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박치원
아버지가 마루에 앉자 긴 장마가 시작되었다
마루 밑에 강아지가 시나브로 졸고
찬밥에 물을 말며 맵지 않은 고추는 고추도 아니라며
아버지는 괜스레 날씨 탓을 하셨다
나는 장지문에 서서 몰래 오줌을 누다
어른이 되면 더 멀리 나갈 거라 자신했다
다리가 넘치도록 비가 내린 다음날엔
죽은 갓난아기가 떠내려 왔다는 소문이 났다
하천 옆 공장들도 물에 다 잠기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당분간 아버지 구두를 닦지 말라 하시며 슬퍼보였다
부엌 문 뒤에서 울었던 기억이 났다
달콤한 슬픔이란 앨범 속에 끼워 둔
오래된 가족사진 같은 것 볼 때마다 먹먹하다
비가 내린다 우산 대 햇살처럼
내게는 그래도 푸른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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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박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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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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