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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혁신과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던 사천(泗川) 다솔사(多率寺) 답사후기 2015. 3. 17 다솔사 위치도
사천(泗川)하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대상(大賞)으로 선정된 창선 삼천포대교, 한려수도(閑麗水道), 국내 최대의 첨단(尖端) 항공우주산업 집적화단지가 떠오르지만 다솔사(多率寺)는 대구지방에서는 조금 생소한 곳이다.
사천시 행정구역도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용산리( 慶尙南道 泗川市 昆明面 龍山里) 산86에 위치하고 있는 다솔사는 1500년 역사(歷史)의 숨결을 간직한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 108과가 모셔진 불교문화의 원찰 적멸보궁이 있다. 다솔사의 연원은 알아보니 다솔은 소나무가 많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이절의 주산이 마치 대장군이 앉아있는 듯하고 수많은 병사를 거느리고 있는 형국이라하여 다솔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선생과 소설가 김동리(金東里)선생의 숨결이 서려있는 곳이란다.
다솔사가 위치한 곤명면 지도
다솔사 입구부터 울창한 송림과 편백나무 숲 총림은 하늘을 가리어 밀림을 연상하게 한다. 편백은 난대림(暖帶林)이라서 이곳에는 잘 자라는 가보다 도로 양쪽뿐만 아니라 산에도 크고 작은 편백나무가 꼿꼿하게 잘 자라고 있다. 사찰 입구 가까이에 커다란 자연석 바위에 <어금혈(御禁穴) 봉표(封表)>가 음각된 글씨가 예사롭지 않다. 다솔사 뒷산은 묘 자리가 좋아서 이지역의 사대부들이 서로 묘를 쓰려고 하니 임금이 어명으로 다솔사 도량에 혈(穴: 묘 자리)를 금하게 한 표석(標石)이다. 이 표석은 1890년(고종임금 광무25년)에 경상도 진주관아 곤양읍성에서 세웠다고 한다.
다솔사를 향하여 1
진입로 양쪽에 소나무와 편백나무가 총림을 이루고 있다
편백나무수림
표어가 너무나 멋있다
다솔사를 향하여 2
어금혈(御禁穴) 봉표(封表)
주차장에 들어서니 사찰 경내는 높다란 언덕과 대양루(大陽樓)와 황금편백나무에 가리어져서 전각들이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인 사찰의 가람의 배치와는 다르다. 외관상 정비가 덜 되어있고 깔끔하지 못하다. 오른쪽으로 난 전각진입로를 따라 올라오니 그 유명하다는 황금편백나무와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선생과 소설가 김동리(金東里)선생이 기거했다는 <안심료(安心寮)>가 나온다.
다솔사 입구 진입로
사찰 앞 주차장의 정비되지않은 부속건물
3그루의 황금편백나무
한용운(韓龍雲)선생과 소설가 김동리(金東里)선생이 기거한 안심료(安心寮)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선생의 약력과 저서
안심료는 만해가 독립선언서의 기초를 작성하고, 김동리가 머물던 요사채이다. 만해는 이곳에 12년간 은거(隱居)하면서 한국불교의 자주화와 대중화를 위해 항일 비밀 결사단체인 만당(卍黨)을 조직하고 대중 계몽운동, 불교유신운동 등을 펼쳤다. 만당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도쿄에도 설치하여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다솔사 전역도 만당지도자들은 일제의 식민불교 정책에 대항하면서 다솔사를 근거지로 불교 혁신과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3.1운동 기미독립선언서의 본문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의 글이고, 공약 3장은 만해의 글이라고 알려져 있다. 안심료 앞마당에 만해 회갑기념으로 독립운동가들이 심었다는 황금편백(黃金扁柏) 15그루 중 3그루만 아름드리로 자라고 있다.
안심료(安心寮)에서 기념 스냅핑
김동리도 1934년 <화랑의 후예>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집필에만 전념하기 위하여 다솔사 요사채 <안심료>에 머물렀다. 이때 다솔사 주변의 배경과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황토기>, <역마>, <바위>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썼다고 한다. 그의 작품 <등신불(等身佛)>도 다솔사에서 만해와 효당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훗날 소설로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
김동리 선생의 약력과 작품세계 만해 효당 범부 동리의 모습
사찰경내로 들어갔다. 산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게 지어진 주불전이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원래 적멸보궁은 삼존불을 모신 대웅보전(大雄寶殿)이었다. 그러나 1979년 대웅전 삼존불(三尊佛) 개금(改金)을 하던 중 후불탱화 속에 108과의 사리를 발견하고 난 뒤에 대웅전 현판을 내리고 적멸보궁 현판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적멸보궁은 글자 그대로 부처님이 열반에 들어 항상 머물러 있는 보배로운 궁전이다. 또한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시는 법당으로 불상을 별도로 봉안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곳 다솔사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이 누워있는 와불(臥佛)이 모셔져 있다.
다솔사 적멸보궁 1
다솔사 적멸보궁 2
적멸보궁의 와불과 창넘어 사리탑
극락전(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48호)
응진전(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47호)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격을 높여 보궁이라고 부른다. 적멸이란 모든 번뇌가 사라져 마음이 고요한 상태로 열반(涅槃)을 말한다. 열반이란 <니르바나(nirvana>라는 인도말을 음역하여 나타낸 것으로 ‘불어서 끄다’라는 뜻이다. 즉 불을 휘 불어서 끄듯이 모든 번뇌가 사라져 마음의 고요한 상태를 말한다.
다솔사 적멸보궁 3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는 적멸보궁은 법당에 불상이 없는 대신 그 자리에는 창(窓)을 만들어 사리탑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다솔사도 창을 통하여 사리탑을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적별보궁에 사리탑을 볼 수 있게 만들어놓은 창 바로 밑에 와불이 모셔져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적멸보궁의 와불 진신사리 108과를 모신 사리탑 대양루(大陽樓)는 정면 5칸 측면 4칸에 맞배지붕의 중층(重層) 누각이다. 이 대양루는 경남유형 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다솔사가 창건 이후 여러 전란과 화재를 당하면서도 유일하게 화재를 면한 가장 오래된 건물이란다. 대양루는 36개의 원목(圓木) 기둥들이 우람하면서도 고졸(古拙: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함)한 느낌이 난다.
대양루 전경
대양루 2층은 다솔사 다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다솔사 다전시관의 전시물
다솔사 근처에는 야생다원(野生茶園)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도솔사에는 선다(禪茶)로 유명하다. 현재 도솔사에서 만들어 지는 차는 녹차인 봉명죽로(鳳鳴竹露)와 발효차인 황봉운하(黃鳳雲霞)가 있다고 한다. 녹차 황봉죽로란 이곳 다솔사 봉명산 아래 자생하는 찻잎으로 법제한 녹차이다. 다솔사 녹차는 두 가지 방법으로 법제하는 데 하나는 찻잎을 솥에 넣고 솥뚜껑을 덮어서 만드는 법이고, 다른 하나는 덖음차(부초차 釜炒茶)방식이라고 한다.
다솔사 주변에 자라고 있는 야생차
봉명산(鳳鳴山) 야생차원의 튼실한 찻잎으로 만든 다솔사 차는 오미 가득한 차향을 품어 독특한 차맛을 낸다고 한다. 그렇게 다솔사는 오늘날 한국 차 이야기의 산실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다문화의 주류는 내면적인 정신음료로 강조되고 있다.
다솔사는 대한민국 근대사의 문화적, 사상적 발원지가 되었다. 만해 한용운과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자취가 남아있고, 야생다원에서 자란 찻잎으로 한국 차 문화의 주류를 이끌어 선다(禪茶)의 원류를 지키고 있다.
봉명산의 전망대
전망대에서 조망된 경관 봉명산 정상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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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자세하고도 친절한 설명이 한층 돋보이네 그려.
내사 대강 대강 보고 지나치니까 답사기도 대강 쓰는데...
수고많이 하셨네
등산로 입구에서 기념촬영 한장
주산이 마치 대장군이 앉아있는 듯하고 수많은 병사를 거느리고 있는 형국이라하여 다솔사라고 한 설화가 담긴 다솔사,
잘 구경하고 많은 공부를 하게해준 에브노말님께 감사 드립니다.
건각들이 부럽다
정말정말 멋진 후기에 고맙고 감사합니다. 도솔사가 아니고 다솔사가 맞지요. 헷갈리긴 하더라
솔뫼!
오타 잘 지적하였네!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