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꽃
이용악
오랑캐꽃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 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졸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 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오랑캐꽃>(1947)-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낭만적, 민족적, 독백적
◆ 표현
* 서정성과 서사성을 동시에 포용함
* 오랑캐꽃의 의인화
* 간접화법의 종결어미 '갔단다'와 영탄적 종결어미 '흘러갔나'를 사용하여 시간의 경과를
나타냄.
* 유사어휘의 반복 사용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도래샘 → 도랑가에 저절로 샘이 솟아 빙 돌아서 흘러 나가는 우물(샘물)
'도래'는 '도랑'의 함경북도 방언
* 오랑캐 → 북방 민족의 하나인 여진족으로, 우리 민족을 넘보던 적대적(敵對的)의미가
담겨 있다.
* 오랑캐꽃
→ 연약하고 가냘픈 이미지의 꽃(제비꽃, 병아리꽃, 씨름꽃, 봉기풀(함경도),
장수꽃(강원도) 등의 이칭)
일제 강점기 한없이 억울하고 비통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약하고 순수한
우리 민족
* 3연 → 화자의 감정적 진술이 위주가 됨.
◆ 주제 ⇒ 유이민들의 망국의 설움과 비애
식민지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에 대한 연민과 비애
[시상의 흐름(짜임)]
- 오랑캐꽃의 명명에 대한 유래 -
◆ 1연 : 오랑캐와 고려와의 싸움(고려에게 쫓겨간 오랑캐)
◆ 2연 : 세월(역사)이 덧없이 흘러 감.
◆ 3연 : 오랑캐꽃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비애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오랑캐꽃'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민족이 처한 비통한 현실에 대한 연민과 비애를 노래한 작품이다. 복잡한 비유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그 의미를 쉽사리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연약하고 가냘픈 오랑캐꽃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연민을 통해 이민족의 지배 하에서 노예적인 삶을 살아가는 민족의 삶과 운명을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오랑캐꽃의 이미지와 고통받는 민족의 현실을 등치(等値)시킴으로써 개인적인 서정을 그 시대의 보편적인 서정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꽃의 형태가 오랑캐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는 외형적인 유사성 때문에 오랑캐꽃이라 불리는 것이나,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인해 그 옛날의 오랑캐나 다를 바 없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해 버린 민족의 처지가 동일하다는 현실 인식이 이 시의 주요 모티프를 이루고 있으며, 그에 기초하여 오랑캐꽃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연민의 정을 민족이 처한 객관적 현실에로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 이 시의 기본적 구조가 된다.
[작가소개]
이용악 : 시인
출생-사망 : 1914년 11월 23일, 함경북도 경성 - 1971년
학력 : 조치대학교 신문학 학사
데뷔 : 1935년 시 '패배자의 소원'
경력 : 인물평론, 중앙신문 근무
시인. 함경북도 경성 출생.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6년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 신문학과에서 수학했다. 1935년 3월 「패배자의 소원」을
처음으로 『신인문학』에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같은 해
「애소유언(哀訴遺言)」, 「너는 왜 울고 있느냐」, 「임금원의 오후」,
「북국의 가을」 등을 발표하는 등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했으며,
《인문평론(人文評論)》지의 기자로 근무하기도 했다. 1937년 첫번째 시집
『분수령』을 발간하였고, 이듬해 두번째 시집 『낡은 집』을 도쿄에서 간행하였다.
그는 초기 소년시절의 가혹한 체험, 고학, 노동, 끊임없는 가난, 고달픈 생활인으로서의
고통 등 자서전적 체험을 뛰어난 서정시로 읊었다. 이러한 개인적 체험을 일제하
유이민의 참담한 삶과 궁핍한 현실로 확대시킨 점에 이용악의 특징이 있다.
1946년 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의 시 분과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중앙신문』 기자로
생활하였다. 이 시기에 시집 『오랑캐꽃』을 발간하였다.
1949년 8월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가 1950년 6월 28일 인민군이
서울에 진격해 오면서 출옥하였다. 시 「노한 눈들」, 「짓밟히는 거리에서」,
「빗발 속에서」 등은 이 시기에 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 시들에는 미국에 대한
증오와 반미투쟁에 앞장선 남한 민중들의 활동을 그려놓고 있다. 1951년부터
1952년 7월까지 조선문학동맹 시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56년 11월부터
조선작가동맹출판사 단행본 편집부 부주필로 일하였다.
시 「원쑤의 가슴팍에 땅크를 굴리자」는 조국해방전쟁 시기에 창작한 그의 대표작이다.
전후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평남관개공사를 독특한 필치로 노래한
「평남관개시초」를 들 수 있다.
1957년에 출판된 『리용악 시선집』에는 해방 전부터 이 시기까지에 창작된 그의
우수한 시 작품들이 편집되어 있다. 그의 시 창작의 특징은 공장과 농촌,
어촌 등으로 시적 공간을 넓힌 것이며 근로하는 인민들의 생활에 대한 기쁨이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그윽한 향토적 서정을 풍기고 있는 점이다.
이밖에도 시 「석탄」, 「어선 민청호」, 「위대한 사랑」, 「격류한다 사회주의에로」,
「기발은 하나」, 「꼰스딴짜의 새벽」 등을 발표하였다.
1968년에 「날강도 미제가 무릎을 끓었다」를 발표한 이후로 더 이상 시작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63년에는 김상훈과 함께 『역대 악부시가』를
번역 발간하기도 했다. 1971년 2월 15일 병으로 사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용악 [李庸岳]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