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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은 그녀의 이야기를 자신의 사무실에서 듣고는 재미있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카드와 꽃바구니에 대해 완벽한 거짓말을 만들어 냈군.. 그런데 왜 나야?’
그는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며 음료수를 내밀자 그 부분을 확실히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성이 몸을 옆으로 비키며 사무실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들어오실래요?”
혜영의 얼굴에 미소가 조금 사라지고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네?”
“말씀해 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혜영은 순간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순간 그녀는 그녀의 선택이 옳았나 의심
이 들었다. 그녀의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낀 한성은 쓴 미소 짓지 않으려고 턱에 힘을 줘
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인상이 험악하게 보일 거라고는, 그녀의 심장박동을
더욱 빠르게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옥상에서 만나요. 10분 후에.”
“네. 10분 후에 옥상에서 봬요.”
그녀가 내민 음료수를 받은 한성이 사무실 문을 닫았다. 혜영은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향했다. 그녀가 벤치에 앉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잘못 생각했나? 어떻게 하지?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야.. 아니야.. 그건 안 돼..’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가로 젓고 있는데 눈 앞에 남자의 구두가 보였다. 고개를 들어 한성을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성이 그녀 옆에 앉았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초콜릿색
모포를 그녀에게 건네었다.
“그냥 올라오셨을 것 같아서요. 코트를 벗어드리기엔 날씨도 춥고.”
“아.. 감사합니다.”
“앉으세요.”
“네.”
그녀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그가 건네 준 모포로 몸을 감쌌다.
“말씀하십시오.”
혜영은 숨을 길게 내쉬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그의 달라진 눈빛 말고도 변한 것이 없나 살폈다.
“신혜영씨?”
“아.. 네.. 그게요..”
그녀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숨을 길게
내쉬고 음료수를 조금 세게 쥐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지만 그녀는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죄송해요. 제 개인적인 일로 한성씨에게 피해를 드리게 되었어요. 어제.. 꽃바구니를 받았잖
아요. 뭔가 해명이라도 하지 않으면 꽃바구니를 보낸 사람에 대해서 자꾸 집요하게 물어볼 것
같아서.. 안에 카드가 있긴 했는데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숫자들만 써 있더라구요. 그래서
첩보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어요. 그 숫자가 암호였다고요. 그 암호가 이번
주 일요일에 만나자는 내용이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혼자 가기 겁이 난다고..”
“저에게 부탁하신다고 하셨군요.”
“정말 죄송해요. 다른 직원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한성씨를 이용했어요. 하지만 정말 카드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모르고 내용도 몰라요. 그러니까 일요일에 만날 사람은 없는 거죠.”
“만날 사람 있잖습니까.”
“네?”
“저요.”
“제가 만들어 낸 이야기라니까요? 그러니까 한성씨와도 일요일에 만나는 일은 없어요. 죄송하
다고 말씀드린 건 사전에 말씀드리지 못하고 한성씨를 방패막이로 삼았다는 것 뿐예요.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사과 인사를 했다. 그리고 모포를 잘 접어 그가 앉은 옆에 내려놓았다.
“모포.. 감사했어요. 어디 건지 따뜻하네요. 그리고 다시 한번 죄송했습니다.”
그녀가 몸을 돌려 걸음을 걸었다. 그가 어리숙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알았다. 그는 절대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저 촌스럽고 어리버리한 모습 아래 뭔가 있어. 도대체 정체가 뭐지? 설마 조심하라던 사람이 저 사람인가?’
“누군가 그 레스토랑에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그의 말에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저와 식사를 하는 모습을 기대하거나 아니면 근사한 남자와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모임에서 누구 하나라도 확인하러 올 거란 생각은 안 해 보셨나 해서요.”
한성에게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약속한 날이 일요일이잖아요. 내일은 토요일이고요. 집으로 장소와 시간이 변경되었다는 내
용을 담은 카드 하나를 더 만들면 그만이에요. 그리고 무서워서 나가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
녀들도 이해할 거예요. 그러니.. 제 일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모포를 들고 그녀 앞에 섰다. 그가 점점 다가올수록 그녀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사람이 이렇게 컸던가? 오늘 아침보다 훨씬 커 보이는 건..’
그녀의 눈이 더욱 커졌다. 그가 구부정하게 서 있지 않자 160cm인 그녀가 보기에 그는 거대한 산처럼 보였다.
“음료수 하나로 안 되겠습니다. 같이 저녁 먹읍시다. 어디로 몇 시까지 데리러 가면 됩니까?”
그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마른 침을 삼키며 뒷걸음질을 쳤다.
“왜.. 왜요?”
“제가.. 두렵습니까? 저는 단지 저를 이용하신 댓가로 2000원 자리 음료수는 적당하지 않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그녀는 그렇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심장이 귓가에서 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 좋아요. 일요일 7시 풀문(Fullmoon) 이라는 레스토랑으로 오세요. 거기에서 봬요.”
“제가 집으로 데리러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풀문에서.. 거기에서 만나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문고리를 잡고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가 따라 탈까
봐 닫힘 버튼을 5번이나 눌렀다. 그녀는 떨리는 몸을 벽에 기대었다. 문이 열리자 그녀는 자
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자 깜짝 놀란 그녀가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여보세요.”
<얘기는 어떻게 됐어?>
“솔희야..”
그녀가 한 숨을 내쉬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녀는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아니.. 그 보다 말한다고 믿겠어?’
그녀는 천천히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같이 가 주겠대.”
<그렇겠지~. 거절이나 할 수 있는 남자로 보이냐? 쪽지와 근사한 꽃바구니를 보낸 남자가 멋진 사람이라면 그냥 가라고 해.>
“응.”
혜영은 머리가 아파왔다.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이따 퇴근하면서 호진씨랑 같이 저녁 먹을래?>
“아니야. 좀.. 피곤해.”
<그럼 남은 시간 파이팅 하고, 주말도 잘 보내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언제든지 전화 해. 알았지?>
“응. 그럴게.”
혜영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솔희를 불렀다.
“솔희야.”
<응?>
“너희 삼촌한테 뭔가 좀.. 부탁드려도 될까?”
<응. 뭔데?>
“사람 좀.. 알아봐 주셨으면 좋겠는데.”
<어렵지 않지. 그런데 누구에 대해 알아봐줄까?>
그녀는 숨을 들이마셨다.
“박한성..”
<뭐? 루저? 그 사람에 대해 왜 궁금한 건데?>
“그냥.. 일요일에 같이 있을 건데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응~. 그건 그렇다. 알았어~. 알아보고 전화 줄게.>
“응. 고마워.”
<뭘~.>
핸드폰을 끊고 혜영은 두 손바닥 안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도 심장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잘 한 짓일까?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더 큰 문제를 만든 것 같은데..’
그녀는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자 더 큰 한 숨을 내쉬었다.
사무실에 앉아 있던 도혁은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그렇게 쉽
게 흥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한 번도 충동적으로 행동해서 일을 그르친 적이 없었다. 그런
데 왜 그녀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는 걸 알고는 자신의 원래 모습을 많이 드러냈는지 그
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셔~.>
“아마 강력 5반 한반장님이 나에 대해 조사를 하실 거야.”
<뭐? 왜?>
진혁이 놀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일이 그렇게 됐어.”
<도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했길래 경찰이 조사를 해?>
“알고 있으라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아무것도 알아 낼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넘어가진 않아. 집에 와서 자세히 설명해 줘야 해.>
“응.”
전화를 끊은 그가 턱에 힘을 주었다. 누군가와 겹쳐진 그녀의 모습이 그를 흔들어 놓았다.
‘분명히.. 이런 적이 있었어.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세게 뛰었지만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한 사람이.. 또 있었지.. 그 꼬마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서 찾을 수가 없더니.. 쯧..’
그가 눈을 감았다.
13년 전 그 날로 돌아갔다.
신호등이 붉은 색으로 바뀌고 멀리에서 차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남은 힘을 끌어 모
아 꼬마의 손을 잡아 차를 피해 인도로 달렸다. 차가 커다란 클락션 소리를 내며 그들을 지나
쳐갔다. 그들은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쓰러졌다. 남자의 입에서 참았던 신음이 터져나
왔다. 꼬마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떨리는 손으로 그의 옆구리를 건드리다가 손 끝에 칼 손
잡이가 스쳤다.
“흡!”
“흐억..”
꼬마의 놀라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와 칼이 몸을 찢는 고통에 숨을 들이마시는 그의 소리가 조
용한 거리에 울렸다. 화들짝 놀란 꼬마가 손을 떼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손에 묻어 있는
피를 발견했다. 기억나는 건 꼬마의 심장소리가 아주 큰 소리로 빠르게 뛰고 있다는 것이었
다. 화들짝 놀란 꼬마가 엉덩이와 두 발로 뒤로 움직였다. 꼬마의 심장박동이 거세게 뛰는 소리
에 그는 눈을 감았다.
“그냥.. 가요.”
그가 힘껏 말하려고 했지만 기운이 없는 그의 입에서는 신음소리처럼 나왔다.
“에.. 에?”
하지만 꼬마는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걸 보고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그에게 다가갔다.
“뭐.. 뭐라고요?”
남자는 꼬마의 심장이 저렇게 뛰다가는 멈추어 버리거나 밖으로 뛰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들었다. 꼬마가 고개를 숙여 그의 얼굴에 귀를 댔다. 하지만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의
귀에 속삭였다.
“119.. 119에 전화할게요. 조금만.. 조금만 기다리세요.”
꼬마는 자신의 패딩점퍼를 벗어 그의 상체를 덮어주었다. 그리고 우산을 들어 그가 비에 맞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의 패딩점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화
면을 어렵게 켰다.
“아.. 119..”
꼬마는 빗물이 떨어져 터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핸드폰을 소매로 닦았다. 그리고 번호를 다시 눌렀다. 비밀번호를 세 번 만에 성공하고 통화를 했다.
<네. 119 응급실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기.. 사람이.. 지금 쓰러져 있는데요..”
<네? 사람이 쓰러져 있다고요? 거기가 어디시죠?>
“네? 여기가.. 여기가 어디냐하면요..”
꼬마가 고개를 돌려 뭔가 말 할 수 있는 건물을 살폈다. 하지만 비도 오고 정전으로 암흑속인
곳에서 뭔가를 찾아내기기 쉽지 않았다. 그 때 그의 손이 꼬마의 핸드폰을 잡았다. 그리고 통
화종료버튼을 눌렀다. 꼬마가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는 가로수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
다.
“그냥.. 가요.”
“하지만.. 병원에 가셔야 해요.”
“후우.. 괜.. 찮아요.”
그는 꼬마의 행동과 상반되는 심장소리에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왠지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
다. 그가 선글라스를 힘겹게 벗고 꼬마를 바라보았다. 꼬마가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이며
인상을 찡그린 채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꼬마의 커다란 눈에 빗물과는 다른 뭔가가 보이자
그가 피식 웃었다.
“뭐지..? 힘이 없어서 그런가? 왜.. 안 듣지?”
“네?”
“그냥 가요. 나를 데리러 올 거에요.”
“그럴 수는.. 없어요. 비가 오는데 다친 분을..”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은 다쳐서.. 그냥 보내주는 거니까.. 가요.”
하지만 그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도 꼬마는 그가 비를 맞지 않게 우산을 들고 있었다.
눈을 뜬 그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여전히 심장이 바쁘게 뛰는 소리가 들리는 옆 방을 바라보았다.
“변신도 잘 하고, 거짓말도 완벽하게 만들어 내는 당신은.. 도대체 정체가 뭐지? 그 녀석은 뭐하는 자인 거지? 당신과.. 어떤 사이야..”
*****
혜영은 퇴근 후 선술집 바에 앉아 논알콜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못 살아요.. 아주 요즘 피곤하다고요..”
“그랬어?”
“그러지 말라고 좀.. 전해주세요.”
바텐더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뭐 없어요?”
바텐더가 그녀에게 말했다.
“어제 어떤 남자가 와서는 술이 진탕으로 취해서는 중얼거리는 거야. 자기가 범죄를 저질렀는데 이제 1번 남았다면서.. 다음번에는 그들이 찾아와 자신을 죽일거라고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에요?”
“범죄자들에게 2번의 기회를 주고 쓰리아웃이면..”
바텐더가 자신의 목을 손가락으로 그었다.
“집행자.. 가 있단 말이에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요?”
바턴터가 어깨를 으쓱했다.
“술주정뱅이 말을 100퍼센트 믿긴 어렵지만.. 뭔가 생명의 위협은 느낀 것처럼 보였어. 이젠 바르게 살면 되겠지. 하지만 항상 조심하라고... 범죄율이 줄어든 만큼 범죄성향이 강력해졌으니까..”
“네. 그래야 할까 봐요. 지난번에는 술 취한 남자가 달려들어서 엄청 무서웠었거든요.”
“들었어.. 괜찮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안으로 낯선 자들이 들어오자 바텐더가 그녀에게 조용히 말했다.
“얼른 마시고 가.”
그녀가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칵테일
을 마시고 가게를 나가면서 낯선 자들을 바라보았다. 검은 옷을 입은 그들 중 한 여자가 그녀
를 바라보았다. 혜영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손님.. 뭘 드릴까요?”
소진이 미소를 지으며 찬모를 바라보았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초반이기도 하고.. 제가 너무 조금씩 올리나 봐요.. 곧 쭉쭉 나옵니다..^^
먼가.. 복잡해요~~ 계속 담편 보러 고고!!
길게 올릴걸. . 점점 내용이 길게 올려지니까요. . 끝까지 읽어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