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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개 / 문복주 우리 집엔 말하는 개가 산다. 이 말하는 개를 보려고 각지에서 개들이 몰려 왔다. 말하는 개가 개들에게 말했다. 개답게 바르게 살자. 요즘 개답지 않은 개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파마하고 리본 달고 개목걸이하고 넥타이 매고 비키니 입고 이름표 달고 꼬리표하고 다닌다. 개 미용실이 생기고 개 사우나가 생기고 개 식품에 개용품 전문매장이 생기고 개 전문병원 개 공원 개 호텔이 생겨 호황을 누린다. 너희가 무릇 개이냐 사람이냐. 개 족보가 생기고 개 주민 등록이 생기고 개 묘지가 생기고 개 유산상속이 등재된다. 사람 말대로 개판이 되었구나. 개면 개답게 바르게 살아야 하는데 인간과 같이 침대에서 자고 먹고 차타고 알랑알랑 사랑 받고 논다고 개가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지 말라. 그것이 너의 슬픔이다. 목청 잘리고 거세당하고 오만 잡것에 교배 당하고 차에 치이고 병들고 늙고 장애자가 된 친구들이 거리에 버려져 몰려다니는 무리들을 생각하라. 개답게 바르게 살아라. 컹컹 짖어라. 네가 짖음으로 집을 지키고 주인을 지키고 늠름하게 동반자가 될 때 너는 개다운 개가 된다. 개는 개일 때 살아남는다. 개는 개일 때 아름답다는 것을 알라 우리 집엔 말하는 개가 산다. 사람들이 그 개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말한다. 그 개가 죄송하게도 나입니다. 내가 말하는 개입니다. - 문복주 시집 <철학자 산들이> 2012 개소리 / 문복주 큰 개가 작은 개에게 말한다 주인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에게 개밥을 주려다 콩밥을 먹으러 갔다 그래도 우리를 아직까지 먹여 살렸으니 너는 신문을 물어라 큰 개가 신문을 작은 개에게 넘기고 사람 많은 역전에서 구두를 물고 뛰는 것을 본다 이제는 구두를 물어라 작은 개가 구두를 입에 물고 뛰었다 큰 개는 영화 포스터와 암표를 입에 물고 부지런히 다녔다 큰 개는 극장가에서 늘 으르렁거리며 물고 뜯고 싸웠다 작은 개는 개세상이 정말 죽도록 싫었다 작은 개는 꼬리를 사리고 어정거리다 먼 곳으로 떠났다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늘 큰 개가 생각났다 주인이 아직도 콩밥을 먹고 있는지 늘 생각이 났다 컹 컹 컹 의젓하게 위엄 있게 이 동네에서 짖어 보지만 그 옛날 짖던 개소리가 아니다 이상하다 개가 짖으면 개소리여야 하는게 아무리 짖어도 개소리가 아니다 - 문복주 시집 <철학자 산들이> 2012 칸초 / 문복주 얼렁얼렁 옆집 가면 칸초가 있다 서양 년 아니랄까 봐 제 눈앞까지 털로 가리고 빨간 리본, 노랑나비 넥타이, Nix 청바지, 꼬리엔 또 무엇 얼렁얼렁 찾아가 창가로 들여다본 그 애 소파에 앉아 소시지 먹다 얄리얄리얄랑 춤춘다 어쩌다 리무진 타는 그 애와 마주쳤는데 나를 킁킁 냄새 맡더니 저만치 물러선다 종이 틀리다는 건가? 친구들이 거의 다 죽고 헉헉 혀를 내밀던 날 천둥벼락 내리치며 비 오던 밤 미쳐서 얼렁얼렁 동네 한 바퀴 돌 때 담벼락 밑에 덜덜 떨고 있는 그 애를 보았다 왜 그래? 말을 하려 했지만 말을 하지 못한다 왜 그래? 아래쪽을 훓어보지만 냄새가 나지 않는다 너... 다 없는 거야? 칸초가 운다 음... 그러니까... 칸초야 우리는 개야 음... 그러니까. 사람이 아니지. 음... 그러니가 개는 개를 생각해야지... 칸초는 무어라고 말하려 한다 하지만 소리가 없으니 내가 대신 컹! 컹! 컹! 짖어준다 칸초의 크고 깊은 눈이 빛난다 - 문복주 시집 <철학자 산들이> 2012
[출처] 개소리 외 / 문복주|작성자 비비추 김귀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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