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10월 19일 성 바오로(십자가의) 사제 (St. Paul of the Cross) 신분: 신부, 설립자 활동연도: 1694-1775년 같은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https://t1.daumcdn.net/cfile/blog/1615BD394F47862A1D)
십자가의 성 바오로(Paulus) 이탈리아의 오바다(Ovada) 태생인 성 바오로 프란치스코 다네이(Paolo Francesco Danei)는 몰락한 어느 귀족의 맏이로 태어났고, 부모의 신앙 유산을 물려받은 탓인지 15세 때에 이미 카스텔라초의 자기 집에서 엄격한 고행과 보속을 행하였다. 1714년 그는 터키인들과 싸우는 베네치아(Venezia) 공국의 군대에 입대하였으나, 기도와 보속생활에 이끌려 명예 제대를 하고 귀향하였다. 그는 결혼도 마다하면서 몇 해를 은거하던 중 1720년에 예수의 성명과 흰 십자가가 그려진 고난의 문장을 검은 옷에 단 성모님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그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설교하는 수도회 설립을 명하셨다고 한다. 그의 환시가 올바른 사실임을 인정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부터 수도회 설립에 관한 허가를 받게 된 바오로(Paulus)는 40일간의 피정을 통하여 회칙 초안을 마련하였다. 그는 자기 동생인 요한 밥티스타와 함께 로마(Roma)로 가서 교황청의 허가를 신청하였다. 처음에는 거절당하였으나 1725년의 방문에서는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로부터 수련자를 받아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1727년에는 자신이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들은 몬테 아르젠타리오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처음에는 규칙이 너무 엄격했던 탓으로 많은 수련자를 잃었다고 한다. 1737년에는 첫 수도원의 문을 열었고, 1741년에는 교황 베네딕투스 14세로부터 개정 회칙을 승인 받았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십자가와 고난의 맨발 성직 수도회'(예수 고난회)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바오로는 자신의 뜻과는 달리 초대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탈리아 전역을 누비며 선교 여행을 하였고, 그의 설교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여 만인의 심금을 울렸다. 또한 그는 초자연적인 은혜로써 축복을 내렸고, 치유의 기적과 원거리에서 동시에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기적 등이 나타났다. 그는 당대 최고의 설교가였다. 그는 예수 고난회의 최종 승인을 1769년 교황 클레멘스 14세(Clemens XIV)로부터 받았다. 또한 그의 노력에 의하여 여자 수도회 수녀들이 코르네토에 첫 수도원을 갖게 되었다. 그는 3년 동안의 병고로 고생하다가 1775년 10월 18일 로마에서 운명하였고, 1867년 비오 9세(Pius IX)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33F0B3A4F47862729) [성인들의 발자취] 십자가의 성 바오로 늘 예수 수난 묵상하고 기도했던 수도자, 예수고난회의 창설자 축일 10월 19일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1994년 1월 3일 북부 이태리 「제노마」에서 출생했다. 일찍부터 성모 마리아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던 바오로가 어느 날 냇가에서 놀다가 익사할 뻔 했을 때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여 그들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예수의 수난을 늘 묵상하고 기도했던 바오로는 계시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다리는 모임을 만들라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리하여 평신도로서 깊은 산속에서 기도와 묵상의 경건한 생활을 영위했던 바오로는 주교의 청을 받고는 신자들의 잠자는 신앙심을 깨우치기 위해 하산(下山)을 했다.
그리하여 「로마」로 간 바오로는 1741년 교황 베네딕또 14세에게서 신품 성사를 받고 또 그의 재가를 얻어 「예수고난회」라는 수도회를 정식으로 창설했다. 그후 발현을 통해 성모 마리아가 보여준 것과 똑 같은 흑색복장에 심장이 그려져 있고 그 가운데 십자가와 예수의 이름이 새겨진 수도복을 주교로부터 받은 바오로는그 복장을 수도회의 정식 수도복으로 채택하였다. 이 수도복은 지금까지도 예수 고난회의 수도복으로 사용돼 오고 있다. 바오로는 예수 고난회의 첫 수도원을 「올비뗄로」에 세웠으며 그 후 「로마」의 성 요한과 바오로 성당에 더 큰 수도원을 건립 하였다. 특히 성모 통고에 대한 신심에도 뛰어났던 예수 고난회는 놀랄 정도로 발전하여 수년 후 여자 수도회가 창립 되었다. 50여년간 이태리 내에서 지칠 줄 모르는 선교 활동에 전념했던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81세의 나이로 그가 예언했던 1775년 10월 18일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예수 고난회의 창시자인 십자가의 성 바오로의 축일은 10월 1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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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향기] 수도회 창설자를 찾아서 - 십자가의 성 바오로 그리스도의 고난(苦難)은 가까이에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로 일컬어지는 우리들 삶 한가운데에 고난의 신비가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도록 사순절이라는 일정 기간을 정해놓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회’와 ‘예수 고난 관상 수녀회’를 설립한 십자가의 성 바오로(1694-1775 · 본명 : 바오로 프란치스코 다네이)는 예수의 생애 중 특히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도록 불림을 받았다. 성 바오로는 1694년 이탈리아 북부 오바다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바오로는 1719년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할 수도회를 창립하라는 환시를 체험하고 난 두 이듬해 40일간의 피정을 통해 영적 일기와 고난회의 첫 규칙 초안을 작성했다. 그러나 그가 회칙 승인을 받으러 교황청에 갔을 때 그는 걸인 취급을 당하여 쫓겨나게 된다. 그는 그 길로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산타 마리아 마욜 대성당으로 가서 모든 이의 마음속에 예수 고난에 대한 깊은 사랑을 일으키겠다는 서원을 발했다. 이 서원은 그가 설립한 수도회 안에서 ‘고난 헌신 서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후 바오로는 동생 요한 밥티스타와 함께 은둔소에서 엄격한 생활을 하면서 수도회 설립을 계속 추진, 마침내 1741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로부터 회칙을 정식 승인받기에 이르렀다. 교황은 이 때 “교회에서 제일 먼저 설립되었어야 할 성질의 수도회가 이제야 설립되게 되었다”며 이 수도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바오로는 1775년 10월 18일 선종하기 전 거의 10여년을 병상에서 보냈다. 수천 리를 걸어 다니면서 했던 ‘순회설교(Missio)’로 얻은 관절염을 비롯하여 육신이 몹시 쇠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오로는 예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엄격한 고행과 보속의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바오로 영성은 그가 성인 반열에 오를 때 받은 ‘십자가의 성 바오로’라는 이름에도 드러나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바오로가 기억하는 그리스도의 고난은 단순히 ‘고통’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슬픔과 쓰라림, 아픔과 비통스러움이 담긴 십자가 고통에서 충만하게 계시되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았다.
바오로는 사랑은 즐거움뿐 아니라 고통까지 함께하는 ‘일치’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게 사랑과 고난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는 사랑하기에 고난을 당했으며 그 고난 안에서 넘치는 사랑을 발견한다. 즉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지고한 표현임을 확신했고, 이 신비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 같은 바오로의 영성은 동시대 추종자들에게 남겼던 훈화에서도 나타난다. “사랑은 사랑하는 주님의 고통을 떠맡는 일치의 덕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분께로 변모시킵니다. 더욱더 깊이 슬픔이 담긴 사랑, 사랑이 담긴 슬픔, 그리고 사랑과 슬픔이 섞인 그 어떤 것이 일어납니다. 그것들은 깊이 일치되어 슬픔에서 온 사랑인지, 사랑에서부터 온 슬픔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마음은 고통 안에서 기뻐하고 슬픈 사랑 안에서 기뻐 뛰놉니다.” 또한 초기부터 수도회 창립의 소명을 부여받은 바오로는 특히 수도회 장상들에게 십자가 수난에 담긴 뜻을 구체적인 수도생활 안에서 실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것은 기도의 정신, 고독의 정신, 가난의 정신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이에 따라 자신이 설립한 수도회를 ‘예수의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부활로 넘어가는 과월(過越, 파스카)의 신비로 이해했다. 고난을 기억할 때 슬픔은 기쁨이 된다. 고난을 기억할 때 불평은 감사로 바뀐다. 고난을 기억할 때 불신은 사라지고 온전한 의탁만 남으며, 두려움은 없어지고 자신을 투신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고난을 기억할 때 인간은 자신의 무(無)를 인정하게 되고 하느님이 그를 차지하신다. 고난을 기억할 때 죽음은 그 독침(毒針)을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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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성인] 십자가의 성 바오로(1694-1775) 윤 클레멘트 신부 이탈리아의 오바다(Ovada)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의 신앙유산으로 이미 15세 때에 고행과 보속을 하기로 한다. 그는 1714년에 터키군과 전쟁 중인 베니스군에 입대하지만, 기도와 보속의 생활에 이끌려 명예제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여러 해를 기도하며 은거하던 중, 1720년에는 예수님의 이름과 하얀 십자가가 그려진 고난의 뱃지를 검은 옷에 단 성모님의 환시를 본다. 이 환시를 수도회 창설로 받아들인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부터 수도회 창설을 허가받은 후, 40일간의 피정을 하면서, 수도회칙을 초안한다. 처음에는 교황청으로부터 수도회 신청을 거절당하지만, 1725년에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에 교황 베네딕토 13세로부터 수련자를 받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1727년에는 교황 베네딕토 14세로부터 자신의 동생 요한과 함께 사제로 서품된다. 그는 동생과 함께 몬테 아르덴따리오에 수도원을 세우는데, 처음에는 엄격한 규칙으로 인하여 많은 수련자들이 수도원을 떠났다. 1737년에 정식으로 첫 수도원의 문을 열었고, 1741년에는 교황 베네딕토 14세로부터 개정 회칙을 승인 받는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수도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십자가와 고난의 맨발 성직수도회인 예수고난회로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간다. 총장으로 선출된 그는 이탈리아 전역을 다니며 설교하는데, 그의 설교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여 만인의 심금을 울린다. 그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축복을 사람들에게 가져갔고, 그의 말씀과 기도를 통한 치유의 기적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훌륭한 설교가인 그는 무엇보다도 사도적 열성과 엄격한 극기에서 뛰어난 모범을 보였다.
그는 십자가의 신비를 살고 따르려는 자신과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에 의존하며 살기를 바라면서, 행렬, 가두선교, 철야기도, 참회예식, 희생, 찬미가, 기도 등을 실천하곤 하였다. 그는 십자가를 손에 들고 팔을 넣게 한 채, 그리스도의 고통에 대하여 설교를 하곤 하였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고 회심하였다고 한다. 그의 고난회는 1769년에 교황 클레멘스 14세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고, 또한 고난회 수녀들이 꼬르네또에 첫 수도원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신비가, 설교가, 영적 지도자였던 그는 말년에 3년 정도 병고로 고생을 한다. 1775년 10월 18일에 세상을 떠나는데, 1867년 6월 28일에 교황 비오 9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그는 자신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적 고통을 침묵 속에서 참아내며, 즐겁고 평온한 얼굴로 십자가의 축일을 지냅시다. 고통은 사람들에게 감추어지고 지극히 선하신 하느님께만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우리의 양식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잊어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가슴 안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모든 이들이 모든 것들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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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예수 고난회 창립과 영성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랑' 예수 고난 영성 증거.선포 예수고난회의 창립자 십자가의 성 바오로(1694∼1775)의 영성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랑(The Creucified Love)'이신 그리스도께 집중돼 있다. 이 영성을 살아가고 있는 예수고난회는 그런 면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지금 여기에서' 생활과 사도직으로 증거하고 선포한다. 모든 영성의 핵심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지향하고 있지만 십자가의 성바오로는 수도회 회원 생활의 전체적 수덕적 의미, 기도와 가난의 목적,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 찬 봉헌 의미를 '하느님과의 신비적 일치'로 보았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야말로 그 일치의 문(the godly door)이라는 입장에서 그분을 통해 그분의 인성에 일치할 때만 하느님과의 만남은 가능해 진다고 강조했다. 이런 바탕 안에서 하느님과의 일치,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 두 축은 십자가의 성바오로에게 '하느님과의 현존'과 하느님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서의 '고난의 기억'(memorial Passionis)이다.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자주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랑'이라 불렀는데 이는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를 의미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에 깨어있는 현실, 즉 자신의 외아들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주신 하느님 사랑에 대한 묵상을 의미한다. 그는 하느님 현존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성자 예수그리스도와의 일치, 성령께 대한 온유함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으며 이때의 성령은 교회의 '기억'으로 표현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으로 하느님 현존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같은 맥락들을 배경으로 십자가의 성바오로는 수도회 목적을 하느님과 사랑으로 일치되는 기도의 사람, 이를 따른 이들에게도 가르치는 기도의 교사가 되는 것임을 확고히 했다. 이들에게 하느님과의 사랑의 일치는 예수 고난에 대한 '은혜로운 기억'을 통해 보다 쉽게 얻어지며 예수 고난이야말로 하느님 사랑의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사업이며 영혼의 회개와 완덕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예수고난회원들은 다른 수도회와 달리 정결 청빈 순명 3대 서원 외에 네 번째 서원, 즉 '예수고난에 대한 헌신'의 서원을 하는데 이는 예수고난에 대한 '은혜로운 기억'을 증진하도록 위임된 것으로 고난회원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의 살아있는 기억이 된다는 것을 전제하는 의미이다. 회원들에게 이 네 번째 서원은 모든 영성과 사도직 활동의 단일화되고 역동적인 원리로 작용하고 있으며 고난회 영성의 특성들을 태동시키는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예수님의 고난 안에서 사랑의 정점을 발견하였고 고난을 통해 드러난 사랑이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고 가라앉게 만들고 우리 스스로를 슬프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치유하고 살리고 자유롭게 하는 바다처럼 우리를 젖어들게 하는 생명수임을 역설했다. 이 생명수는 삶의 체험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현존 안에 깊이 맛들임으로써 예수님처럼 하느님과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체험한 사람, 또 체험하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은총이요 선물이라는 것이다. 예수고난회의 창립은 1720년 십자가의 성 바오로가 26세되던 해 내적 평화와 깊은 잠심 중에 성모님이 입고 계신 '가슴에 흰 십자가가 있고 그 밑에 예수님의 이름이 하얀 글씨로 쓰여진 수도복'을 본 후 구체화되었다. 바오로는 이후 40일간의 피정을 통해 영적 일기와 고난회 첫 회칙을 작성하였는데 수도회 창립 이전에 이미 회칙이 마련된 것은 수도회 창립 역사안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로 전해진다. 수도회는 여러 어려움을 겪은 후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1741년에서야 교황 베네딕도 14세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다. 교황은 회칙을 인준하면서 "교회에서 제일 먼저 설립되었어야할 성격의 수도회가 이제야 설립되었다"고 엄숙히 선포했다. 사도직 활동 '피정 사도직' 중심으로 활동 '예수고난의 신비가 우리 마음에' 사진말 - 예수고난회는 피정사도직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수고난회가 사용하고 있는 이 표어는 역사적으로 1736년 8월 9일이 그 시작이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창립자 십자가의 성 바오로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인지는 뚜렷치 않지만 십자가의 성 바오로가 그의 생애 내내 사용했던 것임은 분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는 '예수고난의 신비가 우리 가운데'란 표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1741년 교황 베네딕도 14세에 의해 창립된 예수고난회는 이후 1771년 5월 3일 '예수고난 관상수녀회'를 설립함으로써 십자가의 성 바오로 영성을 넓혀간다. 1775년 10월 18일 선종한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수도회 창립자 설교가 신비가로 가난과 참회 그리고 고독 가운데 생활하면서 기도를 통해 체험한 십자가의 신비를 말과 행동으로 선포한 성인으로 자리잡고 있다(1867년 6월 29일 시성). 창립자가 수도회의 사도직을 통해 의도하는 것은 자신이 체험하고 생활하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다른 이들과 더불어 나누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고난회원들이 '기도의 교사'가 되기를, 수도원은 '기도의 학교'가 되기를 원했다. 예수고난회의 고유한 사도직으로 정착되고 있는 '순회설교(Mission)'는 이러한 창립자의 뜻과 무관하지 않다. 초기의 순회설교는 주로 묵상법을 가르쳤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요즘의 피정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순회설교는 시대적 변천에 따라 '피정집'을 통한 피정 사도직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면에서 한국 예수고난회는 창립자의 정신과 영성을 현 시대안에 잘 보전하고 적용하고 있는 지역에 속한다. 여전히 '피정 사도직'이 중심 사도직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고난회의 한국진출은 1964년 광주대교구장 현 헤럴드(H. Henry) 대주교가 미국 시카고 성십자가 관구장 제임스 화이트 신부에게 회원 파견을 요청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로써 같은해 9월 15일 성십자가 관구 소속 마라이문도(Raymond Mcdonough C.P) 신부와 오멜리 신부가 선교사로 도착했다. 이들은 벌교본당, 보성본당 및 대건신학대학교에서 활동하였으며 69년 광주 화정동에 피정 센터가 마련된 후에는 광구교구 사제들의 도움으로 피정 사도직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1977년 두번째 피정집인 서울 명상의 집이 개원하면서 한국 예수고난회의 피정 사도직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피정 사도직과 함께 영적지도 상담 본당사목 해외선교등을 시도하고 있는 예수고난회 한국관구는 모든 사도직을 기본 영성인 '고난의 기억'과 깊숙이 연결하고 있다. 본당사목의 경우 전국에서 여건이 열악한 본당을 우선적으로 선택, 교구측에 사목을 자원했으며 또한 서울 명상의 집에서 연간 네 차례 이상 불우한 이들을 위해 무료 피정을 실시하는 것 등이 그런 맥락이다. 서울 광주 명상의 집은 매월 첫 금요일에는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개방의 날'을 열고 이날 명상의 집을 찾는 이들에게 모든 시설과 편의를 무료로 제공한다. 성직자 수도자들에게는 매월 첫 월요일을 개방의 날로 마련하고 있다. 서울은 내년에 알콜중독자들을 위한 피정도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 예수고난회는 2001년 현재 6개의 수도원과 공동체(서울 우이동.돈암동, 강원도 양양, 청주 척산리, 광주 일곡동, 제주 표선리), 2개의 피정집 (서울 명상의 집, 광주 명상의 집)이 있으며 제주 표선본당과 중국에 각각 공동체를 마련하고 있다. 중국공동체는 지난 2000년 세명의 회원을 파견함으로 시작됐는데 이는 중국 공산화가 진행되기 이전인 100여년전 예수고난회원들이 중국 땅에 뿌렸던 전교 열망을 계승 재현키 위한 시도로써 현지인들 대상의 선교가 주 목적이다.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 1694년 리구리아의 오바다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에 상인이었던 아버지를 돕다가 완덕의 생활에 대한 소명을 느껴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한 이와 병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동료들을 모았다. 사제가 되어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여러 개의 수도원을 세웠다. 사도적 열성과 엄격한 극기에서 뛰어났다. 예수 고난회를 창립했다. 1775년 10월 18일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33F0B3A4F47862729)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의 편지에서 (Epist. 1,43; 2,440. 825)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주님의 고난에 대해 생각해 보고 묵상하는 것은 탁월하고도 거룩한 일입니다. 이 묵상의 길을 통해 하느님과의 영적인 일치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극히 거룩한 학교에서 참된 지혜를 배웁니다. 모든 성인들은 여기에서 지혜를 배웠습니다. 우리의 사랑하올 예수의 십자가가 여러분의 마음에 깊이 뿌리박히게 된다면 여러분이 부를 노래의 주제는 이러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는 죽지 않고 고통당하는 것이다.” 또는 “내가 원하는 바는 고통당하거나 죽는 것이다.” 또 이보다 더 나은 것은 “내가 원하는 바는 고통도 죽음도 아니고 주님의 뜻만을 채우는 것이다.”는 주제입니다. 사랑은 두 사람을 서로 결합시켜 주는 덕행이므로 우리가 사랑하는 선하신 주님의 고통을 우리의 것으로 삼게 하는 덕행입니다. 사랑의 불은 골수에까지 꿰뚫고 들어가 사랑을 주는 자를 그 사랑을 받는 자로 변모시켜 줍니다. 사랑의 불은 사랑을 고통과 연합시키고 또 고통을 사랑에서 구별시키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결국 영혼은 사랑할 때 그 고통 속에서 즐기고 그 고통스러운 사랑 속에서 기뻐 용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덕행에서 수련을 쌓고 특히 사랑하올 예수님의 수난을 본받는 데 수련을 쌓으십시오. 그것은 완전한 사랑의 정점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감미로움과 온유의 모범이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모상을 모든 이가 여러분의 안팎에서 알아보게끔 생활하십시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과 내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사람은 그의 끊임없는 영웅적인 덕행의 실천, 특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불평하는 것을 모르는 덕행인 인내심으로써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모상을 외적으로도 반사해 주게 됩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모든 이가 만사에서 그분의 뜻을 따라가는 것만 원하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참된 애인이 되어 누구에게도 말하는 일이 없이 침묵 속에 영혼의 내밀한 고통들을 참아 내면서 언제나 마음의 내적 성전에서 십자가의 축일을 경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축일들은 기쁨 속에서 지내는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들은 내적 고통의 침묵 속에서 참아 내며 즐겁고 평온한 얼굴로 이 십자가의 축일도 지내야 합니다. 고통은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지극히 선하신 하느님께만 알려지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축일에는 우리가 성대한 잔치를 베풉니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랑하올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우리의 양식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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