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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개 소리로 '개나 소나 다 외국여행 한다'는 시대인데, 우리 언니는 완전 천연기념물이다.
아직까지 외국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에 다니던 형부가 사업을 시작한 게 탈이었다.
몇 년 동안 잘 나가나 하더니 끝내 빚잔치를 하고 손을 탈탈 털었다.
언니네는 집도 절도 없이 남의 집 곁방살이를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믿을 것은 아들 셋 밖에 없었다.
인물 좋고, 인성 훌륭하고, 공부까지 잘 하는 아들 셋을 바라보고 언니는 견뎌냈다.
그 세월이 장장 십 년도 더 넘었다.
이제 아들들은 얼추 다 교육시켰지만 여전히 언니와 형부는 사는 것이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남들 다 가는 와국여행도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다.
방학때마다 외국여행을 하는 나는 괜히 언니에게 미안했다.
돈 한 푼이 아쉬워서 절절 매는 언니네를 보면서도 팔자 편하게 유람이나 다니다니,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어쩌면 나를 야속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늘 언니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여행 떠나기 전날 밤, 짐 보따리들)
어릴 때, 나보다 세 살 많은 언니는 항상 존경스러운 존재였다.
공부도 잘 하고 달리기도 잘 하고, 내 눈에는 뭐든 잘 하는 언니였다.
맏이인 언니를 부모님은 어른 대하듯 대화 상대로 여기셨다.
언젠가 한 번은 언니가 그랬다.
"나는 부모님이 뭐라 하시지도 않는데도 포기를 많이 했어. 맏이다 보니 집안 사정을 염려했던 것 같아. 돌아보면 스스로 포기를 많이 했던 게 참 아쉬워."
언니는 공부를 잘 했지만 고등학교 갈 때 상고를 선택했고, 대학은 꿈도 꾸지 않고 취직을 해서 집안을 도왔다.
성향상 교사가 되었더라면 참 좋은 선생님이 되었을 텐데...
58 개띠에 농부의 딸로 태어난 언니에겐 고등학교도 사실 과분한 혜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언니 친구들 중엔 중학교 졸업을 끝으로 사회로 나간 사람도 많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지난 봄에 언니에게 물어봤다.
"언니, 외국 간다면 어느 나라 가고 싶노?"
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중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음... 중국 가고 싶다."
"와?"
"어릴 때 봤던 삼국지 안 있나? 글 속의 무대를 직접 보고 싶다."
언니도 나와 똑같았다.
나 역시 외국에 한 번도 안 가봤을 때 중국을 그렇게 가고 싶어 했다.
우리 자매는 생각하는 게 참 비슷했다.
('중여동' 카페와 함께 한 북경 여행...)
할아버지는 책읽기를 참 좋아하셨다.
아버지도 삼촌도 다 책을 즐겨 읽었다.
할아버지는 서당에서 천자문 등을 배운 게 전부이고 아버지와 삼촌은 보통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마친 사람인데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농사를 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농부였지만 내 눈에 그분들은 '선비'였다.
선비란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늘 책이 있었다.
삼촌의 친구 중에 대학을 마친 사람이 있었고, 그 집에서 늘 책을 빌려와서 할아버지께 드렸다.
어린 우리들도 책과 함께 자랐다.
그 속에 '삼국지'가 있었고 '삼국유사'도 있었다.
글을 배우자 우리는 삼국지와 삼국유사를 읽었다.
해모수와 유화부인, 금와왕과 주몽, 고구려의 을파소 등등...
옛 이야기들은 너무나 재미있어 어린 머리 속에 그대로 들어와 앉았다.
할아버지가 읽으시던 책을 따라서 읽었던 우리 자매였다.
언니가 중국을 가보고 싶어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래, 언니에게 중국을 보여 주자.'
(지하철을 타고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중)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고 이웃들이 하나둘 여행을 떠날 때 나는 오로지 중국을 꿈꿨다.
삼국지의 무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자매에게 중국은 단순히 하나의 나라로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꿈이자 추억이기도 했다.
우리가 바라는 여행도 비슷했다.
우리는 관광지를 훑고 다니는 그런 여행보다는 한 곳에 머무르며 그곳을 느끼기를 원했다.
특별히 볼거리가 없어도 괜찮다.
그냥 그곳에 머무르며 사람들이 사는 것을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교통카드와 같은 중국 교통카드)
지난 9월 3일, 내 마음 속에 늘 꿈꾸던 여행을 떠났다.
'58개띠언니, 중국을 가다'라는 제목을 정해두고 그림까지 그렸는데, 드디어 첫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중국' 나라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언니가 지금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왔으면 싶었고, 그런 형편이 되기를 바랐다.
'중국'은 언니가 열어갈 미래의 세상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자식과 가정을 위해서 헌신한 언니가 이제 조금 편해졌으면 싶고, 글 잘 쓰고 공부 잘 했던 언니가 그쪽으로 눈을 돌렸으면 싶다.
지난 여름에 남편과 함께 배낭을 메고 중국을 헤매다온 경험이 있는지라 북경 쯤은 만만했다.
'한국 사람 하나 없는 곳도 열흘 이상 떠돌았는데, 북경 쯤이야 뭐...'
또 북경은 몇 년 전에 다녀온 곳이기도 하니, 이화원이니 자금성이니 만리장성 쯤은 실컷 찾아갈 자신이 있었다.
더구나 함께 하는 일행들도 있으니 더 마음이 편했다.
비록 일정을 다 같이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와서 한 호텔에 머무니 급한 일이 있으면 물어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언니에게 북경에 가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언니가 중국이 처음이니, 아무래도 첫 시작은 북경부터 해야겠지?
그리고 다음에는 배낭 메고 떠나는 거야, 알았지 언니?"
(이화원에 들어갈 때 입장권을 끊었는데도 여기서 또 입장권을 끊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내 계산은 빗나갔다.
북경은 지하철이 잘 되어 있어서 원하는 곳을 찾아가기가 쉬웠지만 그래도 언니를 책임져야 하다보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지난 여름의 충칭여행이 떠올랐고 남편이 고마웠다.
그 사람도 나처럼 무거운 책임감에 쉬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따라가는 것하고 앞장을 서는 것 하고 천지 차이였다.
그래도 언니가 즐거워 하는 것을 보는 게 큰 기쁨이었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어 엎어지기 바빴지만, 이야기를 나누느라 12시를 넘겨서 잠자기가 예사였다.
"언니야, 요기 좀 서봐라. 사진 찍어줄께."
"됐다 마. 니나 마이 찍으라 개안타."
아이고, 경상도 사람 아니랄까 봐 언니는 나긋하지 않다.
힘들기도 했을 것이다.
경상도에서 몇 시간씩 기차 타고 서울까지 올라와서 또 강화도까지 왔고,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새벽 일찍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탔으니...
더구나 공항에서 수도 없이 여권을 제시하며 출국 수속을 밟고 중국에 와서는 몇 번씩이나 지하철을 갈아타며 호텔까지 와야 했으니 피곤하기도 했을 것이다.
더구나 하필이면 그 날이 중국의 전승절 날이었으니, 호텔 인근 도로가 다 통제되고 식당들도 다 문을 닫아 2시가 넘도록 배를 쫄쫄 굶으며 밥 먹을 곳을 찾아다냐야 했으니 그 좋다는 이화원이 눈에 들어왔을 리가 있겠는가.
언니는 이화원에서 무척 힘들어 했다.
이러다가 탈이 나서 나머지 여행을 못하게 될까 은근히 속으로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화원을 증축하는데 어머어마한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청일전쟁 때 해군에 써야 할 군비를 서태후가 이화원 증축에 유용했다고 한다.)
언니는 이 풍경도 못 봤다.
한참 계단을 오르다가 도저히 힘들어서 못 올라가겠다고 하며 나더러 혼자 보고 오라고 했다.
아이고...
다행히 그 다음 날 부터는 몸 상태가 좋아져서 구경을 잘 했는데,
나중에 이화원을 잘 보지 못한 걸 아쉬워 했다.
"만리장성 보지 말고 이화원 한 번 더 갈 걸 그랬다. 이화원 참 좋던데..."
그런데... 북경에 와서 만리장성을 안 보고 가면 온 돈 주고 반머리 깎은 거나 마찬가지일테니...
나도 만리장성 별로 안 가고 싶었지만, 언니 위해서 갔던 거야.
한 번은 가봐야 되지 않겠어? 그래야 만리장성 이야기 나올 때 아는 체라도 하지. 안 그래, 언니야?
이화원은 다음에 또 보러 오자. 그때 중국옷도 하나 사자. 비싸서 만져만 봤던 실크 치파오, 그게 자꾸 생각난다.
한 번 가봤던 곳이지만 가이드 없이 찾아다니려니 이게 또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 곳으로 갔다.
지난 번에 가이드가 데리고 갔던 곳은 이러지 않았는데...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봐서는 참 잘 봤다.
한국 여행객들이 찾지 않는 곳인 것 같은, 이화원의 또 다른 곳은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고 참 좋았다.
정원 속의 정원이라고나 할까...
서태후가 분명 사랑했을 것 같은 정원이었다.
이화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베이징대학을 보러 갔다.
이화원에서 북경 시내 쪽으로 두 정거장만 가면 된다.
베이징대학이라니... 이름만으로도 황홀하다.
중국 인구 15억 명 중에서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기 식으로 수재 중의 수재들만 간다는 베이징대학.
우리 시동생이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 아버님이 그렇게 기쁘하셨다는데,
베이징대학에 다니고 있는 자녀를 둔 중국 부모들 역시 천하를 다 얻은 것처럼 기쁘고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베이징대학에 들어가보지 못했다.
시간이 늦어서 출입을 할 수 없다는 것 같았다.(수위가 막으며 뭐라 했는데 아마도 시간이 늦었다는 것 같았음.)
베이징대와 청화대를 가보는 것도 우리 여행 일정 중의 하나였는데,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는 못 갈 것 같다.
그 도시의 대학과 도서관, 그리고 서점을 찾아가보는 게 내 여행 재미 중의 하나인데 이번 북경여행에서는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고, 또 처음 중국을 온 언니에게는 그래도 이름난 관광지를 보여주는 게 우선일 것이다.
그래서 이후 우리는 남들과 똑같은 곳을 둘러보는, 관광지 위주의 여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이화원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1903년, 8월 5일. 태후를 친견하는 날이 밝았다.(중략) 밤새 내렸던 비가 그친 후, 주위의 모든 것들이 상쾌하게 빛나는 아침이었다. 흰 옥석으로 포장한 도로는 촉촉이 젖어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마치 흐르는 물처럼 빛이 나고, 도로 양 편으로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과 밀밭은 짙은 녹색으로 출렁였다. 멀리 남회색으로 빛나는 하늘 아래 겹겹이 겹쳐 있는 산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드디어 그 속에서 이화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절경은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 캐서린 칼, <禁苑黃昏금원황혼>'
미국의 여류 화가 캐서린 칼은 1903년에서 1904년에 걸쳐 서태후의 곁에 머물며 초상화를 그렸다. 위의 글은 캐서린 칼이 서태후를 만나러 가는 첫날의 풍경을 그린 글이다.
이화원은 자금성으로 부터 북서쪽으로 십오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황제의 별궁이다.
베이징에는 이화원 이외에도 별궁들이 몇 개 더 있었는데,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말한 열하의 피서산장이 그 중 하나고,
1860년에 영불 연합군에 의해 파괴되어 버린 원명원도 그 중 하나이다. 그 외에도 자금성에 바로 붙어 있는 중난하이와 베이하이가 또 있다.
이화원은 중국 왕조 역사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어서 내국민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서태후는 이곳을 좋아해서 일 년의 절반 이상을 이화원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서태후는 열여덟 살에 함풍제의 후궁으로 들어와서 아들을 낳았고,이후 아들인 동치제가 옥좌에 오르자 수렴청정을 하였다.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 살에 불과했다. 서태후는 권력 다툼의 혈전을 치루었고 끝내 권력을 거머쥐었다.
쉰다섯 살에 조카인 광서제에게 정권을 물려줄 때까지 이십팔 년 동안 최고 권력을 쥐고 있었다. 이후에도 그녀의 힘은 여전해서 일흔네 살로 세상을 뜰 때까지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오십 년 간 그녀는 단 한 순간도 황제보다 낮았던 적이 없었다. 매순간 그녀는 최고 권력자였다.
'북경의 뒷길을 걷다'라는 책을 쓴 소설가 김인숙은 이화원을 오십 번도 더 가봤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화원이 그녀를 끌어당기니, 대체 어떤 매력이 숨어있기에 그러한 것일까.
잠시 잠깐 스쳐지나가며 본 여행자로써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작가는 이백 년 전 태후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이화원을 거닐었을지도 모른다.
2015년 9월 3일 오후, 두어 시간 동안 이화원을 둘러보았다.
집에 있는 사람을 위해 이화원 지도를 하나씩 사서 들고 우리는 베이징 시내로 돌아왔다.
첫댓글 멋집니다
고맙습니다~~.
한번 다녀온 북경.
맛깔스런 글속에서 예전에 다녀온 이화원이 떠오르네요.
혹시 나들길의 그분이신지...
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나들길'을 아는 분이시니... 제가 맞습니다. ㅎㅎ
@미감 길상산 상주산 일요팀에서 세번정도.
기억 안날수도 있어요.
다음에 반갑게 만나요~
@꿈꾸는갈매기 네~~~, 그래요, 반갑게 만나요~~~.
자매간의 두터운정이 참으로 귀감이 되는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고 많은이들이 형제간에 자매간에 돈독하게 지내는이들이 썩 많찮은것 같은데......
언니분과 자주 여행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언니와 자주 여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을 정말 맛깔나게 쓰셨습니다
난 여행 다녀오면 그걸로 기억이 희미해서 쓸 글이 없던데 말이죠 ㅎㅎ
아침부터 좋은 글 자매간의 우애를 보니 정말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똑같습니다. ㅎㅎ
갔다오면 기억이 희미해져서 긴가민가 합니다.
찬사를 보내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사람 냄새가 나는 따뜻한글 오전에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언니를 배려하는 천사같은 마음씨를 가진 동생으로서 부럽기도 하고 본 받을 만 합니다.
칭찬 말씀 들으니 부끄럽습니다.
동화같은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고맙습니다~~~.
잘 하셨어요.
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58개띠 언니도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다음엔 서유럽,동유럽,스페인,터키도 다녀오시고,
캐나다,미국도 가보세요
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분이 친구처럼 함께하시니 얼마나 좋으신가요 ~^^
네, 좋아요~~.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읽어본 여행기 중에 님의 짧은 글이 최고 인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실력을 자랑하고 중국 고전을 평가하고 이리저리 뜯어고쳐보기 까지 하면서 자기를 드러내려고 애쓰기도 했는데 님의 글은 순수한 마음 그대로를 표현해서 오랫만에 담백하고 정이 넘치고 그러면서도 세심한 관찰이 드러나는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본인도 글쓰기와 책읽기를 주로 하는 사람인데 글을 읽고난 기분이 너무 상쾌하고 깔끔하고 따뜻합니다. 문장에 과한 수식과 분칠이 없어서 너무 좋습니다. 진심 감사드립니다.
과찬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을 올리는 일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재미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래전 중국 근무하러가서 여러번 출장자들 데리고 갔었던 이화원. 다시 생각나게 해주시는군요. 저도 미감님 언니처럼 첨엔 불향각 올라가기를 포기했습니다. 담에 와서 등정?을 끝내기는 했지만. . ㅎㅎ, 담담한 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 여자분이 삼국지에 흥미가지신 분은 흔하지 않기에 더욱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삼국지 유적은 중국전역에 흩어져 있어서 한달정도 작정하고 자유여행으로 돌아도 다보지 못할만큼 방대합니다. 압축하여 본다면 가능하지만. ^^
근데 큰유적 몇개를 제외하면 흔적만 남아있는곳이 많아서 가시기전 한번더 읽으시고 마음으로 관광하셔야 충만된 관광이 될 수있다는 팁? 드립니다. ㅎㅎ
고맙습니다~~~.
삼국지는 다 읽은 게 아니고 아마도 1권 정도만 읽었을 것 같아요.
그것도 어릴 때 읽은 게 전부예요.
그때 읽은 내용이 기억나는데, 새로 번역된 책들에는 그런 부분들이 없더라고요.
제가 그 부분들이 그리워서 1권만 여러 권 샀거든요.
번역자는 다 다른 사람으로요.
사실 삼국지 유적을 보고 싶다고 말은 했지만 꼭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런 여행을 했으면 한다는 말일 뿐이에요.
'longplag'님처럼 저도 마음으로 보는 여행을 좋아해요.
님이 올리신 글들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멋졋어요~~.
이순을 바라보는 두 자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감동적입니다. 대부분의 우리 중년들은
일상생활에 메여 여행한번 제대로 못하는데 두 자매들도 비슷한 경우인것같네요 그러나 아름다운
자매간에 사랑은 어떤 여행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부디 건강지켜서 좋은 우정으로 자주 여행도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이순'이라고 해서 깜짝 놀랬습니다.
너무 나이 들어보여서요. ㅎㅎ
건강하게 잘 살아야겠지요.
고맙습니다~~~.
글 참 재미나게 쓰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감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동생이언니를위한다는게쉬운일이아닌데참흐뭇하네요
고맙습니다~~~~.
우선 형제간의 우애에 경의를 표합니다.
맛깔나는 글씨가 대단하신데 언니는 더욱 잘 하신다니.....
사진도 중요하지만 전 전문가가 아니기에 맛깔스런 이런모습이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언니 이야기로 회원님들에게서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언니는 하도 오래 글을 떠나 있어서 자신이 없다고 그럽니다.
제가 자꾸 글 시작해보라고 해도 늘 망설이기만 합니다.
우선은 블로그부터 시작하라고 만날 때마다 잔소리를 하는데 아직...
흐믓하게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소중하고 뜻깊은여행이였습니다 저도 중여동회원이여 당신이 순수하게 쓴글이 마음에 듭니다 감솨 ..
네, 고맙습니다~~.
참 뜻깊었던 여행이 아니었나 싶어요~~~
읽은 내내 흐믓한 기분으로 함께 여행한 듯 싶습니다. ^^
앞으로도 좋은 여행기회가 많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다음 자유여행갈때 함께 하고 싶도록 글을 잘 쓰시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