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카멜레온
현정원
머릿속이 멍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방금 꿈속 내가 자기 세상에서 여러 일을 겪는 걸 보고 있었는데…. 귓바퀴를 맴돌다 파고든 까토 까토가 무슨 신호인 양 연기자가 바뀌었다. 꿈속 나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실제의 내가 침대에서 게슴츠레 눈 뜨는 것으로 액션을 시작했달까. 어안이 벙벙한 채 다시 눈을 감는다. 기상을 재촉하며 울어댄 스마트폰은 내버려둔 채 흩어지는 꿈을 더듬는다.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모두 여자였다. 그중 한 사람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손을 뻗어 나와 키를 견주었다. 나보다 젊어 보이는 그 키 큰 여자를 밀치며 다른 여자가 내 앞에 나섰다. 그녀도 나와 키를 쟀 다. 내가 뭔가를 잘못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눅이 든 채 내 행동에 나쁜 의도 같은 건 없었다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사정하듯 말했다. 순간, 표정이 편안해지는 그녀들. 내가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자 손뼉을 치며 큰소리로 웃기까지 했다.
그녀들이 나를 이끌고 한 집으로 들어갔다. 행동이 정중한 데다 얼굴에 옅은 웃음기까지 띠고 있어 겁은 나지 않았다. 거실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가운데 헬멧을 쓴 남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얼굴까지 가리는 헬멧이었다. 옆에 멀뚱한 표정으로 서 있던 아이의 형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 섞였다. 누군가 부모가 사고로 죽은 후 헬멧을 절대 벗지 않는다며, 잘 먹지 않아 저렇게 말랐다며, 속닥댔다. 어느샌가 나는 헬멧의 아이에게 다가가 있었다. 아이를 양손으로 잡아 일으켰다. 손을 잡고 흔들며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아이도 순순히 나를 따라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거북했지만 동시에 자랑스럽기도 했다. 춤추던 아이가 내 손을 끌어당기며 바닥에 앉았다. 함께 따라 앉은 내 머리에 자기의 헬멧을 벗어 씌웠다. 직사각의 조그만 유리를 통해 밖이 보였다. 흐릿했다. 바닥에 무릎 꿇듯 앉은 아이가 헬 멧에 달린 단추를 돌렸다. 서서히 시야가 선명해졌다. 초록으로 풍성한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뜬금없는 까토 까토.
장면마다 선명한 꿈이 여전히 의아하다. 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그런데 마지막 숲의 장면, 왠지 눈에 익지 않은가? 어디 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아, 맞다! 2년 전인가, 몇 날 몇 주, 무엇에 홀린 듯 한 장 한 장 정성껏 그림 그려 만든 『카멜레온 파랑이』! 당장 이불을 차고 일어나 그림책, 정확히는 22쪽 더미 북을 찾아낸다. 맞다, 꿈에 서 본 숲은 내가 그림책의 배경으로 그렸던 거, 이거다.
『카멜레온 파랑이』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노란 애벌레를 따라가다 악어 연못에 빠진 카멜레온이 파랗게 질리며 파랑이가 됐는데, 안 그래도 겁에 질려 있는 녀석을 친구와 이웃이 놀려대는 통에 몸에서 수치의 파란색을 벗어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푸른 숲에서 홀로 파랑이인 녀석이 밥 먹듯 배를 곯다 사냥 중인 친척 할아버지를 만나 메뚜기를 나눠 먹는다는, 할아버지로부터 파란 물결 넘실대는 바닷가 마을에선 파란 카멜레온이 추앙받는다는 말을 듣고 당장 길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소망의 기쁨이 지나쳤던 걸까. 히죽이죽 길을 재촉하던 파랑이 의 피부에 하나둘 노랑 반점이 돋아나더니 급기야 황금색으로 번쩍이기 까지 한다는, 자신의 변신에 당황한 파랑이가 허둥허둥 악어의 벌린 입과 손가락질을 떠올려 보지만 변색은 점점 심해져 결국 온몸이 빨갛게 물들고 만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묘하다. 파랑이를 만들 때 의도했던 건 아닌데 새삼 파랑이가 나인 것만 같다. 굳이 경치 좋고 물 좋은 제주로, 섬 안에서도 시골인 한 경면으로 옮겨와 집에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초록 세계에 뛰어들어 여전히 파란 몸으로, 주변 색에 물들지 못한 채 혼자 튀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엔 이제 내가 명랑한 은둔자에서 까칠한 고립자로 넘어갔 구나, 싶은 생각까지도 했다. 둘 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이겠지만, 은둔 자는 허구한 날 홀로 사각 벽에 갇혀서도 즐거워하는 나를 스스로 빗대 본 말이고, 고립자는 이제 원한들 스스로 담을 넘어서기 어렵겠단 느낌에 자조하듯 붙여본 말이었다.
그렇다면 방금 꾼 꿈, 혹시 꿈속 내가 실제의 나에게 자기 염려를 전달…? 자칭 꿈장이 나는 나름의 꿈 이론을 갖고 있다. 꿈에 등장하는 각각 의 나들이 실제의 내가 피워올린 수많은 존재라는 생각이다. 나무의 꽃이나 열매처럼 같지만 다르고, 연결되어 있지만 개개 독립적인…. 꿈속의 내가 실제의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현실의 나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곧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속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다르고 또 내일의 나와도 다를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벽이나 담을 작심했던 적이 없다. 오히려 6년 전 이사 올 때는, 도시 아파트에서의 나와는 달라지리라, 반대의 각오를 했었다.
실제로도 이웃들과 어울려 잘 지냈다. 함께 양파도 주워보고 밀감도 따보고 고사리도 꺾어보고 텃밭 작물과 마당의 꽃을 서로 나누며. 그뿐인가 서로의 사정과 음식은 또 얼마나 자주 오갔던가. 전환의 계기는 코로나19였다. 격리 중 오랜만에 만난 동생뻘 지인에게 들은 말이 내게 깨달음이랄까, 자성을 갖게 했던 것.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그녀가 물었을 것이다. 나는 내 근황을 솔직하게, 필요 이상으로 친절 자세하게 이야기했을 테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한테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잘난 척한다고 생각해요.”
많이 놀랐다. 장난스레 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심각했다. 나름 조심했기 때문이었다. 존재 자체가 거북할 수도 있겠다 싶어 이사 오기 전 부터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 이웃에게는 내가, 그동안 어떤 인생을 살았 건, 한가하게 예술 타령이나 하는 사람으로 비치지 싶었다. 생업으로 바쁘고 힘든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쓸데없는 일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으로.
하기는 나란 인간, 원체 분위기 파악 못하고 해해대니 조심한들 그게 그거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의 충고가 애초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이든 저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만남이 거북해졌다. 천천히 오래된 습성으로 돌아갔다. 코로나란 핑계가 있어 굳이 핑계를 댈 필요도 없었다. 공적인 모임 외에는 집을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섞임의 어려움을 깨닫고 적극적 친교를 포기하자 편안했다. 하기는 파랑이가 그냥 파랑이로 살자고 마음먹었으니, 가끔은 제 기분에 취해 노랑이 빨강이 되는 것도 맘 편히 받아들이자 했으니 자유로울 수밖에. 그러던 중 오늘 묘한 꿈을 꾼 것이다. 장면전환 헬멧을 써 본 것이다.
다시 꿈속 장면들을 돌이켜 본다. 포근한 무언가가, 아지랑이 같은 것이, 가슴 속으로 피어오르는 느낌…. 양손을 잡은 채 함께 돌던 아이와의 춤이, 헬멧의 단추를 조절해 주던 아이의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 얼굴이, 조심스레 내 손을 끌어 앉히던 아이의 그 다정한 몸짓이 여전히 따뜻하고 신비하다. 단추를 돌리자 서서히 변하던 풍경과 둥글게 물러선 채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까지도. 아이는 헬멧을 통해 무엇을 보았던 걸까? 아니, 아이는 누구인 걸까? 고개 저으며 아이가 평안했으면 행복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장면전환 헬멧을 통하지 않고도, 자신의 힘으로….
『카멜레온 파랑이』를 제자리에 넣는다. 고립으로까지 나아가는 건 곤 란하다며 뚱겨준 꿈속 나에게 오우 케이, 윙크해 주면서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협탁으로 가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그대로 잊힐 수도 있는 꿈을 선명히 되살려 준 분, 이제 보니 합창단에서 함께 노래하는 전 선생님이었다. 볼 때마다 반가워해 주시고, 늘 잘했다 격려해 주시는, 정작 당신이야말 로 위로가 필요한 암 환자. ‘오늘 시간 되면 만나고 싶다’라며 보낸 엄청 귀여운 이모티콘 밑에 ‘좋 아요’라고 답한다. 기쁜 마음에 함박웃음도 딸려 보낸다. 화면을 닫는데 갑자기 다른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카멜레온 파랑이가 가닿고자 했던 바로 그 바닷가 마을이라는!
뜨듯해진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까지 파랑이에 나를 이입하는 건 억지이지 싶다. 그리고 설마하니 내가 섬으로 이주하며 또 이웃들과 사귀며 기대한 게 추앙이었을라고…. 아니지 싶다.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이젠…,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