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국시조 이성계...
이성계는 달단(達達)...즉,타타르족 출신 몽골 다루가치 집안의 후손이다.
이성계는 퉁두란이나 이만주와 유사한 여진계이다.
아니다, 이성계의 전주이씨는 분명 전라도 전주의 고려가문으로...그 역사가 신라까지 올라간다.
이 세 가지가 사가들간의 논쟁인데...
여러 사서들을 조합하건데...
이성계의 선대가 고려로 귀화하여...전주에 있다가 지방관의 첩실을 범한 죄로 다른지방으로 피하고...
다시, 그 지방관이 그 지방으로 오자...의주 부근로 도망갔다가...몽골로 항복하여 다루가치 벼슬을 하다가..
다시, 알타리(알타이)부족장들과의 야바위 마작사건 마찰로... 고려관내로 들어와 재 귀화를 하면서...
이성계의 집안이 고려인으로 정착하게 됀다.
중요한건...
이성계의 조상이 최초 고려로 귀화하기 이전엔...그 정체가 뭐였었냔게 핵심인데...
전주이씨들의 족보가 신라대 까지로 올라가기에...언젠가 쌍성총관 쪽으로 이동했다가 고려에 재 귀화한 것이니...
원래부터 여진족은 아니였을 거란 설이 ...아직까진 유력한데...
밑의 기록을 봐선...그게 아닌듯 하다.
전주이씨의 중시조 누구를 찾으면...경주이씨와 중첩됌을 내가 전에 찾아 봤었다.
다시 찾아내라 하면 머리 아프니 여런분이 좀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밑의 태종시기 왕조실록을 보십시여...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인정받기 위해 보낸 조서(曺庶)란 인물이...
몽골어와 한어에 능통해... 명태조에게 이쁘게 보이고...이전 탈탈승상의 군영에서 명태조를 뵌 적이 있었다 말함으로서...
옛 추억들을 회상키고..천자께서도 역성혁명 아니셨냔 은근한 비유로...
이성계의 역성혁명도 다르지 않냔...은근한 비유적 논리로 명태조를 설득하여 조선개국 정통성을 인정받아온 공노로...
개국공신이 돼고...조선의 통치이념인 홍범도 조서(曺庶)란 인물이 만든것으로서...
조선의 개국에 실로 중요한 인물이 조서(曺庶)란 인물이다.
전의 글에서도...
조서(曺庶)란 인물이 이미 전에 몽골의 대 제상이자 홍건적 토멸의 총 지휘관이였던 탈탈승상의 군영에서...
명태조를 틀림없이 목격했다 함은...80만의 탈탈휘하 홍건적토벌 몽골군들 가운데...
명태조가 분명 눈에 두두러지게 기억할 수 있는 인물로 있었단 말이니...
명태조인 홍무제는...우리가 아는 그 홍건적늠도 아니요...일자무식의 도적패가 아니였다 증거했습니다.
현 서남아계 짱께족들의 역사왜곡 작품이 홍건왜족 명태조란... 개수작이란 겁니다.
그 홍무제에게... 조선 태조이성계가 입공을 하면서...
뭔 표문들과 명태조에게 바치는 말과 말안장...교역할 무역품들을 가지고 갔는데...
그 가지고 간 표문이 심히 건방지고...특히나 말안장 밑에 쓰인 문구가 심히 조롱하는 문구였기에...
분노한 명태조가 이들을 구금하고,이 표문을 작성한 자들을 모두 압송하라 하여...
중범죄자는 처단하고...그 친하던 조서(曺庶)도...그 표문의 작성자라 하여...죄를 못 면하고...
얼굴에 자자(먹물문신)을 해서 귀향보냈다가...
한참 후 태종때에 송환하게 됀다.
그 송환때에... 사은사가 명나라 예부로 부터 받아온 자문엔 이런 구절이 있다.
“1. 종사(宗嗣)에 대한 일. 조선 국왕(朝鮮國王) 이(李)【휘(諱).】가 아뢰기를, ‘홍무(洪武) 35년 정월 초 8일에 배신(陪臣) 조온(趙溫)이 경사(京師)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조훈조장(祖訓條章)내에 신(臣)의 종계(宗系)가 이인임(李仁任)의 후손이라 하였다.」하니, 생각건대 신(臣)의 아비【구휘(舊諱).】 선세(先世)는 본래 조선(朝鮮)의 유종(遺種)으로 고려(高麗)를 섬겼고, 뒤에 국인(國人)들이 추대하여 권지 국사(權知國事)를 삼았으므로 이에 갖추 아뢰어서,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명하여 국왕(國王)을 삼고 개호(改號)를 주셨으며, 신의 아비의 이름【구휘(舊諱).】을 비로소 개명(改名)【금휘(今諱).】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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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록은...
해석하기 나름이란 해설론 뭉퉁그릴 수 없는... 아주 분명한 왕조실록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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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건대 신(臣)의 아비【구휘(舊諱).】
선세(先世)는 본래 조선(朝鮮)의 유종(遺種)으로 고려(高麗)를 섬겼고,
뒤에 국인(國人)들이 추대하여 권지 국사(權知國事)를 삼았으므로 이에 갖추 아뢰어서,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명하여 국왕(國王)을 삼고...
先世, 本朝鮮遺種, 事高麗,....... 後國人推戴, 權知國事, 具奏, 欽蒙太祖高皇帝命爲國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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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구절이...
해석에 따라선...이성계의 조상이 고려인이란 구절로도 보이십니까...?
왕조실록 스스로도...
이성계의 조상은 본래 조선(朝鮮)의 유종(遺種)으로 고려를 섬겼다 했지...고려가 고국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유종(遺種)...
그 직계 종족이란 말이 아니라...
그, 유사한 방계족속이나...그 나라가 망한 연유의 유민종족..즉, 남은 종족들을 이르는 한자가 유종(遺種)인 겁니다.
비유하자면...타타르(달단)은 몽골의 유종(遺種)이라 하면...
달단이 몽골 직계족이란 말이 아니라...그 문명의 통치를 받던 방계거나...
그 제국의 멸망후에 남은 유민족이란 말입니다.
고로, 이성계가...스스로 자기 조상을 조선의 유종(遺種)이라 했음은...
기자조선이나 단군조선의 유종(遺種)이 자신의 조상들이란 말이 돼는 것이고...
당시 고려와 몽골의 접경이인 요동벌 쌍성총관 일대의 달단동은...타타르가 살던 지역이고...
이 타타르(달단)은...고조선의 유종(遺種)이란 말도 돼는 겁니다.
고로, 조선태조 이성계의 조상은...
기자조선의 기주(箕州=원조 畿內,원조 神州)인 요동의 쌍성총관부 유역의 종족은 맞아도...
분명,그 기주의 상대적 동남부인 삼한(三韓)의 통일국인 왕건고려완 관계없던 지역의 부족였단 말을 스스로 한 겁니다.
이성계가 개국초기에...
조서(曺庶)를 통해 역성혁명을 인정받고 국명을 받아올 당시에...
조선(朝鮮)과 화녕(和寧)...둘 중에 골라 달라 요구한 것도...
실은 자기 족속의 원 근본이..왕건고려의 중심지완 다른... 기자조선의 중심인 기주(箕州)이자...
이 기주는...화녕(和寧)지역과도 같은 지명이거나 인접지명이란 반증인 겁니다.
화녕(和寧)이 어딜까요...?
화녕은 몽골제국의 태조인 칭기스칸이 몽골족을 통일하고서...
대칸(황제) 즉위를 선포하고... 도성을 만든 외몽골 중서부 화림(和林)이자 상도(上都)지역을 이른 말입니다.
현재,그 화림(和林)을... 하라호름(카라코름)이라 하는 건...
객라화림(喀喇和林)이란 카라코름(하라호름= K2봉)산맥의 일대의 어느 행성을 이른 말인데...
후대에 이 지명이... 외몽골 원조 화림에 짬뽕돼어...외몽골 화림(和林=석성=담장=화덕같은 구덩이)이...
카라코름산맥(K2봉)의 하라호름(카라코름=검은 돌담장)으로 지명 변천됀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당대의 왕조실록을 보면...
태조이성계가 명태조(무굴제국황제?)를 천자로 인정하고..자신의 역성혁명에 동의를 간청한건 맞지만...
이후, 명나라가 계속 조선에 국경침탈을 말로만 투덜댐을 보건데...
조선은 명나라국경을 자주 침탈해서 땅을 확보했단 정황이고...명나라의 군사력을 그리 무서워 하지도 않았단 정황이 보입니다.
역사엔 전쟁광이라 했던 명태종도...주뎅이로만 투덜대기만 했지...군사적 보복을 전혀 못하고...
단지 표문에 은근한 암호같은 문자로...명태조를 조롱한 문구를 작성한 자들을 압송시키라 해서...
명태조가 구금하고 귀향보내고 중범죄자는 처단한걸 보면여...
정리하면...
이성계 조상들의 고향인 달단동은...그 달단동이 있단 압록강 건너의 요동지역은...
외몽골 서부 화림(和林)의 관할지역이거나...그 지명이 이동됀 집단의 지역였단 증거입니다.
그 요동은...현 외몽골 서부 신장성 부근이란 반증이고여...
이성계는 자기 조상의 고향지역인 달단동의 지역명인 조선(朝鮮=箕州)과 ...
그 지역의 또다른 지명인 화녕(和寧)을...
명태조에게 골라 달라고 바친 겁니다.
당대의 조선기록을 보면...
명태조는 분명... 일자무식의 식인종인... 홍건적 두목 주원장도 아니고...
명태조는 공민왕의 자손들을 무지 좋아했으며...조선의 역성혁명에 무척 분노했음으로 봐선,.,
고려가 명나라 정벌하러 갔단 얘기도... 어쩜 이성계가 명나라를 의식한 조작일 수 있고...
단지, 고려는 원래 고구려땅이자...고려 충선왕의 봉지였던...
투르판 일대... 천산 복그다봉 일대로 보이는 철령위를 돌려달라 사정한 것이며...
거긴 이성계 조상들의 본향 근처인 것이고...
역성혁명을 한 이성계는...명나라의 개입을 의식해서...
고려왕이 명나라 치라고 한 걸...
자신이 따르지 않고... 명나라를 위해 역성혁명을 불가피하게 했다 둘러대어 역사를 기술한 정황이라 보입니다.
명태조(홍건적이 아님)는...고려왕족들의 죽음을 심히 안타까워 하고...
이성계와 이인임을 무척 싫어했던 것을 보면...기황후의 북원(北元)과 대립하던 고려는...
애초 한족계 몽골인 명나라(무굴리스탄?)을 치려 하지 않았고...오히려 의지했던 것이며...
철령위(천산유역)만 돌려달라 계속 사정한 정황이고...이성계는 이걸 명나라 정벌명령였다고 둘러댄걸...
명태조는 절대 믿어주질 않았다란 반증이라 보입니다.
어쨋거나 오늘은...
이성계의 조상들은 조선의 유종(遺種)인건 확실하나...
분명,왕건고려의 호족집안은 아니였다.
후대의 전주이씨 족보는...승자들이 통치의 정통성을 위해 필연적으로 만든.. 위작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성계가 말한 자기 조상들의 조선(朝鮮)은...
작은 의미에선 원래 기자조선지역의 중심인 기주(箕州=천산유역)지역의 통칭였고...
그 조선(기주)기준 상대적 동남방에 있었던 왕건고려의 삼한(三韓)은...원래 명칭이 진국(辰國)이요...우리말 진나라로...
지나(차이나)가 바로 삼한(三韓)의 통칭이고...인도애들이 말한 현 중국의 통칭인 진단(震但)을 이른다.
당대, 발해(대진)고,몽골이고... 거란이고... 금나라고... 왕건 고려고...
모두는 자기들 나라 명칭을...고려(고구려)라고도 했기에...
모두 고려(고구려)의 후예국들이다.
오히려 몽골은 발해의 직계에 가장 가깝다.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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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대 남한지역을 기록한 [후한서-한전]기록에는 남한지역을 진국(辰國)이라고 기록하고 있죠.그런데,[환단고기]번한세가 기록에 보면 국호를 한국에서 조선으로 바꾼 22대 색불루 단제부터 단군한국을 진국(辰國)이라고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지요.즉,고대 남한지역은 단군한국의 영토였다는 것을 [후한서-한전]은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진시황은 진한국의 영토였던 만주족이라는 최근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데, 진시황의 나라이름이 '진'인 이유도 진시황의 출신지역과 관련되지 않나 싶고,대조영의 나라이름도 대진국인 이유도 단군3한국의 중심국가인 진한국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고로 문헌들의 비교분석은 중요함
참 답답하실때가 많습니다.
마한 54개국...진한 12개국...변한 12개국...
이게 기자조선 남부인 한강 이남으로 다 들어갈수나 있다 보시는지여...?
지나 (차이나)를 이르는 현 중국의 고유자명이...바로 진국(진나라)인 삼한의 통칭 진국(辰國)이라 한 글입니다.
대진국 발해의 대진(大震)도 똑같은 의미로...북두칠성이나 북극성을 상징한다 봅니다.
아고 기록을 잘 읽어 보시기를 남한 78여개국은 대국들이 아니라 수천에서 수만에 이르는 읍단위 국가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물론 그 속에 백제국이 들어 있고,,남3한은 번한국을 상실한 단군3한국 붕괴이후 기자조선의 기준세력이 남한땅에 세운 리틀3한입니다. [후한서-한전]기록에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해 "사방면적(둘레)이 4천리고,동과 서로 큰바다와 경계를 이루고, 마한과 번한 남쪽으로는 왜와 경계를 이루고 진한 북쪽은 맥과 경계를 이룬다." 이렇게 남한지역을 위치적으로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발 사료기록들을 상세히 분석하기를 강단.재야사학자들에게 권합니
양나라가 각 나라 사신들의 그림과 함께 나라를 기록한 양직도 등 지나문헌,그리고 청나라 황실사서[만주원류고]기록에도 "백제시조는 동명후예인 구태로 요동태수 공손탁의 사위가 되어 후한말에 100가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세운 백제는 마한의 제후국이였고 마한을 통합한 후에 바다를 건너 요서지역에 진평군을 설치했다."고 기록하고 있지요.[구당서/백제전]에는 백제의 영역이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월주에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어 본국 백제가 마한이 위치한 서남해 지역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월주가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월주에 있다 함은...
한반도를 기준하면 황해바다 건너 중국에 월주가 있단 얘기인데 뭔 말씀이신지요...?
그 월주인 가야의 상국임 마한의 왕도인 월지(月支)는 목지(目支)라 했고...
현 중앙아시아를 이른단거도 모르시나 봅니다...?
최소한 티벳이나 사천성 어디가 월지국이자 목지란 얘기입니다.
기존 역사 텍스트가 다 맞는다면... 그 거나 달달외우지...제가 왜 이리 피곤한 글을 쓰겠습니까...?
[전주이씨]시조 이한(李翰)은 덕망이 높고 문장이 탁월하여 신라 문성왕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냈으며 그후 대대로 신라시대에 벼슬을 해왔다. 18세손되는 이안사(李安社)는 대대로 전주에 살아온 호족이었는데 새로 부임한 지주의 탐학을 규탄하자 지주가 군사를 휘둘러 보복하려하여 그를 피해 강원도 삼척으로 피했다가 다시 함경도를 거처 원나라 간동으로가 그곳에서 다루가치 벼슬을 지냈고 증손자 되는 이자춘(李子春)이 고려시대에 공을 세워 사복경(司僕卿)에 이르렀다. 이자춘의 아들, 즉 시조의 22세손 이성계(李成桂)에 이르러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고 배극렴(裵克廉)등 52명의 추대로 왕위에 오르게 됨으로 조선왕조를 창건
□ 중국(中國)에서의 귀화설(歸化說) /작자 연대 미상의 완산실록(完山實錄)에는 전주이씨시조에 대하여 이렇게 씌어 있다.
`야사(野史) 실록(實錄)을 참고해 보면 우리 시조 사공공의 휘는 한(翰)이요,자는 견성(甄城)이시다. 공은 본디 중원(中原 : 中國)에 살았는데, 태어나실 때부터 거룩하여, 총명이 과인하시고 재질이 특이하여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시었다.공의 나이 15세에 한림원에 입학하시고, 계모 주씨(朱氏)가 매우 사납고 악했으나 지극한 효성으로 모시었다.그래서 그 때 동요에 `오얏나무 밑에서 반드시 왕기가 나타나리라.' 하더니,마침 배가(裵哥)에게 모함을 받아 공이 바다를 건너 우리 나라로 오니, 그 때 나이 18세
종합적으로 보면 전주 이씨족의 시조되는 이한은 중국 한림원에 입학하여 연구할 정도로 유능한 학자였는데 배가(裵哥)라는 자에게 모함을 받아 바다를 건너 신라로 망명을 하여 신라에서 벼슬을 하고 18세손되는 이안사(李安社)는 대대로 전주에 살아온 호족이었는데 새로 부임한 지주의 탐학을 규탄하자 지주가 군사를 휘둘러 보복하려하여 그를 피해 강원도 삼척으로 피했다가 다시 함경도를 거처 원나라 간동으로가 그곳에서 다루가치 벼슬을 지냈고 증손자 되는 이자춘(李子春)이 고려시대에 공을 세워 사복경(司僕卿)에 이르렀고 아들, 즉 시조의 22세손 이성계(李成桂)에 이르러 조선왕조를 설계한 정도전과 손잡고 조선왕조를 창건했다.
고려내의 정통성을 위해 이성계집안이 만든 족보와...
이를 근거로한 일제기와 친일파들의 기록들을 딸딸 외우시고 내미시려면...
뭐하러 역사연구를 따로 하니나 모르겠습니다.
위에 원전까지 제시했는데...아예 거기에 대한 논평을 없고...
평소 달달 외우고 계시던 평균답안지만 계속 내미시니 답답합니다.
전주이씨 이한은 당나라에서 한반도 신라로 망명해 온 당나라인으로 당태종 이세민과 혈족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세민 아버지가 북위의 장군으로 백제와의 10년 전쟁에 참여했던 만큼 탁발선비족인데, 뿌리로 올라가면 대홍안령 서쪽 초원에서 수렵유목생활을 했던 선비족이나 흉노족이라고 봐야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비족이 남하하여 중국사를 바꾼 5호16국 시대를 열었고, 이씨족도 탁발선비족의 일원으로 중국에 정착했다가 당나라시기에 한반도신라로 망명한 이한같은 인물도 있었다고 보고.
고려내의 정통성을 위해 이성계집안이 만든 족보와...
이를 근거로한 일제기와 친일파들의 기록들을 딸딸 외우시고 내미시려면...
뭐하러 역사연구를 따로 하시나 모르겠습니다.
위에 원전까지 제시했는데...아예 거기에 대한 논평을 없고...
평소 달달 외우고 계시던 평균답안지만 계속 내미시니 답답합니다.
참 어지간이도 할일이 없소이다. 조선말 일본에게 침약당해 지금까지 19대 국회가 열리도록 우리역사를 아직도 정상복원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게 할일이 없으면 이나라 대한민국 국민들이 되어 이것이나 신경좀 쓰시죠. 우리역사를
정상복원하지고 아무리 알려도 알근척도 안하고 뻑하면 일본놈들 독고가지고 지랄하면 이것에 열받고 날리를 치고 아니면 이렇게 오래된 이씨 역사를 가지고 들처 이것으로 도대체 댁들 뭘 하자는 것이요.
일본이 그렇게 겁나나요? 독도보다는 우리 고토 만주를 회복해야 합니다. 독도는 마땅히 대한민국 영토인데 모가 겁이 그렇게 나나요. 침략하면 군사적 조치를 취하면 되는 것을 ㅎㅎ..일본에게 말려드는게 더 문제지..중국에게 상실한 우리 고토 만주회복이 우리 해민족과 코리아 대칸에게는 더 큰 역사적 책무입니다.
근본부터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
왜곡됀 역사서들 가지고 구한말기의 역사나 복원한다고...근본적인 역사복원이 돼겠습니까...?
그건 땜빵수준이져...
혼자만 애국이라는 자만심을 버리십시오...정도회님...
이분 정말로 나라 주인의식이 영영이구만요. 자존심도 없구만요. 어찌하여 광복후 19대 국회가 열리도록 아직도 일본 신민정치나 다르지 않는 상태가 우리역사 정상복원을 못하고 있는건데 이걸 이런 식으로 말하죠. 그리고 일에는 순서가 반듯이 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우리 역사 정상회복도 이만한 시간이 흐르도록 아직도 못하면서 이 갈등 속에서 나라안에 갈등도 그대로 두고 남북 통일도 남겨두고 여기서 지금 무슨 소리를 합니까?
고대에 李씨 姓을 사용한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대개
그 연원이 북방계 유목인과 관련이 많습니다.
고막해의 추장 李詩, 안록산시의 李日月, 탁발씨의 조상 李陵,
요황제의 아우 李胡, 고구려후예 李正己 등등.....
史書를 살펴 보면, 수 없이 등장하지요.
또한, 『속막기문』에 "흑수, 속말하 지역에 사는 부족(올열, 올야)
사람들은 李씨 姓이 많고, 복장이 漢族과 유사하다."는 기록도 보여,
초원으로 연결되는 북만주지역에 李씨 姓이 많았음을 알 수 있지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시조 이한도 전주를 본관으로
삼았지만, 중국문헌에 이한이 한림원 학사로 기록되어 있는 만큼
당나라를 세운 당태종 이세민과 혈족으로 탁발선비족으로 봅니다.
나무 목에 아들 자를 이씨 성씨로 삼았다는 것은
남자(아들) 단군왕검이 신단수 나무 아래에서 태어났는데,
이씨 성은 바로 단군왕검을 가리키는 성씨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따라서 선비족도 단군임금의 남동생이 왕으로 임명된 봉후국이였던 만큼
단군한국에 대한 자부심과 단군왕검의 혈통의식을 공유했다고 보여 지네요
ㅎㅎㅎ... ㅇ을 보고... 누구는 달이라 우기고... 누구는 빵이라 우기고... 듣고 있던 자가 판결을 내리길 ... 달이 곧 빵이다고 우기더라... ㅎㅎㅎ
원전을 보여 드려도... 빈정대십니다...ㅡ. .ㅡ
빈정대다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 얘기는 다만... 누군가 영화를 보고 얘기를 해주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내용이 다르더란 겁니다... 이땐 얘기를 한 사람이 잘못했지... 영화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거죠...... 삼국사기 내용을 과학을 이용하여 확인한 결과 내용과 다른 결과가 나왔는데... 삼국사기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고... 삼국사기에 맞춰서 경주와 사비를 중원으로 끌고간 사람들을 보고 올린 글입니다.
과학여...?
그 과학적 천문지록증거로...
박창범 교수가...삼국은 대륙에 있었다 이미 증거했거든여...
고구려 일식기록은 몽골...백제는 황하주변...신라는 남경주변 이렇게여...
물론 한반도 기록도 약간 있고여...
ㅎㅎ 그게 ㅇ을 보고 달이니 빵이니 떠든다는 것입니다... 박창범 교수의 연구결과가 틀리지 않았다면... 삼국사기가 정확한 사실만 기록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김부식도 다른 문헌을 참조하면서 책을 엮었을텐데... 참조 문헌에 오류가 있었던지... 해석상 실수를 한 것이지요.ㅎㅎ
윤선생님...
속막기문이 아니라...송막기문...
소나무(松)숲 천지란 뜻으로...외몽골 알타이 타이가지대를 이른 겁니다.
금나라 포로가 됀 송나라의 두 황제의 송환을 청하러 간 홍호란 인물이...송막으로 유배되어 그 견문록을 쓴 것으로...
당시, 예니세이강 어귀로 보이는 자리의 키르키스족인 빨간머리 백인지역에...
이상하게 한족식 황인종들이 있어...
그게 아마 예전 흉노정벌을 갔다가 포로가 돼어 거기서 자손을 퍼트린 이씨 장군의 자손들이 아닌가 예상한 글입니다.
재미있는건...
이 외몽골 알타이지대를 몰래 가려던 남송의 사람들은...고려에게 그 길을 빌려달라 사정하는데...
고려는 금나라 눈치 때문에 허락을 못한단 대목들이 기록됀단 겁니다.
서하(西夏)가 금나라를 치겠다고 할 때도 그렇고여...
그러니..송나라나 서하(西夏)와...외몽골서부 사이를 고려영토가 막고 있었단 말이 돼는 겁니다.
최소한 감숙성 지역을 고려가 차지하고 있었단 얘기입니다.
그러니 남송이나 서하는...
그 상대적 서남부인 티벳과 인도(남송), 아랍지역(서하)일 수밖엔 없단 이치고여...
천산지역인 연경은 금나라가 차지한 것이고여...
그래야 외몽골서부로 가는길을 고려가 막을 수 있는 이치입니다
고려청자를 싣고 강진을 출발하여 개경으로 가던 배가 침몰한 곳은... 주로 신안앞바다와 고군산열도와 태안반도 부근입니다... 이는 개경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한반도도 당연 중원 왕건고려의 간접통치를 받던 밀접한 아주 밀접한 문명이고...
나라이름자제도..그게 금나라 유종이던 발해 유종이든...모두 고려(고구려)라 했기에...
당연 ,한반도는 고려(코리아)인 이치입니다.
당연, 중원 왕건고려와 아주 밀접한 교역을 했을테니...신안앞바다에 고려청자 천지였던 것이고...
몽골과의 교역에서 금과 같은 무게로 팔았단 황칠도...한반도가 자생지이니...
한반도가 왕건고려와 관계없다 할 순 없다고 저도 봅니다.
그러나 왕건고려의 주 강역은 중원이 맞단 여러 정황들이 나오니 기대해 주십시오....
고려시대... 천하에서 청자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고려와 중국(송)뿐이었습니다... 고려청자와 중국의 청자는 겉모습이 확연히 다릅니다... 겉면에 그림을 빽빽히 넣는 중국과 달리 고려자기는 여백을 중시했습니다... 그런 고려청자는 고려장이라는 독특한 장례풍습때문에... 주로 부장품으로 쓰인 까닭에 무덤 터에서 발굴됩니다... 하지만 중국 땅속에서는 고려청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고려 개경이 중원에 있었다는 주장은 소설에 불과합니다.
@金子 계속 증거들 보여 드릴테니 기대하세여...
바로 인정할 거라 기대도 않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