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2월, 태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신년맞이 축제를 촬영하다 급서한 사진가 김수남을 추모하는 전시회가 1주기를 맞아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 김수남의 일생을 조망하는 한편 그의 대표작을 한국과 아시아로 나누어 전시한다. 이 전시회는 생전에 김수남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던 학계, 문화예술계 인사(아래 명단 참조)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마련된 행사로, 한 개인 사진가에 대한 이 같은 성격의 추모 전시회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김수남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전국을 휩쓸며 미신타파를 앞세워 전통문화 말살 행위가 벌어지고 있을 때 사라져 가고 있던 무속 현장이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이를 사진예술로 승화시켰다. 김수남의 작업은 이후 한낱 미신으로 여겨졌던 굿 문화를 한국인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게 하면서 우리 사회의 굿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이와 함께 인류학, 국문학, 민속학 등 다양한 인문사회계열 학자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다큐멘터리 사진집을 연달아 발간하며 보기 드문 학제간 연구의 전통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굿` 시리즈 20권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사진집은 한국의 굿에 대한 귀한 현장 자료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도서로 영역돼 소개됐다. 다른 한편 그는 1990년부터 아시아 곳곳의 전통문화 현장을 찾아다녀, 중국, 인도, 네팔, 미얀마, 베트남, 스리랑카 같은 나라들의 전통문화 현장을 사진으로 담았다. 마치 1970년대에 굿 현장을 찾았듯이 1990년대에 아시아 여러 나라의 오지에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 현장을 찾은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 개발과 근대화에 밀려 사라져버린 아시아 소수민족의 전통 문화가 그의 필름 속에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고, 그 자체가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이 같은 김수남의 작업을 전통예술과 사진예술의 양쪽에 걸쳐 대표적으로 기억될만한 작품으로 엄선하여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초 태국의 작업현장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촬영했던 사진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와 함께 전시 기간 동안 전시장에서는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굿 공연이 함께 열린다. 인간문화재인 김금화 씨를 비롯해 생전에 그와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만신들이 공연만이 아니 진짜 넋굿을 펼치는 것이다. 김금화 씨는 김수남의 사후 직접 넋굿을 펼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었으며 이번에 그 자리를 갖게 됐다. 김수남이 필생의 작업으로 매달린 한국의 굿이었기에, 김금화 씨를 비롯 서순실(제주), 이귀인(전남), 이상순(서울) 만신들의 이번 공연은 모두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한 전시장에서 황해도와 서울, 전남, 제주의 넋 굿을 모두 볼 수 있어 공연 자체가 갖는 예술적인 의미도 깊다. 다른 한편 지성자의 가야금연주, 이애주의 넋살풀이춤, 김운선의 경기도당굿 춤도 각기 이 분야 명인들의 공연을 전시장에서 관람하는 희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전시장에는 공연에 임하는 만신들과 명인들의 사진이 김수남의 작품으로 걸린다. 김수남은 2006년 2월 4일 태국 치앙라이에서 소수민족 리수족의 신년 행사를 취재하던 도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향년 57세.
글 / 김수남기념사업회
제주도 영등굿 제주도 여씨할망당 영등굿에서, 뒤돌아보지 말고 떠나라는 삼싱할망(삼신할머니)의 호령을 뒤로 하고, 인정받은 재물을 등에 진 채 떠나는 구삼싱할망. (1982) 김수남 취재노트에서
내 자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굿이란 무엇인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표현하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아마 삶과 죽음, 고통과 환희, 좌절과 희망, 이런 것들을 가장 극렬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굿판일 게다. 어차피 사회와 시대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그래서 보호 받아야 할 대상으로 까지 변해 버린 나의 신앙체계, 이것을 찍으며 하나의 증언,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기를 꿈꾸었다. ―<한국의 굿>(1983)을 내며
아시아를 헤매 다니며 느낀 것은 전통문화, 사라져가는 문화가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 현재 문화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이라는 단어의 허구성과 더불어 개성적인 문화, 고유의 문화를 생각하게 했다. 여러 나라의 문화를 이해해서인지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인지 근래에는 예전보다 기다림의 태도가 생겨났다. 한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사람이든 문화든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보고 찾아내고 그것을 긁어내지 않아도, 바람이 음악이 또는 사람이나 사물이 내게 들려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물론 정보와 계획, 이 두 가지를 갖고 깊은 땅 한켠에 눌러앉아 느긋하게 일어나는 상황들을 지켜보는 속에서이다. 만드는 상황이 아니라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상황에 나를 맡겨버리는 것이다. ―<살아있는 신화>(1999)에서
아름답고 화려한 이들의 문명이나 문화가 서구의 꺼풀 속에 가려져 있었던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꽤 오랜 시간 경험하고 여러 번 마음 세척을 한 후에야 나는 그들의 겉모습만을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마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예술가들이었습니다. 모두가 소리하고 춤추고 그림 그리고 조각하는 예인이자 장인이었고 잽이들이었습니다. 나는 이들 예인들을 통해, 그들의 삶과 환경을 통해 아시아를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빛과 소리의 아시아>(2005)에서
마당에 나와 있던 그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에게 오랜만인데 하나도 안변했다며 반긴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그가 오십 줄에 들어설 때였고 나는 삼십대 초반이었는데 어찌 변하지 않았으리. 그것도 2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허긴 칠순이 다된 그지만 약간 수척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긴 해도 옛 모습 그대로이다. 20년 전의 사진을 들고 간 나에게 그리 오래 자신을 찍은 사진을 소중히 생각해줘서 고맙고 또 고맙다고 눈물을 흘린다. 20년 전에도 같은 사진을 보고, “공옥진이 보다 더 공옥진이 같은 사진이네요.” 하며 울었었다. ―<일인 창무극의 명인 공옥진>(2001)에서
“어쩌면 춤이란 허무한 것, 결국 허공에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나한테는 사진다운 사진 한 장도 없었어요.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데 무슨 사진을 찍어두는가. 그러다가 몸이 아프니까 생각이 달라지대요. 50년을 춤추고 이제 비로소 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니 비감해지고,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사라지겠다는 예감이 들대요.” 1983년 청담동 아파트로 찾아간 나에게, 내가 찍은 자신의 승무 춤 사진을 보면서 들려준 이야기다. 이날 나는 두 장의 같은 승무 사진에 둘이서 서명하고 한 장씩 나누어 가졌다. 1981년에 찍은 사진이었다. ―<넋으로 추는 승무의 춤꾼, 승무의 한영숙>(2001)에서
나는 어느 젊은 부부가 사는 집의 처마 밑이라 할까 응접실이라고 할까 하는 곳을 빌려 숙박을 했다. 이 집은 4평 정도의 넓이인데, 두들겨 넓게 만든 대나무 벽으로 집을 둘로 나누어 하나는 침실, 하나는 부엌이자 응접실로 쓰는데 방에 문이 없었다. 나는 밖이 트인 마루에서 묵었는데 사람들이 움직일 때 마다 대나무 바닥이 함께 출렁거려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슬리핑백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책을 읽는데 어느 집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통나무를 깎아 만든 이곳 고유의 4선 기타 더쬬 소리가 아름다웠다. 달과 별이 밝은 밤이다. 싸늘한 냉기가 느껴져 목만 내놓고 몸과 손을 침낭 속으로 집어넣었다. 바람 소리, 풀 냄새가 정글 속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게 했다. ―미얀마 취재 노트(1991)에서
타이 아카족의 소녀들 카이 아카족의 신년 의례에 참가한 소녀들. (1993) 김수남을 말한다
김수남은 만나는 사람들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닌 큰무당이다. 단지 방울과 부채 대신에 사진기를 들고서 사람들과 만나고, 공수를 내리는 대신에 셔터를 눌러서 자기가 본 것을 형상화 하는 것이 보통무당과 다를 뿐이다. ―김인회(전 연세대 교수)
김수남의 사진에는 ‘찍는’ 행위에 관계되는 중층적(重層的)인 의미가 겹쳐져 있다. 먼저 작품의 출발점을 이루는 한 순간을 ‘찍(촬영하)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김수남이 결정지은 이 세계의 한 순간은 그것이 무엇이건 심상치 않은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보는 자의 가슴에 부딪쳐 오는 그의 예술작품에는 다른 하나의 ‘찍는’ 행위가 겹쳐져 있다. 아시아의 샤먼들이 불러들이는 여러 신과, 마을이나 길거리의 사람들이 서로 깊이 교감하는 정경을 교묘하게 포착하는 ‘찍는’ 행위이다. ―스기우라 고헤이(그래픽 디자이너)
그는 말하자면 사진 밭에서 노는 사진가가 아니다. 술을 지긋지긋하게 좋아하지만, 그가 어울리는 것은 민중문학이나 민속학이나 그런 쪽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아마도 평생 이곳저곳의 오지만을 떠돌며 그들의 삶의 안쪽에 뛰어들어 그들의 술을 마시고 그들의 신과 교감하며 그렇게 살다가 쓰러질 사람이다. 단언하건대 죽을 때까지 그가 그 일에서 발을 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김승곤(사진평론가)
앙코르 와트 사원을 비롯한 숱한 아시아 유적지들이 일본 정부나 기업의 후원과 투자로 보존, 관리되고 있는 걸 감안하면 한국이 자국 문화에만 천착하고 아시아의 문화현장에 뛰어들지 않은 채 앞으로 닥칠 ‘문명의 블록화 시대’에 무엇으로 아시아 중심국가임을 자부할 것인지 답답하다. 문화훈장은 고사하고 30년간 수십만 장을 찍은 김수남의 방대한 ‘아시아문화’ 기록조차 아직 갈 곳을 못 찾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 차미례(언론인)
인사로 주는 술은 다 받아먹고 굿판 사람들보다 더 얼굴이 벌개져서 돌아다니는데, 그 와중에서도 협조를 구하는 솜씨가 여간 아니었다. 카메라를 가슴에 안고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으면서 부탁하면 아주머니 할머니 아저씨 할 것 없이 시키는 대로 비켜주고 포즈를 취해주고 춤도 더 춰주곤 했다. ―황루시(관동대 교수)
선생이 사진을 찍는 그 모습, 그 순간을 오래 지켜보고 있자면, 그 손에 반하게 된다. 나는 사진작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사진이란, 대상의 본질을 한순간 잡아채는 일이라 느낀다. 선생은 그 순간을 위해 수많은 날들을, 그 열악한 환경에서 술로 지새우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대상의 본질과 맞닥뜨리게 될 그 단 1초의 시간을 포착하려고, 렌즈에 온 신경을 집중 시키고 기다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검지를 셔터에 올려놓고, 그 찰나의 순간을 기다리는 선생의 손은 한없이 깊어 보였다. ―정성희(드라마 작가)
타이 치앙라이 2006년 1월 31일, 타이 치앙라이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2006)
김수남기념사업회와 함께 하는 사람들 김인회(전 연세대 교수 ㆍ 이사장) 유홍준(문화재청장) 김병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임돈희(동국대 교수) 김승곤(순천대 석좌교수) 김형윤(김형윤편집회사 대표) 정현기(연세대 교수) 지영선(언론인) 차미례(언론인) 채희완(부산대 교수 ㆍ운영위원장) 김민기(학전 대표) 황루시(관동대 교수) 이근성(프레시안 대표) 조경만(목포대 교수) 이희영(유족 대표) 배병우(서울예대 교수) 김영수(중앙대 교수) 김장섭(한성대 교수) 최상일(문화방송 PD ㆍ사무국장) 신경아(금융인) 고운기(연세대 연구교수) 김진순(코리아루트 대표) 이용식(한양대 겸임교수) 현관욱(사진가) 양 진(사진가) 백지순(사진가) 박원모(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 안재인(사진가) 채승우(조선일보 기자) 김상훈(동아일보 기자) 김재훈
------------------------------------------------------------- 김수남 약력 1949년1월19일 제주 생 1973 연세대학교 졸업 1972-1975 월간 세대 기자. 1976-1985 동아일보사 기자. 1986-1987 동아일보사 객원 편집위원. 1988 일본 류큐대학 사회학과 외국인 객원 연구원. 일본 게이오 대학교 지역 연구소 방문 연구원. 1990-97 연세대학교 강사 1999-2000 상명대학교 예술, 디자인 대학원 사진과 강사 2002.8-2005.8월 경상대학교 인문학 연구소 연구교수 1981 신영 연구 기금을 받아 한국의 굿을 촬영. 1988 일본 국제교류기금을 받아 일본의 산과 바다의 마츠리 촬영 2002-2005 2002-현재 경상대 인문학 연구소, 경상대 민속 무용학과 와 공동으로 「한국, 중국, 일본, 인도의 굿에 나타난 춤사위 비교 연구」프로젝트 수행 1995-1997 3년간 연세대학교 박물관과 일본 게이오대학 지역연구소의 공동으로 조사하는 「한ㆍ일 문화 비교 연구」 프로젝트 수행. 1988-2006 아시아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촬영.
* 사진집 및 저서 2005 「굿, 영혼을 부르는 소리」(열화당) 「Gut, Korean Shamanic Ritual」(열화당) 2004 「아름다움을 훔치다」(디새집) 1999 「살아있는 신화 아시아」(연세대학교 박물관) 1997 「김수남 아시아 문화탐험-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 (석필) 1995 「 아시아의 하늘과 땅」(타임 스페이스) 1983-1993 「한국의 굿」(열화당, 전 20권) 1993 「사진집 제주도」(일본 국서 간행회, 전3권) 1989-1992 「팔도굿」,「민속놀이」,「조상 상례」,「전통 제례」,「안동 하회 마을」 (공저, 대원사) 1988 「한국 마음의 아름다움-민의 문화」(일본 오리진 쇼보) 「한국의 탈, 탈춤」(행림 출판, 전2권) 「제주 바다와 잠수의 4계」(공저, 한길사) 1986 「풍물굿」,「호미씻이」,「장승제」(평민사) 「홀로가는 사람」(공저,행림출판) 1985 「흐르는 섬」(공저, 행림출판)
전시 2005 「한국의 굿-만신들1979-1997」김수남 사진초대전(갤러리 와) 2005 「Schamaninnen in Korea」(독일 베를린 Werksttat der kultern ) 2005 「빛과 소리의 아시아」(인사아트센타) 2004 「신들의 얼굴」(한옥마을) 1999 「살아있는 신화 아시아-김수남사진전」(연세대학교 박물관) 1998 「한국 샤머니즘 전 」(독일 함부르크 민족 박물관) 1997 『삶의 경계』전 (광주 비엔날레) 1995 「아시아의 하늘과 땅」(개인전, 그레이스 백화점) 한국의 무속」( 일본 히가시가와 사진상 해외 작가상 수상기념전, 히가시가와 문화갤러리) 1983 「한국의 굿 출판 기념 김수남 사진전」(한마당 화랑) 1993 「한국 현대 사진 흐름전」(그룹전, 예술의 전당) 등 그룹전 다수.
* 수상 1996 한국일보 출판 문화상 사진부문 수상 「아시아의 하늘과 땅」(타임스페이스 간)으로 1995 일본 히가시가와 사진상 해외작가상 수상 1989 한국일보 출판문화상 수상 한국의 탈.탈춤 (행림출판 간)으로 1986 제 13회 오늘의 책 수상 한국의굿(전20권 열화당 간)으로
* 소장 예술의 전당, 연세대학교 박물관, 일본 히가시가와 문화 갤러리, 갤러리와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