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10 월 유신으로, 산림청을 강제로 퇴직 당하고, 우리 가족은 월대산 밑 남대천 하류 부근에서 살았다.
그 시기가 아버지와 가장 가까웠던 때였다. 아버지는 늘 집에 계실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로는 드믈게 양계장을 하여 닭을 5000 마리나 키웠다.
그 당시는 기계화 설비가 없어서, 닭 모이를 직접 주었다. 그러다 보면, 모이를 향해 달려오는 닭을 밟기가 다반사였다.
어느 날, 그중 한 마리가 아버지 발에 밟혔고, 목이 삐뚤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버린다고 했다.
난 그 닭을 몰래 숨겨서 키웠다. 측백나무 숲에 작은 집을 지어, 매일 먹이를 주었다. 닭은 예상외로 잘 자라 주었다.
어느 날, 저녁 식사에 닭고기가 나왔다. 늘 먹는 닭고기여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측백나무 숲에 닭 한 마리가 도망가서 숨어 있길래 잡았다.”
아버지의 말에, 나는 숟가락을 던지고 나와서 하염없이 울었다.
그리고 가출을 했다. 월대산으로 올라갔다. 산 아래 집이 보이고, 남대천을 지나서 강릉 시내가 발 아래였다.
다시는 집에 들어가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울면서 산 아래 집을 내려다 보았다.
추워서, 일본놈들이 파 놓은 벙커에 들어갔다.
벙커의 작은 문에서도 집이 내려다 보였다.
그런데, 아무도 나와보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아버지가 나와서 나를 찾는 슬픔을 주고 싶었는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렇더라고 절대로 집에 들어가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학교도 가지 않고, 서울로 가서 취직을 해서 혼자 살기로 마음 먹었다.
아마 잠이 든 모양이었다.
너무 추워 일어났더니, 사방이 깜깜했다.
집도 보이지 않았다.
강릉역에서 서울까지 갈려고 마음 먹었는데, 기차비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일단 집에 가서, 엄마 돈을 훔쳐야 한다는 묘안이 떠올랐다.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니? 추운데 빨리 자라.”
“돈이 없어 왔단 말이야!”
“쟤가 무슨 소리 하는거야?”
그 날 밤 난 깊히 잠들었다. 너무 추웠나 보았다.
다음 날, 서울로 가지 않았다.
난, 엄마 말대로 양은냄비 임이 분명했다.
끓다가도 금방 식어버리는.
그래도 언젠가는 집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양은냄비가 아님을 엄마에게 증명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