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逆) 남파랑길(열 번째 - 2)
(거제∼부산, 2023년 12월 16일∼17일)
瓦也 정유순
우리가 통영 출신으로만 알았던 시인 청마 유치환(柳致環, 1908∼1967)은 출생지가 외가가 있는 거제시 둔덕면에서 태어나 11살까지 한문을 배웠다고 한다. 1922년 통영보통학교 4년을 마치고, 일본 도요야마중학교[豊山中學校]에 입학하였다. 가세가 기울어 4학년 때 귀국, 1926년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퇴폐적인 분위기에 불만을 품고 1년 만에 중퇴하였다.
<청마 흉상과 기념관>
유치환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유족과 통영시 간의 법적 분쟁까지 있었으나, 법원은 “청마가 스스로 통영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실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마의 출생지가 통영시가 아니라 거제시라고 하더라도 청마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통영시의 손을 들어줬다. 거제시는 둔덕면 방하리에는 청마기념관을 세우고 초가집 생가가 복원되었으며, 시비와 동상이 있고 인근에 청마의 묘소가 있다고 한다.
<청마생가 - 2019년 10월 23일>
그러나 청마기념관 등은 가지 못하고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로 간다. 일운면(一運面)은 거제도 남부에 위치하며, 서쪽은 동부면(東部面), 동쪽과 남쪽은 남해에 면한다. 구릉으로 이루어진 옥녀봉(王女峰, 555m)과 망산(望山, 305m) 등의 산각(山脚)이 완만하게 남해에 몰입하여, 크고 작은 곶과 포구가 많다. 해변은 구조라해수욕장(舊助羅海水浴場)을 비롯한 백사장과 기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자미·도미 등의 연안어업 등이 활발하다.
<거제시 일운면 지도>
구조라리(舊助羅里)는 본래 자라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조라목, 조라포(助羅浦), 목섬, 항리(項里)라고 불렀다. 성종 때 거제칠진의 조라진을 두어 만호병정(萬戶兵政)을 하였는데, 이를 임진왜란 후에 옥포진 옆 조라로 옮겼다가 효종 때 다시 돌려놓았다고 하여 구조라진이라 한다. 해금강을 바라보는 넓고 얕은 백사장이 있는 구조라해수욕장이 있는데, 난류해역이며 거제도의 가장 큰 모래 해수욕장이다.
<구조라마을 안내도>
구조라항(舊助羅港)은 1종 어항(漁港)으로 관광과 어업의 중심지이며, 거제시 북병산(465m)의 동쪽과 남쪽으로 능선이 갈라지는 가운데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뻗어간 북병산의 줄기는 구조라 해안선 동쪽 끝에서 수정봉으로 솟구쳐 있다. 항구의 바깥으로는 대한해협이고 일본과 가까워 예전부터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다. 수정봉에는 조선시대 구축된 방어 진지가 있었으며 항구의 해안선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구조라항>
<구조라해수욕장(좌)과 구조라항(우)>
구조라마을을 통해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시누대가 터널을 이룬다. 시누대는 주로 화살 제작에 사용되는 대나무다. 전죽(箭竹), 시죽(矢竹), 산죽(山竹) 등으로도 부른다. 시누대는 화살 제조에 필수 재료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벌채를 금하고 관찰사 관리 하에 허가를 받아 벌채하였다. 화살제조용 시누대는 주로 2년 죽을 사용한다. 이를 과년 죽 혹은 가년 죽이라고도 하며, 단단하고 부드러워 허리힘이 좋아서 시누대가 가장 알맞다는 것이다.
<시누대 터널>
구조라산성은 조선 시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전방의 보루로 축조된 포곡식(包谷式)산성으로 길이 860m 면적 8,235㎡다. 구조라마을 앞산 수정봉 능선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성문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나 있다. 1490년(성종 21)에 축성하기 시작하였고 지세포성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다.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1998년 11월 13일) 되었으며 성내는 모두 논과 밭이고 성의 가운데 우물이 있고, 성문과 성문 중간에는 성루를 두었다.
<구조라성>
오후에 찾은 곳은 학동몽돌해수욕장이다. 해안의 지형이 마치 한 마리 학이 비상하는 듯하여 이름 붙여진 학동(鶴洞)은 흑진주 빛의 몽돌이 걸쳐 펼쳐져 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몽돌 해변으로 그 면적이 3만㎡에 이른다. 동백나무 군락지가 해안을 따라 자리 잡고 있어 동백꽃이 필 때는 관광객으로 붐비고, 화사함을 자랑하는 팔색조 번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몽돌사이를 비집는 파도소리는 연인들의 ‘사랑의 속삭임’이다.
<학동몽돌해수욕장>
다시 몸을 날려 도착한 곳은 거제의 해금강을 한눈으로 볼 수 있는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로 이동한다. 남부면(南部 面)은 거제시 남부에 있는 면으로 동쪽과 남쪽 해안은 경관이 수려하고 면적의 2/3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해금강·한목해수욕장·명사해수욕장 등이 있다. 저구리와 장승포항을 잇는 국도가 동쪽 해안을 따라 지나고, 갈곶리에서 장승포항과 통영시를 잇는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거제시 해금강 지도>
갈곶리는 해금강으로 불리는 갈도(葛島, 칡섬)를 중심으로 남쪽 바다로 쭉 뻗은 지형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대한민국 명승 제2호(1971)로 지정되었으며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있다. 해금강(海金剛)은 그 모습이 바다의 금강산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정식 명칭인 갈도보다는 해금강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 해금강은 굉장히 가파른 바위절벽으로 된 섬이고, 섬 안으로 십(十)자 수로동굴이 있어 배를 타면 들어갈 수 있다.
<해금강(갈도)>
시간상 배를 탈 수가 없어 대신 우제봉전망대 쪽으로 올라가는데, 정상은 군 보안시설이라 올라 갈 수 없고 그 밑에 마련된 해금강전망대에서 바라본다. 사진들의 깎아지는 절벽의 절경은 반대편 바다 쪽 모습이며, 육지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여느 섬처럼 평범하다. 바다 저 멀리로는 대마도가 가물거린다. 대마도(對馬島)는 ‘마한(馬韓)을 마주보고 있다’라는 뜻이다.
<우제봉>
우제봉 절벽에는 진시황의 신하 서복(서불)이 명을 받아 동남동녀와 같이 불로초를 찾으러 동방으로 향했을 때 이곳에 들러 새겼다고 하는, 일종의 인증 문자인 서불과차(徐巿過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1870년대에 경상우병사였던 조익찬(曺益贊)의 시와 1881년에 영의정 이유원의 기록이 전한다고 한다. 이 글자가 적힌 절벽은 1959년 태풍 사라호가 우리나라를 덮쳤을 때 소실되어 아주 미미한 흔적만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서불과차가 새겨진 우제봉 - 안내도>
<서불 각자 - 안내도>
우제봉을 돌아 나온 발길이 향한 곳은 도장포마을의‘바람의 언덕’이다. 도장포(陶藏浦)마을은 옛날 원나라와 일본 등을 무역하는 도자기 배의 창고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뒤 언덕으로 난 길을 따라 ‘바람의 언덕’으로 간다. 이곳은 지리적인 영향으로 해풍이 많은 곳이기에 자생하는 식물들 또한 생태 환경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의 식물들은 키가 작은 편이고, 윗자락에는 오랜 세월 해풍을 맞으며 자란 고령의 동백나무 군락이 있다. 풍차가 돌아가는 언덕은 드라마 촬영지로 자주 이용된다고 한다.
<바람의 언덕 풍차>
<도장포마을>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갈 곳은 많은데 해는 이미 기우는구나. 반대쪽으로는 신선대가 손짓하는데도 멀리서 바라보는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
거제도 바람의 언덕
치맛자락 날리며
사뿐히 내려앉은
신선대에 이는 바람이
언덕을 만들고
고개 너머 풍차는
덩달아 돌아간다.
바람의 언덕 속살로 파고드는
바람결은 켜켜이 쌓아둔
추억 다 끄집어내고
얼굴 붉혔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세월에 날려버린
어릴 적 꿈들…
(瓦也)
<바람의 언덕>
<신선대 - 2020년 11월 1일 >
https://blog.naver.com/waya555/223305147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