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바른 견해는 사성제에 대한 지혜를 말한다.
그리고「가전연경(Kaccaayanagotta Sutta)」(S12:15)에서
무엇이 바른 견해인가를 질문 드리는 가전연 존자에게 부처님께서는
“깟짜야나여,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극단이다.
모든 것이 없다는 것은 두 번째 극단이다.
깟짜야나여, 여래는 이들 두 극단을 따르지 않고 중(中)에 의지해서 법을 설한다”라고
명쾌하게 말씀하신 뒤 12연기의 순관과 역관의 정형구로 중을 표방하신다.
즉 연기의 가르침이야말로 바른 견해이다.
이처럼 바른 견해는 사성제에 대한 지혜와 연기의 가르침으로 정리된다.
그런데 사성제 가운데 집성제는 연기의 유전문(流轉門, 고의 발생구조)과 연결되고,
멸성제는 연기의 환멸문(還滅門, 고의 소멸구조)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사성제와 연기의 가르침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것을 바르게 보는 것이 팔정도의 정견이다.
(2) 바른 사유(正思惟 sammā-saṅkappa)는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에 대한 사유”로 정의되는데
불자들이 세상과 남에 대해서 항상 지녀야할 바른 생각을 말한다.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자애(慈 mettā), 연민(悲 karuṅa).
더불어 기뻐함(喜 muditā), 평온(捨 upekkhā)의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梵住 brahma-vihāra)을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바른 말(正語 sammā-vācā)은
“거짓말을 삼가고 중상모략을 삼가고 욕설을 삼가고 잡담을 삼가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4) 바른 행동(正業 sammā-sammānta)은
“살생을 삼가고 도둑질을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는 것”이다.
(5) 바른 생계(正命 sammā-ajiva)는
“삿된 생계를 제거하고 바른 생계로 생명을 영위하는 것”이다.
다른 경에서 하는 설명을 보면
출가자는 무소유와 걸식으로 삶을 영위해야하며 특히 사주, 관상, 점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서는 안된다.
재가자는 정당한 직업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처럼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를 실천하는 지계의 생활은
그 자체가 팔정도의 고귀한 항목에 포함되고 있는 실참수행이다.
(6) 바른 정진(正精進 sammā-vãyama)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선법(不善法)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이미 일어난 불선법을 제거하기 위해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善法)을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이미 일어난 선법을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정진은
해탈열반과 향상에 도움이 되는 선법(善法)과 그렇지 못한 불선법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전제되고 있다. .
(7) 바른 알아차림(正念 sammā-sati)은
“몸에서 몸을 관찰하고,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고,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며 머무는 것”이다.
바른 알아차림[正念]은 팔정도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수행기법이다.
부처님은 나라는 존재를
먼저 몸[身]· 느낌[受]· 마음[心]· 심리현상[法]의 사념처(四念處)로
해체해서 이 중의 하나에 집중한 뒤,
그것을 무상· 고· 무아로 통찰할 것을 설하신다.
(8) 바른 삼매(正定 sammā-samãdhi)는
초선(初禪)과 이선(二禪)과 삼선(三禪)과 사선(四禪)에 들어 머무는 것이다.
이러한 바른 삼매(三昧) 혹은 선(禪)의 경지에 들기 위해서는
감각적 욕망, 악의, 해태. 혼침, 들뜸. 후회, 의심이라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이러한 장애들이 극복되어
마음의 행복과 고요와 평화가 가득한 경지를 순차적으로 정리한 것이 네 가지 선이며 이를 바른 삼매[正定]라 한다.
*12연기는 눈꽃님 본글과 댓글을 보충하면 다 풀릴 겁니다.
12연기로 불교의 바른 뼈대를 세우고 유식 화엄으로 살을 붙여 불교의 형태가 그려집니다.
팔정도로 피가 돌아 살아있는 불교로 정진하시길.
첫댓글 연기=공=무아=중도=중관=팔정도
좋다 싫다를 떠난 알아차림이 중도이며 해탈좌입니다.
팔정도만이 해탈열반의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