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후포리 등기산공원
영남일보 기사 입력일 : 2019-10-25
푸른 물결 위로 걸어간 하늘길 끝엔 龍이 된 여인의 전설
골목길로 들어서던 차가 슬금슬금 뒷걸음친다. 역시 마을 안쪽으로의 진입은 불가능한가. 거리를 두고 앞차를 쫓다 멈칫한다. 평일의 후포항과 여객선터미널에서는 여행객의 기미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가보자. 겁 없이 골목으로 들어서자 고샅은 생각보다 여유가 있었고 제법 넉넉한 주차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낮고 깨끗한 집들은 처마선이 담벼락과 가까워서 길을 넓히려 저마다 한 걸음씩 물러선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길의 하늘에 출렁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의 서쪽에는 등기산의 모체가 자리하고 다리의 동쪽에는 등기산자락에서 뚝 잘린 듯한 바위 동산이 버티고 있다. 여기 등기산의 동쪽 아래둘레에 옹기종기 모여 큰 산에 기대고 작은 산을 방패삼아 초승달처럼 자리한 마을은 후포4리 뱀골이라 한다.
스카이워크 가는 기착지 갓바위 전망대
투명 강화유리로 만든 바다로 뻗은 길
의상대사 사랑한 선묘 낭자의 조형물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바다에 몸 던져
출렁다리 건너 이어진 등기산 산책로
먼옛날 지나는 선박 위해 봉홧불 피워
세계 다양한 등대 전시 등대공원 변모
후하고 넉넉한 바다 ‘후포’가 한눈에
◆후포 등기산 스카이워크
작은 동산을 층층계단으로 오른다. 원래 이 동산은 ‘갓바위 전망대’라 불렸고 그 전에는 오래 경찰초소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등기산에서 스카이워크로 가는 기착지라 할 수 있다. 5년 전에는 스카이워크도 출렁다리도 없었다. 어느새 새로운 것들이 건설되어 울진의 명물이 되어있다. 스카이워크는 2018년 초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지금 동산 위에는 스카이워크 안내소와 신경림 시인의 ‘동해바다-후포에서’를 새긴 시비가 서 있다. 그리고 여전히 후포항 방파제와 먼 해안선이 한눈에 보이는 멋진 전망대다.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높이 20m, 너비 2m, 길이 135m로 국내 최대 길이의 하늘길이다. 전망대에서부터 뚜벅뚜벅 나아가 하늘을 가로질러 바다에 뿌리를 내렸다. 바다 위 57m 구간은 바닥이 투명한 강화유리다. 유리구간은 중간에 마련되어 있는 덧신을 신고 가야한다. 속이 보이지 않는 안내소에서 띄엄띄엄 방송을 한다. “덧신을 꼭 신으세요.” 서걱서걱, 걸음마다 서걱대는 커다란 덧신 소리에 몸이 둔해진다. 발밑으로 투명하고 유동적인 푸른 물결이 펼쳐지고 반짝거리는 윤슬 아래에서 어렴풋한 형체들이 흔들린다. 몸의 각 부분이 완전한 자율성을 유지한 채 정확히 동작을 실행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가운 난간을 꽉 잡고 바다 가운데에 정지해 있는 한 점을 내려다본다. 후포 갓바위, 자연과 시간이라는 매혹적인 기적이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뭍에서부터 바위까지 이어진 방파제에 몇몇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다.
스카이워크 전망대 끝에 의상대사를 사랑했던 선묘 낭자의 조형물이 있다. 선묘는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갔을 때 만난 여인이다. 그녀는 첫눈에 의상 대사에게 반했지만 대사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의상 대사가 떠날 때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었다. 그리고 의상대사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 도움을 주었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신경림)
바다로부터 물보라를 일으키며 솟아오른 선묘는 용과 인간,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미소 지은 선묘의 얼굴이 어쩌면 저리 아름답나.
◆등기산 등대공원
스카이워크에서 출렁다리를 건너면 등기산 산책로로 이어진다. 지난주는 태풍의 여진으로 출렁다리가 출입 금지되어 있었다. 뱀골의 북쪽 끝 즈음으로 조금만 가면 등기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등기산은 해발 64m 정도 되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해안 쪽으로 많이 가파르다. 아주 옛날에는 바다와 맞닿은 곶이었을지도 모른다. 등기산은 예부터 부근을 지나는 선박을 위해 낮에는 흰 깃발을 꽂아 위치를 알리고 밤에는 봉홧불을 피워 올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에서는 신석기시대 유물들이 다량 출토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망사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 정자가 소실된 자리에 지금 후포등대가 서 있다. 1968년 1월에 처음 점등한 후포등대는 울릉도와 제일 가까운 등대라 한다.
등기산은 지금 등대공원이다. 독일 브레머하펜 등대, 프랑스 코르두앙 등대, 이집트 파로스 등대, 우리나라의 팔미도 등대, 스코틀랜드 벨록 등대 등 세계의 아름다운 등대들이 작지만 시시하지 않게 재현되어 있다. 이 중 벨록 등대는 전망대로 만들어졌다. 공원 정상부에는 동그란 반구형의 ‘신석기 유물 전시관’이 소박한 규모로 마련되어 있고, 소실되었던 망사정도 등기산 남동쪽 모서리 벼랑 위에 새롭게 서 있다. 작은 무대가 바다를 등지고 자리하고, 오래된 멋진 팽나무 앞에는 ‘키스’ 조형물이 두근두근 마주한다.
후포등대 남쪽에 서면 후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발아래에 후포항과 여객선터미널, 왕돌초 광장 등이 자리하고 멀리 후포해수욕장과 아득한 영덕 강구해안까지 시선은 이어진다. 후하고 넉넉한 바다라는 의미의 후포(厚浦)는 후릿골 또는 후리포로 불렸다. 물고기를 잡는 큰 그물을 뜻하는 ‘후리’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니 마을은 오래전부터 어업이 성했던 모양이다. 후포는 면이지만 평해읍과 울진읍을 먹여 살린다고 할 만큼 소득이 높다. 울진 대게로 가장 유명하지만 동해바다 어족들이 없는 것 없이 난다. 포구에 즐비한 횟집들은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흥성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벨록 전망대에 올라 동해바다를 본다. 스카이워크가 성냥개비마냥 작게 보인다. 저 투명한 길에서 벌벌 떨며 보았던 가까운 바다보다 여기 산정에서 흰 깃발처럼 흔들리며 바라보는 바다가 더욱 서럽다. 너무 아름다운 미지이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결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 여행정보
대구포항고속도로 포항IC로 나가 7번 국도를 타고 북향한다. 울진 지경마을 지나면 후포다. 후포해수욕장과 후포항을 지나 여객선터미널 맞은편에 등기산이 위치한다. 해안길 따라 조금 가면 후포4리(뱀골) 버스정류장 주변으로 주차할 공간이 있고 그 뒤로 스카이워크로 오르는 길이 있다. 마을 안쪽에서도 스카이워크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바닷가 갓바위 옆에서 스카이워크로 바로 올라가는 길도 있다. 등기산 공원 주차장을 이용해 등기산-출렁다리-스카이워크로 가는 코스도 좋다.
조각작품으로 치장한 울진 후포 등기산공원
경북매일 기사 등록일 : 2021.03.15.
장인설 기자
군, 공공미술 프로젝트
조각작품 4점 설치 완료
작품은 쉼터와 포토존인 ‘가족사랑’, 수면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순간을 표현한 ‘11시 30분의 만남’, 울진 금강송을 상징하는 ‘하나되는 나무’, 친절문화를 알리기 위한 ‘친절’ 등이다. <사진>
‘가족사랑’은 나비가 내려 앉아 있는 듯한 형상의 무지개 빛 하트의 선이 파란 바다의 배경과 산뜻하게 어울려 쉼터와 포토존 기능을 하고, 작품위에 설치된 오리커플의 모습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11시30분의 만남’은 수면위로 떠오른 태양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하는 순간에 현실속의 자아, 꿈과 같은 이상이 같은 생각으로 만나는 모습을 나타내어 작품을 통해 삶에 대한 자세, 포부를 가다듬게 되는 경험을 느끼도록 했다.
‘하나되는 나무’는 여러 사이즈의 파이프를 연결해 각 개체가 서로 인연을 맺어 하나의 다른 형상을 생성하는 것처럼, 인연을 맺은 다양한 이를 울진의 금강송으로 표현해 우리가 보는 것이 나무인가? 물질인가? 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친절’은 울진군 새로운 문화인 ‘친절’을 군민과 관광객들에게 알리기 위해 친절이라는 글씨에 편안함과 쉼터의 기능까지 넣어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친절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4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작품은 지난해 9월 공모를 거쳐 선정됐으며, 11월부터 ‘예술·사람마을 빛으로 비추어주리’란 주제로 설치를 시작, 올해 완료함으로써 등기산 공원을 예술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울진 후포리 등기산공원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