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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演好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한미루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 조선시대 궁궐 모습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의 조선시대 궁궐 모습이 담긴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1927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건춘문 동쪽으로 이전되기 전 모습이다.
이로써 보건대 조선총독부 청사 착공 직후에 촬영했다고 판단된다.
조선총독부서 찍은 경복궁 근정전 주변 사진. 전각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원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1867년 조대비(趙大妃)를 위해 지은 문양은 꽃 아홉 개와 문자 아홉 개가 서로 짝을 이루고, 나머지 한 개는 꽃과 나비 등을 조합한 것이다.
아래쪽은 그 현재 모습.
경복궁 자경전 꽃문양 앙부일구는 조선 1434년(세종 16)에 장영실이 만든 해시계로 (오른쪽) 일제강점기 때 유리건판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는 받침돌에 몸체가 감입돼 앉힌 모습이다.
나아가 대석 옆쪽으로 빗물이 빠져나오게 하는 구멍이 뚫려 있음이 확인된다.
창덕궁 원래 위치 보루각에 있을 당시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이들 유리건판 사진에서 자격루는 청동으로 만든 파수호 하나, 수수호 둘, 그리고 수수통 둘만 남아 있으며 부표는 없어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수수통 양 옆에는 측우기와 석조대와 위치한다.
자동 시보장치 물시계인 자격루는 현존품은 1536년(중종 31)에 제작품으로 현재 덕수궁에 옮겨져 있다
조선국왕 용상 뒤에 설치한 그림병풍인 일월오봉병으로 식민지시대 유리건판에 촬영된 경복궁 근정전(윗쪽)과 덕수궁 중화전(가운데) 작품.
1935년 경복궁 건청궁 터에 조선총독부종합박물관을 짓기 위한 지진제를 지내고 있다. 일본 신도(神道) 방식으로 식장이 차려지고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조선총독이 절하고 있다. 건청궁은 명성황후 민비가 시해당한 현장으로 총독부를 이를 모두 철거하고 종합박물관을 지으려고 했다가
1929년 지금의 경복궁 건춘문 일대로 옮긴 광화문 문루에서 본 경복궁 동쪽 궁성과 건춘문, 동십자각 일대 전경. 왼편에 중학천이 흐르고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 붕괴사고 현장. 궁장 대부분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지만 그 바로 옆은 무너져 있다.
동경에 거주하던 이왕세자와 그 왕비 등 일행이 1922년 일시 귀국했을 때
1922년에 고국을 방문한 이왕세자 일행이 동경으로 돌아가기 전
1922년 이왕세자 내외의 창덕궁 체류 중 후원 나들이를 촬영한 장면으로 보인다. 맨 앞부터 뒤로 순정효황후, 이왕세자, 이방자, 덕혜옹주 등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 창덕궁 인정전 앞 마당의 박석을 없애고 화초를 심고있다. 상장적인 공간을 일제가 훼손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