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6> 김씨의 기원
세계일보 기사 입력 : 2011-04-12 21:04:42
김성회 : 한국다문화센터 사무총장 kshky@naver.com
김수로왕계 김해김씨 제외하면 대부분은 김알지계 신라김씨
# 한국 사회에서의 김씨
2010년 대한민국 인구주택 총조사 잠정결과를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4821만9000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리고 올 초에 주민등록번호를 받은 인구가 50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되었다(2011년 1월 행안부). 이 숫자는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동포(약 570만)와 북한 주민(약 2400만)을 제외한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식 성과 본을 사용하는 인구는 대략 8000만명으로 추산된다.
그중 대한민국의 성관(姓貫)은 286개 성씨와 4179개 본관으로 파악되고 있으며(2000년 인구센서스·통계청), 성씨별 본관 수는 김(金)씨 349본, 이(李)씨 276본, 박(朴)씨 159본, 정(鄭)씨 136본, 최씨(崔)씨 159본, 강(姜)씨 33본, 서(徐)씨 57본으로 되어 있다. 그중 김씨는 전체 인구의 5분의 1인 992만600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김수로왕계의 김해김씨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김알지계의 신라김씨 계통이다. 그 외에 신라김씨 계통이나 김해김씨 계통이 아닌, 조선에 귀화한 ‘왜장 사야가’를 시조로 하는 ‘사성 김해김씨’도 있다.
김씨의 본관별 인구 수를 보면 김해김씨가 412만5000명으로 가장 많고, 경주김씨가 173만7000명, 광산김씨가 83만7000명, 김녕김씨가 51만3000명, (구)안동김씨(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둘째 김숙승을 시조로 하는 안동김씨로, 고려 개국공신인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신안동김씨와 구분된다)가 42만5000명이다. 그 외에도 의성김씨(25만3000명), 사성김해김씨(19만9000명), 강릉김씨(16만5000명), 선산김씨(10만9000명) 등이 있다(2000년 인구센서스, 통계청).
사실 김씨라는 한자 성을 사용하는 인구는 중국과 만주 등 동아시아 지역에 매우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금나라의 금이라든지, 중국 성씨 중에 금씨는 우리나라의 김씨와 깊은 연관이 있다. 김씨는 고려 때까지 금씨로 불렸는데, 음양오행에 따라 이씨 조선을 무너트릴 것이라는 불길한 소문을 염두에 둔 태조(이성계)의 명으로 쇠금이 아닌, 성김으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다.
# 설화로 본 김씨의 기원
그럼 김씨의 뿌리는 무엇인가?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삼국사기의 김알지 설화(서기 65년)와 삼국유사의 김수로 설화(〃 42년)이다. 그중 삼국유사의 김수로왕 탄생설화는 다음과 같다.
“후한 세조 광무제 건무 18년, 임인 3월 상사일에 구지봉(龜旨峰)에 이상한 소리로 부르는 기척이 있어 구간 등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중략) 구간 등이 구지가(龜旨歌)를 부르고 춤을 추자, 하늘에서 자색 줄이 드리워 땅에 닿았는데, 줄 끝에는 붉은 폭에 금합(金合)이 싸여 있어 열어 보니 해와 같이 둥근 황금 알 여섯 개가 있었다. 다음날 새벽에 알 6개가 화하여 사내아이로 되었는데 용모가 매우 깨끗하였다. 이내 평상 위에 앉히고 여러 사람이 축하하는 절을 하고 공경을 다하였다. 그 달 보름에 모두 왕위에 올랐다.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휘(諱)를 수로(首露)라 하고 혹은 수릉(首陵)이라 하였는데, 수로는 대가락(大駕洛)의 왕이 되고 나머지 5인도 각기 5가야의 임금이 되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린 김알지 설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65년(탈해왕9) 8월 4일 왕이 밤에 금성(金城·경주) 서쪽 시림(始林) 숲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다. 호공이 시림 속에서 큰 광명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자색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뻗쳤는데, 구름 가운데 황금 궤가 나무 끝에 걸려 있고 그 빛이 궤에서 나오며,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어 왕께 아뢰었다. 왕이 숲에 가서 궤를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이는 박혁거세의 옛 일과 같으므로, 박혁거세를 알지(閼智·지혜가 뛰어나 이름을 ‘알지’라고도 함)라 한 선례에 따라 이름 지었다.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이라 하였다. 아기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며 기뻐하였다. 왕이 좋은 날을 받아 태자로 책봉하니 그가 곧 김알지이다. 그리고 시림도 계림(鷄林)으로 고쳐 국호로 삼았다.”
이렇듯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실린 김씨의 유래를 보면, 그 시조는 하늘에서 내려온 금궤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 금석문이 전하는 김씨의 기원
이와 다른 이야기들도 발굴되고 있다. 역사서가 아닌 금석문을 통해서이다. 그중 하나가 김유신과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의 비문이고, 추사 김정희가 밝혔다가 200년이 지난 1961년에 우연하게 발견된 문무왕 비문이다. 또한 중국에서 발견된 ‘대당 고 부인 김씨 비문’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먼저 김알지 설화를 전한 김부식조차도 “신라 고사에 금궤가 하늘에서 내려와 김씨로 성을 삼았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며 “신라인은 스스로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하였고, 성을 김씨라고 한 것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기에 삼국사기에 전하는 김유신 비문에는 [김유신이 헌원지예(軒轅之裔)요 소호지윤(小昊之胤)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김춘추의 아들이자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의 비문에도 나와 있다.
그런데, 1954년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동쪽 교외 궈자탄(郭家灘)에서 출토된 ‘대당 고 부인 김씨 비문’에는 “태상천자께서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고 집안을 열어 드러내셨으니 이름하여 소호금천씨이다. 이분이 곧 우리 집안의 성씨를 받게 된 세조이시다. (중략) 먼 조상은 일제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에 투항하시어 무제 아래서 벼슬을 하였다. 명예와 절개를 중히 여기니 (황제께서) 그를 발탁해 시중과 상시에 임명하고 투정후(투후)에 봉하시니, 7대에 걸쳐 벼슬하매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중략) 한이 난리가 나서 괴로움에 처하자 멀리 피해 요동에 살게 되었다. (중략) 지금 다시 우리 집안은 요동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듯 번성했다(이하 생략)”라고 적혀 있다.
이렇듯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천강설화와는 달리, 신라 김씨들은 자신의 조상을 소호금천씨(중국 3황 중의 하나인 황제 헌원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마천의 사기)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전에는 김부식이 전하는 김유신 비문이나 같은 내용이 수록된 김인문의 비문에 대해 ‘모화사상’에 따라 지어낸 것이라고 치부하였으나, 새로 발견된 문무왕 비문과 대당 고 부인 김씨 묘지명의 내용을 볼 때, 단순히 모화사상에 따라 지어낸 이야기로 덮어두기엔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특히 다시 발견된 문무왕 비문의 내용은 더욱 구체적이다. 그 비문에는 “지재생 … 후 제천지윤 전 칠엽(枝載生…侯 祭天之胤 傳七葉)”(5행), “15대조 성한왕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신라로 내려왔고”(6행)라며 신라 김씨의 내력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투후’는 한무제 때, 흉노 휴도왕(흉노는 선우 묵특 때 한 고조 유방의 15만 대군을 물리친 후 한나라로부터 조공을 받던 국가인데, 휴도왕·休屠王은 흉노 선우 휘하의 왕이었다)의 태자였다가 곽거병에게 포로가 되어 노예로 살다가 무제의 신임을 받아 김씨라는 성을 하사받고 투후에 봉해진 ‘김일제’(BC134∼BC86)를 뜻하는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