기로 했다. 당연히 내가 먼저 건너려고 하는데 아내가 ‘내가 먼저 들어갈게. 죽어도 내가 먼저 죽는 게 나아. 자기는 나보다 책임지고 있는 일도 많으니까.’ 아!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눈물이 핑 돌고.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는데 아내의 변은 이러했다. 어차피 와이어를 묶고 가야 하는데 그래도 자기가 가벼우니까 혹시 문제가 생기면 그래도 수월하게 꺼낼 수 있는데, 반대의 경우라면 더 힘들어지니까 자기 말대로 하자고. 아내의 몸을 와이어로 단단히 고정 시키고 나는 부시맨 보고 와이어를 몸에 감으라고 했다. 나는 굵은 나뭇가지를 주어 돌로 찧어서 창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정말로 악어가 나타날 경우 부시맨은 아내를 뭍으로 끌어 올리고, 나는 악어의 눈을 창으로 찌를 요량이었다. 우선은 내가 먼저 강물 속으로 이것저것 던져보고 악어가 있는지 확인했다. 예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어서였다. 악어는 없었다. 드디어 아내가 강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물이 차다고 했다. 나오라고 했더니 한 걸음을 더 내딛었는데 쑥 빠져서 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재빨리 나와 부시맨은 아내를 끌어냈다. 포기하고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돌리기로 했다. 해가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런 우기에는 악어가 나오지 않는단다. 그 사실을 알고는 다시 부시맨을 때려주고 싶었다.) 다시 차로 돌아오는데 뭔가 이상했다. 나는 원래 비범할 정도로 민감하다. 소매치기도 두 번이나 잡은 적이 있을 정도다. 숲을 헤치면서 뭔가 시커먼 것이 어슬렁거리며 오는 것이 어렴풋 보였다. 마침 나무가 있어 재빨리 뛰어 올라갔다. 나는 내가 그렇게 나무를 잘 탈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인간의 생존 본능은 실로 위대하다.) 그리고는 아내의 손을 잡아끌어 올렸다. 부시맨은 옆의 나무로 올라갔다. 버팔로였다.
구사일생이었다. 버팔로가 초식동물이기는 하나 경우에 따라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므로 가까이 하면 당연히 안 된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한편으로 또 다른 뭔가를 만나게 될 것 같아 우리는 차까지 죽어라하고 뛰었다. ( ‘걸음아! 날 살려라!’는 말이 가슴에 사무치는 순간이었다.) 이제 다 어두워져서 칠 흙 같은 어둠이 내렸다. 별 수 없이 차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거의 45도로 기울어진 차 안에서 우리는 두 손을 꼭 잡고 서로에게 의지를 하고 있었다. 부시맨은 구조대가 올지도 모른다면 계속 경적을 울려대고, 차의 전조등을 켰다. 차가 움직이지도 않는데 전조등만 켜면 당연히 배터리가 나갈 텐데 이놈은 내가 하지 말라 해도 계속 제 맘대로 해댔다. 아내가 그냥 내 버려두라고 했다. 저놈 제 정신이 아니라고. 어떻게 이런 놈이 다 있을까? 경적을 울려 대니까 하이에나를 비롯해 온갖 짐승들이 요동을 쳐 댔다. 전조등 불빛을 보고 호기심 어린 동물들이 모여 들었다. 그러다가 배터리는 다 방전되어 버렸고 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우리는 빠져 들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동이 트자 우리는 차에서 나왔다. 나중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차로 건너왔던 시내의 물이 비로 불어 뒷바퀴까지 찰랑찰랑하게 잠겨 있었다. 비가 조금만 더 왔었더라면 우린 수장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차 주위에는 온갖 짐승들의 발자국이 즐비했다. 차가 없었으면 우리는 갈기 발기 찢겨 졌으리라. 이제 다시 강으로 가야 한다. 이번에는 차 뒤에 실어놓은 기름통을 떼어 내라고 했다. 불이라도 피워 우리의 존재를 알리려는 생각에서였다. 무사히 강까지 도착했는데 어제보다 물이 불어 헤엄쳐 건너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시맨 보고 불을 피우라고 하고는 우리는 강을 건널만한 가능성이 있는 곳을 찾아 헤맸다. 사실 우리는 거의 희망을 버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 헤매다가 죽을 거라 생각하니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한 시간 남짓 헤맨 끝에 우리는 기적을 보았다. 지난 번 폭우에 쓰러졌나,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반대편 강둑에서 쓰러져 우리 쪽 강둑 까지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아! 하늘은 아직 우리를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부시맨을 놓아두고 우리만 건너갈까 하다가 홍익인간의 후예답게 그를 찾으러 갔다. 이 멍청한 부시맨은 우리가 없는 동안 젖은 나무 가지를 모아 놓고 기름을 한꺼번에 다 부어 버렸다. 휘발성이 다 하자 반짝 타오르던 불을 이내 꺼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혼자 놓고 가기 전에 분명히 그러지 말라고 일러두었건만, 이놈은 정말 구제 불능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프라이데이가 이놈과 같았다면 로빈슨 크루소는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우리는 천우신조 같은 쓰러진 나무다리로 돌아가 강을 건넜다. 나무아래 펼쳐지는 강의 유속을 바라보자니 거기에 빨려 들어갈 지경이었다. 여길 헤엄쳐 건너려 했다니.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부시맨은 왼쪽으로 가면 호텔이 나올 거라고 했다. 우리는 당연히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조금 갈등은 했지만 더 이상 이 녀석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우리가 살길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제 우리 각자의 길을 가자.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갈지도 못 나갈지도 모르겠지만, 난 죽어도 널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 이 시간 이후 다시 내 눈에 띠면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부시맨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는 왼쪽으로 떠났다. 한 시간쯤 걸어가는데 뒤에서 뭔가 기척이 났다. 가슴이 철렁했다. 또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가려는데 돌아보니 다름 아니라 부시맨이었다. 우리를 줄곧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즉 이놈은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놈은 전날 새벽에 마약을 하고 환각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그냥 모른 척 내버려 두었다. 더 한 시간쯤 가자, 아! 멀리서 뭔가 담장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마치 사막의 신기루 같았다. 아내와 나는 손을 잡고 뛰었다. 열려진 문으로 들어 같더니 그곳은 ‘Ranger's Post', 즉 국립공원 감시인 가족이 사는 곳이었다. 우리를 보고 화들짝 놀란 건장한 아프리카 감시인은 우리에게 “Are you Korean?"이라 물었다. 우리를 어떻게 아느냐 물었더니 세렝게티 전체가 우리 때문에 뒤집어 졌다고 하며 황급하게 무전을 쳐서 우리가 살아있음을 어딘가에 계속 알렸다. 우리가 실종된 것을 호텔 측이 파악하고는 세렝게티 국립공원 본부에 알려 경비행기도 띄우고, 헬기도 동원해서 수색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행방이 묘연해서 전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감시 초소에 총동원 수색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대체 얼마나 호텔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비행기와 헬기 소리도 못 들었느냐고 했더니 차가 처박힌 곳에서는 약 28킬로, 여기 까지는 46킬로나 떨어져 있다고 했다. 사실 대도시에서야 대수롭지 않은 거리지만 사바나에서, 그것도 제대로 길도 없는 곳에서 이는 정말 엄청난 거리인 것이다. 그러자 감시원은 자기들의 언어로 부시맨에게 뭐라고 막 질타를 해대고 있었다. 아무튼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우리는 그냥 풀 위에 누워버렸다. 어린 여자아이가 서둘러 마실 물과 차를 내왔는데, 그 맛이 어떠했는지 상상이 가는가? 특히 차에는 설탕을 가득 넣은 듯 무척 달았는데 아마 우리의 원기를 회복 시켜 주려고 일부러 그런 듯 했다. 물과 차만 마셔도 우리는 정말 너무 행복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가 그만 긴장이 풀려 잠이 들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감시인 말이 건물 옆에 6인승 세스나 경비행기가 있기는 한데 전날 비가 많이 와서 활주로가 진흙탕이라 띄울 수 없어서 우리 차가 처박힌 곳으로 구조대를 오라했다고 밥 먹고 되돌아가자고 했다. 우리는 정말 기가 막혔다. 차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하지만 이제 호텔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불구덩이라도 다시 뛰어 들어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식사 준비가 다 됐다고 감시원의 아내가 우리를 그들의 숙소로 불렀다. 노란 빛이 감도는 풀풀 날아다니는 쌀로 밥을 지어 정체불명의 기름으로 소금만 넣고 볶아낸 밥에 달걀부침이 하나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것이었다. 냄새도 이상했지만 우리는 단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치웠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그것이 성의에 대한 보답일 것 같아서였다. 그 맛은 프랑스 파리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은 것보다 만 배는 더 좋았다. 밥을 게걸스럽게 먹으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이렇게 환대를 해 준 것에 대해 정말 뭐라 감사의 뜻을 전할지 몰라 뭐든지 다 주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죽을 지도 몰라서 카메라도 다 차에 두고 와서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카메라가 손에 있었으면 아마도 줘 버렸을 것이다. 감시원은 여기까지 오면서 야수들과 마주친 적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버팔로 애기를 했더니 정말 다행이라 하고는 더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강을 건너 두 시간 가까이 헤매며 걸어 온 곳은 수렵이 허용되는 것이라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었을 지도 모르는 대단히 위험 곳이라고 했다. 사람의 운명은 이미 정해지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우리가 아직 죽을 때는 아니었나 보다. 감시원이 장총으로 무장하고 우리를 호위해 감시초소를 떠났다. 온 정성을 다해 물과 차를 끓여준 그의 딸과 집안의 모든 귀중한 식량을 다 털어내 밥을 지어준 그의 아내의 해 맑은 미소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4시간여를 걸어 차로 돌아오니 이미 구조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어 두었다.
전날 내린 비로 그나마 우리가 왔던 길이 엉망이 되어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날 새벽 세 시가 넘어서였다. 호텔의 전 직원이 동원되어 우리를 맞이하였고 우리 둘 만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식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먹기 전 나는 부시맨을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한 방을 날렸다. 더 두들겨 패주고 싶었지만 갑자기 부시맨이 불쌍해 보였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가장 이라는데 이 일로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으로는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대로 끝냈다. 더 힘도 없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지금 덤으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죽을 고비 이전에도 물론 열심히 살았었지만 그 이후 오늘까지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34살로 허무하게 끝나 버릴 지도 몰랐을 인생을 덤으로 더 살게 됐는데 어찌 치열하게 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뒤 늦게 민재를 낳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흔적도 없이 죽을 뻔 했던 사선(死線)에서 돌아 와보니 자식이 하나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이전 글에서 내 아내를 사랑한다는 말에 ‘닭살 돋는’ 느낌을 갖았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정말로 내 아내를 사랑한다. 나와 아프리카를 함께 동경했으며, 아프리카에서 함께 죽을 뻔 했고, 그 와중에서도 나는 살려야 한다면서 살신성인(殺身成仁)하려 했던 사람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나중에 알고 보니 탄자니아 일반인들에게 달걀은 무척이나 귀중한 것이라 한다. 쌀도 풍부한 편은 아니라 밥을 지어 먹기도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는데 감시원 가족은 집안의 모든 것을 다 우리에게 내주었던 것이다. 어떠한 사심도 없이 말이다. 세렝게티 국립공원 측이야 인도주의적인 측면에다가 관광객의 감소를 우려한 공무(公務)적 처사로 헬기도 띄우고, 경비행기도 띄우고, 구조대도 보내고 했겠지만 감시원 초소의 가족들은 정말 아름다운 인간애로 우리에게 정성을 베풀었던 것이다. 물론 탄자니아에도 감사한다. 그러나 그 가족들이 백배는 더 고맙다. 죽기 전에 반드시 그곳을 찾아가(물론 경비행기를 타고) 그들에게 사례를 하고 싶다. 그 뒤로 내게 삶은 정말 ‘호접지몽(胡蝶之夢)’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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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라쓰 따로 마이나스 따로! 이것도 모르냐 이 바보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강의들을 때는 애기 없었던 것 같은데...오호라.. 근데 난 이선생님 강의 나름 괜춘했는데..
난 한때 기훈사마라고 부르며 좋아햇었다규 ㅋㅋㅋ내주의 많은 아이들과 함께 ㅋㅋ
메가스터디는 돈을너무밝혀..난 수학 삽자루가 제일좋았다!!!!!!!!!!!!!!!!!!!!!!!!!!!!!!!!!!!!!!!!!!
공무원 강의 샘플로 잠깐 들어봤는데..귀에 쏙쏙들어오던데..나름 깔끔한 강의라고나 할까...근데 생긴게 양아치 같어~~
그거 아시냐구....김기훈 강의 0.5배속으로 들으면 앙선생님 말투라규 "느어히들 주왈 드러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들린다 들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좋든데...이사람 능력있고 자신감있어보이든데 -_- 오만방자한거 모르겠음. 영어도 많이 오르고 ㅋㅋㅋ 좋아열 주관뚜렷하고 능력있어효 ㅋㅋㅋ
난... 수능 망하면 대충 준비해서 라스베가스 가라던거 기억남...불후의 꽁지머리..ㅋㅋㅋ그리고 이선생 수능대박 송 만든거 듣고 캐 기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쳐싫어요 ㅋ 아내분 다들 모르시는구나. 그 분을 보고 이 분을 보면 그냥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 떠올라요.
아내가 어떤데여 ??????????? 이뽀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학원가면 볼 수 있지 않냐구 아내두 꽤 강렬한 인상이었는데 ㅋㅋㅋㅋㅋ
아내도 강의 하지 않나요? 디게 늘씬하고...카리스마있던데 ㅋㅋㅋ
전....성형전모습보구 깜짝 놀랬어여..........리딩스킬듣는데 자꾸떠올라서 방치하다 결국7강까지밖에 못듣고...패스~
나 여기서 알바했었는데,,ㅋ
어머 언제 애 낳았냐규 ㅋㅋㅋㅋ 목소리만은 진정 최고라구 얼굴 안보구 목소리만 들으면 완전 ㅋㅋㅋㅋㅋ
아,,,,,,,,,천일문에서 말한 게 저거였구나.........ㅋㅋㅋㅋㅋㅋ죽을 뻔 했다고....와이프 이뿔 거 같다.......
ㅋㅋ나름잘난척심하게 해도.ㅋㅋ완소라고.ㅋㅋ나 수능영어 급잘봤다구.ㅋㅋ이분떔에.ㅋㅋㅋ
이분의 어록... 병...신..... 나 정말 급짜게 식었던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ㅊ싫음 ㅡㅡ
어?난 얘 괜찮았는데.동영상강의 많이 들었었는데..ㅋㅋㅋㅋ
난 김기훈 괜춘하던데..ㅋㅋ 그래도 나에게 최고의 인강선생은 물리 맹구 김종건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야매같던데.. 이사람 05년 고3 9월 모의평가 문법문제 해설틀린걸로 유명하죠ㅎㅎ 근데 끝까지 자기 틀린거 인정안하고 막 고소한다느니 명예훼손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평가원에서 결국 답에대한 해설해주고 이사람 한동안 짜게 식었던 ㅋㅋㅋㅋㅋ
이 사람.. 완전 싫어요 쳐가식 자기가 수업에서 졸던 재수생 혼내서 쫓아냈는데 다음날 보니까 자기 차 긁혀 있었다고 그 쫓겨난 애가 긁었을거라고 하는데ㅡㅡ 중학생이었던 내가 들어도 어이가 없었삼
222222222222222222222222진짜 시러요 스타벅스에서 봤는데 알아보고 쳐다보니깐 완전 의식 하는거 대박 자기가 무슨 연예인인가
33333333333333333333333 재수없어여
난 이 선생님 참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ㅎㅎㅎ
이 아저씨 결혼했구나 ㅋㅋ
내생애 최고의 영어강사라규 ~ 욕하는분 많아도 난 김기훈 존경해여 ㅠ
오홀.. 나 이분 덕택에 영어 실력 늘었다구. 레방에서 보다니 신기하네요. 자만이건 오만이건간에 자신감있고 수업 준비 철저해서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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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영어는 김정호가 최고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새끼 사기꾼이잖아열 ㅋㅋㅋㅋㅋㅋ존나 맨날 문제풀이도 틀리고 김정호가 너가틀렸다 이랬더니 한상진?인가 뭔가는 인정하고 잘못했다고했는대 사기훈은 법적대응을 하겠다는둥 ㅋㅋㅋㅋㅋ사꾸라새끼 ㅋㅋ
요새 별명은 샤기훈이라던데 사기훈이라고도 하고요 ㅋㅋㅋ
너무 이익만 추구해서 싫어요. 차라리 강남구청이나 티치미 김찬휘샘이 훨씬 좋음- "공부에는 요령과 스킬이 없다" 더불어 뜬금 없지만 수학 학석원쌤 완소~~~
한석원, 한석만, 김찬휘쌤 진짜 너무 좋아요 ㅠ
싫은데............ 강의는 완소
난 설민석 완소.ㅋㅋ
김기훈 안 본지 진짜 오래됐지만 아직도 완소~ㅎㅎ
강의는 듣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