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는 신화적 사고 극복의 헌장
달신은 고대 근동세계에서 최고신의 피가 흐르는 강한 남성신이었다. 달신 숭배의 중심지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도시국가 우르와 하란이었다. 고대 이스라엘 등 북서셈어를 쓰는 지역에서 달신은 작은 신이었지만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달신 숭배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면면히 이어졌다.
유일신 신앙을 키워오던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이후 광범위하게 퍼진 달신 숭배 문화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첫째는 신명기계 신학자가 닦은 신명기의 길이고, 둘째는 사제계 신학자가 닦은 창세기의 길이다.
첫 번째 노력인 신명기의 길은 달신 숭배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를 했다. 신명기계 학자들은 달신 숭배를 이스라엘 신앙에 위협이 되는 요소로 인식해 이스라엘에서 달신 숭배 자체를 뿌리 뽑고자 했다. 남유다의 요시야(기원전 640~609) 임금 또한 달신 숭배를 아예 없애려 했다.
신명기 개혁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이기도 했던 그는 야훼 신앙이 위기에 처한 것을 깨닫고 종교 개혁을 시도했다. 그의 개혁은 신명기계 신학자들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달의 탈신화
요시야 임금은 외래 문물의 범람 속에서 신앙이 흐려지는 것을 우려하며 야훼 신앙과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나라의 기강을 다시 세우고자 했다. 그 가운데 일월성신(日月星辰), 즉 달신과 해신, 별신을 몰아냈다.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제들도 내쫓았다.
바알신과 해, 달, 별자리들과 하늘의 모든 군대에 분향하던 자들도 내쫓았다(2열왕 23,5 참조). 이후 그는 다윗 왕조의 영화를 새롭게 적는 신명기계 역사서를 만들어 그 내용을 전파했다.
구약성경에는 달신 숭배를 직접 경고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신' 아니라 그저 '피조물'일 뿐이라고 했다. 달을 탈신화(脫神話)해 달신 숭배를 극복한 것이다.
신이 아닌 한 물건으로 여겼다. 이 같은 새로운 신학적 고백은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의 신학적 성찰에 기반을 둔다. 그들은 가장 밝은 빛은 하느님 한 분뿐이라 믿었다.
이스라엘은 고대 근동의 작은 나라였다. 큰 제국의 위협에 시달렸고 늘 조공을 바쳤다. 나라를 빼앗기고 민족 일부가 유배 길에 나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대 제국의 큰 신들에게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먼 옛날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킨 야훼 하느님 한 분만이 유일한 신이고, 다른 제국의 신은 그저 그분 손으로 만든 것으로 여겼다. 이렇듯 구약성경은 크고 작은 신들을 야훼 신앙을 바탕으로 탈신화한다.
이 같은 신학적 성찰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창세기 1장'이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야훼 하느님은 삼라만상을 모두 만드셨다. 그분은 또 다른 어떤 신들보다도 우월하며, 세상 어떤 것도 그분 권능에 견줄 수 없다.
더구나 하느님이 첫 나흘 만에 만드신 하늘과 땅, 해와 달은 수메르 시대 주신들이었다. 수메르의 가장 중요한 일곱 신(하늘ㆍ바람ㆍ산ㆍ물ㆍ달ㆍ태양ㆍ금성)은 세상 운명을 결정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창세기 1장은 이런 신들을 한낱 피조물로 만들어 그 권위를 추락시켜 버렸다. 하늘신도, 달신도, 태양신도 없다. 야훼 하느님은 나흘 만에 대제국의 높은 신 대부분을 만드셨다. 아무리 다른 신의 권능이 대단해 보여도 그들은 피조물일 뿐이다. 이처럼 약소국 이스라엘의 사제계 신학자들은 대담했다.
#일주일 체계의 의미
우리가 쓰고 있는 날짜 개념인 '일주일 체계'도 수메르에서 나왔다. 수메르 사람들은 일곱 신의 이름에 따라 각 날에 이름을 부여했다. '태양신의 날', '달신의 날'하는 식으로 부른 것이다. 이들은 일곱 날을 한 주기로 신들의 이름이 순환되는 체계를 만들었다.
일주일 체계는 로마 시대로 이어졌다. 로마인은 그들 방식으로 이를 토착화했다. 이들은 로마 신들의 이름을 붙여 '화금수목월일토'(MarsㆍVenusㆍ MercuryㆍJupiterㆍMoonㆍSunㆍSaturn)의 '로마식 일주일 체계'를 사용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이 신들의 순서는 조금씩 바뀌었다. 오늘날 우리는 고대 근동 신들의 이름을 지칭한 일주일 체계 안에 살고 있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은 일곱 날에서 신들의 이름을 모두 제외했다. 일주일을 신들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야훼 하느님의 창조 행위 순서에 따라 '첫째 날', '둘째 날'하는 식으로 불러 다른 신들을 연상시킬 여지를 없앴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숫자로 이름을 붙였지만, 마지막 날은 하느님께서 쉬신 날, 곧 '안식일'로 불렀다. 이로써 창세기 1장의 탈신화화는 완성된다.
다시 말해 일주일 체계는 유지됐지만, 그 체계에 깃든 고대 근동의 신화는 완전히 탈색되고 야훼 신앙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됐다.
창세기 1장은 단편적으로 흩어진 '고대 이스라엘 탈신화 본문'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 1장은 거대한 주변 민족의 다양한 신화와 종교에 맞서 고유한 신앙을 지키려 한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적 프로젝트의 결론이다. 창세기 1장은 고대 이스라엘 탈신화화의 헌장(憲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