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천재라고 하는 부류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그 싹을 보여주기 마련입니다.
천재인가..라는 의심을 사기도 했던 이창호도 입단할 나이를 보면 그가 천재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요.
스포츠쪽보다 예술쪽에선 더욱 그 현상이 두드러지죠. 뭐.. 모짜르트니 슈베르트니 마잭이니 글렌 굴드니 참 많습니다.
오늘 말할 영화쪽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는데.. 일단 천재의 조건을 갖기 위해선 뭔가 시대에 획기적인 작품을 찍어야된다는 전제가 있죠. 근데 그런 작품들이 대부분 데뷔작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데뷔작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메는 천재들이 많이 있죠. 그 대표적인 예가 오손 웰즈일겁니다. 가장 위대한 영화 투표에서 언제나 1위를 놓치지 않는 <시민 케인>은 그의 데뷔작이고, 그가 26세인가..그 무렵에 만든 작품입니다. 그이후로도 그는 수많은 걸작을 남겼지만 언제나 <시민 케인>과 비교당하는 운명에 처할 뿐이었죠.
왕가위 최고의 작품이라는 <아비정전>도 32살에 찍은것이고, 한국영화사에 천재라는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도 30대초반에 찍은 작품입니다. 대부분 시대를 넘나드는 걸작들은 2,30대에 찍는 경향들이 많이 있죠. 물론 예외도 더러 있습니다만...
아마도 40이 넘어서면 머리가 굳어지면서 고정관념과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너무 확고해지기때문에 새로운 창조를 하는데는 방해가 되기때문일거라는 말들도 있습니다.
오늘 얘기의 주인공은 이런 천재와는 거리가 먼... 배우로든, 감독으로든 뒤늦은 나이에 성공한 인물입니다.
바둑으로 치면 40이 넘어서 전성기를 구가한 사까다와 같은 인물이죠.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입니다. 좀 다른 스타일이지만 임권택감독도 비슷하긴 하죠.
임권택감독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 나이가 더 어림에도 불구하고 100편이 넘는 영화를 찍었는데, 임권택감독은 70년대까지 액션영화나 B급영화들을 찍던 감독이었습니다. 본인말로 한달에 10편도 찍었다니... 얼마나 막 찍었는지 알만하죠.
그때 영화도 무슨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마구마구 찍어내던 시절이었다고 하지요.
그때 찍은 액션영화의 감각으로 <장군의 아들>을 찍어서 대박을 내기도 했습니다. 임권택감독이 변하기 시작한 계기가 된 작품이 80년에 찍은 <짝코>라는 작품입니다. 36년생이니 44살에 감독으로서 새로운 개안을 했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81년에 <만다라>로 베를린영화제도 진출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85년, 50이 다된 나이에 그의 최고의 걸작중 하나인 <길소뜸>을 찍으면서 일약 대가로 떠오르게 되지요. 김지미가 열연한.. 이산가족의 아픔을 다룬 영화로 기억됩니다.

쓸만한 사진이 이거밖에 없군요.
그이후의 행보야 다들 알고 있죠. <씨받이>로 강수연을 스타로 만들고, <아제 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그리고 최다관객을 입장시킨 <서편제>... 2000년대 들어서면서 작품이 뜸해지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나이를 먹어서 전성기를 맞이한 독특한 감독임은 틀림없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임권택과 비슷하면서도 좀 다르죠.
그역시 무명시절이 굉장히 길었습니다. 배우가 되기전에는 벌목꾼, 소방수등 안해본 일이 없었죠.
뒤늦게 연기의 길로 들어서서 티비드라마도 찍고 영화 조연도 하고 그랬지만 스타가 되기엔 멀어보였죠.
그러다 64년.. 그가 30년생이니 34세의 나이에 세르지오 레오네를 만나 <황야의 무법자>를 찍으면서 인생이 바뀝니다.

서부극하면 미국인들에겐 존 웨인이 대명사지만, 세계적으로는 아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더 유명하지 않을까 합니다.
기존의 서부극과 조금은 다른면을 보여주는 소위 마카로니 웨스턴의 시초이기도 한 작품입니다.
이후 <속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등을 찍으면서 스타로서 입지를 굳혀나가죠.
서부영화가 좀 시들해질 무렵엔 돈 시겔을 만나 <더티 해리>를 찍으면서 이번엔 형사의 이미지로 변신합니다.

기존의 형사이미지완 역시 좀 다른 이미지의 형사였죠.
이때가 1971년인데.. 그의 나이 40이 됩니다. 그리고 그도 감독이 되고 싶은 맘이 있었는지 영화사를 직접 차리고 데뷔작을 만듭니다. 이게 바로 로버타 플랙의 그 유명한 노래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가 삽입된 영화 <어둠속에 벨이 울릴때>입니다.

미져리가 생각나는 포스터네요. ㅎㅎㅎ
원제가 'play misty for me'죠. 재즈의 명곡 'Misty'라는 곡이 있는데, 주인공남자가 라디오 DJ죠. 그 주인공에게 매일같이 저런 전화가 오는거죠. 나를 위해 미스티를 틀어주세요....
암튼 나름 성공적인 데뷔작이었습니다.
이후 꾸준히 작품을 찍었지만 특별히 임팩트있는 작품은 없었죠.
그러다가 1985년.. 묘하게도 임권택이 <길소뜸>이란 걸작을 남긴 그해.. <페일 라이더>라는 작품을 찍으면서 평론가들에게 주목을 슬슬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88년.. 재즈를 좋아하는 그답게..재즈의 거장인 찰리 파커의 일대기를 다룬 <버드>란 작품을 찍으면서 대가의 길로 향해 가기 시작합니다. 그해 깐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가 유력했던 작품이죠. 그러나 유럽파들의 견제에 의해 <정복자 펠레>에게 그랑프리를 뺏겼고, 각종 매체에 의해 역대 최악의 깐느그랑프리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었죠. 여기서 찰리 파커로 열연한 포레스트 휘태커가 남우주연상을 받는걸로 만족해야했습니다.

클린트 최초의 걸작이라 할 <버드>.
이후 90년에 <추악한 사냥꾼>을 찍으며 서부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뒤.. 92년. 그의 나이 62세에 바로 그 유명한
<용서받지 못한 자>를 만듭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가 걸작인 이유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만든 서부영화를 자신의 손으로 종말을 냈기 때문이죠.
우리가 기존에 알던 서부영화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한참 먼... 힘없고 늙어서 총도 제대로 못쏘는 과거의 총잡이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인물이 바로 서부영화의 대명사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본인이죠.
과거에 유명한 총잡이지만 현실에선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농장에서 돼지와 싸우는 인물입니다. 결국 총을 다시 잡게되고 마지막에 과거의 모습을 한번 보여주지만.. 그이후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농장일을 해야하는 현실만이 남아있죠.
60이 넘은 나이에.. 이런 걸작을 찍다니...! 모든 평론가들은 극찬을 했고.. 나이를 감안하건대 이후로 이런 작품을 다시 찍긴 어려울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걸 비웃듯 바로 다음해에 또하나의 걸작을 만듭니다.

이상하리만치 미국에선 소외됐던 영화.. <퍼펙트 월드>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손에 꼽는 영화이기도 하구요. 당시 최고의 배우로 잘나가던 케빈 코스트너를 섭외해서 한편의 묘한 로드무비를 찍어냅니다. 유럽의 모든 평단에서 이해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없는 탈옥수 케빈 코스트너가... 역시 아버지가 없이 '여호와의 증인'신도인 어머니때문에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는 남자아이와 같이 떠나는 로드무비이자 아버지를 찾아가는, 아버지가 되어가는 영화이죠.
거의 라스트에 나오는 장면은 당시 인기프로였던 일밤에서 이휘재의 '인생극장'에 써먹기도 했었죠. ㅎㅎ
95년엔 최고의 베스트셀러중 하나였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영화화합니다.
당시 소설을 좋아하던 사람들에겐 남주인공이 너무 늙었고, 여주인공은 너무 못생겼다고 까였고,
영화평론가들에겐 그 지루한 소설을 이렇게 감상적인 영화로 만든게 대단하다라고 찬사를 받았죠.
저역시 소설을 너무 재미없게 본터라 후자의 평가에 동감합니다. ㅎㅎㅎ
다음에서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를 검색하니 세돌카페에 올라온 글이 링크되있네요.
김재한님이 퍼오신 글인데 거의 영화 전부를 보여주는 내용이니 읽어볼만 합니다.
이후 여전히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나 <퍼펙트 월드>같은 걸작이 나오지 않으면서 역시 나이는 더이상
어쩔수가 없는가보다..라는 말을 들을 무렵...
2003년.. 그의 나이 73세에 또하나의 걸작을 탄생시킵니다. 바로 <미스틱 리버>.
숀 펜, 케빈 베이컨, 팀 로빈스의 절묘한 앙상블이 이루어낸 걸작이죠.
봉준호감독이 '어떻게 70이 넘은 노인네가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라고 감탄한 영화입니다.
숀 펜과 팀 로빈스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죠. 세친구에게 서로를 피하게끔 만드는 과거. 그리고 25년뒤, 숀 펜의 딸이 살해당하면서 다시 만나게 된 세친구. 시작부터 끝날때까지 음울한 그 분위기는 정말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걸작을 하나 만들면 다음해 바로 또다른 걸작을 찍어냈던 전례에 맞게 04년에 바로 또하나의 걸작을 탄생시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실.. <밀리언달러 베이비>입니다.
힐러리 스웽크에게 두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두번째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겨주고, 모건 프리먼에겐 두번째 남우조연상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그해 있었던 모든 영화제에서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죠.
이후 80세가 넘은 올해까지 여전히 맹렬히 작품을 찍어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입니다. 정말 노익장이 대단하지요.
70이 넘은 나이에 아들을 보기도 했을만큼 정력도 대단하시다는...ㅡㅡ;;
배우은퇴를 선언했기에 더이상 영화에서 그의 모습을 보긴 어렵겠지만, 감독으로서 좋은 작품을 오래도록 찍어주길 바랄 뿐입니다.
최고의 스타였던 배우가 최고의 감독으로 거듭난 경우가 극히 드물죠. 애초부터 감독과 주연으로 대가였던 찰리 채플린같은 경우하곤 다른 케이스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부분에선 클린트옹이 갑입니다.
그가 죽기전에 또다시 92,93년.. 03,04년같은 걸작을 찍어주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데뷔작에 삽입됐던 로버타 플랙의 곡을 올립니다.
비오는 날에 감상하기엔 딱 좋죠.
첫댓글 ㅎㅎ 느림보님 글은 이정도는 되야,,ㅋㅋ
뭐라고 댓글 달아야할지 모르겠음. ㅋㅋ 느림보님 대단-ㅁ-
위에 나온 영화중 Bird, Mystic River만 빼고 다 봤네요. 심지어 Play misty for me 도 봤어요.
물론 더티해리 시리즈는 1,2 편만 본것 같구요.
저도 은근히 영화 많이 봤네요.
가장 좋았던 영화는 퍼펙트월드 였고 가장 재미있었던 영화는 역시 황야의 무법자 ㅎㅎ
솔직히 다른 영화들은 좀 지루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