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의 대형 SUV 트래버스를 시승했다. 미국 시장에는 이보다 더 큰 서버번이라는 모델이 있지만 국내시장에서는 5미터가 넘는 대형 세그먼트로 분류되고 있다. 크기를 우선으로 하는 전형적인 미국적 차만들기가 포인트다. 미국시장 기준으로 패밀리카를 표방하고 있는 쉐보레 트래버스 3.6리터 V6 9단 AT의 시승 느낌을 적는다.
쉐보레가 국내 시장에 중형 픽업 트럭 콜로라도와 대형 SUV 트래버스를 동시에 출시하며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 콜로라도 시승기에서 미국시장에서 라이트 트럭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 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SUV의 원조국인 미국시장의 판매 상황에 대해 잠깐 정리하고 넘어간다.
2019년 상반기 미국 신차 판매대수가 841만 7,804대로 전년 동기 대비 21만대 가량 줄었다. 미국 브랜드들은 월별 판매대수를 업데이트 하지 않아 8월까지의 실적은 아직 알 수 없다. 그 중 라이트 트럭이 594만 3,335대, 세단이 247만 4,469대로 라이트 트럭 점유율이 70%에 달했다. 이제 완전히 라이트 트럭 중심의 시장으로 구도가 고착화되어 가는 양상이다.
한걸음 들어 가면 전체 판매 중 미국산차가 642만 9,620대, 수입차가 198만 8,184대가 팔렸다. 그런데 그 미국산차는 일본과 한국, 독일 메이커들의 미국 생산분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그래서 디트로이트 메이커만으로 한정해 보면 GM 141만 1,185대, 포드 118만 539대, 그리고 FCA 110만 1,660대까지 합하면 369만 3,384대로 디트로이트 메이커들의 전체 시장 점유율은 약 43%다.
다시 GM의 판매 현황을 살펴 보면 라이트 트럭 117만 9,656대, 세단 23만 1,529대로 라이트트럭이 80%가 넘는다. 이런 비율은 포드도 마찬가지이다. 국내에 수입되는 쉐보레 브랜드로만 보면 전체 판매가95만 934대로 그 중 베스트 셀링카가 이쿼낙스로 17만 4,175대이며 두 번째가 오늘 시승하는 트래버스로 7만 2,375대다. 가장 많이 팔린 세단으로는 말리부가 6만 5,171대이므로 미국시장의 현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GM의 라인업 구성을 살펴 보면 SUV가 뷰익 브랜드에 3개, 캐릴락에 6개, 쉐보레에 10개, GMC에 7개 등 26개, 세단은 뷰익 4개, 캐딜락 5개, 쉐보레 10개 등 19개다. 그러니까 판매 구조상으로 보면 세단에 너무 많은 라인업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브랜드들은 세단 라인업을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SUV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연비와 배출가스 규제를 감안하면 이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성이다. 그런데도 라이트 트럭이 많이 팔리고 있는 배경에는 저유가와 트럼프 행정부의 연비규제 완화정책이 있다. 아직 최종 결정은 나지 않았지만 다음 대선에도 이슈화할 것으로 보여 미래를 점치기는 쉽지 않지만 미국의 자동차시장은 그 나름대로의 특성으로 인해 우리의 기준으로 분석하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런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회사의 한국 자회사인 한국 GM은 여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그 돌파구를 찾기 위해 들고 나온 것이 미국산 라이트 트럭 콜로라도와 트래버스다. 특이하게도 넓다란 도심의 주차장이 있는 미국과 달리 도심에서는 기계식 주차장에도 주차를 해야 하는 한국시장에서 최근 대형 SUV가 많이 팔리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맞물려 내수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시장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다.
Exterior
트래버스는 대형 크로스오버다. 이 표현 자체가 평범하지는 않다. 크로스오버는 주로 중소형 SUV에 부여되는 용어다. 소형 트럭 수준의 적재 용량과 8인승까지 가능한 차체를 가진 모델을 크로스오버라고 하는 것이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SUV의 성격이 21세기 들어 많이 변했다는 얘기이다. 지프와 랜드로버가 바디 온 프레임을 버리고 모노코크 플랫폼을 베이스로 하는 차를 만드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앞바퀴 굴림방식을 기본으로 하는 모델이라는 점도 성격 규정에 한 몫을 한다. 더 넓게 보면 미니밴의 성격까지도 갖추고 있다.
콜로라도 위에 실버라도가 있고 트래버스 위에는 서버번이 있다. 그러니까 트래버스보다 더 큰 SUV가 미국시장에는 있다. 콜로라도는 같은 쉐보레 브랜드이지만 앞 얼굴 등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르다. 그에 비해 트래버스는 말리부 등으로 익숙한 앞 얼굴의 듀얼 포트 그릴에서 알 수 있듯이 세단의 이미지와 더 가깝다. 기본 트림은 HID헤드램프인데 시승차는 9개의 LED램프로 구성된 D-옵틱 헤드램프. 렌즈에 각을 주고 슬림하게 한 것만으로 분위기는 선대 모델과 많이 다르다. 안정적이면서도 쉐보레만의 그래픽이 강조되어 보인다.
그러나 측면에서의 이미지는 크기와 더불어 묵직함이 우선 와 닿는다. 어깨를 중심으로 한 캐릭터 라인과 웨이스트 라인을 크롬 몰딩으로 한 것 등에서는 세단의 기법이 보인다. 긴 휠 베이스로 인해 승객석 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길다. 그럼에도 3열 시트 부분의 C필러와 쿼터 글래스의 처리로 균형을 잡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차체의 크기가 강조된 것도 사실이다. 사각형에 가까운 휠 아치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험로 주행보다는 크기를 강조하기 위함으로 읽힌다. 앞 도어 패널 위쪽에 TRAVERSE라는 레터링을 삽입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뒤쪽에서도 선대 모델보다 슬림해진 리어 컴비내이션 램프를 엑센트로 하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안정적인 이미지를 중시하는 타입이다. 차체 크기에 비해 테일 게이트의 글래스 비율이 크지는 않다. 테일 게이트는 운전석 도어 포켓에 있는 다이얼 타입 버튼으로 열고 닫을 수 있다. 3/4 정도만 열 수도 있으며 핸즈프리 기능도 있다. 대형 SUV답게 전체적으로 하부 가니시의 비중이 크다. 트림에 따라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RS트림과 레드 에디션의 경우 붉은 색과 하이그로시 블랙 컬러 등을 적용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Interior
인테리어도 크기가 우선이다. 넓이와 길이 모두 넉넉하다. 그러면서 다른 대형 SUV에서도 언급했지만 실제로 이런 공간을 얼마나 활용할까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냥 흔한 말로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지도 아주 오래됐다. 그런 사용 비율에 대한 구체적인 피드백은 없다. 전체적인 레이아웃은 콜로라도나 말리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센터페시아 가운데 8인치 터치 스크린 디스플레이창과 좌우에 에어 벤트를 배치한 것 등은 같다. 다만 콜로라도가 좀 더 스케일이 큰 선을 사용한다면 트래버스는 섬세한 터치의 말리부와 중간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래도 콜로라도와 마찬가지로 아날로그 감각이 더 강하다. 센터페시아의 패널 전체를 위로 올릴 수 있게 해 그 안으로 별도의 수납공간을 만드는 것도 오랜만에 다시 보는 것이다. 그 아래 오디오와 에어컨 컨트롤 패널 등의 그래픽은 말리부와 같다. 버튼류의 배열과 조작감은 좋다. 스마트폰 충전 기능도 있다.
두툼한 림의 4스포크 스티어링 휠과 그 안으로 보이는 4.2인치 수퍼비전 클러스터는 콜로라도와 같다. 가운데 위 연료계와 수온계의 패널 그래픽만 약간 다르다. TFT 액정 디스플레이창에 표시되는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비게이션 항목도 있는데 위치의 도로명 정도만 표시된다.
실렉터 레버 주변의 메탈 트림 패널도 콜로라도와 미세한 차이는 보이지만 크게 특별한 것은 없다. 콜로라도가 그렇듯이 약간은 올드한 느낌이다. 실렉터 레버 자체의 모양은 스틱형으로 머리 부분에 변속기의 수동 모드 조작 버튼이 있다. 컵 홀더 뒤쪽에는 트랙션 모드 셀렉트 다이얼이 있다. 콜로라도에서도 봤던 차 뒤쪽을 카메라로 촬영해 보여 주는 ECM룸미러도 채용되어 있다. 센터콘솔박스 용량도 아주 크다. 커버를 들어 올리면 별도의 트레이가 있다.
시트는 7인승. 앞 시트는 8웨이 전동 조절식. 히프 포인트는 차체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SUV로서의 높이는 갖추고 있다. 시트의 착좌감이 콜로라도보다는 부드럽다. 가죽 시트의 착좌감은 안락한 편이다. 쿠션 부분의 감각도 부담이 없다. 2열 시트는 캡틴 시트라고 부르는 독립 시트다. 가운데 워크스루가 있다. 여기에서는 3미터가 넘는 휠 베이스를 가진 차의 장기가 그대로 살아난다. 너무 크다고 느낄 정도다.
쿠션 왼쪽에 있는 레버를 당기면 슬라이딩과 함께 풀 플랫이 되며 3열 시트로의 탑승공간이 나온다. 3열 시트도 동급 모델들보다 넓다. 머리 공간은 충분하고 무릎 공간도 답답하지는 않다. 성인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다만 시트 쿠션이 1,2열 시트와 달리 얇아 장거리 주행에는 불편할 것 같다. 그보다는 2열 시트와 함께 풀 플랫이 가능해 트렁크쪽부터 편평하게 펼쳐지는 공간으로의 활용이 많을 듯싶다. 3열 시트를 세운 상태에서의 트렁크 용량은 651리터이고 접으면 1,636리터. 트렁크 플로어 커버를 들어 올리면 90.6리터의 적재공간이 또 있다. 앞뒤 도어 포켓 부분과 3열 시트 좌우에도 크고 작은 수납공간이 있다.
Powertrain & Impression
엔진은 3,564cc V6 DOHC 직분사 가솔린 엔진으로 최고출력 314마력, 최대토크 36.8kgm를 발휘한다. 변속기는 하이드라매틱 9단 자동변속기. GM은 변속기를 자체 개발 생산하고 있으며 10단 변속기까지 있다.
구동방식은 전자제어식 4WD로 앞바퀴 굴림방식 기본으로 2WD와 4WD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여기에 트랙션 컨트롤 기능인 통합 오프로드 모드와 견인 모드 등도 채용되어 있다. 트레일러나 캬라반을 견인할 때 사용하는 견인 모드는 견인 상황에 따라 변속 패턴과 앞뒤 토크 배분, 스로틀 민감도를 제어한다. 이를 위한 것으로 히치 가이드 라인, 히치 뷰 모니터링 시스템 등도 있다. 트레일러를 견인하는 것이 일반화되지 않은 한국시장에서 앞으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정지 상태에서 풀 가속을 하면 레드존 직전에서 시프트 업이 이루어진다. 55km/h에서 2단, 85km/h에서 3단 115km/h에서 4단으로 변속이 진행된다.
발진 감각은 매끄럽다. 특히 그렇게 느낀 것은 얼마 전 시승한 콜로라도로 인한 것이다. 엔진 성능은 대등한데 중량이 콜로라도보다 150kg 정도 가볍다. 출력 대비 중량이 6.5kg/ps 이므로 파워는 넘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가속페달의 응답성은 약간 유격이 있다. 오른발의 조작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약간 깊게 눌러 주어야 반응을 하며 회전계의 바늘과 속도계의 바늘도 그만큼 간극이 있다.
변속기의 반응도 무난하다. 평탄한 노면에서는 80km/h에서 9단으로 시프트 업이 가능하며 그 상태에서 시프트 히스테리 없이 가감속이 된다. 차체 크기에 비해 토크가 넉넉하지는 않는데도 시프트 다운이 자주 발생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전진한다.
엔진의 소음도 불만이 없는 수준이다. 콜로라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가속시 부밍음은 제법 크게 느껴진다. 미국시장에서의 감각으로는 평범한 수준이지만 까다로운 한국시장의 사용자들에게는 그렇게 받아 들여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오른발에 힘을 주면 전형적인 미국차의 특성이 나타난다. 날카롭지 않고 여유 동력을 중시하는 타입이다. 그러면서도 속도계의 바늘은 배기량만큼 충분히 상승한다. 중저속 영역에서는 토크감을 중시하는 타입에 익숙한 운전자라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서스펜션은 앞 맥퍼슨 스트럿, 뒤 5링크 코일 스프링. 댐핑 스트로크는 길다. 노면의 요철은 대부분 흡수하고 지나가는 타입이다. 일상적인 패밀리카로 사용하는데는 필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콜로라도보다는 훨씬 매끄러운 거동이다. 다만 고속 영역에서의 안정성은 세단과 차이가 난다.
록 투 록 3.2회전의 스티어링 휠을 중심으로 한 핸들링 특성은 2WD 모드에서는 언더 스티어. 무게 중심고가 높은 차다운 거동이 나타난다. 원심력이 심하지는 않지만 하체가 타이트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스티어링 휠의 응답성은 예상보다는 빠른 편이다. 다만 유턴을 할 때 변속기와 엔진의 매칭에 부조화가 나타난다. 가속 페달을 밟고 회전을 하면 CP 지점에서 잠깐 반응이 없다가 다시 연결이 된다. 통상적인 코너링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현상이 헤어핀에서는 나타난다.
안전장비로는 1열 좌우 시트 사이에 GM 이 최초로 선보인 센터 에어백이 채용되어 충돌시 운전자와 동승석 탑승자간의 충돌로부터 보호해준다. 전방 충돌 경고 시스템과 후측방 경고 시스템, 전방 보행자 감지 및 제동 시스템 등이 기본이다. 하차시 뒷좌석에 탑승객이 있을 경우 알려주는 기능도 기본이다.
ADAS장비는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이탈방지장치 등이 채용되어 있다. 차선 이탈 방지 기능은 시소하는 타입으로 차로 중앙을 유지 하지는 않는다.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면 약 5초 후부터 붉은 색 스티어링 휠 일러스트가 뜨고 경고음이 울린다. 약 30 초 가량 그냥 전진했는데 기능이 해제되지는 않았다.
SUV에 대한 시선은 미국과 한국이 많이 다르다. 미국에서 트래버스는 스테이션 왜건 개념의 패밀리카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한국시장에서는 같은 컨셉의 포드 익스플로러가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쌍용 G4렉스턴과 기아 모하비도 있었지만 시장이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대 팰리세이드가 등장하면서 덩달아 주목을 끌고 있다. 쉐보레 트래버스는 어떤 이미지로 시장을 개척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