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2021년 여름에, prologue
느리게 살기를 시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려졌다. 빠른 리듬을 몸과 마음이 따라잡을 수가 없다. 빈둥거리듯 지내면 바쁠 때와는 다른 그림들이 보인다. 다시는 쫓기듯 바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걸 알게 될 때면, 이미 바쁠 일이 없게 된다는 사실에 허허로운 웃음을 짓게 된다.//
2021년 8월 7일 토요일인 바로 오늘, 내 Daum메일함에 꽂힌 ‘고도원의 아침편지’ 그 본문이 그랬다.
‘빈둥거림의 미학’이라는 제목의 메일이었는데, 양희은의 ‘그러라 그래’ 중에서 인용한 글이라고 했다.
나도 빈둥거린 지 이미 오래다.
그렇다고 해서, 내 젊은 시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열심히 살았다.
학창시절에는 우등생이 되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었고, 군복무 시절에는 불시에 닥칠지 모르는 전투에 대비해서 태권도 등 체력단련을 열심히 했었고, 검찰수사관 시절에는 범죄를 파헤치기 위해 수사를 열심히 했었다.
매사가 열심이었다.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위해 테니스와 골프도 열심히 했었다.
심지어는 돈 좀 벌어보려고 부동산투기도 열심히 했었다.
그러니 빈둥거릴 시간적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어쩌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그냥 술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지쳐버린 육신과 영혼을 자각했다.
매사에 열심인 내 삶의 방식에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 열심히 살다가는 명이 길지 않겠다 싶었다.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했다.
정말 고맙게도 그 즈음에 이런저런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국가공무원 4급인 검찰수사서기관으로서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총무과장 겸 공안과장이라는 중요한 직분을 감당하게 되었던, 내 나이 50대 초반으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계급이 오르다 보니 월급도 따라 올라서 경제적 여유가 생겼고, 직분이 생겨 직원이 여럿 있는 부서를 맡다 보니 시간적 여유도 생긴 것이다.
덕분에 빈둥거리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냥 빈둥거리지만은 않았다.
그 속에서도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려고 그때부터 나를 둘러보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다보니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산다는 식의 권위적인 시각으로 보던 세상을, 못난 사람도 챙겨볼 줄 아는 인간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인생관이 변한 것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내 삶에 행복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이 또한, 빈둥거림의 미학이었다.
다음 주 한 주일을 우리 집안의 휴가기간으로 삼았다.
내 독단의 결정이 아니다.
지영이 은영이 해서, 두 며느리가 저들끼리 속닥속닥해서 정한 휴가다.
휴가를 갈 곳도 저들이 정했다.
문경 ‘햇비농원’ 우리들 텃밭으로 정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와 아내는, 그 통보대로 따를 뿐이다.
벌써부터 모여서 빈둥거릴 모습들이 훤히 내다보인다.
이제 그 이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