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욱이 베트남어로 직접 만든 바둑 정석책 |
이강욱, 급한대로 최초(?!)의 베트남 정석책 만들어 베트남의 매력, 한분야의 능력이 입증되면 나라가 지원한다
-나의 일과와 베트남의 바둑 현황-이곳에서 공식적인 내 바둑 강의는 하루에 3시간씩 일주일에 3번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강의 장소는 호치민시에서 유지 관리하는 체육클럽이다. 체스, 장기, 바둑을 한 곳에서 공부할 수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시립체육관 같은 곳이 아닐까 싶은데 고작해야 15평 정도나 될까?
아무튼 세 가지를 한곳에서 다 하기엔 무척이나 좁고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곳으로 특히나 바둑을 하기엔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다. 장소도 그렇고 아직은 부족한 언어 때문에 한정된 실력들(최고수 계층)을 가르칠 수밖에 없어서 우선 15명 정도의 학생들만 소집하여 강의를 시작했다.
호치민의 대표선수들과 타 지역 대표지만 호치민의 대학으로 유학 온 대학생들로 베트남을 대표하는18~24세의 대학생 선수들이다.체계적인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이들의 가장 큰 약점이다. 모양이나 최신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많이 접해서인지 그럴 듯 했지만 조금 오래된 정석이나 돌과 돌이 부딪히기 시작하면 정신을 못 차린다고나 할까??
“바둑의 꽃” 이라는 수읽기도 많이 부족해서 옆에서 바둑을 보고 있자면 늘 조마조마 하다.그래서 계획한 것이 집중적인 수읽기 훈련. 공부시간 중 절반 이상을 수읽기 훈련에 매진했더니 약 4개월이 지난 지금 그래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꾸준히 훈련한 탓 인지 수읽기가 조금씩 향상 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edia.cyberoro.com%2Fphoto%2F201012%2F101222-lkw08.jpg) ▲ 바둑 클럽 간판. (co vay=바둑 co vua=체스 co tuong=중국장기) 요즘은 어려운 문제도 간단히 해결 하여 나를 깜짝 놀래 키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얼마 전의 일이다 .호아(hoa)군과 대국 중 어려운 승부처였는데 예전 같으면 그대로 무너져 버릴 상황에서 최선의 수순을 밟아와 나를 당황시킨 일이 있었다. 결과는 역시 나의 패배. 물론 지도 대국이었고 제자의 성장을 기뻐해야 하겠지만 나는 아직 젊고 또 패배를 좋아할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ㅋㅋㅋ
떨떠름한 기분으로 복기를 해 주는데 문제의 승부처 장면이 되자 호아 녀석 내게 한마디 한다.
“예전 같았다면 어디부터 둬야 할지 몰라 이런저런 악수교환으로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이 되었을 거에요. 그런데 이 선생님과 같이 수읽기 훈련을 한 덕분인지 이곳의 처리는 제가 생각해도 잘 한 거 같습니다. 이 선생님 덕분입니다. cam on thay lee~ (감사합니다. 이 선생님)”
제자에게 졌다고 침울해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며...힘이 불끈 솟는다!!! 반복되는 수읽기 훈련이 지루했을 법도 한데 묵묵히 잘 따라 와준 학생들이 고맙다. ^^
이렇듯 가르치면서 늘 고마워할 일만 생긴다면야 참 좋겠지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체계화된 바둑책 한권 없는 이곳에서는 가르치는 일이 더 많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도장에서야 책도 많고 학생들 수준도 높아서 함께 바둑을 두어주거나 대국 후 복기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이곳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에서의 도장 사범생활은 참 편했었구나 하는 생각도 자주하게 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edia.cyberoro.com%2Fphoto%2F201012%2F101222-lkw02.jpg) ▲ 호치민 시내 중심가, 점점 무르익고 있는 성탄절 분위기 물론 사범과의 지도 대국도 좋지만 지금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건 기본기를 다지는 일이어서 교재만 충분하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이곳에는 꼭 필요한 교재가 없으니... 쩝. 급한 대로 한국에서부터 들고 왔던 책에서 발췌, 복사하여 공부를 시키고는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내손으로 직접 바둑책 만들기 ! ! !
이들에게 우선 필요한 책이 정석 책이다 싶어 바로 시작은 했는데 많이 알지도 못하는 정석들을 머리 밖으로 꺼내어 책으로 엮으려니 그것 또한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몇날 며칠을 밤낮으로 매달린 끝에 드디어 완성된 이 강욱 저(?) 정석 책. ^^
겉장은 우리 한국의 유명한 프로기사들 사진을 넣어 디자인 했다. 말이 정석 책이지 적절한 해설 한줄, 변화도조차 없는 수순 뿐 인 너무나 부족한 정석 책이지만 완성된 책을 보니 얼마나 뿌듯하던지... 또 내 자신이 얼마나 대견하던지...^^;;
학생들은 또 얼마나 좋아할까 싶어 빨리 보여주고픈 마음에 서둘렀는데 책 배포 당시엔 기대만큼 큰 감흥이 없어 보여 아주 조금 실망은 했다. 그래도 모두들 보물처럼 애지중지 아끼는 모습이 참 고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쇄비가 비싸서 인쇄는 못하고 내가 만든 원본을 복사기로 일일이 한 장 한 장 복사해서 만든 책인데 베트남의 복사 용지와 잉크의 질이 좋지 않아 물만 스쳐도 잉크가 번져 버리니 애지중지할 수밖에.
베트남에 온지 얼마 안 돼 상당히 큰 규모의 서점을 찾아간 적이 있다. 다른 책보다도 바둑책을 찾아보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체스 책을 발견하고 근처에 바둑책도 있겠다 싶어 열심히 찾아봤다. 여러 종류의 체스, 중국 장기 책들의 진열에서 벗어나 한참 구석진 곳에서 어렵게 찾아낸 바둑 입문 책 한권. 정말 딱 한권이었다.
한국에서는 흔하디흔한 바둑책 한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책은 고사하고 한국에선 문구사나 슈퍼마켓 등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바둑알이 이곳에는 없어서 플라스틱으로 되어있는 바둑알을 사용할 정도다. ( 이곳 사람들이 손재주가 좋고 나무는 많아서 바둑판은 얼마든지 제작 가능하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edia.cyberoro.com%2Fphoto%2F201012%2F101222-lkw06.jpg) ▲ 베트남 체육 채널에서 중국장기를 방송하고 있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성조가 있는 언어도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베트남은 한자를 완전히 버렸다. 미국과 전쟁이 끝난 후에는 캄보디아 분쟁을 놓고 중국과 제법 규모가 큰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듯 베트남의 바둑현황은 많이 부족하고 열악한 초보(?)단계이다. 체스, 중국장기 등은 인기가 많고 대중화 되어 있어 배우는 학생도 많다. 거리에서도 대국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거리에서 바둑 두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정부에서도 체스나 장기에는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서 베트남 체스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바둑은 아예 관심 밖이다.
오죽하면 유이 선생님께서는 “체스, 장기는 친자식. 바둑은 다리 밑에서 데려온 양자.” 라고 말씀하실까...?
하지만 희망을 갖게 하는 부분도 있다. 각 도시에서 선정된 대표 선수들에게는 매달 월급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 이 부분은 한국, 중국, 일본 아마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도가 아닐까 한다. - 그 조차도 이 나라에서는 결코 무시 할 수 없는 상당한 금액이다.
매주말마다 호치민에서 약4시간 정도 떨어진 동탑 시에서 내게 배우러 오는 남매가 있다. 왔다갔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교통비에 하루 숙박비까지 계산하면 이곳 생활수준으로 볼 때 결코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실력도 많이 부족하여 굳이 이 먼 곳까지 바둑을 배우러 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부담스러운 마음에 부모님께 멀리까지 바둑을 배우러 오는 목적을 여쭤본 적이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동탑시의 대표선수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시의 대표선수가 되면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인 것이다. 현재 두 남매 중 한 학생은 벌써 적지만 시로부터 정기적인 금액을 받고 있다고 한다. 호치민에서만 16명이 이 제도의 수혜를 입고 있다 이렇듯 한 분야의 우수함이 증명되면 나라에서 인정하고 보장해주는 제도가 베트남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 될지는 모르지만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은 글쎄... 결코 낙담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일희일비하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상황,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이 내 소임이다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내 생애 최고로 바쁘게 충실히 살고 있는 여기는 베트남 호치민 이다. ^^
[글 | 베트남 호치민에서 이강욱 8단]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edia.cyberoro.com%2Fphoto%2F201012%2F101222-lkw03.jpg) ▲ 호치민 시내 , 베트남 사람들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좋아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edia.cyberoro.com%2Fphoto%2F201012%2F101222-lkw05.jpg) ▲ 바둑교실 내 칠판. 간단한 바둑용어가 한국어 발음과 함께 씌여져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edia.cyberoro.com%2Fphoto%2F201012%2F101222-lkw07.jpg) ▲ 바둑클럽 건물 모습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edia.cyberoro.com%2Fphoto%2F201012%2F101222-lkw09.jpg) ▲ 클럽내 바둑교실 (co vay=바둑 co vua=체스 co tuong=중국장기)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edia.cyberoro.com%2Fphoto%2F201012%2F101222-lkw11.jpg) ▲ 손수 만든 책의 사활부분, 변변한 해설이 한줄도 없어 미안하고 아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