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과 까치와 로또

[안수현]

산삼과 까치
어젯밤 꿈속에서~~~
우린 열 살도 되기 훨씬 이전에 빨갛고 토실토실하게 달랑거리던 두 쪽 쌍방울(지금은 먹지도 못하고 쓸모도 없는 곶감처럼 변해버렸지만)이 꼭 닮았던 고향의 씨동무와 산삼을 캐려갔다.
같이 가던 동무가 산삼이다! 라며 가리키는 곳을 보니 커다랗고 잘생긴 산삼이 있지 않는가! 씨동무는 고맙게도 그 산삼을 내손에 쥐어주었다. 평생을 산에 다녀도 한 뿌리 캐기 어렵다는 한민족의 영약!
산삼에 얽히고설킨 숱한 설화들만 보아도 대한미국 사람이면 모두가 한번쯤 먹어보고 싶은 불사약이 아닌가! 그런 산삼을 내가 캐지는 못했지만 씨동무를 통해 얻었으니 이게 웬 떡이야! ~~~~~

너무 좋아 눈을 뜨니 내손에 있어야 할 삼산은 간데없고 간밤에 내가 잠든 사이 마누라가 먹다 남은 고구마 반쪽이 쥐어있었다.
어디 그것뿐이랴 허벅지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확인해보니 열대여섯 근은 족히 되고도 남을 마누라 다리가 짓누르고 있지 않는가.
성질이나 힘껏 밀어붙였더니 방귀(똥) 낀 놈이 성질낸다고 오히려 겨우 든 잠 깨웠다고 신경질을 버력 버럭 내면서 내일 밤부터 콧구멍에 솜을 틀어막아버린다며 베개를 들고 옆방으로 가버린다.
내가 잘못인가 마누라의 잘못인가?
판단이 서지 않는 칠월의 짧은 밤이 것만 아직도 어둠이 온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홀로된 깊은 밤의 천정에는 산삼이 잡힐 듯 잡힐 듯 아른거리며 잠들지 못하고 있는데 문득 로또복권이 생각났다. 그래 그거야! 비록 꿈속에서 본 산삼이지만 육십 평생 처음 꾼 산삼 꿈이 아닌가!
날만 밝아라. 당장 달려가 로또를 사야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이 밤아 빨리 가거라. 그리고 아침아 빨리 오거라 그런데 유난이 그 밤이 길었다.
아침을 기다리며 긴 밤을 흉보고 원망까지 하며 뒤척이다 비몽사몽 헤매고 있는데 마누라가 빨리 일어나 아침 먹으란다.

벌떡 일어나니 기다리던 날은 밝아 있었고 식탁에서 풍겨오는 된장국냄새에 뱃속의 유익한 기생충들이 꿈틀거리며 식사하려가잔다
이놈의 기생충들아 보채지마라 너들이 아니라도 난 바뿐 몸이란다.
내 몫인 이불 정돈도 하지 않은 체 급히 식탁에 앉았더니 이거 웬일이야 경사가 겹치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5층 주방 창문 앞까지 훌쩍 커있는 사시나무 꼭대기에 까치 두 마리가 까악 까악 거린다.
아침에 가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데....
어젯밤엔 산삼 꿈 아침엔 까지가 울고 야! 신난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 ㅎㅎㅎ~~~~~~
내겐 올 손님이 없으니 틀림없이 로또당첨소식을 까치부부가 가지고 온 것이 확실하다 더욱이 소곤거리는 두 마리의 행동거지를 보니 부부인 것이 틀림없으며 까치부부의 어젯밤은 우리부부처럼 따로 국밥이 아니고 사랑에 흠뻑 빠져 아름다운 종소리를 수 없이 울렸을 꺼다.

꿈 이야기를 하면 꿈의 효염이 없어지고 듣는 사람에게 가버린다니 마누라에게도 말하지 말아야지! 안되지 안 돼! 고무신 거꾸로 신으면 큰일이니 꼭꼭 숨기고 있어야지 .....
자랑하고 싶어 간질간질한 입술을 꼭꼭 깨물어 참으면서 말없이 밥한 그릇을 뚝딱 개 눈 감추듯 해치우고 밖으로 슬그머니 나가니 마누라 왈 이봐요! 오늘 부평 농산물 도매시장에 장아찌 담글 양파사려 가야하는데 어디가요?
그래서 난 속으로 큰소리 쳤다 여편네야 오늘부터 난 귀하신 몸이다
그까짓 장아찌 안 담그면 어때! 이제부터 가진 거는 돈 뿐일 텐데 사먹으면 되지 히 히 히~~~~
목에 힘을 주고 어디 잠깐만 나갔다 올 테니 그리 알아......
마누라가 뭐라고 투덜거리는 소리를 뒤로하며 쏜살같이 우체국 옆 GS 24시 마트로 달려갔다.
오늘 같은 날엔 행운의 숫자를 골 아프게 애써 조합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다 많이 투자할 필요도 없다 외!
이미 까치가 당첨소식을 전해주었으니까! ㅋㅋㅋㅋㅋ
로또를 곱게 접어 지갑 깊숙이 넣고 몇 번이고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집으로 가지 않고 중앙공원으로 갔다 지금의 즐거운 마음을 조용히 마누라의 방해 없이 마음껏 음미하기 위해서다.

공원엔 따가운 아침햇살을 피해 두꺼운 그늘을 만들어주는 터널 화된 등나무 밑의 의자는 언제나 부지런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차지해 버렸다 그리고 저마다 젊은 날의 잊혀 질 수 없는 얘기들로 꽃을 피운다.
한 무리의 어르신 중 휠체어를 탄 한분이 영관급 장교로 월남참전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침을 튀기면서 흥분하고 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제대 말년에 통신가설병 이었던 내가 지명 차출되어 월남 안 가려고 도망치던 나지만 파월용사의 과장이 너무 심했다.
그리고 허름한 옷차림의 한분은 손주로 예상되는 어린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잡고서서 요즈음 아들이 실직되어 용돈이 없어졌다고 정치하는 놈들을 때문이라며 그분 또한 더 많은 침을 튀기며 욕을 바가지 바가지로 하고 있다 왈 우리 서민들은 등 따시고 배부르면 그만이지 어느 놈이 대통령이 되던 나를 취직시켜 줄꺼야 자식놈 취직시켜 줄꺼야 자기와는 상관이 없단다.
그분의 차림새나 나와 생각이 비슷하다 심정적 그 동지를 뒤로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한적한곳에 작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고 바람이 불때마다 콘크리트 의자를 덮고 있는 얇은 그늘에 뚫려있는 커다란 햇볕 구멍이 왔다갔다 움직이지만 노인들이 앉자고 하지는 않을 나만이 오늘 늦게 다가올 행운을 미리 즐기기엔 안성맞춤임에 틀림이 없었다.

오늘 만큼은 몸조심해야지!
만약 사소한일로 다른 사람과 다툼이 생긴다면 안 되지, 암 안 되고말고 내 기억으론 88올림픽 복권부터 투자한 금액이 아마도 한번 당첨되고도 남았을 금액인데 이번기회에 본전 찾고 이자까지 회수 하고 졸지에 억만장자가 되잖아! 그리고 세금을 왕창 내보는 것이 내 소원이었는데 이제 그 꿈을 이루어 보는 거다 ㅋㅋㅋ 기분 째지네. ~~~~
옛날 직장 다닐 때 동료가 당첨소식을 알까 두려워 출근과동시 과장책상에 놓인 신문 들고 화장실로 가던 생각이 났다.
그래서 걱정 꺼리가 생겼다 텔레비전은 한 대 뿐이고 마누라 몰래봐야 하는데........... 그렇다고 내일아침까지 기다리다 인터넷에 들어가 볼 수도 없고 아니지 만약 내가 기절한다면 119에 전화할 사람은 그래도 마누라뿐이 자나!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우황청심환이나 하나 사가지고 들어가야지 ㅎㅎㅎㅎㅎㅎㅎ

무덥고 지루한 날이었지만 로또의 달콤함으로 버티며 이기고 나니 날은 저물고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갑자기 마누라가 바람 쏘이려 공원에 나가잔다. 이 사람이 무슨 소리하는 거야 꼼작도 하지 말고 기다려! 우황청심환을 먹었지만 걱정된다며 꿈 얘기부터 유난히 길었던 하루와 화려한 미래가 약속되는 순간임을 알리고 붙잡아 두려했었다.
그런데 여편네 하는 말이 당신 어디 아파? 헛꿈 꾸지 말고 정신 차려요 하고 촐싹거리며 초를 치고 나가버린다. 김이 팍 샜지만 순간이었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로또를 꼬오옥 쥐고 마누라 대신 찬물 한 그릇과 전화기 옆에 꺼내 놓고 내가 기다리는 숫자의 구슬이 나오기를 브라운관이 뚫어지라 보고 있었지만 끝내 내가 바라는 숫자는 어디로 외출 했는지, 왜놈의 순사에게 잡혀갔는지 꼭꼭 숨어 버렸다.

비록 로또는 물 건너갔지만 오늘 하루는 기다림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다. 내일 또 로또를 사야겠다. 될 때까지!!
그래야만 다가오는 일주일은 희망이 있고 그 기다림으로 나를 사랑할 것이다.

[보통사람(권영대)]

난 로또 아직 한번도 안사봤는데~~ 그거 당첨되면 불행해진다더라~~~ ㅋㅋ

[권기원]

안선생 무덥고 지루한 장마철에 건강하신가.? 기가 허하면 일장춘몽이 자주일어나는 현상이랄까... 몸보신 해가면서 희망찬 토요일을 기다리게나. 글 재미좋게 잘~알 보았네.

[김시무]

재미있는 수필, 안수현님의 일상을 잘 읽었습니다. 권기원님, 기가 허한 것이 아니고 우리 같은 이순의 나이에 기다림과 희망이 없으면 존재의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닐까?

[智碩(권기하)]

시무님, 더위에 건강은 괜찮으세요?.... 늘, <편지>는 잘 받아 보관하고 있습니다... 내 자식들 한테도 자랑거리 랍니다....

[智碩(권기하)]

오늘, 로또 샀습니다..... 거금, 일만원 어치...ㅎㅎㅎ

[안수현]

나처럼 꿈은 껏는가?