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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마른 나목일 것 같던 버드나무에 연둣빛 물이 들기 시작했다.
봄은 짙은 신록으로도 좋지만, 연 빛으로 해탈하는 색이 난, 더 곱고 생기있어 좋다.
나목에 수채화 붓으로 듬성듬성 찍어 놓은 듯한 어릿한 연 푸름이 반가운 건 모진 추위를 이겨낸 대견함 때문이다.
바야흐로 긴 겨울을 이겨낸 봄을 이젠 화려한 빛깔로 즐겨도 좋을 시기다.
살면 보면 가끔은 좋은 일과 굳은 일이 주기적으로 오기 마련인 것 같다. 마냥 좋은 일만 오는 법도 없고, 또 반대로 나쁜 일만 반복적으로 오는 법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는 것에 마냥 좋아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다 했나 보다.
그런데 그 좋고 나쁜 소식이 파도같이 줄 맞춰 오는 게 아니라 한날한시에 동시에 온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당신에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지금 무조건 들으셔야 합니다.'라는 곤혹스러움 같은 느낌일 거다.
나에겐 그런 난감한 두 소식이 동시에 오는 그런 경우가 종종 생긴다. 대략 5년 넘게, 그것도 일 년에 댓 5~6번은 꼭 연례행사처럼 찾아온다.
고 2인 아들과 중 2인 딸은 태권도 품세 선수로 활동한다.
운동하게 된 긴 곡절의 이야기는 고사하고, 둘은 일찍이 태권도라는 운동을 진로로 정했다. 부모로서 운동하는 아이들에게 챙겨줘야 할 것도 많고, 걱정되는 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어떡하겠는가? 자식이 하고자 하는 일에 조건없는 밑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요즘 세련된 부모의 자세라는 것을... .
팔불출 같은 소리나, 다행히 작은 애인 딸의 운동 성적은 좋은 편이다. 어려서부터 또래 중엔 적수가 없을 정도다. 타고난 재질에 승부욕, 그리고 훈련과 집념이 만든 성적표가 괜찮은 편이다. 출전하는 모든 전국대회에서 족족 금메달을 독식할 정도니, 집과 도장에 쌓아 둔 메달과 상장만 해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우스운 소리로 인터넷에서 가족 이름을 검색하면 우리 집에선 그래도 유일 유명한 사람이 작은 녀석이다.
반면에 큰 애의 성적은 불행히도 이와 정 반대다. 운동 이후 금메달은 고사하고 한 번도 입상권 근처에도 가 보질 못했다. 아니, 입상은 고사하고 몇 년 동안 올린 최고의 성적이 전국대회 16강이 전부다. 큰애에게 대놓고 부르진 못하나, 우리 부부가 속 터져 몰래 부르는 별명이 대회 1~2회전 용이다. 그놈의 성적 때문에 본인은 물론, 부모로서 속상한 일도 한둘이 아니다.
예전, 동생이 우승하고 온 날, 큰애가 자신의 방에서 참가 기념 메달에 펜으로 동메달이란 글을 몰래 써 놓는 것을 봤다. 녀석에게도 꼴찌는 아픈 구석이지만, 그걸 봐야 하는 부모 역시 마음이 아리지 못해 쓰고, 아프다. 요즘은 밥 먹듯 우승하는 작은 애조차 꼴찌를 하는 오빠의 눈치를 살펴야 할 지경이다. 큰 성적을 떠나 대회마다 2,3번만이라도 꾸준히 이기고, 또 유지해 준다면 그래도 맘이 좀 편해 질텐데... .이런 부모의 소박한 바람도 큰 애한텐 절대 쉽지 않은 도전인 것 같다.
대회는 주로 지방에서 열리는데, 출전을 위해 일 년에 7,8번 정도는 집을 떠나게 된다.
잘하고 오겠다던 출발 날의 약속은 3일 후, 극명하게 갈린 명암의 성적으로 해후한다.
1등을 한 작은 애한테는
"역시, 이승아야. 짱, 축하해."
이번에도 꼴찌를 한 큰 애를 생각해 작은 애한테 할 축하는 적당 선에서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러고 속이 오뉴월 쓴 풀이고, 갈라진 논바닥 같을 큰애에게도,
"수고했다, 다음엔 최선을 다하자."
짧고, 피 이상형인 언어, 그리고 둘이 공통분모로 가볍게 받아 들일만 한 '최선'이란 평등 언어로 대회를 마무리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성적이 좋은 작은 애가 엄마에게 상대적인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단다.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우승을 하니까 고생 없이 메달을 쉽게 따는 것같이 모두 생각한다고. 맞는 말이다. 사실 고생한 성적에 대한 기분 좋은 포상이 있어야 사기도 높아지는 법이다. 아무리 재능있는 작은 애라도 죽기, 살기로 연습을 해야만 겨우 메달 하나를 딸 수 있다. 그러나 큰애를 생각하면 선뜻 성적의 답례를 작은 애한테만 쏟아 부을 순 없다. 선별적 사랑만 할 수밖에 없는 부모나, 꼴찌 오빠를 둔 동생이나 우린 어쩔 수 없이 좀 더 기다려야 하는 존재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 붙이고 살려면 길게 참는 법도 알아야 한다.(그래도 가끔은 미안해서 큰애 몰래 포상을 하기도 한다.)
큰 녀석도 사람인 이상 성적에 대한 욕심과 기대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더구나 오랫동안 숨어서 봐야 하는 동생의 성적을 생각하면 저 작은 가슴은 얼마나 더 초조하고 위축될까? 따라주지 못하는 몸뚱이에 상대적인 자괴감도 생길 것이다. 주변에서 주는 눈치엔 억지로 의연해도 오르지 않는 성적의 압박은 정말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영부영 그 길던 세월 다 가고 벌써 고 2다. 일단 대학부터 진학하려면 이젠 성적이 나와야 하는 시기다. 그 누구보다 급한 성적을 기다리는 자가 아마 큰애일 거다.
그러나 그도 마음뿐, 그렇다고 마음같이 어디 좋은 성적이 쉽게 난단 말인가?
큰 애는 작은 애와 달리 태생적으로 태권도 운동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구조를 가졌다. 선천적으로 골반이 약간 틀리고 어긋나 있는 상태다. 일상생활엔 큰 무리가 없다고 해도, 선수로 활동하기엔 많은 불편과 장애가 많다. 태권도 품세는 발차기 자세가 중요한데, 틀린 골반 때문에 발차기 동작이 잘되질 않는다. 결국, 거기서 경기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대회 성적도 신통치 않을 수밖에 없다. 또한, 어릴 적부터 크고 작은, 3번의 큰 수술도 치렀다. 운동선수 조건으론 반가운 신체 조건을 갖고 있질 않은 몸이다. 그래서 가끔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학업으로의 전향을 넌지시 권유를 한다. 그러나 본인이 극구 반대다. 선수로 시작한 이상 끝까지 한번 해 보고 싶단다. 솔직히 운동을 말리기에도 늦은 시기이긴 하다.
지난겨울, 큰애는 어느 해보다 혹독하고 강한 훈련을 스스로 했다.
전지훈련도 착실히 했고, 도시락 두 개를 싸 가지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추운 도장에서 땀을 흘렸다.
그 때문인지 시즌 전초전으로 열린 ㅇㅇ대회에선(전국대회 급은 아니고) 개인과 단체 3위에 입상하는 깜짝 성적을 올렸다.
그날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아이 둘에게 같은 언어와 표정으로 긴 축하의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와~ 이게 웬일이람. 거봐 하면 된다니까. 하하하"
"담에도 잘하자, 알았지! 아니 최선을 다하자."
정말 많은 축하를 해 줬다. 하지만, 다음에 또 혹시 모를 또 익숙한 실망이 올까 봐 비상구 같은 '최선'이란 여운은 남겨야 했다.
2학년에 올라가는 봄 방학.
큰 애가 어느 날 이발을 하고 왔는데, 깜짝 놀랐다.
"너, 내 아들 맞니?"
정말 처음 봐서 낯선. 완전 반삭의 까까머리 중 머리였다.
전초전으로 열린 대회에서 입상한 것에 기분이 업(up) 됐는지, 머리를 짧게 자른 것이다. 참고로 이전 큰 애는 아침 등교 시간에 머리 손질에만 10분 이상 공을 들였던 녀석이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쏟아야 할 대상을 찾은 것 같아 아들의 짧은 머리가 한없이 결연해 보였다.
이제 두 번째로 열리는 전국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전초전 후 열린 첫 대회에서는 불행히도 성적이 좋지 않았다.)
늦은 밤 큰애 방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잠꼬대하듯 들려온다. 오늘도 몸이 많이 쑤시고 아픈가 보다, 열심히 운동했다는 증거다.
조금 징그럽지만, 너무 기특해 코까지 고는 녀석의 볼에 뽀뽀했다. 그래도 세상 모르고 잘 잔다. 나이에 비해 아직은 맑고 순진한 구석이 많은 녀석이다. 나보다 한 뼘이나 더 큰 녀석을 가끔 끌어안고 "사랑해" 하고 포옹을 하면, 자기도 좋은지 "나도요~"하고 가만히 서 있다.
이번 대회에서 코치진이 기대하는 아이의 목표 성적은 대회 16강이다. 그런데 아들은 내심 8강까지 목표를 정해 놓은 것 같다. 전국에서 운동 좀 한다 하는 아이들 백 수십 명이 모여 하는 시합이다. 대회 1,2회전용인 녀석에겐 절대 쉽지 않은 목표다.
토요일 오후 ㅇㅇ시 모처럼 시합장에 아내와 같다. 이날만큼은 시합장에 꼭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여기에 온 다른 이유는 대회 성적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응원 기(氣)로 아들이 단 한 번만이라도 습관처럼 베인 긴 패배의 질곡에서 탈출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였다.
아무리 잘하는 자식의 경기여도 부모로서 떨리기는 매한가지, 긴장 속에서도 작은 애는 기대대로 우승과 중학부 전체 우수상까지 거머쥐었다. 또한, 덤으로 다음 달에 있을 국가대표 선발전 최종 진출권도 따냈다.
그리고 큰애.
놀랍고 이변 같은 일을 펼치고 있었다. 오전에 열린 경기에선 거침없이 16강까지 진출을 해 놓았다. 코치진들은 내심 이미 목표는 달성했다며 흐뭇해한다. 이번 대회에 아이의 목표 본전은 차린 셈이다.
나머지 경기는 오후 늦게 시작됐다. 아내는 도저히 못 보겠다며 두 손에 얼굴을 묻고 덜덜 떨었다. 난, 겉으론 괜찮다며 손해 볼 거 없는 경기니 즐기자고 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배는 건 어쩔 수 없는 아비의 욕심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하늘도 눈 한 번 질끈 감고 도와주신 건지, 아들에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성적이 쏟아졌다. 아이는 메말랐던 패배의 솜에 승리라는 물을 거침없이 빨아들였다. 16강을 가볍게 통과해 8강에 안착했다. 그동안 자신이 얻은 최고의 성적을 넘어선 거다. 어쩌면 내 긴 바람이 오늘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돌았다. 연이은 경기도 승승장구해 준결승까지 올랐다. 거짓말 같은 4강, 사실이었다.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 온몸을 찌르르하게 찔렀다. 월드컵 축구 4강만이 꿈을 이룬 게 아니었다. 태권도를 시키고 처음 겪는 꿈같은 일이었다. 지난겨울 그렇게 열심히 훈련하더니, 속된 말로 드디어 크게 한 건을 올린 거다.
이후 벌어진, 준결승전에선 0.03점이란 극미량의 점수 차이로 아깝게 결승 진출엔 실패했다. 그러나 아들은 이 결승 실패가 결코 패배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가쁜 숨을 씩씩 몰아 쉬며 경기장을 퇴장하는 까까머리 녀석의 지고도 웃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3위 단상에 올라 상장과 메달을 받는 환한 아들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은 밤이다.
밤늦게 돌아오는 차 안. 라디오에서 때맞춰 나오는 노래를 우리 부부는 목청껏 따라 불렀다. 행복이 넘쳐 흐르는 눈물을 서로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몸짓이었다. 물 안개 자욱한 부부의 눈가엔 큰애가 그동안 느꼈을 동생과의 상대적 박탈감, 신체의 불리함, 또 3번에 걸친 큰 수술 등을 힘겹게 이겨낸 말 없는 대견함이 녹아 있었다.
아마 내일 저녁엔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녀석의 발걸음 소리부터 틀릴 것이다. 우선 좋아하는 치킨부터 시켜야 할 것 같다.
이런 날은 행복하다는 의미와 뜻을 알 수 있는 날이다. 진짜 행복은 행복 후 같이 따라올 걱정이 없는 게 진짜 행복이다. 하늘에서 돈벼락을 맞는 행복이, 행복이 아닌 이유는 앞서 따라올 걱정이 돈만큼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부부는 이후에 올 걱정이 없는 행복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곧 있을 다음 대회도 걱정하질 않을 것이다. 이번처럼 잘할 거라는 오만한 기대감도 없다. 그냥, 아이를 짓누르던 그간에 속 앓이들을 원 없이 털어 낸 행복한 하루가 지금 여기 있기에 기쁠 뿐이다.
또한, 우리 부부가 이번 성적에 들뜬 건 무엇보다 아이가 그 긴 패배의 터널을 혼자 힘으로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입상의 손맛을 본 사람은 이후에 있을 경기에 마음 대처하는 자세부터 달라진다.
오늘 입상한 짜릿한 쾌감은 아들의 머릿속 언저리에 오랫동안 인각 될 것이다. 야구에서 3할의 고(高) 타율을 한 번이라도 쳐 본 선수는 언제든지 3할을 치는 방법과 느낌을 알고 있는 법이다. 이건 상을 받아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결과의 차이는 곁에서 질리도록 봤기 때문에 자신이 있게 말할 수 있다.
연둣빛 신록에 만개한 꽃가지들이 앞다투듯 봄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마른 나목에 물오르듯 큰애의 꿈에도 이젠 푸른 잎과 가지가 나길 기도한다. 너무 오랫동안 거친 마음을 겪은 아이 이기 때문이다. 산등성을 타고 올라가는 연둣빛 봄이 아름다운 건 시련에 굴복하지 않은 끈기 때문일 거다.
첫댓글 아~ 기분 좋은 . 향기로운 봄소식 이군요. 축하 합니다...()...
지행~~ 아이 둘 잘 키우고 있네 ^^ 축하해. 큰아이에거 더 많은 격려와 칭찬을~~~
앞으로는 결승 아니 우승의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새로운 부모사랑의 한 장을 보는 것같아 기분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