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17일 목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도 참으로 복 된 목요일 새 아침이 시작 되었으나 들리는 소식은 오미크론 바이러스 질병의 소식이 우리 주변을 감돌고 있습니다.
- 건강하게 체력 관리와 위생관리 잘해서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잘 지켜나가시기 바랍니다.
- 매일 염려와 두려움이 엄습해 오고 있지만,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간구함으로 절대 위기 극복을 놓고 간절히 기도하며, 믿음 안에서 평강을 누리고 신실하게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팬데믹 시대에 어떠한 위기의 상황을 묵묵히 견디며, 나에게 주어진 일터가 사명의 자리인 줄 알고 신실하게 복음의 사명을 선한 영향력으로 증거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갈라디아서 2장1-10절 }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제 목 ◑◑◑◑
◗◗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자유
◑◑◑ 본문 이해와 요약 ◑◑◑
◗ 2장에서는 주후 49년 예루살렘 총회의 주요 안건은 이방인의 할례 문제를 중심으로 한 구약 의식법 준수 문제였습니다.
- 여기에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변호하기 위해 자신의 선교 보고서와 함께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도 인정하는 공인이라는 정당한 사역임을 밝히고 있는 내용입니다.
-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의 권위를 증거 하기 위하여 다른 사도들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일들을 소개했습니다.
- 교회의 기둥이라 불리는 사도들과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며,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외식을 책망한 일도 있었음을 밝힙니다.
-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 다른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로부터 말미암았으며, 베드로와 동등한 책임과 임무가 주어졌음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이 교회에서의 교훈과 권위를 세우고 이신득의의 교리를 정확하게 정립하였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란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의지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철저하게 자신이 사랑과 섬김으로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 이제 2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5절에서 바울은 율법을 능가하는 복음의 원리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 한편 6-15절에서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유대인이 된 것과 바울이 외식하는 베드로를 꾸짖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 그리고 16-21절에서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것과 믿음 안에 사는 자는 은혜로 의롭게 됨을 강조합니다.
◈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1절에서 성도는 마땅히 교회의 권위 아래 순복해야 합니다.
- 한편 주관적 확신과 체험만을 고집하는 신앙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 그리고 3절에서 비 진리와의 타협은 진리에 대한 포기입니다.
- 한편 4절에서 죄와 율법에 대하여 자유하지 못한 자는 결코 구원받지 못합니다.
- 그리고 6절에서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과 다른 사도들에 대한 행동에서 진리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자의 담대함을 볼 수 있습니다.
- 바울은 비록 교회의 기둥과 같은 사도들 앞에서도 그리스도께 받은 진리에 대하여 만큼은 조금도 굴하지 않았으며, 진리를 확신하는데서 담대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그러므로 믿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굳게 잡아 이러한 담대한 믿음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 세상의 어떠한 거짓 교훈이 공격해 올지라도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단호히 대처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성도들에게 주어진 삶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분리 된 삶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완전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삶인 동시에 부활의 새 생명으로 덧입게 될 영원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왜곡시키려는 어떠한 시도 앞에서도 바울과 같이 담대하게 복음을 변증할 있는 용기와 담대함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무장하고 전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 묵상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믿음으로 살면 영원히 산다. (갈라디아서2장20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예수를 믿고 자신이 죽은 자로 사는 자가 진짜 사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 2장에서 유대인 중심으로 세워진 예루살렘 교회를 대표하는 사도 베드로와 이방인 중심으로 세워진 안디옥 교회를 대표하는 사도 바울이 악수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과 처음으로 일종의 공식 접견을 하게 되었던 사건입니다.
- 바울이 회심한 후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에는 베드로와 야고보하고만 잠시 개인적인 교제를 나눈 후에 헤어졌었습니다.
- 하지만 그로부터 “십사 년 후”의 이 두 번째 방문은 보다 구체적인 동기가 있었는데, 바로 2절에서 “계시를 인하여”라고 밝힌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바울에게 내리신 어떤 특별한 지시 때문이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그런 명을 내리신 이유는 당시 예루살렘교회와 이방 지역의 초대교회들 사이에 일종의 긴장이 조성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예루살렘교회 쪽에서 보자면, 이전에는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이 회심을 한 후에 지금은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방 지역에 많은 교회들을 설립하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 하지만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 대부분은 아직 이 바울이란 사람을 직접 대면하여 만나본 적이 없었으며 십 수 년 동안 그저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형편이었습니다.
- 그러니 이방 지역에 교회들이 늘어간다는 소식이 반가운 것이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라는 것이 그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오리지널 복음과 똑같은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 바로 그런 긴장을 해소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울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가도록 특별 계시를 내리셨던 것이었습니다.
- 여기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를 배우는 것입니까?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까? 예수를 본 받는 것입니까? 예수님처럼 사는 겁니까? 아니면 예수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겁니까? 다 귀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목격하고 오순절 성령 받을 때까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 그저 예수를 따라 다닌 사람입니다. 예수의 제자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참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여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신비로운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자아가 죽는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곧 십자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하며, 십자가를 통해 나를 바르게 이해하여야 합니다.
- 특히 오늘은 20절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자신의 자아가 완전히 죽어서 더 이상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고 오직 자기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만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실로 철저한 자기 부인의 삶을 나타내는 표현인데, 흔히 사람들은 이러한 삶에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 이러한 삶을 의타적이요, 수동적인 삶이라고 하여 경멸합니다.
- 그것은 자아를 상실한 무가치한 삶이요, 오직 분명한 자기 주관을 가지고 그 주관에 따라서 살아가야만 그 삶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도 세상 사람들의 말처럼 분명한 자기 주관을 가지고 그 주관을 따라서 사는 것만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이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무가치하고 아름답지 못한 삶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줄로 믿습니다. 자신의 자아를 부인하고 오직 주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간다고 해서 그 삶이 무가치하고 아름답지 못한 삶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 그것은 자신의 자아를 부인하지도 않았으며, 그래서 주님께 전적으로 헌신된 삶을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나 하는 말입니다.
- 진정 그런 삶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을 부인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가는 그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요, 그 어떠한 삶보다도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 바울은 로마교회에게 편지하면서 6장8절에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라고 하였습니다.
- 이삭을 생각 해 보면, 그는 가나안 땅에 큰 기근이 들어서 애굽 땅으로 피난하려 할 때에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가나안 땅에 머무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 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그가 오죽했으면 애굽으로 내려가려 하였겠습니까?
- 살 길이 막막하니까 애굽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 내려가지 말라니! 그럼 가나안 땅에서 가족들과 함께 굶어 죽으라는 말입니까?
- 만약 이삭이 분명한 자기 주관과 고집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결코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자신이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지를 설명하고 끝까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을 것입니다.
- 그런데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두말없이 순종했으며, 자아를 죽인 것입니다.
-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 판단을 땅 속에 묻어버린 것입니다.
- 비록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무조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 그의 삶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까? 무가치하고 아름답지 못한 인생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 모든 소출을 이전보다 100배나 거두는 등의 엄청난 축복 가운데서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 예수님께서 요한복음12장 24-25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을 확신하는지?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바울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믿음으로 산다는 성도들에게 어떤 정신으로 살아낼 것을 원하시는지? 예수님은 씨 비유를 통하여 열매를 맺는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오늘 성령님은 나에게 어떤 믿음으로 살아낼 것을 원하시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예수를 믿고 자신이 죽은 자로 사는 자가 진짜 사는 자입니다. 예수 안에서 죽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 믿음으로 살면 영원히 살게 됩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16장 25절에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내면의 속마음이 죽은 자로 살아가라는 것이며, 예수님을 위하여 자아를 포기하는 그런 삶을 살라는 것인데, 그리하면 진정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므로 예수님을 위하여 죽지 않은 사람들은 그를 알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위해 죽은 사람은 진정으로 의미와 가치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며, 항상 예수님을 위하여 죽은 자로 살아가게 되므로 진정한 참 생명을 누리는 저와 주님이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