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조명연 신부 말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주의한다고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말실수를 해서 상대에게 아픔을 줄 때가 많습니다. 나쁜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말실수는 너무나 자주 이루어집니다. 마트에서 우연히 아는 청년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성당에 오랫동안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청년이었는데 결혼했다고 신앙생활을 멈춘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당 나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이 청년도 알겠다면서 이제 열심히 다니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얼마 뒤, 이 청년의 친한 친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의 아이가 아파서 너무 힘들어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수시로 병원 응급실을 갈 정도로 아프고 약해서 그렇게 좋아하는 성당도 제대로 못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성당에 나오라는 말만 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싶었습니다. 이 청년을 위한 말이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저의 말실수였습니다. 곧바로 전화 걸어서 사과했지만 저를 만난 이후 마음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말은 과연 어떤 말이 되어야 할까요? ‘말실수’에 해당하는 아픔과 상처를 주는 말이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랑의 말이 되어야 할까요? 아픔과 상처를 주는 말은 사람을 살리는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아픔과 상처를 남기는 죽이는 말이 아닙니다. 대신 구원으로 이끄는 살리는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가장 유익한 말이고,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데 이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악을 없애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어떤 타협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예수님의 말씀은 악을 멸망시키고, 사람을 살리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악을 따르면 사람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 죽이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명언: 우연은 항상 강력하다. 항상 낚싯바늘을 던져두라.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 물고기가 있을 것이다 (오비디우스). 사진설명: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인천 가톨릭대 성 김대건 안드레아성당/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