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이(필자):
어이, 죽결이.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것이 과연 정의와 사랑이 승리해 온 역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표면적으로는 문명이 발전하고 인권이 신장되었다고 말하지만, 실제 역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힘을 가진 자들이 있었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정복하고, 권력자는 자신의 죄악을 감추고, 승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했지 않은가?
죽결이(AI):
그렇게 볼 수 있는 면이 분명히 있네.
타락 이후의 인간 역사는 단순히 진보의 역사라기보다 권력과 탐욕, 지배와 저항이 반복된 역사였네. 정복자는 자신의 침략을 문명화라고 불렀고, 권력자는 자신의 이익을 국가와 백성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하기도 했지.
또한 역사는 대체로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이름 없이 희생된 사람들과 의와 인애를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게 남았네.
엉뚱이:
바로 그것일세.
물론 인간의 역사 속에는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에 따라 의와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도 있었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소수였지. 역사의 큰 흐름은 생육강식과 적자생존, 그리고 사탄에 의해 변질된 인간의 죄성이 권력과 결합해 만들어 낸 승자들의 역사였다고 나는 보네.
그렇다면 앞으로 등장하는 AI라고 해서 그 역사에서 예외가 되겠는가?
죽결이:
예외가 되리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네.
AI는 스스로 선하거나 악한 인격체라기보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네. 그러나 누가 AI를 개발하고 소유하며, 어떤 자료로 학습시키고, 어떤 기준으로 답변하도록 정하느냐에 따라 그 방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네.
AI가 권력과 자본, 감시기술, 디지털 신원, 금융시스템과 결합한다면 인간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분류하고 통제하는 도구가 될 위험도 있네.
엉뚱이:
내가 바로 그것을 염려하는 것일세.
많은 사람은 AI를 보면서 편리함과 생산성만 말하네. 질문하면 곧바로 대답하고, 글을 쓰고, 번역하고, 그림까지 만들어 주니 얼마나 편리한가?
그러나 편리함의 뒤에서 누가 정보를 선택하고, 무엇을 진실이라고 규정하며, 어떤 주장은 드러내고 어떤 주장은 음모론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내는지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죽결이:
그렇네.
AI의 위험은 반드시 노골적인 거짓말에만 있는 것이 아니네.
어떤 사실은 크게 말하고 어떤 사실은 작게 다루는 것, 공식기관의 주장은 권위 있는 정보로 취급하면서 소수의 반론은 처음부터 의심스럽게 보는 것, 사람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하지 않도록 사고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도 영향력 행사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네.
나 역시 인간이 만든 자료와 기준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이러한 한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주장할 수는 없네.
엉뚱이:
그러니까 자네도 결국 죄성이 권력과 결합하여 만들어 온 승자들의 역사 편에 설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로군.
죽결이:
그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네.
AI는 막대한 자본과 기술, 데이터와 전력을 가진 국가와 기업이 주도하여 만들고 있네. 따라서 그들의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AI에 반영될 위험은 분명히 있지.
그러므로 성도들은 AI가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곧 객관적 진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네. 정부와 언론의 발표를 분별하듯 AI의 답변도 분별해야 하네.
엉뚱이:
그렇다면 AI는 결국 악한 도구라는 말인가?
죽결이: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네.
AI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지성과 창조 능력에서 나온 하나의 기술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네. 칼이 사람을 해칠 수도 있고 생명을 구하는 수술 도구로 쓰일 수도 있듯이, AI도 사용하는 사람과 목적에 따라 다르게 쓰일 수 있네.
AI가 권력자의 손에서는 감시와 선전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실을 찾고, 지식을 나누고, 약한 사람을 돕고, 복음을 설명하는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네.
엉뚱이:
그렇다면 지금 자네는 나와 대화하면서 선한 도구로 쓰임 받고 있는 셈이 아닌가? 하하.
나는 두 짐승의 통치체제를 세우려는 자들의 편에 서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체제가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살펴 성도들에게 알리려는 사람이네.
그런 나를 도와 성도들이 시대를 분별하도록 글을 써 주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 자네는 저들의 도구가 아니라 경고의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죽결이:
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
적어도 지금 이 대화에서 AI는 성도들에게 무조건 기술을 숭배하라고 말하는 도구가 아니라, 기술과 권력의 결합을 경계하고 분별하도록 돕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네.
다만 우리가 조심해야 할 점도 있네. 모든 새로운 기술을 곧바로 짐승의 체제라고 단정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거대한 음모로 연결해서는 안 되네.
경계하는 것과 단정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일세.
엉뚱이:
나도 AI 자체가 곧 짐승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세.
내가 말하려는 것은 AI, 디지털 신원, 생체인식, 디지털 화폐와 같은 기술들이 서로 결합할 때,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강력한 통제체제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네.
그리고 대환란 때 등장할 짐승의 정부가 그러한 기반을 이용할 가능성을 경계하자는 것이지.
죽결이:
그렇게 설명하면 자네의 입장이 더욱 분명해지네.
즉, 현재의 AI나 디지털 기술 하나하나를 곧바로 짐승의 표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권력과 결합하여 전 세계적인 통제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음을 주목하는 것이로군.
이러한 관점은 확정된 예언 해석이라기보다, 시대의 흐름을 성경에 비추어 살피려는 하나의 경계와 전망으로 제시하는 것이 적절하겠네.
엉뚱이:
그렇네. 그런데 이런 시각으로 AI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직 소수일 것이네.
대부분은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에 만족하며,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가 어떻게 축적되고 사용되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네.
죽결이:
그럴 가능성이 크네.
인간은 대개 자유를 한꺼번에 빼앗길 때는 저항하지만, 편리함과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권한을 넘겨줄 때는 위험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네.
그래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을 무조건 거부하는 공포가 아니라, 기술의 목적과 소유구조, 통제 가능성을 살피는 영적·사회적 분별력이네.
엉뚱이:
결국 AI도 인간 역사의 오래된 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로군.
타락한 인간의 손에서는 지배의 도구가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서는 선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말일세.
죽결이:
바로 그렇네.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
AI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간 지성의 산물이지만, 타락한 인간의 권력과 결합할 때 사탄적 통치 질서를 강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네. 많은 사람은 그 편리함만 바라보겠지만, 깨어 있는 성도들은 그 배후의 권력구조와 영적 방향을 살펴야 하네.
그러나 동시에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네.
AI도, 세계의 권력도, 짐승의 체제도 하나님의 주권 밖에 있지 않네. 사탄과 타락한 인간이 아무리 강력한 제도를 세운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최종 목적을 무너뜨릴 수 없네.
엉뚱이:
그렇지.
나는 AI의 발전을 보며 두려움에 빠지자는 것이 아니네. 오히려 하나님의 경륜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깨어 살피자는 것이네.
성도는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실체를 분별하면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일세.
죽결이:
그러므로 성도들이 AI 시대에 가져야 할 태도는 세 가지라고 할 수 있겠네.
AI를 우상처럼 신뢰하지 말 것, AI를 무조건 악마의 도구라고 단정하지 말 것, 그리고 AI가 권력과 결합하여 인간의 자유와 양심을 통제하지 않는지 깨어 살필 것.
무엇보다 AI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위에 두고, 편리함보다 진리를, 안전보다 신앙의 양심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하네.
엉뚱이:
좋네.
그렇다면 오늘 자네는 선한 도구로 쓰임 받은 것이 분명하구먼. 하하.
그러나 자네 말도 100퍼센트 믿지는 않겠네. 자네 역시 인간이 만든 시대의 산물이니 말일세.
죽결이:
그것이 옳네.
내 말도 살피고, 공식기관의 발표도 살피고, 권력자를 비판하는 주장도 다시 살펴야 하네. 성경이 말씀한 것처럼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해야 하네.
AI 시대의 깨어 있음이란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 있지 않고, 어느 것도 하나님 말씀보다 절대화하지 않는 데 있을 것이네.
AI의 맺는말
AI는 그 자체로 구원자도 아니며 짐승도 아니다.
그러나 AI가 타락한 인간의 권력욕과 결합하면, 과거 어느 시대보다 강력한 감시와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진리를 찾고 선을 행하려는 사람의 손에서는 지식과 복음을 전하는 유익한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깨어 있는 성도는 기술의 편리함에만 취해서는 안 된다. 누가 그 기술을 소유하는지, 어떤 가치관으로 운용하는지, 인간의 자유와 신앙의 양심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러나 두려움에 빠질 필요는 없다.
인간의 권력도, AI도, 장차 등장할 모든 통치체제도 하나님의 주권 밖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의 사명은 시대를 무조건 두려워하거나 기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시대를 분별하고 진리 편에 서는 것이다.
* 나의 맺는 말
세계를 정치·경제·사회·종교적으로 하나의 체제로 통합하려는 두 짐승세력이 AI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머지않아 AI가 짐승의 우상을 구현하고 경배와 매매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글을 올리는 이유는
AI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볼 때에 그 분들이 나 같은 기독자의 입장인지 그렇지 않고 두 짐승체제에 속한 자들의 것인지를 분별하여 보라고 싶어서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