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거장들의 ‘페르소나’… 박찬욱, 칸 3번째 수상 ‘깐느 박’
‘브로커’로 제75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 칸=AP 뉴시스
송강호의 배우 인생
“청소부라도 시켜달라” 연극 입문후
드라마 출연않고 영화배우 외길 걸어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만나 연기 변신
경남 김해(현 부산 강서구)에서 나고 자란 송강호는 중학교 2학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재밌어하는 친구들을 보며 배우의 꿈을 꿨다. 23세이던 1990년 부산에서 극단 연우무대의 ‘최선생’을 본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다. 이듬해 연우무대 극장장이던 류태호에게 “청소부라도 시켜 달라”던 청년 송강호는 이로부터 31년 뒤 한국인 첫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의 쾌거를 이뤘다. 단 한 편의 드라마에도 출연하지 않고 줄곧 영화배우 외길을 걸은 결과다.
위쪽부터 넘버3, 밀양, 기생충
1991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그는 ‘동승’을 시작으로 1996년까지 10여 편의 연극에 출연하며 실력파 배우로 이름을 알린다.
1996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단역으로 영화에 데뷔한 그는 1997년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서 조폭 부하 ‘판수’ 역을 맡아 주목받았다. 이어 그해 영화 ‘넘버3’에서 말더듬이 깡패 ‘조필’ 역을 맡아 한국 대표 감초 배우로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그의 “내가 현정화! 그러면 무조건 현정화야” 대사는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는 넘버3로 그해 대종상 신인남우상,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송강호는 코믹한 이미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쉬리’(1999년)에서 국가정보원 특수요원으로 변신했다. 당시 그의 연기가 배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도 있었지만 ‘조용한 가족’(1998년)에서 가능성을 본 김지운 감독이 ‘반칙왕’(2000년) 주연으로 그를 캐스팅한다. 송강호의 첫 주연 작품이다. 송강호는 한 인터뷰에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가장 힘들었던 영화는 단연 ‘반칙왕’이다. 주변 시선을 느꼈기에 스스로 더 채찍질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거장 감독들의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한다. ‘조용한 가족’ 이후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 ‘밀정’(2016년)에 잇달아 출연한다. 박찬욱 감독과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이후 ‘복수는 나의 것’(2002년), ‘박쥐’(2009년)를 찍었다. 봉준호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2005년)을 시작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괴물’(2006년), ‘설국열차’(2013년)에 이어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 석권한 ‘기생충’(2019년) 작업을 함께했다.
박찬욱의 감독 여정
복수 3부작 등 자신의 취향에 충실
‘올드보이’ 칸 심사위원대상으로 세계 주목
장르 넘나들며 할리우드 등 진출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 칸=AP 뉴시스
칸영화제에서만 올해 세 번째로 트로피를 들어올려 ‘깐느 박’으로 통하는 박찬욱 감독(59)은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취향에 충실한 영화를 제작해온 그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그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은 29세 때 찍은 ‘달은…해가 꾸는 꿈’(1992년)이다. 가수 이승철, 나현희가 출연한 이 작품은 흥행에 참패하고 평단의 호응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부진한 성적으로 생계형 평론가로 활동하던 그는 5년 뒤 ‘삼인조’(1997년)를 내놓았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를 충무로가 주목하는 감독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관객 590만 명을 동원해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된 이 작품은 제5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다.
위쪽부터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흥행 감독으로 입지를 굳힌 박 감독은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한다.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을 시작으로 원죄와 복수, 구원을 소재로 한 ‘복수 3부작’을 선보인다. ‘복수는 나의 것’은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한 ‘올드보이’(2003년)를 선보인다. ‘올드보이’가 200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박 감독은 칸과 첫 인연을 맺게 된다. 복수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한 ‘친절한 금자씨’(2005년)는 “너나 잘하세요”라는 명대사를 낳으며 제6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박쥐’(2009년)는 제62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박찬욱은 당시 인터뷰에서 “‘박쥐’는 그동안 찍었던 작품 중 가장 좋았다. 왜냐면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6년에는 영국 소설가 세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를 각색한 영화 ‘아가씨’를 선보였다. 김민희 김태리 주연의 이 영화는 제69회 칸영화제에 초청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최근 세계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는 장르를 넘나들며 영미권에도 진출했다. 미국 할리우드에선 니콜 키드먼, 미사 바시코프스 주연의 ‘스토커’(2013년), 영국 BBC 첩보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년)을 연출했다.
김재희 기자, 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