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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태복음 8:5~6
이 세상에서의 생활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참 힘들다. 쉬운 일이 없다.”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역시도 매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괜찮은 편입니다. 10년 전인가요. 북한에 지하교회 목회자 5명이 잡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처형했는지 아세요? 아스팔트 깔 때 평편하게 하는 도르래(로드 롤러) 같은 기계 있잖아요. 길에 눕혀놓고 발부터 그 기계로 깔아뭉개 죽였습니다. 그 고통 중에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그들이 믿음을 지키는 것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하나님의 나라의 삶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최종적으로 가져야 하는 이만한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믿음입니다.
북한 같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처해있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 다는 것은 엄청 힘든 거예요. 그런 가운데도 이만한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힘들고 어려울 때 세상을 향해 크게 떠있던 눈을 잠시 감고 하나님을 향해 눈을 크게 뜨는 거예요.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들풀 하나 뽑아낼 수 없기 때문이고, 우리의 처지를 아시고, 도우시고, 건져주시고, 기르시고, 복 주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행동은 내 모든 삶의 영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저는 한 주 동안 이 기도를 수없이 많이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저의 진심이고, 우리 주향기교회 성도님들의 진심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주기도문의 내용이 우리들 안에 이루어지길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의 최종 목적이기도 하고, 우리들이 힘들고 어려운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은 올해를 계획하며 9월에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7월에 이것을 드러낸 것은 그 안에 담겨있는 축복을 가정에 베풀어 주기에 빨리 앞당겨 열었습니다.<여러분 마음과 입에서 오늘부터 1년 내내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도가 되길 원합니다.>
제가 초등학생부터 현재까지 부러워하는 믿음이 있는데요. 저는 이 믿음을 사모하고 이 믿음까지 성장하길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시편 119편 103절입니다. 누구의 신앙 고백의 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의 말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이 꿀보다 더 다니이다.” 저는 이런 믿음까지 성장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에 이만한 믿음은 바로 주의 말씀이 내 입에 꿀보다 단것입니다. 우리 주향기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이 은혜를 선물로 받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총회 갔을 때 저를 잘 아는 목사님께서 권사님을 소개해 주시면서 그 권사님이 원하시는 답을 저에게서 들을 수 있다 하시더라고요. 그가 저에게 묻습니다. “목사님은 무슨 재미로 사세요?” “기도하는 재미, 말씀 묵상하는 재미,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성도들에게 전할 말씀을 준비하는 재미, 성도들의 문제들을 위해 해결의 길을 찾는 기도의 재미, 저 자신이 하나님께 붙어있기 위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재미로 삽니다. 매일 무한 반복되는 일이지만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깨닫고,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대답을 하며 많은 믿음에 관해 가르쳐 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분에게 들은 이야기가 참으로 놀라웠지만 저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더라고요.
그 이후로 제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연예인 또는 가수 팬클럽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성 총회에 가서 서울의 어느 구청에 근무하는 권사님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고 합니다. 노래 공연 한번 보려고 일천만 원을 아낌없이 내고,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 노래가 일등이 되게 하려고 매달 일천만 원씩 구매한대요.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요?
그의 목소리, 얼굴 한번 보기 위해서 집 앞에서 밤을 지새우는가 하면, 그가 좋아하는 것을 빚을 내서라도 선물로 구입해서 주는 것. 더 좋은 것을 주는 경쟁이 붙었다고 하죠. 또 그가 사용했던 손수건이 100만 원이 넘게 거래가 된대요. 저는 왜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이상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들이 이상한 것일까요? 이런 것을 지적하거나 이해되지 못하면 꼰대랍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꼰대로 남아 있을게요.”라며 웃었어요.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은 자기 교회 청년들과 여 집사님이랍니다. 집에 한 달 동안 안 들어올 때도 있대요. 가수 일정에 맞혀 따라다니느라......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면 제2의 모세, 바울 같은 사람이 될 텐데 아쉽네요.”
연예인, 가수 등을 보려고 줄을 서고, 기뻐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수 천만 원 들여 구입하고, 그가 하는 말과 행동에 웃고, 울고 하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투 잡, 쓰리 잡을 뛰는 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런데 그들이 돈과 시간과 열정을 쏟지만 그들에게서 얻는 것이 없어요. 오로지 주려고만 안달 나 있거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 헛된 사랑인데.... 자신을 봐 주기만 하면 다 괜찮대요. 그들에게 빠져보지 못해서 그들을 전 절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이들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그 권사님에게 예수님을 사모하는 우리 성도님들의 일상을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런 기사를 접하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난 저들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저들처럼 주님을 보고 싶어서 안달 나 있는가? 저들처럼 말씀을 듣기 위해 밤잠을 설치면서 줄 서고 기다린 적이 있는가? 하나님께 드리지 못해서 아우성을 친 적은 있는가? 제가 앞에 말씀드린 “주의 말씀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라고 고백되는 이만한 믿음이 되면 이들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까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의 신앙생활을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저들의 열정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전 하나님을 위해, 주의 일을 위해 그랬어요. 또한 성도님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들이 좋아하는 가수, 연애 인이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위탁해 주신 성도님들이었습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목소리, 발자국 소리에도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렇게 표현하면 어머님이 실망하실 수 있으시겠지만 전 하나님께서 저에게 위탁해 주신 성도님들이 부모님과 형제들, 친척보다 저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목사로 부르셨는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 안에 주님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가?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진심으로 예수님을 온 마음 다해 사랑하는지? 왜냐하면 예수님을 사랑한다 말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 참 많아요. 믿는다고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도 참 많아요.
또 우린 어떤 일에 열심을 하고 있는가? 역시도 잘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지만 필요할 때만 뽑아 쓰는 이쑤시개 같은 하나님으로, 예수님으로 전락시켜버리는 이들이 참 많이 있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에서만 필요한 것이지, 내 생활에는 부자연스러워 그저 장식품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남은 우리들의 시간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열정처럼 일 해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생활을 보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보세요. ◯◯◯는 이만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어요. 그러니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되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셔야 합니다.”라고 중보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일하시게 만드는 이만한 믿음은 무엇일까요? 백부장은 예수님에 대해 듣고, 그를 있는 그대로 믿은 것을 행동으로 꺼낸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찾아 구하는 것 즉 지금의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그럼 지금의 시대에 예수님께서 일하시게 만드는 이만한 믿음이 무엇일까요? 두 마음 없이, 의심 없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머무르게 하는 실천의 행동입니다. 우리 교회는 주일 예배 이후 이것을 위해 월, 목 말씀묵상과 수요일에 23년 주일 오전 설교 원고 읽는 행동이 바로 최소한의 가치로 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 중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 기도가 아멘이 되는 거예요. 누구나 아멘이라 말하죠. 그런데 그대로 될 것으로 믿어짐으로 환희(즐겁고 기쁨)에 찬 감사로 아멘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 이 자체만으로도 감격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운영자이시며, 주시기도 하고, 가져가실 수 있는 신을 내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거잖아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여기서도 엄청 감격할 수 있어요.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게 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부여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보혜사 성령님이 내 안에 거주하게 하시고, 주의 천군 천사를 보내어 돕고 계시기 때문이죠. 그게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는 사실에 감격이 되는 거예요.
나라가 임하시오며 = 이것은 환희가 되는 것입니다. “내 안이 하나님의 집이 되어 거하십시오.”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 얼마나 좋을까요? 그 하나님은 복 주시려고 안달 나셨다 표현해도 될 거예요. 그 축복의 하나님이 거하는 집이 되었다. 정말 환상적이지 않나요?
이것이 믿어지고, 그리워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되고, 그 나라에 들어가 살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이고,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목적이 되고, 더 많은 것과, 더 좋은 것을 소유하려는 이유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시기 위함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지기 위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입니다. 우리들은 이 사역을 위해 하나님의 부름의 응답한 자들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위해서”로 점점 돌아서지 않습니까? 혼자 있다가, 결혼하고 나면, 자녀가 생기고 나면, 손주가 생기고 나면, 삶의 형편이 나아지면서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 나의 여가생활을 위해 점점 하나님이 뒷전이 되지는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자꾸 맘에 걸려 불편해지는 거예요. 또한 자기의 시간을 빼앗긴다고 여겨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현재까지 주님 우선, 교회 우선, 주의 일에 우선, 목사가 되어서는 성도들이 우선이 되었고, 그렇게 살았더니 저만 기르시고, 먹이시고, 입히신 것이 아니라 아내와 자녀들까지 책임져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저의 행실이었고 그 결말로 다른 목회자들에게 부러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렇게 살아가냐고요? 그것은 이 믿음 때문입니다.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살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죽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행복, 기쁨, 즐거움을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슬픔, 괴로움, 아픔을 겪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 이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저는 초등학생부터 나 자신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들에 피어있는 잡초도 마음대로 죽일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고, 믿었고, 신뢰했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말이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건져주심과, 구원하심을 언제나 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매우 많았지만 축복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그럼 2024년도에 바라보는 이만한 믿음은 무엇일까요? 백부장이 예수님을 믿은 그 믿음으로 하늘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가 내 삶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자유롭게(내가 필요한 시간에) 교제할 수 있는 권리. 둘째로 하나님께 무엇이든 요구(지켜주심, 용서, 도움, 돌봄, 기르심<먹이고, 입히고, 채우심 포함>, 건져주심, 구원하심)할 수 있는 권리.
저는 22주년 창립기념예배를 통해서 오늘부터 출발하여 내년 이맘때까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가 내 삶을 움직이게 되어 각 가정들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잔치가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처럼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믿는 그 마음이 언제나 저와 여러분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일하심으로 누리게 되는 모든 은혜를 즐김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