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정부가 또 다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벌써 18번째 부동산 대책이랍니다. 이번이 이 정부의 마지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엔 올해 미분양 아파트를 계약하면 향후 5년간 양도소득세를 면제하고, 주택을 올해 안에 사면 취득세를 50% 감면해 주겠다는 겁니다.
대책이 나오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시장에선 벌써부터 ‘별 것 없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집값이 오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시세차익에 부과하는 양도세 혜택이 무슨 의미냐는 것이죠.
취득세 감면은 거래할 때 작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당장 절세할수 있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수억원짜리 주택을 거래하면서 그게 매매의 진짜 동기가 되긴 어려울 겁니다.
곳곳에서 하루가 다르게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도 평균 시세보다 떨어진 급매물이 나오는 마당에 취득세 감면을 받자고 갑자기 내집마련을 결정할 사람은 없겠죠.
그래서 대부분 전문가는 실수요 차원에서 기존에 주택을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던 사람들이 좀 서두르는 효과 외에 신규 주택수요 창출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보네요.
이번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달라진 시장 상황 때문일 겁니다. 주택시장이 이미 하락세로 기울인 상황에서 내놓은 대책이라 효과를 보기 어렵겠죠.
침체된 시장 상황과 함께 이명박 정부들어 3개월에 한번꼴로 나온 정부 정책의 불신이 부동산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일 겁니다.
부동산 정책은 기본적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작동합니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는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쏟아낸게 문제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정부 대책이 '아니면 말고'식이 된 것 같다고요.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안되면 다시 이렇게 해보는 것같다는 겁니다.
정부가 대책을 남발하니 시장에서는 늘 또 뭔가 나오겠지 기대합니다. 정부 대책이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거죠.
그래선지 이젠 웬만한 대책은 먹히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아무런 반응도 없다는 게 정확합니다.
‘정책 따라 투자’ 부동산 상식 허물어져
부동산 시장에서 그동안 가장 절대적으로 믿어왔던 신념은 정부 정책에 따라 시장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정책·개발 특수 논리’는 부동산 투자 교과서의 기본중의 기본이죠. 정부 정책을 아는 만큼 투자에 성공한다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국토부, 서울시 등 지자체의 도시개발 계획 등을 지침 삼아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을 찍는 게 투자의 시작이었습니다. 정부가 살짝 시장 활성화 의지만 보여도 부동산은 꿈틀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아마 이런 상식이 완전히 깨진 시기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게 뉴타운, 한강르네상스로 불리는 한강변 초고층 개발이죠.
정부가 지구지정을 하고 국회의원들이 너도나도 개발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업이 멈춰섰습니다.
서울시내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 구역 1300여곳 가운데 절반이 사업을 아예 중단하는 출구전략을 검토하고 있을 정도죠. 서울시는 최근 전 오세훈 시장 때 추진한 압구정동, 여의도등 한강변 개발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사업비만 31조원 규모로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으로 불리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이 사업을 추진하는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이하 드림허브)의 1·2대 주주인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이 갈등을 일으키며 또다시 사업이 중단될 위기입니다.
지난해 맺었던 협약대로 하면 된다는 롯데관광개발의 입장과 달라진 시장 환경때문에 그대로 가면 공멸한다는 코레일측의 입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문제는 서부이촌동 보상 등 자금 조달이 어렵기 때문에 발생한 겁니다. 워낙 갈등이 심해 코레일이 롯데관광개발을 사업추진 주체에서 쫓아내려고 시도하면서 법정 분쟁까지 갈 전망입니다.
서울시의 무리한 통합개발 추진…지금은 ‘뒷짐’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갈등의 배경에는 서울시의 무리한 서부이촌동 통합개발 계획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08년 상반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코레일이 추진한 용산 철도 정비창 부지 개발사업의 인허가 조건으로 서부이촌동을 통합 개발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코레일 이철 사장은 사업성이 불투명한 계획이라며 반대했죠.
하지만 이 사장은 결국 서울시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해 8월 서울시청에서 오세훈 시장은 이를 한강르네상스의 상징으로 멋지게 포장해 기자들에게 대대적으로 발표했습니다. 당시 발표회장에서 선보였던 중국 상하이, 텐진 등을 오가는 국제 여객, 물류 터미널과 유람선 선착장이 조성된 화려한 청사진이 기억나네요.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서부이촌동은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가장 큰 짐입니다. 서부이촌동이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에 포함되지 않았으면 사업은 훨씬 쉽고 빠르게 진행됐을 거라는게 대부분 관련업계의 평가입니다.
드림허브 출자사 가운데 “사업추진에 부담을 준 서울시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뒷짐만 지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서울시의 발표를 보고 서부이촌동이나 주변에 투자한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한 재테크 전문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정부와 지자체가 너무 의욕만 앞세운 장밋빛 전망을 남발했습니다. 그 결과 이젠 정부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투자컨설팅을 할 때 앞으로 정부 계획을 설명하면 다들 비웃습니다. 그 중에 도대체 실현된 게 얼마나 있느냐는 겁니다. 이런 현상은 이 정부 들어 처음입니다.”
정부 믿고 투자하는 시대는 끝난 걸까?
누군가의 말처럼 시장은 이미 정부의 손을 벗어난 걸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계속되는 글로벌 금융위기, 2%대 저성장, 1000조원 규모의 가계부채,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부동산 시장은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정부가 정책 몇 개를 내놓는다고 시장 흐름이 바뀌길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욕심일 겁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신뢰를 잃는다는 건 자유민주주의 시장의 후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시장을 관리하는 정부가 신뢰를 잃는다면 도대체 뭘 믿고 거래를 할 수 있을까요. 다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