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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급하게 회사를 빠져나온 혜영은 풀문에 들르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갔
다. 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 내려놓고 꽃바구니를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더니 커튼을 닫았다. 도혁은 맞은 편 집 지붕위에서 빠르게 움직여 그녀의 창가
옆으로 갔다. 커튼이 조금 벌어진 틈으로 그녀가 보였다. 혜영은 접이식 원목 사다리 의자를
꺼내와 책장 맨 위칸에 꽃혀있는 <아덴소즌> 2권을 꺼내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카드를 옆에
놓고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카드보고 책장을 넘기고를 반복하다가 책을 덮었다. 그리
고 떨리는 숨을 내쉬고는 카드를 책 안에 넣고 다시 책장에 꽂았다. 도혁은 그녀의 심장박동
이 세지다가 어느 순간 평온해지는 걸 들었다. 그녀가 다시 커튼을 열려고 하자 도혁이 지붕
위로 몸을 옮겼다. 혜영은 노트북을 열고 키보드 위를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꽃 한 송이를 빼서 코에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 주방
으로 발걸음을 옮겨 주방선반에서 예쁜 꽃병을 꺼내 꽃을 꽂기 시작했다. 조용한 노래를 흥얼
거리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도혁이 반대편 집 지붕 위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바닥
으로 뛰어 내린 그가 빠른 몸짓으로 반대편 건물로 향하자 검은 옷을 입은 자가 바닥으로 뛰
어 내렸다. 그가 빠르게 달려 그에게 가까이 접근하자 검은 옷의 낯선 자가 손에 활을 들었
다. 활시위에 활이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구냐.”
낯선자가 그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바람을 가르며 소리를 내며 날아온 화살을 몸을 돌려 손
에 잡아 몸에 닿지 않게 한 도혁이 고개를 돌리자 낯선 자가 사라졌다. 도혁이 손에 든 화살
을 바라보았다.
집에 도착한 도혁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진혁 앞에 화살을 내려놓았다. 진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화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웬 화살? 무슨 일 있었어?”
“신혜영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다 말해 봐.”
“아까는 조사하지 말라더니.”
“그렇다고 안 알아볼 네가 아니니까.”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회사 직원이라서 이력서에 다 적혀 있었지만? 내가 따로 조사를 했지. 이름 신혜영. 나이 24
세. 부모님이랑 아일랜드에서 살다가 그녀가 막 20세가 되었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나
서 우리나라로 입국해서 여기로 이사를 왔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지금 회사에 취직
한 건 2년 전이고. 살아있는 가족, 친척 없고, 연애경험 없고, 별다르게 탈선하지 않고 조용히
사는 타입.. 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아덴소즌> 시리즈 작가인 은규 K. 라는 것. 회사에서는
그녀가 작가라는 걸 가장 가깝게 지내는 한솔희라는 여자도 모르고 있고, 심지어 풀문
(Fullmoon)에 간다는 것도 몰라. 비밀을 잘 숨기는 타입 같아서 말이야. 조금 더 캐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형 생각은 어때?”
“내일 그 여자 집에 가서 카드에 적힌 숫자를 봐야겠어.”
“카드? 숫자가 적혀있어?”
“응. 누군가와 비밀리에 연락하고 있는 것 같았어.”
“이 화살을 형한테 쏜 자와 같은 사람이랑?”
도혁이 턱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엄청 궁금한데?”
진혁의 눈이 반짝였다.
다음 날 혜영이 집을 나서는 모습을 도혁은 그녀가 사는 건물 지붕 위에서, 진혁은 건너편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지켜보고 있었다. 혜영이 지하철역으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형. 지금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어. 건물 내부와 주변 CCTV는 통제해 놨으니까 들어가도 좋아.>
“알았다.”
도혁은 지붕에서 내려와 골목에 착지를 했다. 모퉁이를 돌아 그녀의 집 건물 안으로 들어갔
다. 순식간에 4층에 도착한 도혁은 그녀의 집 문을 손쉽게 열었다. 그녀에게서 나던 향기가
집 안 가득했다. 그가 책장 맨 위 칸에서 <아덴소즌> 이라는 책을 찾았다. 2권을 책장에서 빼
내어 촤르륵 책장을 넘기다 그 안에 들어있는 카드를 뺐다. 그는 카드를 펼친 후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카드안의 숫자들을 바라보게 했다.
<찍었어.>
“정리하고 나간다.”
<응.>
도혁이 안경을 주머니에 넣고 카드를 원래자리에 끼워 넣었다. 책장에 책을 넣고 조용히 집을 나왔다. 진혁이 미리 대기해 놓은 차에 올라타고 그들의 차가 출발했다.
“설마 이거 암호야?”
“아마도. <아덴소즌> 2권이야. 가서 풀어보자.”
“푸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출근 해. 늦었어.”
“알았어.”
도혁이 뒷좌석으로 넘어가서 출근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고, 헤어젤을 머리에 바른 후 빗으로 2대 8 머리로 반듯하게 빗어 넘겼다. 뱅글이 안경을 쓰며 진혁에게 물었다.
“어때?”
룸미러로 회사에서 루저의 정점에 있는 박한성으로 변신한 도혁을 본 진혁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동네 바보같아.”
“그래?”
“응."
"그럼 됐네.”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진혁이 차를 세웠다. 가방을 메고 도혁이 차에서 내렸다.
“전화 줘.”
“응.”
도혁이 차 문을 닫자 진혁이 차를 출발시켰다.
혜영은 기분이 괜찮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왜냐하
면 이 모든 상황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텀블러를 손에 들고 원두커피를 가지
러 가던 혜영이 늦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한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밝게 인
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늦으셨네요.”
“예. 늦잠을 자서요.”
한성이 지나치게 반갑게 인사는 그녀를 조금 당황한 듯 바라보며 말했다.
“커피 드실래요?”
“제 것도 있나요?”
“그럼요.”
혜영은 아침에 내린 원두커피를 옆에 준비 된 잔에 담고 자신의 커피도 텀블러에 담았다.
“시럽은요?”
“시럽은 괜찮습니다.”
잔에 담은 커피를 그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말을 안 더듬으시네요?”
“네?”
한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힘내세요.”
“아.. 네..”
혜영이 미소를 짓고는 자신의 사무실로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저기.. 오늘 점심 식사 후에 휴게실에 오실 건가요?”
“글세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음료수를 사서 사무실로 찾아뵈었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그가 더욱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숨을 길게 내쉬고 그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말했다.
“죄송해요.”
“뭐가요?”
“그건.. 이따 말씀 드릴게요. 정말.. 정말 죄송해요. 그럼..”
그녀가 몸을 돌려 사무실로 들어갔다. 한성은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주위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느끼고 다시 어리숙한 몸짓을 연기하며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
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알아냈어?”
<응. 역시 간단한 암호였어. 풀어보면 “애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 보냈어. 그리고 조심하게는 게 좋아.”라는 내용이야. 누구지?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는데 말이야. 문구를 보면 숨겨놓은 애인이 보낸 것도 아닌 것 같고..>
“모르겠어. 한 가지 분명한 건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는 거야.”
<당분간 지켜볼게.>
“그래. 화살에 대해서는 알아봤어?”
<응. 형도 알다시피 우는 살이라는 건데 효시라고..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용도의 화살이야. 즉 살생용이 아니란 뜻이지.. 형.>
“응?”
<형도 조심하는 게 좋겠어. 그리고 삽사리푸들이랑은 대화까지 하는 사이야?>
“조금.”
<그럼 좀 더 가까이 지내봐. 혹시 알아? 뭔가를 흘릴지.>
“그럴까?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거의 2년 동안 비밀을 숨겨온 여자인데?”
<하긴..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밀어내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말고..>
“알았다.”
<그래. 그럼 수고해.>
“그래.”
핸드폰을 끊은 도혁이 고개를 돌려 혜영의 방을 바라보았다. 그는 누군가를 믿을 수 있을 거
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믿고 의지했던 양부모님과 그 친구분들은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셨
고, 그 후에 만나 그가 믿는 사람이라면 진혁, 원성, 미수. 이 세 사람 뿐이었다. 그들은 이제
남이 아니라 그의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 믿을 수 있다면 그건..
하지만 이젠 그녀를 그 목록에서 지워야 할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비밀은 누구
나 있다. 하지만 그 비밀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그런 사람은
결코 믿을 수.. 없다. 그는 기분이 안 좋았다. 그 이유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실망해서 인지, 아니면 너무나 쉽게 그녀를 믿어버린 자신에 대한 실망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점심 식사 후 그녀는 휴게실에 갔다. 주위를 살펴보니 다행히도 그가 자리에 없었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이 자리에 앉길 기다리는 무리의 그녀들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된 거야? 그 꽃은 누가 준 건지 알았어?”
“우리 모르게 숨겨 놓은 애인이라도 있는 거야?”
“정말 그래? 어떤 사람이야?”
“아침에 루저랑 다정하게 커피를 나누었다면서? 아침인사도 하고..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다진이 그녀에게 말했다.
“커피는 회사 사람이라면 누구한테나 무료로 제공되는 것일 뿐이고.. 그리고 다른 남자직원들 하고 그 정도 인사는 해. 그 동안 안 하고 지낸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지. 안 그래?”
“그런가..”
“그럼 어제 꽃바구니는 뭐였어? 잘 못 온 거 아니야?”
“나도 그런지 알았는데.. 그 안에 카드가 들어있더라고.”
“카드?”
“응. 숫자만 적혀 있어서 처음엔 이게 뭔가 했지. 그런데 이게 암호같더라고..”
“암호?”
“비밀암호 같은 거?”
“응.”
“설마..”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집에 가니 우편함에 주문한 적도 없는 이 책이 꽂혀있지 뭐야.”
그녀가 테이블 위에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는 작은 잡지책을 꺼냈다.
“이게 페이지, 줄, 앞에서 몇 번째 글자인지를 숫자로 표시해 놓은 거 더라고..”
“그래서.. 풀어봤어?”
“뭐래?”
그녀는 잡지책 맨 뒤에 끼워져 있던 흰 색 메모지를 꺼내서 그녀가 해독한 암호글을 보여주었다.
“일요일에 다른 사람 말고 나랑 만나요. 풀문에서.. E2”
다들 비명을 질렀다.
“E2는 뭐야?”
“글세.. 자신을 나타내는 걸까?”
“그런 것 같아.”
“E.. 이름에 이.. 아니면 에.. 가 들어가나?”
“글세..”
“그래서.. 나갈 거야?”
“나가야 할까?”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래. 무서운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 너 이사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궁금하지 않아?”
“그렇긴 하지만..”
“나는 나갈 생각이야.”
“진짜?”
“그런데 혼자는 좀 무섭더라고. 누구와 함께 가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어.”
다들 당황하며 그녀와 시선 맞추기를 꺼려했다.
“난 그날 바쁜데..”
“나도.. 나도 약속이 있어.”
“내가 갈게.”
솔희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히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 여자끼리는 여전히 걱정이 되더라고.”
“그래? 그럼 누굴 데리고 가려고?”
“그래서 박한성씨랑 함께 가자고 부탁해 보려고 해.”
“뭐? 루저한테?”
“키도 크시고, 생각보다 날렵해 보이기도 하고.. 딱히 부탁할 다른 남자 분을 알지도 못하기도
하고.. 그리고 혹시 생각보다 멋진 분이면 한성씨보고 그냥 가시라고 해도 될 것 같고.. 하지
만 그러면 한성씨한테 너무 큰 실례가 되겠지?”
“실례는 무슨.. 그런 부탁한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그래. 너 말고 루저랑 말하는 여자직원 없어.”
“멋진 남자면 좋겠다. 로맨틱하게.”
혜영은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자 살며시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친목모임을 마치고 그
녀가 음료수를 빼서 박한성 사무실 앞에 섰다. 그녀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자신들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정말 괜찮겠어?”
솔희가 그녀에게 말했다.
“나랑 호진씨가 함께 가면 되잖아.”
“그러다 다치면..”
“그럼 삼촌들한테 부탁해 볼까? 너를 보호해 줄 경찰 좀 보내달라고.”
혜영이 피식 웃었다.
“내가 뭘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삼촌들께 민폐를 끼치고.. 그리고 선택된 경찰 분은 무슨 잘못이니?”
“저 사람이 널 보호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응. 왠지..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런 일이 생길 일은 없었지만 만약에 나쁜 상황에 처해있을 때 그가 옆에 있다면 정말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그 이유를 정확히 댈 수는 없었지만..
“싫다고 하면 말 해. 알았지?”
“응.”
솔희도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고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노크를 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한성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혜영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음료수.. 드실래요?”
그녀가 두 손으로 감싸고 있던 음료수를 내밀었다.
첫댓글 도대체 저 수수께끼의 사람은 누굴까요~ 왠지 오싹. 잘 보고 갑니다.
밤에 읽어주셔서.. 더 그런것 같아요.. 저도 쓰면서 약간 오싹.. 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