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길 위에 음표가 앉았다
비가 지나간 숲길에는 말보다 먼저 고요가 내려앉는다. 나무들은 한바탕 몸을 씻은 듯 푸르고, 젖은 길은 평소보다 깊은 빛을 품는다. 빗방울이 잎 끝에 매달려 있다가 이따금 툭 떨어진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길 한가운데 보랏빛 우산 하나가 펼쳐져 있다.
누가 두고 간 것일까. 주인을 잃은 우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의젓하다. 누군가 일부러 그 자리에 세워 둔 작은 꽃처럼 보인다. 연보랏빛 우산 아래로 노란 손잡이가 살짝 몸을 굽히고 있다. 물웅덩이에는 우산이 거꾸로 한 번 더 피었다. 하나는 세상을 향해 펼쳐지고, 하나는 물속을 향해 펼쳐졌다. 비가 만들어 놓은 두 개의 세계가 마주 보고 있다.
우산은 본래 누군가를 가려 주는 물건이다. 비가 오면 머리 위에서 젖음을 대신하고, 햇살이 뜨거우면 그늘을 내어 준다. 자신의 몸은 젖으면서 사람을 젖지 않게 한다. 생각하면 우산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 말없이 곁을 내주고, 자신이 조금 힘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그늘 한 조각을 건네는 사람. 살아오면서 나에게도 그런 우산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비를 맞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걸을 때 슬며시 우산을 기울여 준 사람, 힘든 일을 굳이 캐묻지 않고 옆자리에 앉아 준 사람, 괜찮다는 말 대신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 준 사람. 그때는 몰랐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알게 된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위로가 아닐 때가 많다. 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어도 함께 우산을 쓸 수는 있다. 슬픔을 없애 줄 수는 없어도 그 곁에 머물러 줄 수 있다. 어쩌면 사랑이란 상대의 비를 그치게 하는 능력이 아니라, 비가 그칠 때까지 우산 한쪽을 내어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길을 조금 더 걷자 뜻밖의 풍경이 나타난다. 가느다란 줄 위에 작은 새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노랑, 초록, 빨강, 회색. 몸빛도 표정도 제각각이다. 서로 조금씩 간격을 두고 앉은 모습이 꼭 오선지 위에 놓인 음표 같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지휘봉을 들면 숲 전체가 연주를 시작할 것 같다.
나는 걸음을 멈춘다. 새들도 나를 바라보는 듯하다. 한 녀석은 고개를 갸웃하고, 다른 녀석은 먼 곳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곳을 보면서도 같은 줄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꼭 우리 사는 모습 같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음으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높은 음처럼 명랑하고, 어떤 사람은 낮은 음처럼 묵직하다. 앞서가는 사람도 있고 오래 머무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너무 다른 까닭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은 같은 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높은 음과 낮은 음이 만나고, 빠른 음과 느린 음이 섞인다. 쉼표도 있어야 한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순간까지 음악의 일부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늘 앞으로만 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멈추고, 기다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또한 한 사람의 생을 완성하는 소중한 쉼표다.
새들을 바라보다 문득 뒤쪽의 우산을 돌아본다. 젖은 길 위에 홀로 있던 우산과 줄 위에 나란히 앉은 새들이 하나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산은 외로워 보였다. 그런데 새들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우산은 혼자 남겨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비가 그치면 다시 사람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살다 보면 우리도 혼자 남겨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지고, 익숙했던 자리가 낯설어지고, 마음을 나누던 사람이 어느 날 곁에 없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에서 나만 홀로 비를 맞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비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무리 긴 장마에도 끝이 있고, 젖은 길에도 다시 햇빛이 든다. 비가 그친 자리에는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타난다. 나뭇잎은 더 푸르게 빛나고, 물웅덩이는 하늘을 담는다. 숨어 있던 새들이 나와 노래한다.
삶의 비도 그런 것이 아닐까. 힘든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 아픔을 겪은 뒤에 다른 사람의 눈물을 알아보고, 외로움을 지나온 뒤에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비를 맞아 본 사람은 누군가에게 우산을 기울일 줄 안다. 그래서 나는 젖은 길을 싫어하지 않는다. 맑은 날에는 볼 수 없는 것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물 위에 비친 또 하나의 세상, 빗물을 머금은 나무의 짙은 색, 비가 그친 뒤 조심스럽게 돌아오는 새들의 노래. 무엇보다 모든 비에는 그친 뒤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젖은 길은 말없이 보여 준다.
숲길 끝으로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누군가는 이쪽으로 오고 누군가는 저쪽으로 멀어진다. 삶이라는 길도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잠시 같은 길을 걷다가 갈림길에서 헤어지고, 또 다른 길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우산 하나를 함께 쓰기도 하고, 서로 다른 음표가 되어 잠시 같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것이면 충분한지도 모른다.
평생 함께하지 못했다고 해서 인연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잠깐이라도 내 비를 가려 준 사람, 내 침묵 옆에서 함께 쉬어 준 사람, 내 삶의 한 소절을 함께 불러 준 사람은 마음 어딘가에 오래 남는다.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그러자 옆의 새가 몸을 움직인다. 잠시 후 또 한 마리가 날개를 편다. 오선지에서 음표들이 하나씩 빠져나가 하늘로 흩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음악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새들이 떠난 자리에는 숲의 소리가 남는다. 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멀어지는 발걸음, 바람이 나무 사이를 빠져나가는 소리. 세상은 한 가지 악기로 연주되지 않는다. 누군가 떠나면 또 다른 소리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 나는 다시 보랏빛 우산 앞에 선다. 물웅덩이에 비친 우산이 살짝 흔들린다. 바람 때문인지,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그 작은 흔들림을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이 난다. 비가 그친 뒤에도 우산은 한동안 펼쳐져 있다. 마치 우리에게 서둘러 접히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젖은 마음도 충분히 말릴 시간이 필요하다고. 슬픔이 지나갔다고 곧바로 웃을 필요는 없다고. 잠시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고. 나는 천천히 숲길을 걸어간다. 뒤에는 우산 하나가 남아 있고, 앞에서는 새들의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사이를 걷는 동안 알 것 같다.
삶은 비와 햇살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젖는 날이 있기에 맑은 날이 눈부시고, 혼자 걷는 시간이 있기에 함께 걷는 사람이 반갑다. 침묵이 있었기에 한 줄의 노래가 더욱 깊어진다. 오늘도 누군가의 삶에는 비가 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 곁에 우산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가 그친 어느 날,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마음 위에 가만히 앉았으면 좋겠다. 마침내 다시 노래할 수 있도록. 비가 그친 숲길, 젖은 길 위에 음표 하나가 앉는다. 삶은 그렇게 다시 노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