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원 권의 모델로 신사임당이 선정되었을 때였다.
당연히 여성계가 반색을 할 줄 알았으나 반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사임당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당당한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가부장제도 하의 현모양처의 모델로 선정했기 때문이란다.
사임당은 재능이 출중하여 명문가에서 구혼이 줄을 이었지만
대감집으로 시집을 가면 부억떼기 일만 한다 하여
홀어머니를 모신 파주의 이원수에게로 시집을 보냈다.
평범한 집으로 시집가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라는 의미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사임당은 결혼 후에도 시집살이나 남편의 구속을 별로 받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친정 아버지가 죽자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3년 동안이나 친정에서 보내기도 했다.
당시 유교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임당은 48세라는, 요즘으로 보면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7남매를 키우면서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한국 어머니의 표상이 되었다.
자식 중에서 대학자 율곡과 세 명의 예술가가 배출되었다.
사임당은 친정(강릉)에서 율곡을 배태하고 거기서 낳았다.
동해의 선녀가 옥동자를 안겨주는 꿈을 꾸고 낳은 자식이 율곡이었다.
율곡은 과거 시험에 아홉 번이나 장원 급제한 천재이자
위대한 정치가, 개혁사상가였다.
이점이 퇴계와 많이 달랐다.
퇴계가 어지러운 정치에서 한 발 물러나 학문에 전념한 반면
율곡은 현실 정치에 뜻을 두었다.
율곡의 나이 16살 때 사임당이 별세했다.
율곡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다 서모(아버지의 첩)와의 사이도 나빠서
한 때 금강산으로 들어가 머리를 깎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다시 환속하여 공부를 했다.
공부가 잘 되지 않으면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강릉의 외갓집으로 갔다.
서울에서 강릉이라...
요즘이야 몇 시간이면 되지만 그 옛날에는 보름은 걸렸을 법하다.
외갓집 가는 길에 도산서원에 들러
은퇴하여 후학을 가르치던 퇴계선생을 찾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한 때 이 두 사람의 대화를 한 번 복원하여 책으로 내보고 싶었다.
그러나 한문 실력이 짧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중,
어느 분이 거의 유사한 내용의 책을 썼다.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는 제목이다.
그 책을 쓴 노력에 비해 판매는 그리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많이 팔렸으면 좋으련만...
오늘이 사임당의 탄생 509 주년이다.
신사임당이 잠들어 있는 곳은 파주에 있는 자운서원이다.
이곳에는 이율곡의 묘소도 함께 있다.
특이한 것은 율곡 선생의 묘소가 사임당 묘수보다 윗 쪽에 있다.
아무리 율곡 선생이 대 학자라지만 자식이 부모보다 윗자리라니...
유학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와 자식은 하늘과 땅인에,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자운서원에는 지금 단풍이 그만이다.
특히 노랑 은행잎이 페르시아 융단처럼 깔려 있다.
오후 조금 늦은 시간이라면
자운서원에서 바라보는 넉넉한 임진강이 아름다운 노을을 담아내는 요즘이다.
노을~
첫댓글
노을이야기님의글 잘읽고갑니다
ㅎ~걷기에서 자주 뵈어요!
과연 5060방의 이야기꾼 노을이야기님 입니당
잘 읽었읍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감사~~
아침 새벽 운동하고 와서 제일먼저 컴을 열고 삶에 이야기방
노을님의 첫글을 보고서 갑니다 . 출근 시간도 다가오고 아침식사 뜨러 갑니다
넵! 좋은 날 되소서...
글 즐거리도 매끈하지만 알게 모르게 학식을 깨우쳐주는 노을님의 글은
금과옥조 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역사지식과 정보 감사합니다
좋은 날 만들어가셔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사임당이 더 훌륭했지요...허나 당시의 시각으로 보면 사임당이 남편을 많이 힘들게 했지요...
공부해라...급제하기 전까지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겠다...부터,
첩을 두었다고 싸우기도 많이 하고...등등...Why? 그대도 사임당이 부럽쑤?
어머니는 위대하다. 5만원권, 아들은 5천원권
목소리크고 승질 드러우면 장땡~
온유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 !
유교가 국가와 사회를 다스리던 그시절,
그런 훌륭한 남편이 아니면, 친정으로 곧 쫒겨 갔겠죠.
남존여비의 시절에도, 아내의 재능을 인정하고
아내위에 우뚝서려하지 않는 고결한 남자,
아~ 존경스럽습니다.
온유님은 역시 날카로운 분이셔~~^^*
노을님 글은 공부여~~~
돈 안내고 배우는 공부~~~
노을 이야기 선생님~~~
자주 자주 공부시켜주세요^^~~~~~~~~~~~~~
에고...
사임당님이 깐깐하셨구요.
더 가까이 하고 싶어집니다.
저는 지금도 나혜석님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해하여 주십시오. ㅎㅎㅎ
가르침이 담긴 글 감사합니다.
나혜석, 일엽스님...한 시대를 앞서가던 여걸들...
요즘 나도 노을님의 글 보면서 역사 지식 얘기 잘 터득 하고 있네요 캄싸
아이고...감사...
잘읽었습니다
저는 역장(逆葬)에 대한 말씀을 드릴려고 합니다
조선중기까지는 역장에 대해 아무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조선조에서 최다 정승을 배출한 동래정씨들의 사당동이나 군포에 있는 묘역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명문가문인 월사 이정구, 광산김씨 사계 김장생, 우계 성혼 또한 역장의 경우입니다
지종학 풍수지리연구소 참조
http://cafe.daum.net/ipungsu
아 그런 사연이 있군요...감사합니다.
조선조의 5대 명문가를 꼽으라면 광산김씨 사계 김장생가문과,
연안이씨 월사 이정구가문, 달성서씨 약봉 서성가문, 전주이씨
백강 이경여가문, 신안동김씨 청음 김상헌 가문으로 꼽는데 주저 할 것이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 가문은 한 성씨가 조선조 500년 역사에서
문형(文衡:대제학) 한 사람 배출도 어려운데 비하여 한가문에서
무려 6명~7명을 배출하였고 그것도 3세를 내려가며 연이어
대제학을 배출한 집안들이며,
나머지 가족들은 최소 정2품(判書:장관) 이상을 역임한
가문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조선조 5대 명문가' - 네이버 지식iN)
달성서씨는 조선조에 영의정 7명, 좌의정과 우의정 각각 한명씩
총 9명의 상신(相臣)을 배출하였고 대제학 6명, 왕비 1명으로서
정승의 배출은 전주이씨가 22명으로 가장 많고
동래정씨(東萊鄭氏)가 17명으로 그 다음이며 신안동김씨가
15명, 청송심씨(靑松沈氏)가 13명, 청주한씨(淸州韓氏)가 12명,
여흥민씨 (驪興閔氏)가 12명, 파평윤씨(坡平尹氏)가 11명에 이어
남양홍씨(南陽洪氏)와 같이 제8위임.
머리속에서 사알짝 잊혀져가는 것들 다시 꼭꼭집어서 알려주시는 노을 이야기선생님"
우리는 이런글을 가끔 목말라 한답니다
알고 계시죠
이거 원, 월사금 없는 교실에서 가르칠려니, ㅎ~~
아는 동생이 자운서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자운서원의 정취가 참 좋다고 얘기는 들었습니다.
한복 입고 행사에도 참가한다고 했는데 아마 오늘도 그러겠네요.
강릉이 아니고 왜 이쪽에서 그분들을 기리나 생각했는데 묘소가 있어서 그런 것이군요.ㅎ
율곡의 원래 고향이 파주입니다. 조상 대대로...다만 태어난 것만 강릉 외갓집이었지요.,
함 가보셔요...지금 아주 경치가 좋아요, 그리고 율곡 문학제/문화제도 열리는 데 지났나 모르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읍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 좋은 계절 되세요~^
감사합니다...
노을이 노을을 담아내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해박하신 노을님 덕에 유식해지고 갑니다
요즈음은 자꾸 깜빡거려서 이 유식함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길지가 의문이지만...
좋은 작품 기대합니다
가을 잘 보내셔요
넵! 감사~~~
재밌고 유익한 역사적 사실
다시 생각하게 만드네요
긴~글을 쓰셔도 짧은 글을 쓰셔도
머리에 간단 명료하게 정리가되어
들어오게 쓰시는 재주 역시 프로는 프로입니다
이 가을 보약 먹은 기분입니다
에고...과찬이십니다...
수북한 은행잎을 닮았다는 페르시아 융단을 한 번 보고싶습니다. 아직 본 적이 없어서요 ^^
건필하십시오.
통일로 따라서 차로가면 금방입니다...
좋은 주제로 글이 전개되었군요..
조선시대 사회상,매장문화로 역장(逆葬)에 대한 이야기까지 살펴볼수있는 글..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을이야기님, 제가 짧은 지식이라 ~
선대의 묘수가 밑에 자리잡고 위로 올라 가면서 후대가 자리하는 것은 아닌지요?
글을 읽을 때 이상하다 갸우뚱했는데~
노을님(안동 권문세가의 후손) 앞에서는 완벽한 지식이 아니어서.....
아, 저 위에 도솔천님의 역장에 대한 글이 있네요.
그것을 참고로 하겠습니다.
안동에서는 선대가 가장 윗쪽에 있고, 그 아래로 후대가 자리하지요...그래서 이상하다는~
일반적으로 뼈대(?)있다는 집안에서는 아랫대의 자손이 밑에 뭍히는것이 당연한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율곡 이이의 무덤은 신사임당과 이원수(율곡의 아버지)의 무덤 윗쪽에 문인석(품계에 맞추어 세울수있는
석상으로 문무관직에 따라 무인석 문인석 등 다양...)을 앞세워 세우고 봉분이 지어져있으며
특이하게도 율곡 이이의 봉분 바로뒤 위쪽에 율곡의 첫째부인 노씨의 무덤봉분이 있습니다.
율곡 이이는 둘째 쎗째부인에게서만 자식을 얻었다고????
문산 버스터미널에가면 하루에 예닐곱번 시내버스(11-3번?)가 운행을 합니다.
오만원권에 여성이 등장 하는것에 대하여 반대도 있었나요?
전 찬성도 반대쪽도 아니지만, 처음으로 나오는 고액권에
여성을 그려 넣은것은, 아껴쓰라는 메시지인줄로...ㅎㅎ
그래서 오만원권만 지갑에 들어 있을때는 쓸까 말까를...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던데...^*^
그러게 말입니다. 사임당을 현모양처로 평가하는 시대적인 분위기에 반기를 든 모양입니다...
노을이야기님!
올려주시는글 자~알 읽고있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읽다"도 잘 읽었는데.....
언제 빈대떡에 쏘주한잔 하시지 않으실래요????
좋지요, ㅎ~
숨 안 쉬고 단숨에 읽었습니다 감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