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녀석들이, 그 중에서도 약간 싹수가 변색 되려고 몸부림치던 녀석들이 우리반에 있었다.
계단을 올라 교무실로 향하는 예쁜 여선생님 꽁무니를 작은 손거울을 품에 감춘 채 따라가던 녀석들....
솜털이 풀잠자리알처럼 살랑거리던 우리와는 달리 녀석들의 코밑엔 금방까지 군고구마 까먹던 애들인양 제법 시커먼 콧수염들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녀석들은 등교후면 '나 어떡해'와 당시 잘나가던 장계현의 노래들을 다리를 떨어가며 마치 선민처럼 불러댔다.
그 녀석들은 당시로선 우리학교에서 꽤 잘나가던 가요계의 진보였다. 그러나 나는 녀석들과는 판이한 노선을 걷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팔자에도 없는 팝송에 완전히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76~77년도는 내 인생의 시련기로.. 마음을 담아둘 공간도 없었고 또 세상을 살아갈 용기도 별로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무렵 잘 나가던 가수들 중에서는 특히 그룹 아바와 레오세이어가 기억에 남아있는데, 서울서 대학 다니던 친구형이 방학때면 가방 가득히 채워서 가져오곤 했던 LP들을 그 형이 없는 틈을 타 친구녀석과 듣고 또 들어보곤 했다.
등하교 때에는 When I need you를 흥얼 거리며 거리의 지루함을 잊었고 SOS의 자지러지는 화음과 '바카라' 두 걸들의 뇌쇄적인 눈빛을 곱씹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 시절 우리집에는 보무도 당당한 독수리 별표 천일전축이 있었다. 제법 값이 나가던 것으로 아마 당시 우리동네에서는 제일로 삐까뻔쩍 했던 것 이었으리라. 나는 매일 닦고, 기름치고, 조이며 신주단지처럼 그 전축을 애지중지 했다.
새 레코드를 사서 걸고 바늘을 놓을 때의 그 황홀함은 경험이 없으면 도저히 공유하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비밀스런 감정이다.
LP특유의 잡음은 오히려 중독성 있는 마약처럼 나의 두 귓가를 지배해 왔다. 그래서 사고 또 사고 없으면 구해서 사고 구해도 없으면 일일이 찿아다니면서 음반을 샀다. 300원에서 500원 하던 빽판(복사판)을 사기 위해 온 광주시내를 뒤지고 다닐 때도 있었다.
중딩에서 고딩으로 이어진 요놈의 취미생활덕에 사친(사귀어서 친한)여동생들에겐 빵 한조각도 사주지 못했다.
그래도 날이 갈수록 두께를 더해가는 음반의 양과 들을수록 일취월장 해가는 팝 지식이 당시의 나에게는 유일한 자부심 이었다.
그처럼 위용을 자랑하던 독수리 천일전축도 세월앞에서는 대책없이 차츰 고물이 되어갔고 나를 실망시키는일이 비일비재 해졌다.
잦은 고장과 점점 음질이 떨어져 가는 스피커는 나로하여금 모종의 결심을 하도록 만들었고 그 즉시 새로운 전축을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모친을 설득하기위해 최백호 독집과 모친이 특히 좋아하는 세미클래식이나 폴모리악단 연주앨범을 구입해서 틈나는대로 같이 듣고서 전축의 문제점에 대해 토로했다.
고3 마지막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드디어 모친은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새 전축을 구입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셨고 내 마음은 하늘을 날았다. 이젠 새로운 기기로 그 동안 피 땀 흘리며 모아놓은 명반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겠구나 라며...
방학중 치르는 중간시험을 보기 위해 광주로 올라와 이틀을 머무르며 시험을 치른 후 집으로 낙향했다. 큰방의 한 구석이 일순 허전함을 느끼는 순간 뒤에서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마침 임자가 있어서 전축 팔았다. 값도 잘 쳐주고..그 뭐냐!!..광주서 대학 댕긴다던 미숙이삼춘 ..니도 알지? ...차암!!.....언제 새 것 사러 갈끄나?"
"근데 ..레코드장에 있던 제 판들은 모두 어디다 치워 놓으셨어요?
"아! 그거~ 새것은 저기다 치워놓았고....(최백호 앨범이 눈에 들어온다) 나머지 헌 것은 짐 될까 싶어서 그 총각 다 줘 버렸다.....싫다고 할줄 알았더니 얼른 가지고 가드라야아~!! "
" 꼬르르르............륵 (기절하는 소리)
그렇게해서 나는 최측근의 여자로부터 최초의 배신을 경험했다.
여자라고.... 나이드셨다고...나와는 취향이 다르다고 절대 무시하지 말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대한 설명 하기 바란다.
저 건 나에게 굉장히 소중한 거니까 절대로 내다 버리지 말라고.........그러면 어머니와 또 아내나 남편과는 서로 섭섭한일이 결코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첫댓글 소중한 교훈 주시네요~ 그런데...헉~ 그 아끼던 LP판들이 싹 없어졌으니 하아~ 정말 몸에 힘이 다 빠졌겠습니다. 반딧불님이 써 놓으신 이 글이 저를 추억의 시간으로 돌려 놓아 주셔서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언제 한번 저도 추억을 더듬어 써 볼께요~
아바.왼 아이 미드유. 올간만에 듣는 추억의 가수와 팝송.. 그당시에 천일전축이 있어다니 목에 힘줄만 했겠네요
When I Need You - leo sayer
그당시 종로음악 다방에서 신청곡 18번 ... Long Long Time / Sailing 신청곡 을 들으며
여학생들을 꼬시던 그시절이 그립네요...아... 옛날이여
명까페 공식 디제이 반딧불님께 추억의 팝송 신청합니다.. 꼭 들려주세요 ~~~
Hotel California (Eagles)
The Temple Of The King ( Rainbow)
같이 듣고싶은사람
개봉동에... 명순이
구파발에... 경옥이..
캬 좋은 것만 신청했네 가시나들 이름까정
차림표형님, 문제는 저의 컴터실력이 별루라서요 ㅋ 찿아보겠습니다. ^^
아바 워터루도 드,ㄹ어면서 청바지에 통기타 차림에 첫싸랑 생각에 ㅋㅋㅋ 안봐됴 비됴 넹 모오
촌스럽게 워터루가 머야...수준좀 높여..
음악은 제가 많이 소장하고 있죠...파일로....약 40기가정도....
참 오랬만에 들어보는 빽판 ㅎㅎ
반딧불님! 혹시 지역이 어디신지요? 순천?
네~...맞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