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초고왕은 장자파로서 11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었고, 비류왕은 약 80세쯤의 나이로 죽었다. 그런데 이때 비류왕의 장자는 일찍 죽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비류왕이 죽었을 때 그는 바로 왕위에 오를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12대 계왕이 죽은 후 왕위에 오를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때 백제는 장자파와 차자파 간에 왕위를 놓고 다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346년에 12대 계왕을 제거하고 백제 13대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문제는 이때 계왕에게도 성장한 아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왕의 아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올라야할 왕위를 근초고왕에게 빼앗겼으니 그 역시 잃어버린 왕위를 되찾으려 했을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관세음응험기에 기록되어 있는 무광왕(武廣王)의 신분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고 있지 못하고 30대 무왕을 말하는 것이라고도 하고 있으나 그것은 틀린 것이고, 무광왕은 백제 12대 계왕의 아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백제의 건국지를 한반도 서울부근으로 이해하나 이는 옛 기록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서 백제의 건국지는 지금의 중국 하북성 당산시 일원이다. 이는 전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했던 한사군 중의 한 군인 낙랑군의 위치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중국 사서들은 한결같이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시작된 곳이 바로 한나라 때의 낙랑군 수성현이라 기록하고 있고,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동쪽에 낙랑이 있고, 북쪽에 말갈이 있으며, 신라의 서쪽에 백제가 위치했고, 신라의 남쪽에 가야가 위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은 곧 백제가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초고왕과 계왕의 아들인 무광왕도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왕위 다툼을 했을 것인데, 20여년의 내란 끝에 결국 무광왕이 패하게 된다. 그리하여 패한 무광왕은 어디론가 도망쳐야 했을 것인데, 관세음응험기에 "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密地 新營精舍(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새로 절을 지었다)"는 기록이 바로 대륙에서 패한 무광왕이 도망쳐 지모밀지에 도읍을 정하고 다시 백제를 건국하는 상황의 기록인 것이다.
따라서 근초고왕과 무광왕이 대륙에서 20여 년에 걸쳐 왕위다툼을 벌였으므로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조에 그의 20년간의 업적이 기록될 수 없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고, 설령 왕위다툼에 관한 옛 기록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김부식과 고려의 학자들이 삼국사기를 지으면서 그러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빼버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왕위다툼을 했던 기록을 남겨 놓을 경우 고려의 왕실 사람들이 백제의 기록을 보게 되어 왕위다툼이 가속화 될 우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관세음응험기에 기록되어 있는 무광왕이 곧 백제 30대 무왕과 동일인으로 이해했으나 무광왕과 무왕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어찌되었든 무광왕은 대륙에서 근초고왕과의 왕위쟁탈전에서 패한 후 지모밀지라는 곳으로 도망쳐 그곳에 도읍하고 다시 백제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음을 알 수 있는데, 그 흔적인 왕궁터와 제석사지, 왕궁리 오층석탑 등이 한반도의 익산 금마에서 발견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백제 유물은 4세기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를 보면 4세기 중반에야 백제가 한반도로 진출했음을 알 수 있는데, 백제의 왕위쟁탈전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계왕의 아들이고 그가 바로 무광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근초고왕의 업적이 본격적으로 기록되는 시점이 바로 서기 366년부터이므로 무광왕이 한반도로 도망쳐와 반도백제를 새로 건국한 시점은 서기 365-366년경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반도에서 4세기 중반 백제 유물부터 출토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어느 학자는 한반도에서 백제의 유물이 4세기 중반부터 나타나자 백제 초기 역사를 완전 부정하고 백제가 4세기 중반에야 건국되었을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백제가 4세기 중반에야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을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륙백제와 반도백제의 관계를 전혀 모르는 주장이다.
그렇게 대륙에서는 근초고왕의 대륙백제가 이어지게 되고, 한반도에서는 무광왕의 반도백제가 이어지게 되는 것인데, 이들은 서로 원수로 여기면서 100여년간 상호교류를 하지 않고 별개로 존속하다가 대륙백제의 개로왕과 반도백제의 모도왕 때 이르러 두 백제의 통합을 논의하기 시작해 결국 문주왕 대를 지나 삼근왕 때에 이르러 외척인 진씨들이 해씨들과 삼근왕을 제거함으로써 반도백제가 대륙백제를 흡수 통합하게 되어, 다시 통합백제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고, 그 이후에는 모두 반도백제 무광왕의 후손들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동성왕, 무령왕, 성왕, 위덕왕, 혜왕, 법왕, 무왕, 의자왕이 바로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