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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내려와 길을 걷다가 아주머니가 지나간다. 인사를 하고 나 역시 발길을 재촉하니 맞은편에 파출소가 있다. 경찰이 문을 열고는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냐고 하기에 섬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하니 커피 한 잔 하고 가란다. 이곳은 해양경찰이 아닌 드물게도 일반 경찰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근무를 한단다. 노인들만 살아서 경찰이 필요가 없을 것 같은 이런 섬에도 경찰은 필요하단다. 경찰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된단다. 정년퇴직이 몇 년 남지 않은 경찰관이었다. 파출소 안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경찰관도 이곳에 온 지 겨우 보름도 채 안된단다. 광주가 집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광주에서 근무하다가 최근에 이곳에 발령을 받아 3일을 근무하고 난 후 하루 비번날에 광주로 간단다. 그래서 이곳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편이다. 그래도 이 추운 날에 커피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참 좋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혼자 있어서인지 외로운 마음에 사람을 더 붙잡아 둘려고 하는 것을 커피 잘 마시고 간다는 인사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보니 어언 12시가 넘어버렸다. 20여 분이 다 되어가는 셈이다. 그리고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파출소 바로 왼쪽으로 길이 나 있었다. 오르막길이라 길은 얼어 빙판길이라 조심스레 올라간다.
파출소 바로 뒤편에 조립식 건물로 된 교회가 있는데 바로 모도교회다.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주 깨끗한 편이다. 이곳을 지나 밭이 있는 곳으로 길을 찾아나선다. 도둑, 거지, 대문이 없는 관계로 제주도의 풍습인 정낭이나 정주목과 비슷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학교 건물을 찾았다. 두 개의 교사를 가진 청산중앙초등학교 모도분교장. 너무나 조용하다. 역시 1명의 선생님과 3명(남2, 여1)의 학생만이 모도분교를 지키고 있다. 지난 1995년에 본교와 통폐합되었다. 그때 소모도에 있는 모북분교장도 같이 폐교되었다. 그리고 그 전인 1986년에는 모동리에 있었던 모도국민학교가 분교로 격하되어 청산중앙(현 청산)초등학교로 통합되었다.
몇 개의 운동시설이 전부인 운동장은 깨끗한 편이지만 화단 속에 있는 이순신과 이승복 동상은 파란색으로 방치되어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고 말 조형물로 전락했다. 여기는 이순신 동상 옆에 거북선도 있다. 학교 담벼락 밑에는 우물터가 있다.
학교에서 나와서는 건너편으로 갈려고 밭 사이를 걷다가 더 이상 길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서서 나간다. 그리고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 역시 주변은 밭이 많은 곳이다. 실제로 면적은 전 35㏊, 답 22.5㏊, 입야 25.5㏊ 등 총 312.5㏊이다.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으며, 임야 면적이 전체 면적의 82%를 차지한다. 생업 형태는 대부분 반농반어로 농산물은 고구마, 감자, 쌀 등이 주로 생산된다. 마늘·콩·보리·참깨 등도 약간 생산된다. 연근해에서는 멸치·도다리·삼치·숭어·도미 등이 잡히며, 김·미역 등의 양식업과 자연산 굴·톳·천초 등이 채취된다.
외진 낙도인 탓에 독특한 풍습도 남아있다.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에는 산신제를 지내는데, 제주는 1개월 전부터 외도를 금하고 정성을 드려 만수무강과 소원성취를 빈다. 또 마을에서 흉한 일이 발생하면 제주가 산신제를 잘못 모셨기 때문이라고 탓하고 산신제를 다시 지낼 정도로 믿음이 강하다.
해안길과는 달리 이곳에는 골목이 아주 좁은 길이다. 오토바이도 제대로 다닐 수 없을 것 같은 골목길. 위쪽에 난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교회 건물이 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건물은 아니지만 유리창이 깨진 채 방치된 폐허가 된 건물이다. 그 옆으로 밭이 있고 그곳에 서면 마을 아래가 다 보인다. 그리고 이곳을 중심으로 바로 마을이 붙어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에서 다시 마을 골목길로 해서 내려가면 선착장에 닿는다. 마침 가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소모도 가는 배를 섭외를 해두었으니 바로 오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바로 선착장으로 내려가니 아까 포구 입구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 아저씨가 배를 섭외해준 것이다. 경찰아저씨도 나와 있었다. 다른 아저씨가 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은 12시 반을 향하고 있었다.
배에 오른 후 대모도 모서리 마을을 바라본다. 모동리와는 전혀 상반된 분위기를 느낀다. 선착장도 그렇고 마을 분위기도 전혀 다르다. 배는 아주 작은 FRP선이다. 세 명이 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1인용 배에 세 명이나 탔으니. 나는 안쪽에 쪼그려 앉아서 가야 했다. 잘못하면 머리가 천정에 부딪치거나 할 정도로 아주 좁은 공간이다. 실제로 몸이 고정되지 못하고 한 쪽을 꼭 붙잡고 가야 했다. 머리에 손을 얹은 채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공간. 그러기를 10여 분을 달린다.
천연자연 그대로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작은 띠 섬, 소모도(小茅島)
완도에서 남으로 6마일 거리에 있는 작은 섬 소모도. 소모도에 닿은 것은 12시 44분. 방파제에 뛰어오른다. 방파제 왼쪽 바깥쪽에는 삼발이가 심어져 있다. 이곳 포구는 자연 그대로다. 좌우 방파제들은 길이가 짧고 대신 만쪽에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길 필요도 없다. 그리고 안에 정박한 배도 그다지 많지 않다. 동쪽 방파제가 약간 길 뿐 서쪽에는 철부선이 닿는 경사제가 있다. 하루에 한 번 다니는 교통편으로 육지나들이가 쉽지 않고 완도에 나가면 2시간 만에 모든 일을 해결해야만 당일 소모도에 들어올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룻밤을 완도읍에서 꼬박 지새워야 한다.
방파제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 쪽에 창고로 전락한 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 왼쪽으로 바로 마을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이곳은 경사가 아주 심한 그러면서 폭도 좁은 길이다. 거의 급경사의 산길 수준이다. 오른쪽으로 경사도가 심하긴 하나 그런대로 폭이 넓은 길이 있다. 그 가운데에 리프트가 있다. 물건을 심고 올릴 수 있는 리프트다. 여수 광도와는 또 다른 운반장치다. 완도에서는 유일하게 있는 에스켈레이트다. 단 사람은 탈 수 없고 물건만 올린다.
섬이 작고 마을 전체가 언덕에 위치해있어 차량이나 농기구를 쓰기 힘들며, 지금도 육지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지게가 동원되기도 한다. 곡식을 로프에 묶어 등에 짊어지는 것이 운반수단이다. 또한 경운기가 다닐 수 없을 정도의 좁다란 마을길이다 보니 모든 것이 사람들의 힘을 빌려야 하는 형편이다.
그리고 이곳은 마을과 선착장이 상당히 거리가 있다. 높이도 해발이 제법 높은 고지대에 속한다. 왼쪽 좁은 길로 올라가는 입구에 돌기둥이 하나 있다. 반공구호가 있는 돌기둥이다.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좌우로 이어지는 길과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선착장으로 가는 큰 길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 리프트가 있고 그 앞에 모북리 새마을 창고가 있다.
이곳은 면적이 좁은 탓에 길도 골목길로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그런 너비다. 거기에다 바깥에서는 보기 힘든 숨어있는 집들이다. 대모도처럼 주로 돌담으로 이곳의 강풍을 견뎌내고 있기도 하다. 청산도를 중심으로 한 이 지역 섬들이 대부분 돌담으로 담을 만들어 바람을 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전혀 개발한 흔적이 없고 70년대 시골풍경을 간직하고 있어 마치 여느 민속촌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언덕배기 수풀사이로 들어선 집들의 모습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감어린 풍경이다.
면적은 0.078㎢에 불과한 조그마한 섬이다. 마을은 북쪽 해안 만입부 고지대에 모여 있으며 주민 대부분이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현재 23가구 31명만이 소모도에 남아있고, 70살이 넘은 고령의 노인이 대부분이다.
사람이 살고 있음인지 어느 집에 들어가니 불을 떼고 있다. 나무로 불을 떼고 있는 모습에서 시골냄새와 더불어 온기를 느끼게 한다. 그렇지 않아도 엄청 추운 날씨를 보이고 있는데. 여전히 섬 안에는 눈들이 녹지 않은 상태로 하얀 세상이 되어버렸는데.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남서쪽으로 샛길이 있어 그 길로 해서 언덕을 넘어간다. 등대를 찾아가는 것이다. 등대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물탱크 시설이 있는 부근에 하얀 등대가 외로이 섬을 지키고 있었다. 등대에서의 조망은 주변이 숲으로 되어있어 접근이 힘들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다시 샛길로 해서 내려오면 마을 골목길. 이곳은 마을 골목뿐 넓은 공간은 없다. 집집마다도 넓은 마당을 가진 곳이 없을 정도다. 그나마 곳곳에 우물터가 있어 이곳이 물이 많은 곳임을 알게 한다. 실제로 이곳은 물이 풍부한 섬이기도 하다.
골목길을 따라 남동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마을 끝자락에 학교가 있다. 그 입구에도 제법 큰 규모의 우물이 있다. 물론 이 학교 역시 지금은 폐교된 학교다. 학교이름은 ‘모북초등학교’. 역시 학교 건물은 지난 1966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건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에서 사들였는지 교회시설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 옆에 교회가 있다. 그것도 대모도에서 봤던 ‘에덴교회’다. 교회 건물은 아주 작다. ‘모북’은 행정명으로 소모도를 가리킨다.
아치형 철문을 들어서면 아담한 크기의 운동장이 나타난다. 운동장 가운데에 시설물을 적치해두고 있다. 한 개인의 별장 정도로 생각해도 좋을 듯싶은 규모다. 여유만 있으면 이런 곳에 별장을 만들어두고 활용해도 좋을 듯. 그리고 한 쪽에는 팔각정의 쉼터가 있고. 여기서 바다를 바라보면 저 멀리 완도와 신지도가 보인다. 여기서 완도까지는 그리 짧은 거리는 아니다.
학교에서 조금 더 걸어 나오면 오른쪽에 마을회관 겸 경로당이 있다. 그곳에 들어간다. 목사님이 거기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대여섯 분이 모여 있다. 그런데 대부분이 얼굴들이 비슷비슷하다. 같이 늙어가서 서로 비슷해지는 것일까. 모두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추위를 달래고 있었다. 전기장판으로 추위를 이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전기는 그런대로 풍부한 편이다.
사실 대모도와 소모도 간은 보기에는 가깝게 보여도 2km에 이르는 거리다. 그래서 1.5km인 구간만 가능하던 철탑이 이어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대모도에서 소모도로 전기공급이 24시간 이루어진다. 이 구간의 철탑 중 1기는 높이가 147m에 달해 국내 철탑 중 가장 높은 철탑으로 기록된다. 그게 지난 2004년의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김밥을 먹기로 했다. 이미 시간은 1시를 넘기고 있었다. 할머니가 김치를 제공한다. 김밥을 다 먹고 나니 이번에는 커피를 제공해주신다. 없는 것은 주지 못해도 있는 것은 준다고 하면서. 나중에 아저씨가 들어왔는데 그나마 젊은 측에 든다지만 그래도 50대 중반이 넘는다. 그 아저씨를 통해 이곳 사정을 전
해 듣는다.
면적 0.78㎢, 해안선 길이 8㎞의 ‘소모도(小茅島)’는 1620년경 황씨가 처음으로 입주하였다 전하고 있으며, 그 후 최씨, 서씨 등 여러 성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모도의 북쪽에 있는 섬이라 하여 ‘모북리’, 혹은 ‘소모도’라 칭하였다.
이곳 역시 대모도처럼 마을 전체 90% 이상이 고령의 노인들이다. 그러나 주위에 어장이 좋아 그것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곳 사람들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의 섬 어촌계에서 일정 기간 대여해서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쌀농사는 이 섬에서 지을 수가 없으며 소득이라곤 밭에 치자나무를 심어서 치자를 생산하는 것이 고작이고 농사라고 해봐야 집에서 먹을 수 있는 텃밭수준이다.
완도의 다른 섬들처럼 김 양식이나 전복 양식을 하는 어가는 소수에 불과하며 입지조건도 맞지 않는다고 한다. 소모도는 주섬인 대모도와 함께 김 양식의 최적지로 알려져 있으며 청정해역에서 잡히는 은빛색의 멸치가 특산물이며 돔, 우럭, 삼치 등의 낚시터로 유명하다. 현재 김 양식도 하고 광활한 김발 장소를 팔아서 엄청난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마을회관에서 나온 것은 2시가 넘어서였다. 소모도에서 2시 반에 배가 있다고 해서 그 배에 맞추기 위해서 였다. 그 배는 완도에서 출발하는 배인데 완도에서 2시에 출항한다고 한다. 완도항에서 오후 2시에 출항하며 여서도를 가는 여객선은 하루 한 차례 섬사랑 7호가 소모도, 대모도, 청산도를 경유해 여서도까지 운행하며, 소모도에서 완도항으로 나오는 여객선은 오전 10시 30분에 있다. 따라서 2~3시간 동안 볼 일을 보고 들어와야 한다. 이곳 주민들은 하루 2차례라도 교통편을 늘렸으면 하지만 군에서는 소모도, 대모도, 여서도 뱃길 이용자들이 적어 경제성 때문에 운행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골목길을 이곳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열심히 치우고 있었다. 일종의 제설작업이다. 이곳 역시 눈이 많이 오는 지역으로 이런 일이 부지기수란다. 수고하세요! 라는 인사를 남기고 골목길을 빠져나온다.
나오면서 바닷가를 보노라니 주변에 나무들이 많아 방풍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실제로 이곳에는 후박나무 군락이 섬을 에워싸며 구실잣밤나무, 해송, 생날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정월 초하루에는 마을의 평온과 풍농, 풍어와 주민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며, 효자이야기의 설화가 전해진다. 더불어 고지대이다 보니 이곳에서는 맑은 날에는 제주도 한라산, 대모도와 청산도 여서도가 그림처럼 펼쳐지며 완도의 다도해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철부선이 닿는 선착장으로 가니 엄청 춥다. 시간을 보니 2시 20분. 배가 오기까지는 10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주변에는 추위를 피할 곳이 없다. 이곳 철부선이 닿는 경사재에서도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참으로 부지런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아까부터 따라온 나이든 남자가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물건이 온다기에 나왔단다. 연신 뭐 볼 거 있다고 이곳에 왔느냐 타령이다.
이곳 전신주에 나타난 도로명 주소는 ‘소모도길’로 ‘1번에서 51번’까지 있다. 여기서부터 마을이 시작된다는 의미겠다. 여기서 마주 보이는 곳이 바로 완도 본섬이다. 오른쪽 지점에서 배가 올 것이라 한다. 물살이 제법 세다. 시간은 계속 가는데 추위는 그칠 줄 모른다. 그런데 이미 10분이 훌쩍 지났는데도 배는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2시 35분. 오른쪽에서 하얀 배가 들어오는데 철부선은 아니다. 해양경비함인가 했는데 배 선상에 병원표시가 되어있다. ‘전남 511호’. 이른바 병원선이라고 불리는 수상 병원이었다.
이 병원선은 진료소가 없는 섬 마을을 찾아다니며 환자들을 치료해주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섬에는 웬만한 섬에는 있는 보건진료소가 없었다. 국내의 병원선은 모두 다섯 척으로, 1969년부터 등장했다. 그 중 도서 지역이 많은 전라남도에만 두 척의 병원선이 있으며 1년 365일 중 태풍이 부는 날을 제외하고 섬 주민들을 찾아가는 병원선에선 진료에서부터 약까지 모두 무료라고 한다. 공중보건의, 간호사, 선장 등 이 병원선에 일하고 있는 관계자는 17명. 전남의 경우, 병원선이 2척이나 있지만 찾아 가야 할 섬만 192개. 이렇다 보니 2~3달에 한 번 정도 밖에 찾아갈 수 없다.
물결이 심한 해상에서 배가 휘청거린다. 그런 가운데 선미에서 작은 보트가 내려온다. 이곳은 항구가 없어 병원선에서 작은 배를 보내, 섬 주민들을 싣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보트에는 두 명의 남자가 타고 있다. 그리고는 포구 안으로 들어선다. 뭐 하시는대요? 하고 물으니 환자를 진료하려고요 한다. 그런데 보트에는 진료 도구는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홍성권.
마침 저기 멀리서 배 한 척이 들어온다. 바로 철부선이다. 병원선이 잠시 자리를 피해준다. 그리고 철부선이 닿자 배에 올라탄다. 이미 2시 40분이 넘은 시각. 이 배가 완도에서 소모도로 오는 마지막 배다. 단 한 차례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하루 한 차례에 불과한 교통편과 섬의 위락시설이 전무한 탓에 외지사람들은 왕래가 적어 섬은 늘 적막감에 쌓여 있다. 이곳 주민들은 매일 먼 바다를 응시하며 행여 배가 지나가면 그리운 가족이나 귀한 손님이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자식들은 이 섬을 떠나면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명절이 되어도 동네에는 고작 2~3명의 자식들만 이곳을 찾아올 뿐이고 나이 드신 부모들이 육지로 자식을 찾아 나선다고 한다.
배는 대모도를 향해 달린다. 여전히 병원선이 물살에 휘청거린다. 소모도 남쪽 갯바위를 지난다. 바로 ‘대망도’라는 무인도다. 그리고 소모도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대망봉’이라고 한다. 이곳을 지나 몇 분 더 가면 바로 대모도의 모서리. 이어 모서리 선착장에 닿은 것은 5시. 그런데 경찰아저씨가 배에 올라탄다. 비번이세요? 하니 아니고 건너편 모동리로 간단다. 걸어서 가기에는 부담이 되어서 그런 모양이다. 사실 모서리와 모동리는 걸어서 왕복 40여 분이 걸린다. 거기에다 자전거가 있다고 하지만 자전거가 옛날 거라서 탈 수 없다고 했었다.
배는 다시 모서리를 출발하여 모동리로 향한다. 북쪽으로 방향을 돌린 후 동쪽으로 돌린다. 그리고는 다시 남쪽 방향. 이어 모동리에 닿은 것은 3시 20여 분. 경찰아저씨가 내리고 몇 사람이 내리자 배는 청산도로 향한다. 청산도에 닿은 것은 3시 43분.
청산도에서 내릴 줄 알았는데 목사님은 전혀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배가 청산도를 떠난다. 그래서 바로 완도로 가나 생각해 아예 객실로 들어가서 잠자리에 들어버린다. 이 배가 완도로 가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배가 휘청거린다. 보기 드문 현상이다. 분명 완도에서 청산도에 갈 때도 이런 현상이 없었는데 갑자기 풍랑주의보가 내렸나 생각했다. 그래서 객실에서 나와 밖을 보니 망망대해다. 시간을 보니 4시 40분이 다 되어가는 시각인데. 그리고 물살이 조금은 센 편이었다. 배가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린다. 내 몸이 가만히 있질 못한다. 이어 갈수록 더 심해진다.
실제로 완도항을 떠난 배가 청산도까지는 별 일 없이 잘도 간다. 그러나 ‘얼굴 예쁜 계집 속마음과 바다 잔잔한 것 믿지 말라’고 했듯이, 청산도를 지나면서부터 여서도까지의 물길은 뱃사람들도 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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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충보았지만 재미있네요 화장실이 어릴때 울 할머니댁보다 더 무섭네요 발이 푹빠지면 어쩌나....
(어릴때 할머니댁에가면 아얘화장실을 안가고 마당에서 볼일을 보았었어요 그러면 강아지가 와서 다 청소?해 주었었는데ㅋ )한가할때 다시한번 정독해야겠네요
와와와~~~ 대단하십니다.....^^;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