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규 전문기자의 프로축구 관전기 삼성 하우젠 K리그 6차전 수원 삼성 - 울산 현대 (9월 24일 오후 5시 수원월드컵경기장)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하다. 무엇을 해도 좋은 계절, 가을이 왔다. 서울 톨게이트를 벗어나자마자 경부고속도로 오른편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며 가을을 알린다. 한 낮에는 아직 무더위가 남아있지만 길가의 가로수들은 어느새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노란 물을 들여가는 모습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유달리 좋아 보이는 9월의 마지막 휴일, 프로축구 경기를 보러 가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중간고사를 앞둔 고2의 큰 아들과 중2의 작은 아들이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학원에 가는 모습에 잠시 무거워졌던 마음도 일단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의 관전 대상 경기는 수원 삼성 - 울산 현대의 2006 삼성하우젠 K리그 6차전. 두 팀 모두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데다 후기 우승을 노리는 팀들이어서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경기였다. 지난 96년 수원 삼성이 출범한 이후론 한국의 대표적 그룹인 삼성과 현대의 축구 대리전이란 자존심 대결까지 더해져 두 팀간의 대결은 팀 순위와 상관없이 언제나 박진감을 더했다. 때로는 승부욕이 지나쳐 몸싸움이 거칠게 진행될 때도 있었지만 상대 골문을 향해 돌진하는 선수들의 투지는 축구의 본능을 일깨우는 짜릿한 자극제가 되어 일상에 지친 팬들의 심신에 신선함을 안겨줬다.
◇아쉬운 이천수 최성국 박규선 결장
올시즌 상대 전적은 1승1패. 지난 4월1일 울산경기에선 수원이 2-1로 이겼고, 5월24일 수원경기에선 울산이 1-0으로 이겼다. 공교롭게도 두 팀 모두 홈에선 지고, 원정에선 이겼다. 그렇다면 올시즌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의 세번째 대결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수원은 최근 11경기 연속 무패 (5승 6무)를 기록하고 있고, 울산 역시 최근 8경기 연속 무패 (5승 3무)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역대 전적에선 울산이 15승 11무 14패로 근소하게 앞서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울산의 전력이 정상이 아니란 점이다. 울산은 20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샤밥과 AFC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를 치르자마자 곧바로 K리그를 치르는 데다 이천수 최성국 박규선이 경고누적으로 결장, 절대 불리한 처지에서 싸우게 됐다. 명승부를 바라는 일반 팬들에게는 아쉬운 대목이지만 수원으로선 후기 1위를 굳혀나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수원 팬들이나 구단 관계자 모두 표정이 밝아 보였다.
◇다시 나는 '빅 버드'
안타까운 때가 있었다. 2006독일월드컵 직전까지만 해도 수원월드컵경기장인 ‘빅 버드’는 미묘한 기류에 휩싸여 신음했다. 프로축구 서포터스 문화를 선도하던 수원 서포터스 '그랑 블루'는 한 때 수원 홈경기 서포팅을 보이콧하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프로축구를 지탱하는 양대 축인 팬과 선수단의 감독이 갈등을 빚으면서 국내 프로축구 열기의 진원지이던 '빅버드'도 활력을 잃어갔다. 팬들과 프로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의 마음도 덩달아 무거웠다.
그러나 2006월드컵 이후 수원이 대대적 선수보강으로 바닥을 찍고 반등에 성공하자 정상을 되찾은 모습이다. 울산과의 홈경기에는 무려 2만6000여 관중이 선수들을 성원했다. 경기 전 장내 아나운서와 서포터스들이 호흡을 맞춰 외치는 구호는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울렁이게 했다.
"수원이여! 영원하라!"
수원은 울산과의 경기 전까지 최근 홈 5경기 연속 무패 (2승 3무)를 달리며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서포터스 또한 약 4000여명이 모여 예전의 뜨거운 열기를 다시 내뿜었다. 서포터스 전원이 참여하여 킥오프 전 보여준 '승리'의 카드섹션은 그랑블루의 저력과 차별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여겨졌다.
이날 경기에는 2만 6317명의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아 지난 여름까지 속을 태웠던 안기헌 수원 단장은 물론 오근영 홍보팀장 등 관계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떠나질 안았다. 전반전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장내 방송에서는 계속 “ 본부석 맞은편 1층 계단에 앉아 계신 관중께서는 안내요원의 안내에 따라 경기장 2층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다시 활기를 찾은 수원은 후기 홈경기마다 2만여 명이 넘는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추수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지난 제주전에서 비가 오는 날씨 속에도 2만 2307명의 관중수를 기록한 뒤 대전과의 경기에서는 2만 8763명의 관중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날 경기 역시 2만 6317명. 3경기 연속 2만 관중 돌파에 성공했다.
◇3-5-2시스템의 격돌
수원 차범근 감독은 3-5-2포메이션을 꺼냈다. 최근 상대에 따라 4백과 3백 시스템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는 차 감독은 이날 무패가도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박호진을 골키퍼에, 이정수 마토 곽희주를 스리백에, 김남일 김대의 백지훈 문민귀 이관우를 미드필드진에, 올리베라와 실바를 투톱에 각각 포진시켰다. 김남일을 수비형 미드필더에, 이관우와 백지훈을 사선으로 중앙에 배치했다.
김대의를 윙백으로 내린 점, 문민귀를 윙백으로 올린 점 등이 눈에 띄었다. 송종국은 부상으로 결장. 양 윙백의 측면 돌파에 의한 크로스, 이관우 백지훈의 중앙 침투, 올리베라 실바의 중앙 투톱 플레이 등이 차 감독이 기대한 전반 공격 옵션으로 보였다.
울산 김정남 감독 역시 기본 전형으로 3-5-2카드를 뽑았다. 골키퍼에 김지혁, 스리백에 서덕규 조세권 비니시우스, 미드필드진에 변성환 이현민 장상원 김종철 이성재, 투톱에 양동현 마차도를 내보냈다. 수원과 다른 점은 미드필드 운용.
수원이 약간 마름모형으로 미드필드진을 운용한 반면 울산은 변성환 이현민 장상원 김종철을 일자로 배치하고 그 위에 이성재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 전체적으로 수비벽을 이중으로 두껍게 하는 전형을 펼쳤다. 전체적으로 주전인 이천수 최성국 박규선이 결장함으로써 선수의 중량감이 떨어졌으나 투지는 넘쳤다. 전반 수원이 주도권을 잡고도 쉽게 수비벽을 돌파하지 못한 것은 젊은 선수들의 파이팀 넘치는 패기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활로’를 찾지 못한 수원 공격
전반은 수원의 일방적 리드. 그러나 마지막 수비벽을 뚫기에는 공격이 무뎠다. 양 사이드 돌파 후 크로스나 중앙에서의 침투 공격이 모두 상대 수비수들에 의해 읽혔다. 상대 수비벽을 뚫기에는 날카로움이 부족했다. 답답한 상황을 뚫기 위해 김남일 이관우 등이 중거리 슛을 날리기도 했으나 골네트를 흔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올리베라와 실바의 투톱 결정력도 울산의 이중으로 처진 수비망을 뚫기에는 파워와 응용력이 부족했다.
전반 내내 수원이 주도권을 잡고도 결정적 찬스를 만들지 못하는 흐름으로 진행됐다. 전반 30분 오른쪽을 파고드는 김대의를 보고 이관우가 날카로운 패스를 건네주자, 김대의가 크로스, 올리베라가 문전 쇄도하는 장면이 가장 날카로웠다. 울산 골키퍼 김지혁이 가까스로 크로스를 쳐내지 않았더라면 올리베라가 선취골을 기록할 수 있었던 상황. 전체적으로 울산은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처졌으며 수원은 마음이 앞설 뿐,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만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채 0-0으로 전반을 마쳤다.
◇적중한 차범근 감독의 승부수
후반 시작과 함께 수원이 먼저 선수를 교체했다. 실바를 빼고 데니스를 투입했다. 그런데 좀 더 지켜보니 단순한 선수교체만 한 것이 아니었다. 포메이션도 바꿨다. 3-5-2에서 4-4-2로 전형 자체를 바꿔버렸다. 전반의 답답함을 타개하기 위한 차범근 감독의 승부수로 보였다.
왼쪽 윙백 문민귀를 왼쪽 풀백으로 내리고 김대의를 포워드로, 데니스를 오른쪽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정리하면 수원은 포백진에 이정수 마토 곽희주 문민귀를, 김남일 데니스 백지훈 이관우를 미드필드진에, 김대의 올리베라를 투톱에 각각 기용했다. 김대의와 데니스의 스피드, 문민귀 이정수의 오버래핑을 이용해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울산의 수비력을 허물기 위한 차 감독의 대응 전술로 보였다.
한 경기를 치르면서 전형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풍부한 선수 자원과 충분한 훈련량이 없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강팀은 웬만해선 포메이션과 베스트11을 바꾸지 않는다. 누구보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차 감독은 후반 모험을 걸었다. 전반 경기내용에 대대적 메스를 가했다. 잘 풀리면 감독의 용병술이 뛰어났다는 찬사를 받을 수 있지만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차 감독이 책임져야 할 판. 차 감독은 가만히 앉아서 답답한 상황이 풀리기를 기다리는 것 보다는 능동적으로 상황 타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마토의 오버래핑, 백지훈의 결승골을 낳았다?
그러나 후반 초반에는 이같은 전형 변화에도 불구하고 수원의 답답한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포백의 강점인 양 풀백의 오버래핑이 과감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수비에 숫자가 몰리면서 공격에 숫자가 부족한 양상도 나타났다.
이같은 상황에 변화의 불씨를 지핀 것은 바로 마토였다. 센터백인 마토는 양쪽 풀백인 문민귀 이정수가 수비를 의식해 오버래핑에 소극적이자 중앙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라운드 중앙을 가로지르는 대담한 공격에 나섰다. 후반 10분. 정해진 수순대로 공격과 수비과 팽팽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돌출된 마토는 조조의 백만대군을 휘저은 조자룡처럼 상대 수비벽을 단숨에 허물며 찬스를 열었다.
마토의 40여m에 이르는 단독 드리블에 이은 공격에서 울산 수비수 비니시우스의 손에 맞고 볼이 굴절되지 않았다면 수원의 결정적 찬스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주심 김광종씨는 핸드볼 파울을 불지 않았지만 수원의 공격은 해답을 찾은 듯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2분 뒤 결국 수원은 선취골을 기록했다. 마치 공격의 파도를 타듯 마토로부터 시작된 수원 공격의 물결은 백지훈의 선취 결승골까지 계속 이어졌다. 후반 12분. 페널티에어리어 왼쪽에 있던 데니스는 왼쪽에서 크로스가 날아오자 오른발로 재치있게 오른쪽에 있던 백지훈에게 볼을 연결했다.
페널티아크 오른쪽에 있던 백지훈은 오른쪽으로 볼을 툭 쳐놓으며 상대 수비수 한 명을 따돌린 후 뛰쳐나오는 상대 골키퍼 김지혁을 보며 가볍게 오른발 슛을 날려 고대하던 골문을 열었다. 1-0. 데니스 어시스트~백지훈 골. 백지훈은 서울에서 이적한 이후 최근 5경기에서 3골을 기록하는 수훈으로 수원 삼성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입술이 타는 줄도 모른채 뚫어져라 볼의 궤적을 쫓던 차 감독의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다소 답답한 경기 상황에 열기를 내뿜지 못하던 '빅버드'도 힘차게 비상했다.
"♬ 만세 ♪수원 만세 ♪♪너만이 나를 기쁘게 해 ♫ 너의 승리를 보고 싶어 ♩♪화려하게 해치워버려♬"
백지훈의 골과 함께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빠른 리듬의 그랑블루 응원가는 그라운드에서만 즐길 수 있는 축포의 여운이었다. 계속 되풀이되는 응원가는 관중석에 신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빅 버드’의 비상이 시작되는가
최근 5경기에서 3골. 그 3골을 모두 결승골로 장식한 백지훈은 자신감이 넘쳤다. 경기 후 그라운드 인터뷰 대상자로 선정돼 마이크 앞에 선 백지훈은 “파고 들어가면 찬스가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과감한 돌파가 결승골로 이어진 것 같다. 우승이란 목표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현재 팀이 후기리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후기리그 우승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겠다. 통합 우승을 이루는 것이 올 시즌의 목표"라고 말했다.
차 감독도 백지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팀에 온 이래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전 소속팀에서는 출전이 불규칙해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은 것 같다. 우리 팀에 와서 꾸준히 출장하면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백)지훈이나 (이)관우가 보강된 것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또 ”상대가 예상 외의 선수들로 경기에 나서 어려운 경기를 했다. 덤비는 경향이 있었으며 성급하게 플레이해 기회를 골로 만들지 못했다. 백지훈 이관우 문민귀 등 올 여름에 이적한 선수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해줘 이길 수 있었다“고 승리의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경기장을 돌며 차례로 인사를 하는 선수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서포터스와 일반 팬들. ‘빅 버드’에 지난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잉글랜드 프레미어리그 첼시가 초반 부진을 딛고 선두에 나선 것처럼 수원 삼성 역시 풍부한 선수 자원을 바탕으로 5,6차전에서 계속 선두를 달렸다. ‘빅 버드’의 비상이 시작되는가. 경기가 끝나고도 한참동안 서포터스의 흥겨운 응원가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 만세 ♪수원 만세 ♪♪너만이 나를 기쁘게 해 ♫ 너의 승리를 보고 싶어 ♪화려하게 해치워버려♬"
첫댓글 이런글 자주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잘읽었어요ㅋ
기자님 My All 반하셨나..? 두 번씩이나 ㅋㅋㅋ
기자님도 재밌었나보네 ~ ㅋㅋ
ㅋㅋ 재미있엇어요
이런 기자가 중립성을 잃다니...이게 다 그랑블루 때문이다 ㅋㅋ
기자가 응원가에 반하셨군요.. 푸하하..우리가 좀 해요..~~^^
기자님 ㅋㅋㅋㅋㅋ 두번씩이나 마이올을 ㅋㅋㅋㅋ 그랑이신가요 !ㅋㅋ
알레 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